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탈감 이론
2) 동일시 이론
3) 국제 정치체계이론
4) 현대사회 구조이론
5) 폭력이론
(1) 프란츠 파뇽의 폭력론
(2) 마르쿠제와 신좌익
(3) 마리겔라의 도시게릴라 이론
4. 테러리즘의 종류
1) 광의적 종류
2) 협의적 종류 및 방법유형
Ⅱ. 세계의 주요 테러 집단
1. 유럽지역의 테러조직
2. 중동지역의 테러조직
3. 중남미 지역의 테러조직
4. 기타
Ⅲ. 세계 주요 테러 대응조직
1. 유럽지역의 테러 대응조직
2. 중동지역의 테러 대응조직
3. 중남미 지역의 테러 대응조직
4. 기타
Ⅳ. 세계 각국의 주요 테러사건 분석
1. 미국- 알 카에다의 9․11테러사건(오사마 빈라덴)
2. 한국-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사건(김현희)
3. 페루-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 인질극(투팍 아마루 혁명운동)
4.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 자폭 사건(헤즈볼라)
Ⅴ. 테러의 예방
Ⅵ. 테러의 미래 양상 전망
<부 록> 테러의 연도별 정리집
Ⅰ. 테러
1. 테러와 테러리즘의 정의
1) 테러
테러(terror)라는 용어는 원래 라틴어 ꡒterrere"에서 기원하여, ꡐ공포ꡑ,ꡐ공포조성ꡑ,ꡐ커다란 공포ꡑ혹은ꡐ죽음의 심리적 상태ꡑ를 의미하며, 이는 곧ꡐ떠는ꡑ,ꡐ떨게 하는 상태ꡑ, 그리고ꡐ죽음을 야기하는 행위나 속성ꡑ을 뜻하는 것이다.
공포, 흉포, 전율의 뜻을 가진 명사로서 정치적 적대자 또는 그 단체나 기관의 구성원에게 구타, 파괴, 방화, 학살 따위의 온갖 폭력을 행사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지게 하는 불법적인 행위.
2) 테러리즘
테러리즘은 주권국가 혹은 특정 단체 및 개인이 정치, 사회, 종교, 민족주의 기타 등의 목표달성을 위해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의 사용 혹은 폭력의 사용에 대한 협박으로 광범위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특정 개인, 단체, 공동체 사회, 그리고 정부의 인식변화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징적, 심리적 폭력행위의 총칭이다
2. 테러의 역사
테러리즘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언제인가? 어떠한 변천과정을 거쳐서 현대에 이르고 있는가? 테러리즘이란 용어가 최초로 사전에 등장한 것은 1798년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Dictionnaire of the Academie Francaise 의 증보판으로 ꡐ조직적인 폭력의 사용ꡑ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1796년에 발간된 프랑스 사전에는 자코뱅당의 지도자들이 연설할때 종종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테러리즘은 1793년부터 1794년까지의 프랑스 혁명기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언급되었으며, 곧 공포정치(Reign of Terror)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공포정치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공화파(共和派) 집권정부의 혁명과업 수행을 위하여 왕권복귀를 꾀하던 왕당파(王黨派)를 무자비하게 암살, 고문, 처형 하는 등 공포정치를 자행했던 사실에서 유래했다. 프랑스 혁명시기에 테러리즘은 국가가 정치적 억압과 사회의 통제를 위해 사용한 수단으로 합법적인 권력을 가진 지배층에 의해 자행되는 관제 테러리즘(State Terrorism)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후 관제 테러리즘은 위로부터의 테러리즘(Terrorism from the above)으로 아래로부터의 테러리즘(Terrorism from the below)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의 출현을 있게한 프랑스 혁명기에서 테러리즘의 기원을 찾고 있지만, 개인적인 테러리즘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ꡐ조직적인 폭력의 사용ꡑ으로 정의되는 고전적 의미의 테러리즘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다. 기원전에 있었던 줄리어스 시저의 암살도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자행된 일종의 테러리즘이였다. 시저는 BC 81년 당시의 권력자 술라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고 로마를 탈출하였으나, BC 78년 술라가 병사하자 로마로 돌아와 평민당의 일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BC 60년 현재의 스페인 지역에서 눈부신 무공을 세운 시저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했다. 후에 크라수스가 동방정벌에서 전사하자 폼페이우스는 원로원과 짜고 우세한 시저의 세력에 대항했다. BC 49년 시저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에서 로마로 복귀하라는 원로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휘하의 군대를 지휘하여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하여 폼페이우스를 몰아내고 독재자가 되었다. BC 48년 시저는 로마를 출발하여 동방을 정벌한다는 계획을 세우자 귀족계급은 시저가 성공하면 자신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판단아래 공화파와 제휴하여 시저를 제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BC 44년 3월 14일 시저는 만찬석상에서 암살되었다. 또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14-37 재위)나 칼리쿨라(37-41 재위)는 정적의 기세를 꺽어 자신들의 지배에 복종시키는 수단으로 추방 및 재산몰수, 고문, 처형을 일삼았다.
