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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2차 전도여행 지도
예루살렘 총회 후 안디옥에 머물고 있던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 전도 여행때 전도하였던 지역에 가서 믿음의 형제들이 어떠한지 둘러보고 굳게하자고 제안하자 바나바가 좋게 여기고 흔궤하게 동의를 하였다.
그 때 바나바는 1차전도 여행때 밤빌리아 버가에서 중도 포기한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자고 제안하였는데 바울은 1차 때 포기하고 돌아간 마가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고, 바나바는 '젊은 사람이다 보니 실수한 것인데 기회를 한 번 더 주자'고 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 결국은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고 그만 갈라지게 되였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정말 안타까운 일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계획을 이루어 가심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본래 계획은 1차 전도지역을 순회하며 믿음을 굳게하고 예루살렘 총회 결과를 알려 주려 하였던 것인데 다툼으로 인하여 계획이 틀어지고 바나바는 화가나서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 교인들의 배웅도 받지 않은채 떠나 버렸다.
바울은 바나바가 그렇게 구브로로 떠난 뒤 섭섭한 마음을 안고 실라(실루아노)와 누가를 데리고 AD49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즉 바울의 고향을 거쳐 1차 전도 여행지였던 데베, 루스드라 바시리아 안디옥으로 선교지를 정하고 안디옥 교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된 공문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여기서 실라(실루아노)에 관하여 알아보자.
실라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며, 바울의 신실한 선교사역 동역자이고, 절친한 친구이다(벧전 5:12). 사도행전에서 ‘실라’로 불려진 그는 바울 서신에서 ‘실루아노’(살전 1:1)로 불린다.
또 실라는 베드로와도 좋은 친분을 갖고 있었고 베드로가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할 때 대필하기도 하였다(벧전 5:12).그는 예루살렘 총회 결의 사항을 유다와 함께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파견되였는데 임무를 모두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에 남아 전도하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차 전도여행에 함께하자는 바울의 부름을 받고 다시 안디옥으로 와 바울과 합류하였다.
1차전도여행 때에는 배를타고 구브로해서 갔는데 2차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의 역순으로 출발한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길리기아 다소로 추정되는데 그것은 바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회심사건 이후 13년간 고향에 머물면서 길리기아 지역에서 전도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 믿음을 굳게 하고 예루살렘 총회 결과를 알려주어 더욱 믿음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기 위함이였다. 그들과 혜어진 바울과 실라는 데베와 루스드라로 옮겼다.
데베와 루스드라는 1차전도여행 때 마지막으로 전도한 지역이였고 특히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실신한 상태에서 성밖으로 버려지는 고난을 받은 곳이였다.
루스드라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1차전도 여행 때 바울의 설교와 앉은뱅이를 고친 현장서의 강한 체험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디모데라는 청년 제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바울의 선교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두말할 것 없이 단연 디모데라 할 수 있다.
디모데는 바울이 선교사역을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귀한 협력자인 것이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의 사이에 태어났다. 그리고 외조모 로이스와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믿음이 좋은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아버지 없는 디모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모데로 이름을 지었다.
어려서 부터 철저한 유대교육과 성경을 공부한 디모데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였고 그의 신실한 사람 됨은 루스드라 뿐 아니라 인근 지역 더베와 이고니온까지 퍼져 칭송이 자자한 인물이 되였다.
그러던 중 바울의 1차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유대교에서 얻지 못하던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개종하였으며 특히 앉은뱅이를 고치는 기적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가 된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앞으로 전도여행에 동역자로 삼아 떠나려 할 때 디모데(헬라인과 혼혈)의 내력을 잘아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부친이 없는 디모데에게 유대인의 의식으로 할례를 행하여 줄 것을 요구하자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 결의 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모데에게 유대인의 예를 갖춰 할례를 행하였다. 할례를 받을 때 디모데는 21세였다.
