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
구우일모( 九牛一毛 )라는 말이 있다. 소 아홉 마리의 털에 비하면 한 개의 털은 지극히 하찮은 것이라는 말이다. 논 한 마지기에 피 한 포기가 자라고 있다한다면 하찮은 수량에 불과하므로 그 농부에게 잡초제거를 제대로 못하는 게으른 농부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 3그루가 자라고 있다면 게으른 농부라고 비난할 만한 수량인가? 첫눈에 반하는 마음을 먹었다고 하여 그 이성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먹으면 사랑하는 것인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 이성이 없이는 세상을 살 수가 없다고 상사병이라도 걸려야만 사랑하는 것인가? 도대체 한계라는 것이 어디까지라는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내 손에 다 쥘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신은 결코 한 사람에게 그렇게 대단한 것을 다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신은 이 세상에 내보낼 때 단 한 가지는 주어서 냈다. 그것은 어떤 개인에게 꼭 들어맞는 적성이라는 것을 주어서 내보내었다는 것이다. 내가 신에게 물어보아서 아는 사실도 아니고 신이 개인에게 적성을 주는 현장을 목격한 것 역시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나 개인차가 있어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잘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 비교적 잘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면 결국 그 분야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되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는 자녀 교육을 시키면서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긴 세월을 두고 관찰하면서 입학부터 취업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간혹 대학 입학 첫 날부터 상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나는 의대로 전과해야 하겠다.' 고 한다거나 혹은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내년에 공부해서 사범대로 다시 가야겠다' 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방황하는 사례를 본다. 원하는 대로 모두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긴 세월을 두고 꾸준히 적성에 맞는 길을 선택하도록 일찍부터 진로지도를 시켰다면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농사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듯이 정해진 한계가 분명히 나와 있지는 않다. 원하는 대로 어찌 다 할 수 있을까만 적어도 하고 싶은 일만은 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다보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숫자, 계산에 밝지 못한 사람이 경리부서에 발령받아가면 용쓰는 재주를 부려도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영업에 밝은 사람이라면 빠른 시일내에 영업부로 발령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사원이 되어 큰 재목으로 성장한다. 문제는 숫자와 계산에 능하지 않으면서 하필 회계학을 전공하여 이미 적성과는 거리가 먼 분야만을 계속 취급하였다면 학력에서 우선 해당이 되지 않아 인사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므로 그 영업부로 발령을 받기가 힘들어진다는데서 생긴다. 그 사람은 경리부서에서 계속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임무도 잘 수행하지 못하여 하루하루가 지옥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자신이 취급하는 분야에서만큼은 결코 타인에 뒤지지 않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다른 것들은 그 뒤 이야기다. 나의 스승 한 분은 전라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쓰셨다. ' 긍개 한계효용체감의법칙이랑 것슨 마러자먼 머슬 사쓰먼 처머냐는 아조 좋다고 생각헸는디 사는 횟수가 늘어나 불먼 차꼬 효과가 쩨깨씩 짜가진다 그 말이여. ' 학생이 듣다못해 ' 교수님! 교수님 품위도 있고 한데 사투리 쓰지 말고 표준말을 쓰시지 왜 그렇게 사투리를 쓰셔요?' 라고 말하면 '사투리를 쓴다고 표준말 쓰는 사람보다 모덩거시 머이간디. 고론디 싱겡쓰지말고 부지렁 노력헤서 니가 허는 일에 최고의 실력자가 돼야제. 그런 대메 사투리 쓰든지 표준말을 쓰든지 헤라' 그 스승님의 말씀이 나에게는 가슴에 와 닿았다. 지금도 나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잘 나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의 사투리 사용에 매력을 느껴서인 것 같다. 참으로 애들 보는데서 찬 물도 못 마실 일이다. 실제로 그분은 계속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하시다가 얼마 전까지 대학교 총장직을 역임하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허언이 아님을 후학들에게 보여주셨다.
적성교육의 중요성
일찌기 미국의 보스턴시에 직업보도국(Vocational Bureau)을 설치해서 청소년들에게 직업지도를 실시하여 현대 생활지도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Frank Parsons는 개인의 생애에서 바른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또한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유명한 직업교육 교수였던 Homer Smith 박사는 개인이 직업이나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그 직업이나 진로에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나 진로가 개인 자신과 생활을 변화시킨다고 한 바 있다. 진로선택은 이렇게 개인에게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어떤 진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이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우리가 어떤 직업과 진로를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능력발휘의 기회, 인간관계,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가치관과 태도, 정신 및 신체적 건강, 가족관계, 거주지 등 생활의 모든 측면에 걸쳐 영향을 받게 되고 개인의 생활양식을 결정하고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저도 저 자신을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뭘 하면 좋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걸요.” 여기에 적절한 3가지 잣대가 있다.