AD 66부터 77년 사이에는 팔레스타인 종교집단들이 시카리(Sicarri)라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하여 로마의 통치에 협력하는 유태인들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기도 했다. 시카리 소속 테러리스트들은 주로 일요일 혹은 특정 기념일을 기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종교적 행사를 벌이는 유태인들을 대검을 이용하여 살해하거나, 농작물 재배지 혹은 공공건물에 대한 방화 등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11세기 에서 13세기 까지는 페르시아에 흩어져 있던 이슬람 과격 종교단체들이 암살자(Assassins)를 고용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자유와 확산을 위해 고위 기독교 지도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살해하여 공포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암살자들은 비교적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십자군을 상대로 정규전의 방식으로 대항하는 것은 패배를 초래한다는 인식 아래 장기적인 테러리즘 캠페인 전술을 채택했던 것이다. 암살자로 불리운 테러리스트들은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면서 군사령관, 지사, 칼리프 등을 살해했고, 이들의 투쟁은 영웅적으로 미화되었고 작전에 투입되어 전사한 자들은 순교자로 추앙받기도 했다.
종교적 목적달성을 위해 시작된 투쟁의 역사적 유산은 지금도 중동의 정치적 혼란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또한, 스페인의 종교재판소는 종교적 이단으로 간주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임의적인 체포, 고문, 처형을 일삼았다. 이처럼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요인이 작용하여 테러리즘은 확산되었고 이러한 역사의 유산이 16세기와 17세기의 폭군시해론으로 이어졌으며,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65)이 끝난 후 정부에 도전하는 일부 극우파 남부인들이 KKK(Ku Klux Klan)라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하여 남부 각주의 재건론자들을 협박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에 테러리즘은 서유럽과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들은 혁명을 위한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요인들을 암살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아래 세르비아의 청년 가브리엘로 프린체프에 의해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살해되었고, 동 사건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20세기에 들어서자 테러리즘의 사용목적과 실행방식도 크게 변했다. 테러리즘은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는 수많은 정치운동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이 되었다. 또한 테러리즘은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 치하의 소련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국가정책수단으로 채택되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국민들에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공표된 국가의 정치.경제.사회묵표 및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체포.구금.고문.사형 등이 가해졌다. 또한, 20세기 중반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들이 탄생함으로써 식민제국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테러리즘이 활용되기 시작했고, 일부 지식층과 급진주의자들에 의해서 자유와 해방을 위한 수단으로 테러리즘이 합리화되고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이론화되기 시작했다.