바울은 아마도 헬라인이였던 아버지가 없는 디모데에게 양아버지의 자격으로 할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믿음으로 나은 아들이라고 표현하였던 것 같다. 어떻튼 디모데에게 베푼 할례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한 것과 형평성문제로 논란이 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20)라고 말한 바울의 고백처럼 복음전파에 있어서 어떤 장애물도 버린다는 의지를 고려 해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선교팀에 디모데가 가세하므로 네명이 되였고 더욱 복음 전파에 탄력을 받아 이고니온성과 바시리아 안디옥에서도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되였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 총회의결 사항을 전하여 줌으로 복음전파에 걸림돌이 되였던 할례 문제가 해결되자 더욱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 쓰게 되였고 그 결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 오고 교회가 굳건하게 서게 되였다.(행 16:4~5)
바울과 일행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 하였는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여 브루기아와 갈라디아(지금의 터키 중부지역) 땅을 거쳐 무시아(비두니아 밑에 있는 도시)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지금의 이즈밀)로 가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것 조차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트로이)로 내려갔다.
드로아 유적(트로이 목마)
드로아(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곳)에서 묵고 있을 때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 간청하자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확신하게 되였다.
환상중에 나타난 마게도니아 사람
환상 중에 마게도냐로 가라는 주님의 뜻에 따라 바울 일행은 역사적인 유럽 선교여행을 하게 되였는데 첫 걸음이 드로아(트로이)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네압볼리항으로 가는 것이였다. 바울일행은 션교의 부푼 꿈을 안고 네압볼리로 행하였다.
네압볼리에 있는 사도 바울 도착 기념교회
네압볼리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남동쪽 14km 지점에 있는 빌립보로 향하였는데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 도시로 로마 식민지였다. 바울일행은 빌립보에서 기나긴 여정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몇일 머무는 동안 안식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려 회당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간기테스 강가로 나갔는데 여인네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였다.
그 여인들 중에 자주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주님이 그 여인의 마음을 열게 하시여 바울이 전하는 말을 청종하게 하시고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시여 은혜를 받게 되였다. 그렇게 해서 루디아는
바울이 유럽에서 전도한 첫 열매가 되였다.루디아는 아시아의 두아디라 사람인데 두아디라는 중국의 비단이 유럽으로 건너가는 Silk Road 중심지로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어 그리스의 도시가 되었다가 주전 190년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소아시아의 염색공업의 중심지였다.
루디아는 자주장사로 중국산 비단을 자주색으로 염색하여 유럽에 판매했던 것이다. 자주색은 열대 뿔고동이나 조개 혹은 특수한 식물의 뿌리에서 채집되는 당시 가장 값 비싼 염료로써 주로 로마 귀족들이나 무사들만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옷감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에 부자가 입은 옷이 자주색 옷으로 부의 상징을 의미하였다.
루디아는 두아디라를 거점으로 자주색 옷감을 유럽에 무역을 하는 거상이였던 것 같다.
루디아가 빌립보로 장사하러 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게 되는데 간기데스 강가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알고 자주 강가로 나가 거래를 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그곳에 었던 유대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들이 믿는 유대교를 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게 되였고 주님을 믿게 되였다
루디아는 바울을 집으로 초청하여 자신과 가족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였고 뿐만아니라 그에 집을 예배처로 삼고 바울과 일행을 머물게 하였다.(행 16:14~15)
여자들이 모여있었던 간기데스강~~이곳에서 여인들과 루디아를 만났다. 이강은 2000년 전과 같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바울이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곳
바울이 루디아 여인을 만난 것과 세례 준 것을 기념해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1972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인했으며 같은 해 루디아 기념교회를 세우기로 계획하고 1974년에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완공한 것이다. 정교회에서는 매년 5월 20일 루디아의 축일로 지켜오고 있다 (사진은 루디아 기념교회)
루디아 기념 교회내에 있는 루디아 초상
바울과 그 일행은 루디아의 집을 예배처로 삼고 복음을 전파하던 중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는데 그 여종은 점을 처서 그 주인들에게 큰 이득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과 일행을 좇아다니며 소리지르기를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여러 날을 귀찮게 하였다.
