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란 것은 사용하려 들면은 맞질러 오는 모습이 혹두 차지 않는 못처럼 인가?- 恰似(흡사) 만물의 宗主(종주) 온 언덕과 같아선 그 銳鋒(예봉)이 挫折(좌절)되고 그 빛이 풀어지고 傳播(전파)되어선 그 티끌과 같이 하기를 湛(담)= 탐닉 빠져들었다 함인가? 類似(유사)하게 혹두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겠네... - 上帝(상제)님 보다 앞서선 형상 하는 그런 것이란 말인가? .....
道(도)라는 것을 追跡(추적)을 해선 올라가선 찾으려고 보니 實狀(실상)은 迹(종적)이 杳然(묘연)하더란 것이리라 그런데 가만히 보니깐 그 追跡(추적)을 해선 올라가는 모습을 뒤돌아보고 도리켜 생각해 볼 진데 이미 거기 다 스며들어 있더란 그런 말씀의 논리전개가 아닌가 하여본다 말하자면 미래 속에 이미 과거가 다 존재하더라, 현실 속에 이미 과거가 다 존재하더라는 것이리라
그 一例(일예)로 考古(고고)학자나 地質(지질)學者(학자)들이 그 단층 분석을 해보면 과거 누적된 것이 거기 다 표현되어 있다는 것인데 굳이 따로 추적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 이다 다
과거가 그렇다면 未來(미래)도 역시 그렇다할 것이다 유에프오 그게 뭔진 몰라서 그러는데, 그런데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 異狀(이상)出現(출현)한 모습 所以(소이) 時空間(시공간)移動(이동)이 여기서는 그렇게 현실적 우리 눈에 그렇게 가식적으로 보일수 도 있다는 것이리라 논제와 좀 벗어나는 것 같은데 그런 것 역시 다 道(도)가 스며들고 퍼진 속에 존재 한다는 것이리라
유에프오 그 빛을 막 발하는 것이 그 무슨 우주선의 기계적인 作動(작동)에서 그렇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 그런 것만이 아니고 마치 물감 묻은 그 액체 덩어리가 다른 데로 이렇게 이동을 하던가 빠져 나와서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일 수도 소이 사차원 세계가 삼차원 세상에 그 맛맛으로 보여주기 위해선 그렇게 빠져나와 보이는 수도 있다할 것이다 우주는 별별 차원이 다 있는 것이 우주인데 사람의 생각으로 측량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한둘인가 이다
* 道(도)라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선 과대망상 공상과학 만화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할 것이다
* 本文第四章= 길이란 걸 맞질러서 써도 가득 넘쳐 다하지 않음은 뭣 때문인가? (*길은 써도 닳고 마르지 않는 다는 뜻) 흡사 깊은 못 같아서 만물의 온 것 을 삼는 것 같다 (*宗이란?= 멀리 있는 점점히 내려온 만물의 시발점처럼 보인다 뜻). 그 날카로운 끝을 부러트리고 그 어지러움을 풀고 그 빛을 화락하게 하고 그미세한 티끌을 같이함을 깊이 젖어드는 것처럼 하여서 존재케 하는 것은 뭣인가? 내- 그 뉘이 자식인진 모르나 [上]帝의 형상보다 먼저인가 한다 (*그것만이 진리라 해서 온 바를 내세우지 않으니 =내세움과 다르니= 그 날카로운 끝을 부러트린 것이고 모든 게 제 위치에 적절히 있게 하였으니 어지러움을 푼 것이고 만가지 형상과 활동이 저 된바 대로 잘 어울리니 그 빛이 화락하여 보이고, 모든 게 (*道란)유무 사생의 고향을 같이하니 그 티끌을 같이한 것 같이 보인다 =역자 나름대로 해석임)
* 길은 맞지름 으로서 사용함을 삼는다 혹두 차지 않은 시퍼런 못 같음이여 흡사 만물의 등마루 [꼭대기]인가? [ 蒼天(창천)의 시퍼런 못, 양떼구름 조개구름 뭉게 지어 구름 두둥실 흘러간다, 그 深淵(심연)이 길의 맞 지름 우주의 시발을 삼는 것인가? 고개를 타래 메고 팔꿈치 받쳐 思惟(사유)해 본다,] 그 銳鋒(예봉)을 挫折(좌절)시키고, 그 紛擾(분요)로움을 해소하고, 그 빛을 화락 하게 하여선 그 몽진사회와 함께 어울린다 담백한 맛으로 오래 도룩 즐김이여 내 누구의 자식인줄 몰라서 삼라만상과 온 누리 상제의 앞섬인가 한다 [* 길이 허무주의에로만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삼라 만 작용과 활동, 사람의 일상생활과 같이한다, 그러므로 써 세상을 읊고자하고 철학을 탐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를 찾게 한다, 그래선 청담을 꽃피우고 설왕 설래한, 결과물 탐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달리게 한다 ]
