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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겸손과 굴욕의 골짜기(빌 2:7; 히 11:35-38)
> 기독도는 미궁(美宮)에서 여러날 안식하여 새 힘을 얻어 가지고 무장을 하고 떠났다. 미궁의 성도들이 전송 나오면서 이 산에는 올라오기도 잘해야 하지만 내려가기도 잘해야 한다고 했다. 올라오기도 힘들지만 내려가기는 더욱 힘들 터이니 우리가 같이 산 아래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기독도는 내려가다가 조심하느라고 하면서도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내려가는 길에는 불만(不滿)이도 있고 치선(恥善)이도 있었다(기독도가 내려갈 때는 없었으나 진충(盡忠)이 내려갈 때 있었다). 이 골짜기 이름은 겸손(謙遜)의 골짜기라고 하고 굴욕(屈辱)의 골짜기라고도 한다(빌 2:7-8).
● 신앙의 2부 합창
참말 천성에는 올라도 잘 가야 하지만 내려가기도 잘해야 한다. 신앙에는 소프라노(여자 높은 소리)도 잘하여야 하지만 베이스(남자 낮은 소리)도 잘하여야 한다. 믿음으로 승리롭게 축복 중에 만사형통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무리 해도 실패를 거듭하고 굴욕과 역경이 닥치는데 그때에 잘 참아 감사와 찬송으로 잘 내려가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히브리서 11장 33-40절을 보라. 여기는 신앙의 이중주(二重奏)가 있다. 저들은 나라를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허락하신 것을 얻기도 하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불의 기세를 멸하기도 하고, 약하다가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 용맹하여 이방인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고, 부녀들은 저희 죽은 자를 다시 만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소프라노이다.
그러나 그 아래로 계속하여 어떤 사람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혹독한 형벌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은 희롱과 채찍을 받을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당하였으며, 돌로 맞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유리하여 핍박과 환난과 고생을 받았으며, 또 어떤 사람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는 형편없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베이스를 잘한 사람들이다. 많은 성도들은 이 골짜기에서 실패를 한다. 이 골짜기를 내려가려면 불만이도 나오고 치선이도 나온다.
나의 경험을 보더라도 저가 수십 년간 교역의 순경에서 일일 승승장구로 수백 수천 명씩 앞에 놓고 복음을 외칠 때 곳곳에서 환영이요 칭송이 자자했다.
조선의 무디, 조선의 웨슬리가 나왔다고 떠받들 때야 나는 행복자로구나, 무던하구나 하고 은근히 기뻤다. 웬걸 왜정 시대에 복음을 전하느라고 조선과 만주에서 종종 경찰에 검속되어 형편없는 굴욕을 당할 때가 많았다.
그 중에도 사리원에서 성(星)이란 형사부장에게 검속되어 유치장에 들어갈 때 벌거벗겨 나체로 집어 넣어졌다. 부끄럽다는 치선이가 나왔다. 그때에 얼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쳐다보면서 승리하였다.
유치장에 들어가니, 모든 죄수들은 다 저희는 먼저 들어왔으며 나는 신입생이라고 똥통 옆에는 나만 있으라 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형편없는 학대와 고통당할 때에 종종 불만이도 나오고 치선이도 나왔다.
이때는 내가 항상 설교하던 굴욕의 골짜기가 여기로구나 어디 잘 내려가 보자 하고 감사히 받으면서도 때때로 실패하여 미끄러졌다. 그때는 근신, 경건, 현지, 인애가 부조하여 많이 상치는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달콤한 은혜도 있고 쌉쌀한 은혜도 있다. 단 것만 너무 좋아하면 이(齒牙)가 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쓴 것을 화제(和劑)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대접하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유치한 신자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니 애석한 일이다.
굴욕의 골짜기를 잘 내려가자. 우리 주님은 얼마나 잘 내려오셨는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내려오시고, 내려 오셔서 말구유에 탄생하사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제자의 발 아래 들어가시고, 십자가로 무덤까지 내려가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높이 올리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시키셨다.
저 산 밑에 백합화 새벽별
가시밭에 백합화 아름답고 귀하다.
예수는 산 밑에 백합화시다. 예수 만나 보려면 골짜기로 내려 가야 한다. 깊이 파고 내려갈 때에 만세반석 되시는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것이다(눅 6:47).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약 4:6).
2.아볼루온의 정체(계 9:11)
미궁의 성도들은 산 아래까지 전송하고 떡 한 덩이와 건포도 한 뭉치를 주고 작별하고, 기독도는 쓸쓸히 가다가 얼마 가지 아니하여 보기에도 끔찍하고 듣기에도 무서운 마귀 대장을 만나니, 이름은 아볼루온이라(계 9:11). 히브리 음으로 아바돈이요 헬라음으로는 아볼루온이라, 무저갱의 사자의 왕이다.
이 놈의 생김생김은 머리는 사자, 발은 곰의 발, 어깨에는 용의 날개가 있고, 몸에는 물고기 비늘이 있고, 배에서는 불과 연기기가 나온다. 이름의 뜻은 파괴자라. 어깨에 날개가 있으니 공중에 날아다니고, 짐승의 머리와 발이니 육지로 다니고, 물고기 비늘이니 물 속에 다닌다.