이 일로 바울이 심히 곤혹스러워 하다가 여종에게 달라 붙어있는 그 귀신에게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 명령하니 그 귀신이 즉시 그 여종에게서 나왔다.(행16:18)
귀신이 빠져나간 그 여종은 그 순간 부터 점을 치지 못하였는데 그 주인들이 여종이 점을 못치므로 자신들의 수입이 끊기게 되자 그렇게 된 이유가 유대인인 바울과 실라가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청으로 끌고 갔다.
관청으로 간 그들은 상관들 앞에서 자신들의 돈벌이가 끊긴 것 때문에 붙들어 온 이유는 감추고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엉뚱하게 "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였다" 고 민란 죄를 들어 고소하니 그들과 한 패거리들이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였다.
관청의 상관들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라 그 송사를 듣고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그들이
태장으로 많이 치고 모욕한 후에 옥에 가두었다. 바울과 실라는 선한 일을 하고도 정식 재판도 받지 못한채 매를 맞고 옥에 같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다분히 원망이 나올수 있는 상황이였다.상관은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고 엄명을 하니 간수는 상관의 영을 받아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두었다. 그러나 간수는 이미 바울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갇혔던 감옥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한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찬송을 불렀다. 다른 죄수들도 그들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감옥이 크게 흔들리는 큰 지진이 발생하였다.
큰 지진 때문에 감옥 문이 모두 열려지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사슬들도 다 풀렸나갔다.
간수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감옥 문이 다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벌써 도망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칼을 꺼내어 자결하려 하였다. 그 당시는 간수가 죄수를 지키다가 죄수가 탈옥을 하게 되면 책임을 물어 처형하는데 그 예가 행 12장 19절에 베드로가 옥에 같혔을 때 지키고 있던 간수가 베드로가 없어지자 헤롯이 간수를 처형한 것을 보면 확연하다.
그러한 사정을 잘 아는 바울이 간수가 자결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큰소리로 소리질러 "당신 몸을 해하지 마시오. 우리는 다 여기 있습니다." 라고 한 것이다.
감옥에서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실라
자칫하면 죽을 목숨을 건진 간수가 등불을 들고 감옥 안으로 뛰어들어가 두려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 자기 집으로 가서 "선생님들,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든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간수에게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라고 말한 다음 바울과 실라는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 날 밤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씻고 치료하여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후 바울과 실라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다. 그런 후에 바울과 실라를 다시 옥에 데려 갔다
다음 날 아침, 로마 관리들이 부하들을 보내어 "그 사람들을 풀어 주라"고 명령하니 간수가 기뻐서 석방의 소식을 바울에게 전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이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매질하고 감옥에 넣더니,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놓아 주려는 것은 불법이다. 그 사람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부하들이 상관에게 가서 바울이 한 말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로마 사람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상관들은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 로마인을 재판도하지 않고 태장을 치고 옥에 가둔 것은 불법이고 그것을 고발하게 되면 그들도 처벌을 받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상관들은 옥으로 가서 바울과 실라에게 사과하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빌립보에서 떠나주기를 간절히 부탁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울과 실라가 계속 이곳에 머물면 자신들의 과오가 들어날 것 같아 그랬을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굳이 로마사람 임을 밝혀 둔 것은 빌립보에 교인들의 안전을 고려한 바울의 사려 깊은 처신이였다.
빌립보빌립보의 바실리카(교회).
빌립보에는 Α(알파)와 ῼ(오메가)교회가 있는데 남아 있는 석조 기둥은 당시 빌립보교회의 규모와 개종한 기독교도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보여 준다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으로 갔고 거기서 신자들을 만나 격려하였는데 그 신자들 속에는 귀신들렸던 여종도 예수를 믿고 제자가 되여 함께 있었다. 그들에게 믿음의 당부를 하고 바울과 그 일행 실라, 디모데 누가는 그 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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