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04_본 사람은 못 말립니다 (계 1:9~11)
2013-10-03(목) 새벽기도회(찬 336/383)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 그 밭을 사 버릴 것입니다. 그 보화를 못 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보화를 본 사람이 그 밭은 사는 것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업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과 베드로 외 9명의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자기들이 본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직접 본 사도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주님으로 섬기는 성도들은 순교의 칼날과 맹수의 이빨, 화형장의 불꽃으로도 그 믿음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수없는 성도가 죽어나가도 그들의 의로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 도리어 성도의 숫자는 늘어만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순교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무도 그들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남달리 오래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마리아를 모셔야 하는 사명 때문에 야고보처럼 순교할 수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리아 사후에 요한도 결국 체포되고 로마의 정치범 수용소였던 밧모 섬에 끌려가게 됩니다. 노년에 요한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요?
여한은 당당하게 자신이 밧모에 와 있는 이유를 밝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죄수가 되었습니다. 요한 뿐 아니라 당시에 로마의 성도들은 모두 박해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313년 콘스탄틴 대제 이후 교회는 급속히 부흥했지만 동시에 급속히 타락했습니다.
교회는 핍박 받을 때가 순수하고 평안해지면 금새 부패하고 타락합니다. 한국교회는 핍박과 순교의 피로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하며 나라가 윤택해지자 한국교회는 졸지에 타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한국교회가 다시 어려워지도록 기도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오늘날은 핍박이나 순교는커녕 약간만 불편한 일이 있으면 교회를 버리고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버리려고 합니다. 로마시대의 초대교회에, 한국교회의 초대교회에 핍박 받은 성도를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손해와 마음 아픈 일과 고통이 있더라도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고통이 있다면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노래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직접 눈으로 예수님을 본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직접 본 사도들을 말을 듣고 목숨을 건 성도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도들이 직접 쓴 글이 있습니다. 바로 신약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과 똑같은 은혜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손해와 고통을 감수하면서 예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요한이 이 환상을 본 것은 “주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에 소위 일요일(日曜日)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며 주님의 날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중에 주일은 주님에게 속한 날이요 주님을 섬기는 날입니다. 이 날에 주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셨다는 말은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신명기 27-28장의 말씀을 보면 언제나 축복과 동시에 저주가 있습니다. 복이란 순종하는 자에게만 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주일 성수를 등한히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주님께 속한 날, 주님이 복 주신 날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면 결코 복이 되지 않습니다. 요한이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말은 그날 요한도 수용소에서도 예배드렸다는 말입니다. 고요히 기도하고 주님을 묵상했다는 말입니다.
물질에 손해를 볼까봐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킴으로 주시는 복은 세상 복과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일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주님을 보든 주님 같은 분을 보든 보면 아무도 못말린 믿음을 가질텐데 어디 그런분 없나요??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 뿐이 아니지요. 사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맛은 혀로 보고 온도는 촉감으로 (느껴)보고 소리를 귀로 (들어)보고 또 어떤 것은 전자기기로 측정해서 (확인해)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보고 영안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 면으로 보면 주님을 본 사람은 세상에 수두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