이 놈은 그래서 날아다니는 공중 권세, 기어다니는 육지 권세, 물 속을 헤엄치는 수중권세를 다 잡은 놈이다. 배에서 불과 연기가 나오는 것은 질투와 시기의 불이요 연기다.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사상일 것이다.
이 놈은 창세 후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천사를 떨어뜨리고, 하와를 꾀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하고 예수를 시험하다가 실패하고, 베드로를 까불 듯 시험하고 가룟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를 팔아먹게 하고 자살시킨 자이며, 개인으로 교회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활약하여 역사 이래로 많은 성도를 해롭게 하는 흉악한 자이다.
마지막에 우리 주님 재림하시사 이 놈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넣기 전에는 이 세상에 참평화가 없을 것이다. 이 놈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고 여인의 후손인 예수께서는 이 놈의 머리를 부술 것이며 그의 생명을 얻은 성도만이 승리할 것이다.
이 놈은 거짓말하는 자도 되고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라 하였다(요 8:44).
자긍하는 자(계 13:5), 훼방하는 자(계 13:6), 참소하는 자(계 12:10), 간사하고 욕심쟁이이며 마지막에 영원히 지옥 불에 들어갈 놈이다(마 25:41).
3. 아볼루온과 단병 접전(엡 6:10-17)
이 놈은 기독도의 가는 길을 막고 "너 어디 가느냐?" 했다. 기독도는 "나는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 가노라" 하였다. 마귀란 놈은 "장망성! 너 내 백성이로구나.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느냐? 당장에 때려죽일 것이로되 네 인물이 아까워 용서한다."고 말했다.
기독도 가로되 "내가 이전에는 네 수하에 있었으나 너를 섬기다가는 내 장래를 망칠 것을 알아 이 몸을 내 주님께 드렸노라." 사탄이 가로되 "네가 돌아가면 이전보다 더 좋은 부귀영화를 맘대로 누리게 할 터이니 돌아가라." "아니다. 네게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우리 주님을 따라 고생하는 것이 내 소원이로다."
사탄이 가로되 "야,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고 떠났느냐? 고금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예수 따라 간다 하더니 다 돌아오고 말더라. 김장로도 돌아오고 박목사도 돌아오고 이집사도 돌아오고 정권사도 돌아오고 홍속장도 돌아오더라. 그래도 고집을 세우고 가다가 중도에서 죽은 자가 부지기수이다. 기독교 역사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순교 당했는지를 네가 모르냐?"
"그것은 이미 나의 각오한 바이다. 죄를 짓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의롭게 죽는 것이 성도의 떳떳한 일이니라." 그러나 아볼루온은 그냥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권유했다.
"너는 올 때에 실패를 많이 한 자이라. 네 주인이 그다지 귀엽게 생각지 않을 터이다. 너 보아라, 오다가 절망소(絶望沼)에 빠졌던 자요, 세지(世智) 말을 듣고 곁길로 갔던 자이지. 간난산에서 졸다가 증표 잃었던 자요, 미궁문 밖에서 사자보고 도망질 하려던 비겁한 자가 아니냐?"고 기독도의 잘못을 하나하나 꼬집어 정죄했다.
그러나 기독도는 거기에 넘어갈 사람은 아니다. "흥....... 사탄아, 네가 아무리 나를 정죄하여도 그것밖에는 알지 못하느냐? 나는 네 권세 아래 살 때에 고슴도치 오이 짊어지듯 하고 다니던 내 무거운 죄짐을 십자가 밑에서 다 소멸하고 네게 얻어 입었던 남루한 옷을 다 벗어버리고 이 좋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주님의 것 된 증표를 받아 사는데, 내 비록 맘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종종 실수와 허물이 많아도 내 주님께서는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시는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노라. 사탄아, 물러가라. 누가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냐, 곤고냐, 핍박이냐, 적신이냐, 위험이냐, 칼날이야." 아볼루온 사탄은 그만 그대로 당장에 쳐죽인다고 우는 사자 모양으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창칼이 번개같이 들어올 때 마침 기독도는 믿음의 방패로 막아 던지고 성신의 검을 빼어 단병 법전이 일어났다. 한참 싸우다가 불행히도 검을 떨어뜨렸다.
이것 놓치면 안되었다. 아볼루온에게 깔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범에게 물려가도 제 정신을 잃지 말라고 죽도록 충성하여 항복을 하지 않고 손으로 더듬어 하나님의 권고로 잃었던 검을 다시 찾아 가지고 나의 "원수야!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라. 비록 엎어지나 다시 일어날 것이다"(미 7:8) 하면서 죽을힘을 다하여 찌르니 아볼루온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상한 날개를 툭툭 치며 날아가고 말았다.
기독도는 용기 백배하여 새 힘을 얻어 승전가를 불렀다.
이 당장에 보는 일이 참 진실로 이상하다.
혁혁하온 성도 앞에 악한 마귀 당할쏘냐
성신 검을 다시 빼어 아볼루온 패망하네
우리 주님 크신 능력 이기고도 남음 있네.
할렐루야, 우리 성도의 앞길에는 사탄이 천사 모양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는 사자 모양으로 위협하여 달려들기도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기고도 남음이 있느니라(롬 8:37).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죽이려 나갈 때에 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가서 한 개로 때려죽이고 아직 네 개가 남은 것 같이 신앙생활은 이기고도 남는 생활이다.
