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만들어진 높이 6.9㎝, 아가리 지름 16.6㎝, 밑지름 4.0㎝인 청자대접으로, 바닥에서 아가리까지 거의 직선에 가깝게 벌어진 형태이다.
그릇 안쪽 아가리 가까이에는 음각된 덩굴무늬로 띠를 둘렀으며, 그 아래쪽에는 연잎모양을 꽉 차게 새겼고, 바닥에는 작은 원이 새겨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이러한 음각문양은 중국 오대(五代)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릇의 바깥부분에는 다른 장식은 없고 4군데에 국화문양을 배치하였는데, 도장을 찍은 듯한 국화송이는 흰색으로 상감하고 잎은 검은색으로 표현하여,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면서도 조화롭고 단정하다.
한 그릇에 음각문양과 상감문양이 함께 있는 드문 예로, 고려시대 상감청자의 초기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순청자 특유의 음각기법과 상감기법이 혼용된 12세기 전반의 청자대접으로 작은 내저원각(內底圓刻)이 있고 내측면(內側面)에는 연당초문(蓮唐草文)이, 구연부(口緣部)에는 좁은 당초문대(唐草文帶)가 음각되었다. 반면 외면(外面)에는 어떤 종속문양도 없이 측면 4곳에 등 간격으로 배치된 국화절지문(菊花折枝文)이 상감되었다.
유(釉)는 인종왕릉출토(仁宗王陵出土) 청자계(靑磁系)에 비해 다소 밝으며 빙렬(氷裂)은 측면 2곳에서 길게, 외측면 상감문이 있는 부분에서는 가늘게 몇군데 나 있다. 전면시유(全面施釉)했으며 굽은 다리굽으로 굽다리 바닥 3곳에 규석눈받침 자국이 있다. 측면에는 길다랗게 균열이 있고 그 옆 안쪽으로 길다란 빙렬이 있다. 유는 미세한 기포가 있으며 긁힌 자국이 유표면(釉表面)에 발견되고 가는 빙렬이 몇군데 있다.
이 대접은 내외면의 문양소재 ·구도 ·시문기법 ·깨끗이 정리된 시유형태와 굽의 단정한 규석눈받침 등이 지극히 세련되어, 순청자 시기에서 상감청자 전성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양식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