3. 테러리즘의 이론
1) 박탈감 이론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비합법적 폭력의 원인 즉, 테러리즘의 발생원인은 테드 거(Ted R. Gurr) 박사가 체계화한 "상대적 박탈감이론"(Relative Deprivation Theory)이 가장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좌절-공격 이론" (Frustration - Aggression Theory)으로 지칭되는 상대적 박탈감 이론은 "기대와 실익간의 괴리" 또는 "가치 기대와 가치 능력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말하며, 박탈감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일 수가 있다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신생국들이 정치적 독립과 근대화의 과정에서 급격한 정치, 사회, 경제적 변화를 겪으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 즉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에서 야기되는 문제가 상대적 박탈감의 개념이다. 여기서 기대치란 그들이 당연히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생활의 조건이나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이란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 삶의 제조건과 실제로 그가 향유하는 현실적 조건간의 격차에서 비롯되는 사회심리적 긴장을 말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시키는 전형적인 유형을 알아 보면 첫째, 열망적 박탈감(Aspirational Deprivation), 둘째, 점감적 박탈감(Decremental Deprivation), 셋째가 이른바 점진적 박탈감(Progressive Deprivation)이다. 열망적 박탈감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민들의 기대치는 계속 상승하는데 비해 이 기대치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체제능력이 한정적인데서 빚어지는 박탈감이다. 이러한 박탈감은 이제 막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발생한다. 이처럼 급속한 발전과 기대치가 국가의 능력을 크게 앞서는 데서 비롯되는 심각한 가치박탈은 자칫 대중폭력으로 연결되기 쉬우며, 이 때문에 열망적 박탈감이 팽배하는 나라의 정세는 만성적인 불안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점감적 박탈감이란 국민의 기대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대치를 받쳐줄 국가의 능력이 점차 퇴보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박탈감이다. 이 경우는 한때 향유했던 가치까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향유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 나타나게 되는 일종의 심한 분노감이나 공격성향 같은 것을 생각 할 수 있다.
점진적 박탈감이란 적어도 일정기간 동안 삶의 조건이 개선되어 왔고, 앞으로도 점진적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점진적 개선이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나타나는 박탈감이다.
Gurr 박사의 상대적 박탈감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이론적 결론을 도출시킨다. ꡒ만약 사회적 욕구 형성도가 사회적 욕구만족도를 훨씬 초과할 경우 여기에는 결과적으로 사회심리적 좌절감이 형성되고, 이것은 곧 폭력적 사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ꡓ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세계사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왔고 국내적으로 지배계급의 피동적 객체였던 제3세계 민중이 정치적 독립이 달성되고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야기된 박탈감의 돌파구를 폭력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테러리즘이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제 3 세계 국가들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폭력행사의 연장선 상에서 기인한다고 하는 주장과 연결이 되고 있다. 제 3 세계국가들은 1960년경을 기점으로 해서 서구제국의 식민지 지배상태에서 독립함으로써 그들의 공식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른바 식민주의가 상존하고 있으며, 대부분 제 3 세계국가들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 등에 대한 불만이 테러리즘의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무엇보다도 남북분제가 심화됨에 따라 테러리즘이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가의 문제해결을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는 시각이 강화된 것이 테러리즘 발생의 큰 원인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동일시이론
동일시란 사회심리학에 있어 개인에 의해 다른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용어로서, 일단의 개인이 테러리즘을 선택하는 것을 심리적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동일시는 두가지 다른 현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다른 개인이나 단체와 같이 존재하거나 똑같이 되려는 희망이며, 다른 하나는 좋든 싫든지 간에 자신과 동일시 대상 간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다른 개인이나 단체가 이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바람직한 속성의 보존내지 획득을 추구하는 것이며, 후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은 단순히 다른 개인이나 단체가 가지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가치까지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정적 동일시이다. 이는 많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가진 다른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가능한 한 이탈하려는 욕망을 말하며, 후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한 차이의 인정이나 동일시의 부족에서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두가지 동일시 의미의 차이는 "사람이 어떻게 적대하는 현상을 인식하느냐?" 그리고 "현상이 어떻게 되어지기를 바라느냐!" 하는 것 간의 차이라 볼 수 있다. 전자는 현재에 존재하는 일에 대한 평가이며, 후자는 미래의 목표와 소망에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의미들은 때때로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혼합되는 경우가 있다. 즉, 개인의 동일시는 자신 해석의 총체로서 정의되며, 이는 개인이 자신을 해석함에 있어 현재의 상황하에서 어떻게 과거 자신의 해석과 미래에 소망하는 것 사이에 연결을 시키느냐를 말한다. 이상과 같은 동일시의 정의하에서 동일시 현상이 왜 테러리즘 발생의 원인이 되는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일시의 적용은 일반적으로 인질이 자신을 인질로 잡은 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과 같은 "공격자와의 동일시"에 한정되어져 왔다. 그러나 다른 동일시 과정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인질극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은 인질극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희생자의 운명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감정이입에 의해서 희생자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점이 테러리즘의 촉진 원인이 되며 테러리스트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관중이 자동적으로 희생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관중의 일부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고 간주하고 테러리스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특히 관중은 희생자가 자신들의 눈에 죄가 있는 것으로 비칠 때에는 희생자의 굴욕과 고통으로 부터 쾌락을 얻는 것이다.