골리앗 같은 악마를 아직도 네 놈이 아니라 백 놈이라도 대적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너희는 환난을 받으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이 승리, 승리, 우리들은 항상 승리한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들은 언제나 승리하리라, 어디서나 승리하리라.
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렘 2:6)
기독도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주여, 나를 구원하사 사자 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니 그 은혜 감사합니다" 하고 생명나무 잎사귀로 상처를 발라 치료하고 미궁 성도들이 준 떡과 포도로 요기하고, 새 기운을 차려 검을 뽑아 손에 들고 길을 떠났다. 겸손의 골짜기가 끝나매 사음의 골짜기(死陰谷)가 또 있었다.
여기는 아볼루온과 싸우던 곳보다도 위험하고 무서웠다. 예레미야 선지가 말한 바 광야 암혈이 있는 거친 땅, 메마르고 사망의 그늘이 있는 땅, 사람이 지나지 아니하고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땅이라고 한 곳이었다. 이 골짜기 지경에 다다랐을 때에 두 사람을 만났다.
가나안 땅을 훼방하던 사람의 자손들인데 도로 가자고 권했다. 자기들도 가다가 너무 위험한 곳이어서 도로 가노라 했다. 그곳은 캄캄한 골짜기 적막한 골짜기이기에 이매망량(?魅怒?) 각색 괴물의 괴이한 소리가 나고, 검은 구름과 음산한 기운이 항상 덮여 한편에는 수렁통 한편에는 연못이었다. 그렇다고 기독도는 물러갈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데 정신이 어지러워 자기 소리인지 귀신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마 미치고, 정신병 들고, 신경 쇠약 걸린 사람이 이러한 때에 되는 모양이었다. 이 때에 잡은 검은 집에 꽂고 모든 기도라는 무기를 취하여 "주여! 간구하오니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시 116:4) 하면서 천신만고로 지나가는데 앞에서 찬송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갈지라도
염려하고 두려울 것 아무것도 없겠네
주가 항상 우리들과 한가지로 계시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도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진충(盡忠)이라는 사람이었다. 진충은 기독도와 한 고향 사람인데 기독도 떠난 후로 자극과 감화를 받아 뒤로 따라 나섰으나 기독도가 간난산서 졸다가 증표 찾느라고 시간 허비하고 또 미궁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진충은 앞선 것이었다.
뒤선 자가 앞서고 앞선 자가 뒤선다는 말씀대로이다. 기독도는 진충의 친송듣고 새 용기가 나고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세 가지 위로를 받았다.
첫째, 이런 골짜기에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있구나.
둘째, 나는 걱정하고 근심하는데 저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는 찬송을 하누나.
셋째, 나도 따라가면 저 사람과 동행하겠구나.
그렇다. 우리도 위험하고 쓸쓸한 사음의 골짜기에 들어갈 때에 앞서간 진충 같은 성도들을 바라볼 것이다. 고금의 많은 성도들과 우리 주님의 당하신 일과 십자가를 생각함이 우리가 시험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 앞서간 성도를 바라보라
첫째, 이런 골짜기에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도 있구나.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의 핍박으로 사음의 골짜기에서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를 7천이나 남겨 두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험 당할 때 혼자만 당하는 줄 알지 말라. 나 혼자 가난한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있구나. 나 혼자 자식 죽은 줄 알았더니 3대 독자 죽은 집도 있구나. 욥은 십남매가 한꺼번에 참사를 당했구나.
나 혼자 과부 된 줄 알았더니 안나 노파는 과부된 지 84년이라 하였고, 나 혼자 전재민(戰災民)인 줄 알았더니 2중 3중의 전재민이 얼마나 많았는가? 또 믿음을 주장하사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내 주님 세상 계실 때 받은 그 고생은
내 맘속 깊이 새겼네 예수 나의 주님
갈보리 산의 어린 양 죄인 괴수 이몸 위해
참 귀한 생명 주시려 고난 당하셨네
● 찬송은 환난을 극복한다
둘째, 나는 걱정하고 근심하는데 저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심을 믿고 찬송을 하는구나.
역경 중에 찬송은 환난을 극복하는 승리의 무기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찬미하고 기도할 때, 옥토가 진동하고 옥문이 열리었다. 욥도 가진 재산이 일조(一朝)에 없어지고 십남매가 함께 몰살당하였다는 보고를 듣고도 내가 적신으로 모태에서 나왔으니 또한 적신으로 돌아갈지라 하였다.
여호와가 주시고 여호와가 빼앗으셨으니 여호와의 이름을 가히 찬송하리로다(욥 1:21).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완전히 기쁘게 여기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악하다 하는 거짓말로 비방하면 너희는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받을 것이 크리라(마 5:12).
어려운 시험이 올 때 거기 눌리지 말고 한 번 용기 있게 찬송을 부름은 주께서 원하시고, 악마가 무서워하고, 나 자신에게 새 힘되고, 다른 사람에게 격려가 되는 것이다.