첫째,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보라는 거다.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고 있는지 돌아 보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거다. 막연히 고민하고 있는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 공부를 하고 있는지 생각만 하고 있는지, 결심을 하고 있는지 좋은 강의를 듣고 있는지,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는지 아니면, 읽는 척 하며 두꺼운 책 펴 놓고 다른 걱정만 하고 있는지 늘 살펴 본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과 술 마시고 있는지, 보다 발전적인 분들과 좋은 말씀을 나누고 있는지,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지, 게으르고 불평 불만에 가득찬 사람들과 함께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지 항상 현실의 자기를 돌아 본다. 즐겁고 흥겨운 음악을 듣고 있는지 외국어 테이프를 들으며 외우려고 애쓰는지, 가볍고 편안한 시간이 즐거운지 지겹고 힘든 시간의 보람이 느껴지는지 생각해 본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행동이 미래를 결정짓는다.
둘째, 요즘 만나는 사람들을 떠 올려 본다. 요즘 자주 만나고 전화하며 e-mail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사람들의 직업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생각해 본다. 어영부영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촌음을 아껴 가며 공부하고 밤새는 줄 모르는 사람들인가? 품질과 움직이는 행동의 반경은 어디인가?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의 평균이 자기 자신이다.
셋째, 방이나 서재에 꽂혀있는 책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예술에 관한 책들이 골고루 많이 꽂혀 있는지 잡다한 주간지와 만화책이 가득 꽂혀 있는지 살펴본다. 문학소설과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지, 책은 별로 없고 예쁜 액세서리와 낙서 메모장들이 널브러져 있는지 훑어본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과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의 양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확인해 본다. 예전에 읽은 책들이 가득한지 최근의 화제를 던져 주는 책들이 더 많은지 비교도 해 본다. 자신이 즐겨 읽으며 늘 가까이 하는 책의 양(量)과 질(質)이 지적 수준과 교양의 척도라고 한다. 책만 읽고 공부만 한다고 인품과 교양이 풍부하다고 할 수 없지만… 부지런히 일만 한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적성의 개인차
옛 속담에 같은 값이면 과부집 머슴살이라고 하였다. 어차피 똑같은 새경(머슴의 노동에 대한 노임의 옛말)을 받을 바에는 노동의 댓가를 받으면서 과부에게 대쉬할 수도 있으니 참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즉 누구나 적은 투자로 큰 효과를 얻고자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성의 확실한 파악이 중요한 것이다. 적성에 맞는 일의 효과는 형언할 수 없이 크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같은 월급을 받아도 자신의 적성에만 맞으면 그 일이 남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지 않으나 적성에 맞지 않으면 일거수 일투족이 남을 위해 일 하는 것 같고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간의 차이는 그다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의 개인차를 파악함에 있어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1) 상동적 태도 상동적 태도(stereotyping)란 사람에 대한 경직적인 편견을 가진 지각을 뜻하는 것으로서, 타인에 대한 평가가 그가 속한 사회적 집단에 대한 지각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2) 현혹효과 현혹효과(halo effect)란 한 분야에 있어서의 어떤 사람에 대한 호의적 또는 비호의적인 인상이 다른 분야에 있어서의 그 사람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경향을 말한다. 3) 주관의 객관화 주관의 객관화란 자기 자신의 특성이나 관점을 다른 사람에게 귀속 또는 전가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의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주관의 객관화는 수용 불가능한 감정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방어기제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투사함으로써 죄책감으로부터 풀려나가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4) 기 대 기대란 흔히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평가자의 기대가 피 평가자에게 실제로 나타나게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5) 선택적 지각 외부적 상황이 모호할수록 내부적 단서, 즉 경험, 욕구, 동기를 근거로 눈에 먼저 들어오는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현상을 선택적 지각이라 한다. 6) 지각방어 지각방어(perceptual defense)란 개인에게 불유쾌감 또는 위협을 안겨 주는 자극이나 상황적 사건이 있을 경우에 이에 대해 담을 쌓거나 인식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방어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7) 관대화경향과 가혹화경향 우선 관대화경향이란 개인을 평가할 때 가급적이면 후하게 평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또 가혹화경향이란 개인을 평가할 때 가급적이면 가혹하게 평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8) 대비효과와 유사효과 대비효과(contrast effects)란 한 피평가자에 대한 평가가 다른 피평가자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유사효과(similar to me effect)란 평가자의 태도, 취미, 성별, 종교, 정치적 입장 등이 자신과 유사한 사람에게 후한 평가를 하는 오류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위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의 오류를 범하지 말고 확실하게 자녀의 개인차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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