동일시의 방법이 희생자에 의하든 가해자에 의하든 간에 동일시에서 나오는 태도적 결과는 연민이나 학대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연민과 학대의 양극화 현상은 관중 사이에서 나타나게 되며, 이 양극화는 희생자와 가해자에 대한 동일시 현상이 강하느냐, 약하느냐에 따라 발생한다. 사람의 감정적 반응이 얼마나 이러한 양극화된 행위에 강하게 나타나느냐는 사건과 개인 및 상황사이의 심리적, 공간적 거리 그리고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
ꡒ공격자와의 동일시ꡓ는 관중을 약하게 하거나 복수심을 품게 만들 수 있다. 양극화 현상에 따라 편을 드는 과정은 소극적인 관중에 강력히 작용하여 일단의 관중들로 하여금 새로운 양극화 행위에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는 현상으로 발전될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에서 "희생자와의 동일시"에 근거한 복수심이 테러리스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런 동일시 현상에서 발생한 테러리즘의 실제적인 본보기는 미국이 월남전에서 행한 베트남 농민에 대한 학살에서 야기되었다. 독일적군파(Red Army Faction)의 공동 창설자인 마흘러(Horst Mahler)는 "베트남에서 미국에 의해 범해진 잔악행위에 대한 독일정부의 소극성이 적군파로 하여금 저항과 복수에 의존하도록 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동일시 과정에 의한 연민의 발생현상은 반란자 단체에 의한 수단적 도구로서 테러리즘의 선택을 설명해 주고 있다. 게릴라들에 의한 테러리즘의 도구적 사용은 동일시 과정을 일으키게 된다. 동일시 과정은 테러리스트 단체에 대한 연민을 유도하여 테러리스트 단체의 존재 여부와 관련이 되고, 이는 그들의 적인 정부에 대한 불신세력의 증가를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테러리즘이란 수단으로 사회혼란을 야기시켜 종국적으로 권력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반란형 테러리스트들은 테러리즘에 의해 정부당국의 과도한 대응을 야기, 정치적 상황을 군사적 상황으로 전환시켜 국민생활을 핍박케 함으로써 테러리즘을 주도하는 행위자에 대한 국민의 동일시 감정을 자극하여,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달성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테러리스트들은 국민들이 자신들에 대하여 동일시를 느끼도록 유도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조직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동일시 현상은 테러리즘의 선택 배경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테러리스트 조직에게 동일시 현상은 자신들의 테러리즘 행위 원인에 대한 지지획득과 대정부 불만세력 조장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3) 국제정치체제이론
국제정치에 있어 기본적인 행위의 주체가 주권국가이고, 이 주권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며, 국가이익은 힘(Power)으로 표현되는 것이 국제정치를 보는 현실주의자들의 시각이라 볼 수 있다. 즉, 주권국가는 타국과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해결에 있어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실주의적으로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속성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주권국가들에 의해 정당한 수단으로서 테러리즘의 수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테러리즘의 발생원인이 제 3 세계의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폭력사용에 기인한다고 하는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며, 이는 테러리즘이란 폭력사용 양태에 대한 주권국가 간의 인식의 차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국가 간 인식의 차이는 테러리즘이란 폭력사용 현상에 대한 시각에 있어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의 전사(One Man's Terrorist, One Man's Freedom Fighter)"가 되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이같이 동일한 현상에 대한 비대칭적이고 이중적인 사고의 존재는 일부 주권국가로 하여금 테러리즘을 정치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 도구로 간주하고 사용하는 사태를 결과시키고 있는 경향을 가져왔고, 동시에 정치목적 달성의 도구로서 테러리즘의 마키아벨리안적 수용을 유발하게 되었다.