만주 명월구에는 감사 장로가 있었다. 왜정 시대 경찰의 미움 받아 민족주의자라고, 독립 운동자라고 유치장에 들어가 똥통 옆에서 밥을 먹다가 일어나서 한바탕 춤을 추었다. 그 소문이 서장의 귀에 들어가매 서장이 감사 장로를 불러 "영감이 유치장에서 춤을 추었다지?" "예, 추었소." "무엇이 그리 좋아 춤을 추었나?" 감사 장로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는 평생에 이런 맛을 처음 보았소. 이 좋은 경험 얻어 감사하오. 성경에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찬송할 때 옥문이 열렸소. 나도 이 옥문이 열리라고 춤을 추었소" 서장이 보고 너무 어이없어 "이 영감 내보내라. 정신병자로구나" 하며 내보냈다. 감사 장로는 춤 한 번 추고 석방되었다. 참말 찬송 신자들은 이러한 것이다. 방울은 흔들수록 더욱 소리가 나고 향주머니는 건드릴수록 향취를 더 발휘하는 것이다.
●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셋째, 나도 따라가면 저 사람과 같이 가겠다는 소망이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그 때는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감람나무가 기름을 내지 못하고, 양무리가 우리에서 멸절을 당하고, 외양간의 육축이 다 없어질지라도 오직 나는 여호와를 기뻐하리라(합 3:17-18)고 하박국 선지는 부르짖었다.
환경과 주위와 사정을 보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고 앞서간 성도를 허다한 간증자들이 구름같이 둘러 있음을 바라보자.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친구들이 나 오기를 고대하고 있구나.
5. 넘어지는 고개(고전 10:12 ; 롬 11:10)
겸손의 골짜기 사음의 골짜기 다 지나고 한 작은 고개에 이르렀다. 그곳에 올라 앞길을 바라보니 진충이가 앞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기독도는 크게 소리질러 "여보세요, 앞에 가는 양반 좀 같이 갑시다. 거기서 기다리세요" 하니 진충은 돌아보면서 "빨리 따라오려면 따라오구려. 뒤에 원수가 오는데 내 생명이 존귀하고 내 갈 길 바쁘니 잠시라도 내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소" 하면서 그대로 가는 것이었다. 참말 진충의 걸음은 이러한 것이다.
● 신앙의 걸음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신앙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가? 가정 형편에 끌리고 친구 사정에 얽매이고 사회 풍조에 밀려 가는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이 한가지 일을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취하신 뜻을 취하려고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 치는 바울과 같이 용진 하여야 한다.
젖 뗀 송아지를 뒤에 두고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가는 벧세메스 길의 암소처럼 충성되이 나아갈 것이다(삼상 6:12).
기독도는 대단히 분개하여 힘을 내어 따라갔다. 미구에 도리어 진충보다 앞서갔다. 기독도는 그제야 흡족하여 웃으면서, 그러면 그렇지 이것 앞섰노라고 동정 없이 가느냐고 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미끄러져 넘어졌다.
● 성공에 조심하라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남보다 좀 앞섰노라고 껑충거리다가는 실패하고야 마는 것이다. 성공할 때에 조심하고 득의(得意)할 때에 삼가야 한다. 웃시야 왕을 보라. 사울을 보라. 헤롯을 보라. 느브갓네살을 보라. 성공 후에 자만하다가 불행의 구렁에 떨어졌다. 마음을 스스로 높게 말고 두려워하라(롬 11:20).
6. 신앙의 동지(전 4:4-12)
진충이는 넘어진 기독도를 붙들어 일으켜 주었다. 기독도와 진충은 이로부터 매우 친하게 동행하며 저희 행로에서 당한 모든 일을 서로 재미롭게 이야기하였다. 신앙의 귀한 동지로 협조 동행함은 행복이다.
● 황금의 사슬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는 것은 성도의 행위이다. 어떤 사람은 남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 좋아한다. 은근히 기뻐한다. 도리어 가서 놀려 주려고 한다. 남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좋아하면 내가 넘어질 때에 좋아할 사람이 많은 것이다. 우는 자로 같이 울고 기뻐하는 자로 같이 기뻐하라. 동정은 사람과 사람을 얽어매는 황금의 사슬이라고 하였다.
"주여, 남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하고 남의 성공을 내 성공으로 알게 하소서."
● 지기지우
신앙의 동지 지기지우(知己之友)는 천성 행로에서 매우 귀한 것이다. 독립은 좋으나 고립은 좋지 않다. 개밥에 도토리 알처럼 혼자 굴지 말라. 독선주의자이고 독불장군이로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격 차이, 연령차이, 문벌차이, 유무식 차이가 났으나 동고동락, 행동동시의 더불어 사는 생활을 하였다. 바울과 실라의 귀한 동지, 빌립과 나다나엘, 다윗과 요나단의 우애지정(友愛之情)을 보라.
피차 깊은 우정, 생사를 같이하는 귀한 친구는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배로다. 보통 세상의 친구란 그림자 같아서 광명한 곳에서는 그림자가 잘 따라오지만 흑암에 들어가면 그림자는 곧 사라진다. 내가 성공하고 부귀공명, 다자손하면 친구들이 버글버글 따라오지만 환난, 고독에 들어가면 그 많은 친구들이 그림자 사라지듯 다 없어지고 만다. 욥의 환난 중에는 다 달아났던 가족, 친척, 친구들이 욥의 축복 받을 때는 다 와서 예물을 드리고 축하하노라고 야단법석이었다(욥 42:11). 나도 그런 친구의 한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도 있느니라.
