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기원에 관한 크로키
카인과 아벨 이야기
(창세기 4강 - 장 들로르므 1994년 11월 강의)
텍스트를 세심하게 읽고 또 읽으면서 자문하는 것을 돕기 위한 몇 가지 지시사항.
✓ 이야기의 전개
두 형제의 탄생과 그들의 직업(1-2절)
주님과의 관계 :
제물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제물들을 ‘바라보는’ 두 방식(3-4절)
카인의 반응(5절)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다(67절)
두 형제 :
카인과 아벨의 관계 : 말과 살인(8절)
카인과 주님의 관계 :
주님은 묻고, 카인은 발뺌한다.(9-12절)
카인은 불평하고, 주님은 카인의 보호를 보장한다.(13-15절)
카인과 주님의 결별(16절)
카인과 그 후손들(17-24절)
✓ 관찰과 질문
1 - 관찰 : 카인과 아벨의 관계를 얘기하는 부분이
주님과 카인의 관계를 얘기하는 부분보다 훨씬 작다.
질문 : 주님과 아벨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으로 요약되는가?
주님과 카인의 관계에서 무엇이 더 말해지는가?
2 - 두 형제의 탄생 때의 차이, 직업의 차이(1-2절)는 한 형제가 다른 형제보다 유리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탄생은 그들을 어머니 하와(‘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3,20])와 주님(생명의 원천이신 분)과의 관계아래 놓인다. 아벨의 탄생 때 이것이 언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들은 부모와의 관계와 주님과의 관계라는 이중 층위에서 형제다(아버지와의 관계는 강조되어 있지 않다).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면서, 창세 2,5과 3,17 에 따른 인간의 직무를 이행한다.
3 - 주님께서 두 형제가 봉헌한 제물들을 대하는 시선의 차이는 설명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동기든 찾을 필요가 없다. 이야기에서는 카인이 반응하는 방식 곧 화를 내고 얼굴을 떨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것은 카인이 자신과 동생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곧 카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품은 이미지가 타격을 입는다. 마치 아벨이 카인에게 어떤 것을 훔쳐간 것처럼,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주님은 카인에게만 전념하신다. 주님은 카인에게 질문하고, 카인에게 얼굴을 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카인 안에 ‘도사리고 앉아’ 카인을 노리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도사리고 앉다(웅크리다)’ 동사는 위협적인 동물에게 알맞다. 3,16에서처럼, 주님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주목하라.
숙고하기 :
*욕구불만으로 가득하고 자존심에 상처받은 이 동물에게 무슨 이름을 줄 수 있을까?
*주님의 이 말씀으로부터,
주님께서 두 형제를 대하는 방식과 그들을 염려하는 방식 사이의 차이를 요약해보라.
4 - 카인은 아벨에게 말한다.
(히브리 텍스트에는 카인이 아벨에게 한 말이 적혀있지 않다.
매우 오래된 번역본들에서는 ‘들에 나가자’라고 카인이 아벨에게 한 말을 넣어 옮긴다).
이것은 두 형제 사이의 충돌이 어떤 방향에서 직면하고 말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지를 가리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 번 들에 나가자, 말 대신에, 살인 행위로 돌아선다.(카인의 의식 저변에 웅크리고 있던 것)
5 - 주님은 카인에게 질문하면서 말을 시키려 한다.(그런데 주님은 이미 4,10에서 “피의 울부짖음”을 이미 들었다.) 그러나 카인은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이 대답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지기를 거절하며, 진실을 자기 말로 고백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6 - 카인은 ‘농부’였는데, 카인의 저주가 “땅에서” 온다는 것을 주목하라.(10-12절) 땅은, 형제의 피를 마신 순간부터, 그의 생명을 빨아들인 것처럼, 카인을 거부한다. 카인이 아벨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카인과 생명의 관계가 흐트러지면서, 카인은 ‘카인의 노동’을 거부하는 땅을 통해 자신의 생명 자체를 위협당한다.(3,17에서 사람과 땅의 관계의 변화와 비교해보라) 카인은 “땅”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다. 형제 살인은 살인자에게 그 자신의 기원과 대립되게 한다.
7 - 카인은 살인이 살인을 낳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주님은 억제를 통해 폭력의 순환을 멈출 방법을 주신다.(몇 배의 앙갚음이라는 위협으로 폭력을 억제하는 방법) 그런 다음 카인에게 살인자인 동시에 보호받는 자의 표시를 주신다. “주님 앞에서” 물러나온(하느님을 볼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다) 카인은 주님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하느님의 표시를 통한 그분의 현존) 이 표시는 하느님을 가까이 누리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카인은 “주님 앞에서 물러나와”(16절) 땅에서 살고, 자식을 낳고, 도시를 세우고, 예술가와 기술자인 자손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된다.(17-22절)
✓ 갈무리하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살인의 기원” 혹은 “첫 살인”을 말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모든 폭력의 뿌리를 발견하도록 돕는지 그리고 이 뿌리가 우리 안에 이미 씨앗으로 웅크리고 있는 살인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사람과 여인에 대한 “결핍의 기원” 혹은 “첫 결핍” 이야기(2―3장)와 어떻게 닮았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창세 2―3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부 갖겠다는 갈망의 씨앗, 하느님처럼 되겠다는 갈망의 씨앗을 우리 안에서 알아보도록 돕는다.
창세 2―3장의 이야기와 창세 4장의 이야기에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기원과 우리의 관계를 우리 안에서 왜곡시키는 것을 발견하게하고, 또 내 안에서 각 사람 안에서, 생명과 기원과 우리의 관계를 무상의 선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하나의 행보를 제안한다. 살인을 범하는 모든 폭력은 형제 살인이라는 것을.
장 들로르므 신부님의 강의록에서 (1994년 11월)
수정 정리: 마리 테스, 안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