* 소씨는 주석을 달대. 대저 길을 맞질러서 라야 없음에 다다른다(*빗자루를 갖고 가을 게 낙 옆 떨어져 어지러운 길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 같다) 그런 다음 모든 있음을 맞게 된다 (방문하는 손님을 뫼실려 면 먼저 길부터 물 뿌려 씰고 단장한다는 것이다) 길이 비록 하늘 땅의 큼과 산과 강의 넓음에 두루치 아니함이 없음이나 (사람의 정신관념에 틔게) 그 형체가 없는 까닭에 (*사람은 늘 상 길을 밟고 다니지만 거기다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삶의 이해득실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차지 않아 보이는 것 같음이니 흡사 못이 깊어 시퍼런걸 슬쩍 곁눈질 해보는 것 같다. 내가 그 만물이 온바(*宗)를 안다 곤 말로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건대 만물의 온 바를 (짐작컨데) 사람이 길을 간직하지 아니함이 없는 거와 같다는 것이다 (* 사람이 길을 가진 거와 같다는 뜻) 성인이 능력 있고 온전하심에 (*성인은 전지전능하다 =이것은 서교 이론과 흡사하다) 그 예봉을 꺽는 것은 그 흐름이 망녕됨으로 흐를까 를 두려워함에 서며 (* 생각의 흐름 지례 짐작 억측은 집중화를 일으켜 긁어모으게 됨으로 사실이 그런 것처럼 탁탁 들어맞게 된다 실제 또 사실이고 해서 사실 창시자가 된다) 그 어지러움(*紛)을 해결하는 것은 그 사물을 줬다는 뜻(* 내가 너를 만들고 존재케 했다)에 얽메일까를 두려워함에 서다. (* 소위 이른바 爲나 作者라하는 것의 꼬득임에 넘어가 物心이 얽혀 물릴까봐서 그 어지러움을 푼다는 것이다= 일체 절대 작자 없다 소위 서양귀신 서교 사상 배격된다는 역자의 비뚤어지고 편파적인 해석) 망상에 흐르지 않고 物事에 얽혀들지 않으면 밖같 근심을 이미 버린 것이라서 빛이 난다. 빛이 나면 또 쫓아서 화락하게 된다 그 사물과 더불어 달라짐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움이라 한다.
두려움의 신체적 현상이 기를 발산하게 되는데 그 기를 내뿜는 상태의 현상을 갖다 빛(*光)이라 하는 것이다. (*소위 겁을 먹던가 성깔을 부리면 화끈거리는 현상이 인다 즉 이로부터 기발산의 시초 빛발산의 시초가 된다 짐작해본다) 여기서 빛은 지극히 깨끗함을 말한다 또 티끌은 지극한 잡됨이란 뜻이다 비록 티끌을 같이 아니함이 없음은 그만물을 포기 즉 없수이 여길까를 두려워함에 서니 이같은 후래야 완전해 짐이라 곧 깊이 젖어 그렇게 거기 늘 상 존재한다할 것이다 길이 비록 존재하여도 사람들이 알려들지 아니함이라(*不因識)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말하길 존재하는 것 같을 뿐이라는 것이다 길이 비록 항상 존재하지만 마침내 얻을게 없다하는 가르침은 그러히 역시 없다 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들을 하길 이것이 (모든 걸 관장한다하는) 상제보다 먼저라 할 것인가 상제가 먼저라 할 것인가? 하고 또 주제 하는 임금보다 먼저라 하면 뭣을 먼저라 하는 것인가 먼저라 할 것도 없다 할 것이다 했다 (*먼저라는 것은 없다 먼저라는 게 있다면 나중이란 게 있다는 것이니 구분이 분분해져서 어지러움에 얽혀든다 道라는게 그저 그렇다는 것임= 역자 말임)
* 여씨는 주석을 달대. 만물이 그늘을 등지고 양글름을 끌어안았는데 기운을 맞질러서 화락하게 된다 곧 맞질른다는 것은 음과 양이 화락 해짐을 가리킨다 음의 빈 것과 양의 찬 것이 길의 몸을 맞질른 것이라면 그 씀엔 혹여 넘치지 않을 수 도 있으려니 그 몸을 맞질렀는 까닭에 욕망 있음과 욕망 없음을 같은 검음이라 함인 것이며 그 씀엔 넘치지 않는 까닭에 마음을 비우고 뜻을 부드럽게 해서 늘 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게 하고 욕심도 없게 한다 함인 것이다 그 결론이 이같이 나므로 깊은 못이 만물의 온 근원(*宗)같이 여겨져서 그 온 내력을 찾을래도 실로 얻지 못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 같을 따름(*似-而己)이란 뜻으로 표현하게됨인 것이다. 그렇다면 뭘- 얻어서라야 이것이 길을 얻는 것이라 할 것인가? 