7. 진충의 당한 시험
진충은 오면서 시험 받은 이야기를 했다. 진충이 당한 경험은 기독도와 달랐다. 우울니(憂鬱泥)에 빠진 경험도 없고 졸다가 증표를 잃은 경험도 없고 악마와 싸운 일도 없고 사음의 골짜기에서도 찬송하면서 가는 귀한 존재이었다. 그러나 진충이 받은 시험을 보라. 기독도는 남성적이면 진충은 여성적이었다.
1. 탕부의 유혹(잠 7:5)
좁은 문 밖에서 탕부(蕩婦)라 하는 음녀에게 걸려 자칫하면 몸을 망치고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 시험이 올 때 눈은 꼭 감았더니 그 여자가 조롱을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그 계집을 피하게 되었다 했다(잠 7:5). 이성의 유혹은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러기에 욥은 말하기를 내가 내 눈으로 언약을 세웠으니 어찌하여 처녀를 보리오(욥 31:1) 하였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벗어남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에서 이런 시험을 이길 것이다. 저주의 자식은 그 눈에 음심이 가득하여 범죄하기를 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벧후 2:14).
2. 노아당의 딸 삼형제
다음은 간난산 밑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을 당하였다. 혼미향(昏迷鄕)에 사는 인구성(印舊性)이란 별호를 갖는 노아당(老亞當)이라는 영감을 만났는데, 연세는 6천 살쯤 된 자가 진충을 보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달랬다.
가면 무슨 좋은 수가 있느냐고 하니 아름다운 딸 삼형제가 있는데 사윗감을 고르는 것이라 했다. 자기 집에 가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재미나고 쾌락한 것 뿐이라고 했다.
그 딸들의 이름은 호색(好色), 탐재(貪在), 고명(顧名)이라고 했다. 맏딸 호색한테 장가들려면 들고, 둘째 탐재한테 장가를 들려면 들고, 셋째 고명이 한테 장가를 들려면 들고, 모두 원하면 삼형제를 다 주겠다고 했다. 이거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구나 하고 진충은 맘이 동하여 결혼하려고 그 영감을 따라가다가 그 영감 이마를 보니 옛성질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라고 써 있었다. 진충은 그제야 깨닫고 "여보 영감, 나 장가 아니 들겠소. 당신 이마를 보니 글렀소. 옛 성질은 죄악의 성질이니 이 성질을 따르다가는 자고 이래로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줄 압니다." 노아당은 진충을 잡고 "그 무슨 될 말이냐? 점잖은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하면 되느냐?"고 놓아 주지 않았다.
진충이는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랴.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하는 바울의 고통을 맛보았다. 힘써 간절히 주님께 애원하여 물리치고 도망하여 휴식정에 이르니 한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따라와서 사정없이 때렸다.
그때에 인자하신 분이 급히 와서 "여보!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 어찌하오." 하면서 말려 주셨다. 그 때 기독도가 "그 말린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하니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는데 손의 못자국을 보고 알았노라. 그는 주 예수님이시었다"고 했다.
"때리던 사람은 누구더냐?" 하니 "그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세 영감이 율법 몽둥이로 때리더라"고 했다.
참말 우리 천성 가는 길에 노아당의 딸 삼형제 시험이 대단한 것이다(요일 2: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好色)과 안목의 정욕(貪財)과 이생의 자랑(顧名)이니 다 아버지께 쫓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온 것이라고 요한은 간곡히 권면하였다.
결혼은 아니하고도 약혼만 하여도 모세에게 매를 맞아야 하는 것이다. 은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동감일 것이다. 실범(實犯)의 죄가 없어도 마음으로라도 범죄하면 고통이 된다. 남의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라도 이미 간음죄를 지었느니라. 탐심을 물리 치라. 탐심은 곧 우상이니라.
어떤 이가 부흥회 때 회개하는데 "아이고, 나는 도적놈입니다." "무슨 도적인가?" "그림자 도적이외다." 은행에서 돈을 80원을 찾았는데 90원이었다. 10원 지폐 한 장이 더 온 것을 알면서도 욕심에 그대로 가지고 와서 "아, 오늘 10원 횡재다" 하고 다시 세어 보니 웬일인가, 70원이었다. 다시 뒤집어 세어보니 90원. 한 장 두 장 세어 보니 한 장이 접혀 있었다. 그래서 한 편은 90원, 한편은 70원인 것이었다. 그 맘에 가책되어 자기는 그림자 도적이라고 하였다.
세상 법률에는 도적이 아니나 하나님 법, 양심의 법에는 벌써 도적인 것이다. 혹 우리라도 그림자 도적, 그림자 음란이나 허영이 없는지 주의 빛 아래서 회개하여 털끝만치라도 어두움이 없이 죄사함을 받으라. 예수님의 못자국에서 흐르는 피,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과 피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되신다. 만일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1. 호색-옛날 다윗도, 솔로몬도, 삼손도 여기서 실패하고 소돔과 고모라도 이 죄로 망한 것이다. 오늘날 내가 아는 유력한 신가 교역자들까지도 이 호색으로 실패한 자 부지 기수이다.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여! 여자의 생명은 정조인데 정조 잃으면 생명 잃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못된 사나이들은 왜 여자에게는 정조를 구하면서도 자기들은 정조를 아니 지키는지 알 수 없다. 여호와의 영이 유여하시되 일남 일녀를 지으신 것이 아니다. 어찌하여 일남 일녀를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말2:15).
