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퇴마록 “유체” 편..
이것이 내가 읽고 유일하게 눈물을 흘린 책들의 제목이다. 그리고 그것들에 “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가 포함 될 것이라고는 책을 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책 처음 부분이 등장한 대안학교가 뭔지.. 그리고 이 책을 쓴 사람은 과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길래.. 그런 물음들은 책을 덮으면서 일제히 해소되었다.
지루한 이론적 접근에 대한 책이 아니다. 몇몇 그녀의 보고서가 사실 지루한 것 빼고는 이 책은 내게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야만 했다.
나의 아픈 과거에서의 경험이 날 눈물나게 했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나의 카타르시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카타르시스후의 감정 순화가 아닌 답답함도 함께 남았다는 것이지만..-
청소년.. 이었던 지금의 대학생.. 그리고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 생각했던 부분들..
너무나 적나라게 나와있었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이 책에서의 현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으며, 그녀가 나온 다큐를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그녀가 너무 멋있게 그리고, -그녀가 염려한 대로- 그녀를 수능이 끝나고 ‘난 이렇게 성공했다’ 라고 떠드는 학생 중 하나처럼 그녀의 자퇴를 통해 성공한 케이스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녀에 대한 부러움도 질투도 함께 있었으며, 또한 나는 그래도 학교를 졸업한다는 조소도 함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진짜 파란만장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연극을 너무나 하고 싶었고, 연극반도 없는 학교에서의 나의 유일한 탈출구가 극단에 입단하는 것이었고 , 그렇게 했다. 그리고 학교의 탄압도 시작되었다.
나는 비평준화 지역의 그래도 우수한 애들(?) 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당시 우리는 야간자율학습 이라는 명목의 타율학습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것은 단 한사람도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거기서 내가 연극을 하기 위해 그 시간을 빠져 나오는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때문에 선생님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교무실에 날 불러다 놓고, 집에 빽이나 돈이 있냐고 물었던 한 교사.. 그리고 그게 없다면 관두라는 얘기.. 그래도 내가 너를 걱정하여 하는 말이라는 끝맺음...
난 그들과 싸웠고, 마침내 일단(?)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다른 지방 공연까지 마침내 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상처를 받아왔고, 그리고 그들과 싸워야만했기에 그들에 대한 신뢰는 없었고, 그 뒤로 보이는 그들의 이중성과 안일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리고 실로 그 싸움은 외롭고 처절했다. 당시 그들에 대한 얘기들을 독자투고해서 신문에 보낸 적도 있었고. 5번에 1번 운 좋게 전국 신문에 실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항상 내 머릿속에서는 학교를 다녀야되는 이유에 대해 나 스스로 묻곤 했다.
결론은 나의 사랑스런 친구들 때문에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배우는 곳... 인 그곳에 머물 이유치고는 참 어이없게도 말이다. 그나마 그 배운다는 것이 교사들에게서가 아니라 나의 친구들에게서 였으니.. (학교수업은 문제집 푸는 거였으니 공부에 대한 부분은 아쉬울 게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준비하여, 대학.. 연극영화과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잘 될거 라 믿었고, 이제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하는구나 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이 책에 나온 교실붕괴가.. 강의실 붕괴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한 그 심각한 교실붕괴가 지금 대학강단에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나는 몸으로 느낀다.
부끄럽지만.. 정말 부끄럽지만 말이다.
나는 그들과 타협했다. .. 너무나 힘들고 처절한 싸움 끝에 내가 느낀 건 타협하는 것이 내 고통을 가장 줄인다는 것이고, 이미 사회는 그렇게 되어있었다. 청소년.. 그 아름다운 이름들을 도와주고 싶었고, 내가 어른이라는 그들과 함께 서는 날이 오면, 내가 그들의 편에서서 도울 것이라고.. 다짐 하고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후.. 내가 타협하고 나서.. 나는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상처받는 청소년이 나올 때. 내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 한 외면 했었다. 현실을 외면하기엔 너무나 어두워서 난 글을 썼었고 운 좋게 책까지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감당하기 힘든 결과가 따라왔을 때.. 나는 외면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어른의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여기에 있다.
대학이란 곳.. 파라다이스가 아님은 진작에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내가 진짜 연극을 하기 위해 쌓아 가는 학문이 아니라 그냥.. 있으니까 해야하고 졸업해야하니까 해야하는.. 그야말로 학점 때문에 학교를 다닌다는 생각이 날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이상 난 그저 버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 책의 ‘원’ 이라는 아이의 글에서 그랬던가. 나는 그저 학교가 싫고 더 이상 적응 할 수 없다 는.. 그리고 문제는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지금 나도 그렇다. 연극이 미칠 듯이 좋아서 들어왔지만, 내가 학교에서 부딪히는 일들은 정작 나를 연극에서 점점 더 멀게 만들고 있고, 이젠 시들시들해 질 정도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난 곧 학교를 그만 둘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내지 못했던 용기를 이제야.. 내려고 한다. 부끄럽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것도 도피인지도 모른다.
대학 강의실에서의 답답함을 바꾸고 싶었고 이게 아니란 생각 ..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게 나혼자 부딪히고 싸워서 될 수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지 오래다. 그것이 내가 세상과 타협한 이유이다.
불의를 못 참고 싸우던 돈키호테 같은 내가 이젠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몸을 사리는 것인지도..
키스존스톤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어린이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꿈을 잃어버린다..’
그 원인이 제한된 교육현실에 있다고.
이 책은 그런 나 같은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했다.
아주 거창한 것도 아니고 이론적인 것도 아니다. -물론 이론적 설명도 함께 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날개를 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어 내가 이 책을 읽고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대학 강단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가 없다는 거다. 대학이 진정 올바른 수행을 하고 있다면, 해마나 나타나는 엄청난 방황하는 또 다른 청소년..-휴학생, 자퇴생 등..- 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필자처럼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나. 지금의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 시켜 줄 수는 있다.
그래도 희맘을 품어 보는 게, 그녀의 말처럼 중고등학교가 변하면.. 어쩌면 대학도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진정한 하자센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