그 뾰족한 끝을 꺽고 그 어지러움을 해결하고 그 빛을 화락 하게해서 그 티끌과 같이할 따름이라 마음에서 나와서 物事에 들여 밂을 그 끝이 날카로움이라 함인 것인데 그 그러한 끝을 꺽고 실천치 말며 物事에서 다하여선 마음에 되 사귀려 듦을 어지러움이라 하는 것인데 그 어지러움을 풀어서 흔들리지 말 것이라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끝을 꺽고 어지러움이 풀리면 늘 상 그렇게되어 있는 밝음을 알아서(*知常之明), 하늘에 빛을 뻗치게 하리니(*發於天光), 빛이란 것은 티끌의 밖같이요 빛이 옥처럼 맑지 아니한 것이 있음으로 화락해 진다해도 변별치 못할게 있고 티끌이란 것은 빛의 안이니 티끌엔 어둡지 아니한게 있음으로 같아져선 다르지 않게 보이나니 (*역자 설= 엉덩이나 궁덩이나 辨(변)辨(변)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변별할게 없어서 우주는 混渣中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똥 떡이라 굳이 변별해 고집할게 없다 우겨 나댈게 없다는 뜻). 결론이 이같이 났다면 이른바 온 곳(*宗)이라는 것은 깊게 함몰된 것 같아서 그것이 혹여 존재하는 것인가? 한다는 것이다 즉 확실 한거와 엇비슷해, 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게 或似(혹사)란 글 뜻의 의미다 못이라 읊조린다는 것은 그 깊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빠졌다(함몰)읊조린다는 것은 그 뜻(事情)을 말함이다 혹여 차지 않는다는 것은 바르게끔 정해진 게 아니란 것이다 (혹여 존재 하는 게 바르게 정해진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뜻임) 차고 비고 있고 없음을 내 마음에 용납시킬 바가 없으면 내 뭘로 그 제절로 생한 걸 잘 안다 하리요? 그 하늘귀신 상제님 이란 게 낳은걸 볼 따름이므로 말하건대 내 뉘 자식인줄 모르는데 상제보다 먼저 형상 지어져 있다할 것인가? 대저 내라함 있고 안다함 있고 뉘라 함 있는 걸 길이란 게 숨겨 갈무려 갖고 있는데 내가 누군 줄 모르면 역시 내라함도 모를 것이라 이것을 참 길이 제절로 생긴 것이라 할 것이니 하늘이 먼저 형상을 생기게 한다음에 귀신 임금님 비로소 임금 한거라면 그 형용하는 그릇이 먼저임을 아는 게 바른 앎이라 할 것이다.
* 박씨는 주석을 달대. 빈걸 맞질름인 것이니 길의 근본이 원래 허한 것이므로 씀엔 늘 상 차지 않는다 여기서 或似(*혹사= 혹여 와 같은 뜻)란 모두 의심내어 확정짓지 못하는 말씀이다 또 못이란 깊은 것을 뜻함이다 의지깐 어덕 마루(*宗)란 내세울만한 주된 것 주장 할만한 것 주관 주인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지난 도움을 받아서 존재하나 그게 종국이라 하여 온 바를 추적할 만 한 게 없음으로 그걸 갖다 말하길 宗이라 함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온 내력을 밝힐 수 있는 의지깐으로 여길만한 것을 확정지어 말할 수 없는 걸 갖다 만물의 宗(*종)이라 한다
그 예봉을 꺽는 다는 것은 맷돌 같은 것으로 갈아서 서옥 뿔따귀 같이 튀어나온 것을 갈아버림을 말한다 그 분란을 해결한다는 것은 고요함으로써 요동치는 것을 대처함을 말한다 그 빛이 화락 하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너그럽게 가져 밖같에 그 기운이 발산됨에 얼굴에 화색이 돌아 윤택 광이 나는 것 같음을 말함이다 (*심신을 여유롭게 하면 신진대사가 원활해져서 화색광이 돌게 되 있는 것이다) 그 티끌과 같이 한다는 것은 물사의 대처에서 지나친 결벽은 유별난 행동이란 뜻이다. * 물건을 털어 받지 않는다 제 혼자만 깔끔한 체 나대지 않는다. 빠져 빔(*湛虛=침허)이란 고요한 모양이다 似(사)란 존재함 같음을 말한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잘뵈지 아니함을 말한다 누구자식인가에선 누구씨의 자식을 말함과 같다 象(상)이란 似(같음)하다는 뜻으로 역시 의심 내어 확정짓지 못하는 말씀이다 帝(제)란 하늘을 뜻한다 길이 天地(천지)보다 먼저 함으로 말씀컨데 임금보다 앞선 임금 같은 형상이란 뜻이다 경문 내에서 或을 말하고 似를 말하고 象을 말함은 대저 말씀을 하대 의심스러워 결정짓지 못하는 말씀인 것이니 그렇게 확고하다고 주장하는 말씀은 아니란 것이다. 老子(노자) 본대 겸허함을 지녔고 또 길을 銳意(예의=예의주시) 관찰해서 형용이 쉽진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