2. 탐재-가룟유다가 여기 장가들어 자기 선생을 팔아먹고 자살하여 지옥의 자식되고, 발람은 여기 장가들어 아니 갈 길을 가다가 저주받고, 엘리사의 제자 게하시도 여기 장가들어 문둥이가 되었다.
돈을 탐하는 것은 만악의 뿌리가 되느니라(딤전6:10).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가다가는 망하는 것이다. 정함이 없는 재물이로다(딤전6:17).
3. 고명-얌전히 사람을 녹인다. 아나니아 부부가 여기 장가들어 망하고,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다. 유방 백세(流芳百世) 못하면 유취 만년(遺臭萬年)이라도 하겠다고 많은 사람이 허영과 명예심에 들떠 야단들이다. 감투 하나 얻어 쓰느라고 오늘날 우리나라 해방 전 죄보다 해방 후의 죄악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진정한 애국자들도 많겠지만 고명에게 장가들어 목사, 장로의 성직을 모독하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보건대 해 아래서 하는 바 모든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전1:14).
8.순도의 정체(마7:15)
두 사람은 피차 시험받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가는데 멀리서 보기는 좋아도 가까이 가보면 허수아비 같은 사람을 만났다. 어떻게 이야기를 잘하는지 진충은 그 사람에게 홀딱 반했다.
천문 지리 상통 하달하여 구약의 이야기며 신약의 이야기며 종교 철학 과학이며 율법이며 복음의 도리를 청산 유수로 무불통지(無不通知)다. 진충은 기독도에게 와서 좋은 신앙의 동지를 또 만났다고 그 사람을 극구 칭찬했다. 기독도는 픽 웃으면서 꽤 좋더냐고 말 잘하는 것보고 속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우리 이웃 동네 잡담평론촌(雜談評論村)에 사는 말 잘하는 사람 능언(能言)의 아들 순도(脣道)라는 자로 말과 실행이 다른 자라,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주의 이름이 비방을 받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가 기도와 회개와 신앙과 중생 성결을 말하기를 잘하지만 말 뿐이요 그 집에 가서 사생활을 보면 기도가 있을까, 가정 예배가 있을까, 죄를 회개함이 있을까, 교회를 충성 되이 봉사함이 있을까, 신앙의 실행이라고는 냄새도 없는 자이다. 내가 그 사람의 평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인 고로 그대가 그에게 속지 않게 하기 위하여 경고하는 것이요 하였다.
그래서 진충은 속은 줄 알고 다시 순도에게 가서 여러 가지로 질문을 하였더니 체험적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외식하는 순도는 본색이 탄로 났다.
● 거짓 선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갈지어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가니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권능에 있느니라(고전4:20). 순도는 가짜 목사, 가짜 장로, 가짜 권사, 가짜 신자, 표리 부동하고 언실 불합(言實不合) 하여 이중 인격자,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자이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제일 미워하신다. 남은 가르치고 자기는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참말 멀리서 보기는 좋아도 가까이 가보면 틀렸다. 어떤 목사 부인은 이부자리를 가지고 강단에 쫓아 와서 "우리 여기서 삽시다. 강단에서는 천사 같은데 집에 오면 마귀 새끼 같다"고 하였다. 어떤 전도사 부인은 전도사가 강연하면 돌아앉아서 "흥…… 저나 잘하지" 하고 있었다 했다. 어떤 목사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는 이중 인격자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 중생의 경험이 없어요. 내가 타락하게 된 원인은 그것입니다"고 했다. 어떤 며느리는 "왜 교회에 아니 나오느냐"고 하니 "나는 교회 아니 나가요, 우리 시어머니 가는 천당에 아니 가렵니다"라고 대답했다.
밤에 책보 끼고 20년이나 예배당 다녀도 집에 와서는 집안 식구를 못살게 볶으니, 개꼬리 3년 묻어 두어도 황소 되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물론 사람이 이상 아무리 잘하느라고 해도 종종 실수와 허물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 안에 있는 사람, 임마누엘 성임재 앞에서 사는 사람은 아주 위선자라는 패는 차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악 감정을 품고 그 사람을 중상시키려면 몰라도 정직한 사람은 알 것이다.
누가 아놀드란 사람을 평하기를, 아놀드의 설교는 참 좋더라 하니, 다른 사람은 말하되 아니 그의 문장은 더욱 좋더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 아니 나는 그의 생활이 더욱 좋더라고 하였다 한다.
유력한 설교는 그 배후에 신령한 참생활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백묵으로 잘 쓴 설교를 검정 생활의 지우개로 다 닦아 버린다고 하였다. 깨끗한 짐승은 새김질하고 쪽이 갈라져야 하는데, 그러므로 소와 양은 다 정결한 제물이다.
새김질은 하나님 말씀을 잘 섭취 소화하고 증거 하는 것이요 쪽이 갈라지는 것은 행동과 생활이 세상에서 구별된 것이다. 토끼가 새김질을 하되 쪽이 갈라지지 못했으니 순도 같은 위선자, 불결한 동물이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것이다.
거짓 선지 순도 보라 진충을 만났구나
난조 같은 저 모양이 빛난 날개 떨쳤도다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위선자야 회개하라
불꽃 같은 그 눈 앞에 누가 감히 속일쏘냐.
순도는 떨어져 나가고 기독도와 진충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들판을 지나갔다.
9.전도의 3차 방문(대하36:15)
마침 진충이가 뒤를 돌아본즉 어떤 사람 하나가 오는데, 기독도의 은인이요 진충에게도 친구인 전도였다. 그래서 세 사람이 만나 인사의 말을 필한 후에 재미있게 동행하였다. 전도가 두 사람의 지나온 경험의 보고를 듣고 칭찬하고 다시금 앞길에 나갈 믿음의 권면을 더하여 새힘을 얻게 하였다.
전도가 말한 요령은 썩지 않을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굳건히 믿을 것과, 모든 정욕을 주의할 것과, 모든 환난을 지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곳과, 너희 앞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므로 두 사람 중에 누가 하나 먼저 살해를 당할 모양이니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가르치고 축복한 후에 헤어졌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의 정신 그대로이다. 선한 목자 참전도자의 생활이다.
● 참목자
참목자는 자기 양을 잘 알고 각각 그 이름을 불러내어 그 앞에서 인도하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려 끝까지 지도하여 영생을 얻게 하나니 저들은 한 주인의 무리가 되어 저희를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0:28). 이 목마르고 굶주리고 병든 양들을 누가 돌아볼꼬, 목이 말라도 냉수를 찾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병이 들어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악한 짐승이 와도 막을 줄 모르는 주의 어린양들을 누가 돌아보겠느냐?
"오늘날 선한 목자 대신에 삯꾼 목자들이 많고 삯꾼 목자 대신에 양을 물어 찢는 이리 목자들이 있고 이리 목자 대신에 악령의 사자가 가득하였구나" 하는 통탄을 부르짖는 사람의 글을 보고 나도 전도자의 한 사람으로 많은 자극을 받았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참으로 불타는 사랑의 사도여!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즐거움이 가 그대에게 있나이다(시16:3).
10. 허화시(전1:2)
두 사람은 전도와 다시 작별하고 혼연히 길을 갔다. 앞을 바라보니 큰 도시가 있는데, 부허(浮虛)한 물건만 파는 고로 허화시(虛華市)라 했다.
그런데 이 시장은 새로 세운 곳이 아니고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약 5000년 전부터 바알세불과 아볼루온과 레기온의 무리들이 합작하여 세워 놓고, 천성으로 가는 행인들이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라, 많은 사람의 발을 멈추게 하는 곳이었다.
이 저자에는 보기 좋고 먹기 좋고 놀기 좋고 듣기 좋은 각색 물건이 없는 것이 없었다. 좋고 흉한 물건이 다 있으니 대개가 이러했다. 가옥, 토지, 직업, 지위, 존귀, 명예, 승급, 국가, 왕국, 정욕, 쾌락, 창기, 갈보, 아내, 남편, 자녀, 주인, 종, 금, 은, 동, 옥, 비단, 보석, 요술, 술수, 무당, 귀신, 경기, 유희, 오락, 흉내쟁이, 이야기쟁이, 도적, 살인, 간음, 거짓 맹세, 전쟁, 피 흘리는 소동 들이요, 우상 숭배, 이단, 사교가 경기 좋은 모양이었다.
동서양 육대주 백성 중세 천성으로 가려는 사람은 이 저자를 지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고로 지나가기 싫어도 막무가내라.
우리 주님께서도 이 세상 계시면서 이 저자로 지나실 때 주를 청하여 한 거리 두 거리 세거리를 다 지나 일만 나라 부귀 영화를 다 구경시켜 주를 꾀어 그 물건을 사게 했으나 주님은 한푼 어치도 팔아 주지 않으셨다(마4:1-11).
이 세상에 천만사가 헛되고 헛된 것뿐 이라. 일생 향락 좋다 해도 바람잡이 뿐이요 험한 세월 고난 풍파가 일장 춘몽(一場春夢)이 아닌가? 너희는 어찌하여 은을 달아 양식이 되지 못할 것을 사며 수고하여 얻은 것을 주고 배부르게 못할 것으로 바꾸겠느냐(사55:2). 허화시에 속는 사람을 경계하는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음행하는 여인 같은 오늘날 중생하지 못한 교인들은 "허화시"에서 오금을 못 쓴다. 몇 날이나 살겠다고 썩어질 세상, 썩어질 물질, 썩어질 육체, 썩어질 허영에 날뛰는 친구들이여!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 세상도 가고 그 정욕도 가는 것이 아니냐. 무엇이 아직 그립고 부러우냐. 세상 만사 살펴보니 참 헛되구나. 부귀 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 광실(高臺廣室) 높은 집 문전 옥답(門前沃畓)도 우리 한 번 죽어지면 일자의 춘몽이 아니냐. 서울 종로 네거리 지날 때에 문화 도시 고루 거각(高樓巨閣) 고관 대작 화려한 의복, 오고 가는 전차 자동차 꽤 훌륭해 보였으나 그곳을 떠나 남산 꼭대기에 높이 올라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니, 아이고 그 웅장하던 집들은 성냥갑을 엎어놓은 것 같고 각기 제일이라고 뽐내고 떠드는 인긴들은 개미 오글거리듯 한다.
심령이 아직 하늘의 절대적 입장에 서지 못하고 아래서 상대적 입장에 사는 자들은 허화시에 속는 것이다. "맘이 빈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 고무풍선은 속이 비어 둥실둥실 바람을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천성 가는 순례자여, 좀더 고상한 입장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용진하자. 독수리같이 올라가자.
11. 허화시의 핍박(딤후3:12 :요15:19)
기독도와 진충은 이 거리를 다 지나가도록 허화시의 화려함을 한 번도 보지 않고 귀를 막고 하늘만 쳐다보면서 "주여, 이 허화시를 보지 않게 하여 주소서" 하고 기도했다. 저자이 모든 사람은 그 모양을 보고 희롱도 하고 핍박도 했다. 그 이유는 이것이었다. 첫째로 두 사람의 의복이 그 시장 사람들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요, 둘째는 방언이 다르다는 것이요, 셋째는 저희가 그곳 상품들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고 그 물건을 팔아 주지 아니하였다는 것이었다. 진리고 사는 성도의 특색이었다.
●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우리 생활이 다른 때문이다. 복있는 자는 악한 자의 의논대로 행치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고, 말이 달라 "하늘나라, 지옥, 예수,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부활, 재림, 할렐루야, 아멘" 등의 천국 방언을하고 그리고 저희 물건 팔아 주지 않는 것은 저희들과 동화되지 않음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변하여 새 마음을 받은 생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 거룩한 물건을 개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핍박은 자연히 올 것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하였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그 동류로 사랑할 터이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더러 내가 택하여 세상에서 나오게 한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짝하지 말라(고후6:14). 그러나 요새 신자들은 너무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아첨하고 구별된 생활과 천국 방언에 침묵을 지키니 별반 박해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오히려 몇 명의 사데 교인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안고 정조를 지킨 것처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귀여운 성도들이 여기저기 없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두루 다니며 보고 또 살피며 그 거리에서 찾으라. 너희가 만일 한 사람이라도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를 만나면 내가 이 읍을 용서하여 주겠노라(렘5:1).
12. 진충의 순교(계2:19) 기독도와 진충은 핍박을 잘 참고 욕하면 도리어 축복하고 원망치 아니하니 그 저자 가운데도 의기 있는 두세 사람이 핍박을 제제하여 말렸다.
저 두 사람은 보니 분수를 지키는 양민이요 사람을 해하는 사람아 아니니 그런 수욕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매, 여러 사람들은 너도 같은 놈이라 하여 서로 싸워 상한 사람이 많고 저자가 수라장(修羅場)이 된지라. 경관이 와서 그 모든 책임이 기독도와 진충에게 있다 하여 혹독히 때리고 쇠사슬로 결박하고 옥에 가두어 고생을 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검사국에 넘어가서 재판을 하는데 재판장은 증선공(憎善公)이라, 선을 지극히 미워하는 자라. 증인으로는 질투(嫉妬), 미신(迷信), 아첨(阿諂)을 불러 거짓 증거를 세워 판결 언도를 내리니 첫째, 이 싸움의 선동자요 둘째, 위험 사상을 수입한 자이며 셋째, 이 저자를 문란케 한 자라고 하여 허화시의 죄를 심히 공격한 진충을 사형 선고하였다.
그 당장에 악당들이 달려들어 끌어내어 채찍으로 치고, 손으로 때리고, 칼로 찍고, 돌로 치고, 창으로 찌르고, 나무 기둥에 결박하고 불살라 죽일 때 진충은 저들을 위하여 축복하고 운명하였다. 하늘의 불수레와 구름에 싸여 승천할 때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가 장엄하고 갖은 풍류로 호위하여 올라갔다.
기독도는 좀 연기되어 감옥으로 돌아가서 얼마 동안 있다가 만유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섭리로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여전히 순례의 길을 걸으며 진충의 순교 조가(弔歌)를 불렀다.
친애하는 진충 위해 슬퍼할 것 전혀 없네
순교자인 진충 형은 주의 영광 얻었도다
우리 성도 해한 자는 저가 저를 해함일세
누가 너를 죽였느냐 너는 다시 살아난다.
● 죽도록 충성하라
죽은 물고기는 물결에 흘러가지만 산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생명의 신앙자는 어디 가서든지 그리스도인의 특색으로 허화시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한 번 죽을 바에는 이 말씀대로 죽자.
자금 이후로 주를 높이다가 죽은 자는 목이 있으리라. 성신이 가라사대 "그렇다. 저의 수고를 그치매 그 행한 일이 또한 따르 느니라."
우리 주기철 목사님은 신앙의 정조를 더럽히지 않고 끝끝내 허화시의 죄를 공격하다가 순교하셨으니 온 세상이 다 저를 대적하여도 저는 홀로 있어 이 세상을 대적하였다. 이는 진실로 저의 신앙의 결정이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큰 순교자가 되기 전에 작은 일에 충성하자. 크게 죽기 전에 매일매일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라. "네가 죄를 죽이기에 용감한 순교자가 되지 못하면 정말 참된 큰 순교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어떤 선생은 명안을 하였다.
동지들아, 너무 잘살려고 하지 말고 잘 죽으려고 힘쓰자. 세상 사람들은 너무 잘살려고 하다가 잘살지도 못하고 잘 죽지도 못한다. 잘 죽으려고 하면 잘살게 되는 비결을 알아야 한다(마16:25). 죄를 짓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아도 뜻있게 살다가 값있는 죽음을 할 것이다(시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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