일부 국가에 의해 테러리즘이 정치목적 달성의 전략적 도구로 수용되어 국가들에 의한 테러리스트 단체에 대한 무기, 자금, 피난처 제공과 같은 다양한 양태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결과시키고 있으며, 테러리즘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조차도 테러리스트 단체에 의한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발생된 테러리즘을 묵인하고 있는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결국 주권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테러리즘이란 저강도 수준의 폭력현상에 대한 비대칭적 시각의 존재는 이를 억제하는데 요구되는 의견통일에 불일치를 야기시킴으로써 국제적인 차원의 완벽한 폭력근절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이는 주권국가 중심의 국제 정치체제가 배태하고 있는 테러리즘 발생의 근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테러리즘이 국가정책 도구로 수용되어 발생이 증가하게 된 원인은 세계적인 전략선택의 경향과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첫째, 제 2 차세계대전 후 전개되고 있는 금세기에 걸친 제국의 붕괴와 해체 추세이고, 둘째는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와 재래식 전쟁의 무력 수단으로서 효용성 상실현상이다.
제 3 세계 지역국가들의 독립에 따른 구제국의 해체는 이전 식민지와 보호국에 대한 영향력 증대을 위한 초강대국 간의 경쟁을 야기시켰으며, 이러한 영향력은 시장개척, 천연자원이나 군사기지의 확보 등에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대국의 영향력 획득은 목표국가에 있어 친정권의 출현과 유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의 힘(Power)의 획득을 위해 타국가 내에 자국에 유리한 정보를 지원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추세때문에 국제사회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초강대국의 영향력하에 있거나, 보호국이 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 공식적 협약이나 정치 현실주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정치 현실주의에 의거한 강대국의 행동패턴 결정은 타국에 대한 자국이익 추구차원의 군사개입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경우 저강도 분쟁(Low Intensive Conflict)에 대한 강조추세에 이러한 경향이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저강도 분쟁이란 "적대국에게 특정한 정치군사적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하는 쪽에서 분쟁 스펙트럼의 저수준에서 작전하는 활동범위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저강도 분쟁이 혁명에 대한 대응(Countering Revolution) 교리로서 대반란전(Counter Insurgency)과 친반란전(Pro Insurgency)으로 구분되어지며 여기에는 특수작전(Special Operation), 특수활동(Special Activ-ities) 그리고 비정규전(Unconventional Warfare)이라 묘사되어지는 은밀한 정치심리적 작전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미국입장에서 저강도 분쟁은 반란자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친미국 정부나 적대국 정부로부터 자유를 희구하는 반란단체에 대한 외교, 정치, 경제, 군사적 지원을 말하며, 이는 국익추구차원에서 게릴라전이나 테러리즘, 반란전 등과 같은 저강도 수준의 폭력수단을 대리전(Proxy Warfare)으로 수용, 제 3 국에 대해 개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제 2 차 세계대전 후 핵무기 등장에 따른 핵무기 보유 국가들의 증가는 국제사회에 있어 무장평화 상태인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출현시켰고, 이는 재래식 전쟁이 핵대결로 증폭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여 존재하고 있는 핵균형 상태를 파괴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배태케 하고, 결과적으로 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군사대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정치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재래전의 경우 강대국들의 핵심 이익이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는 용인되고 있지만 유럽과 같은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한 지역에서는 이미 정치목적 달성의 합리적 도구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형편이 되었고, 약소국가 간의 전쟁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재래식 무기의 파괴력 증가로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의 전쟁으로 발달되어 그 희생이 엄청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수단으로서 효용성의 상실을 가져왔다고 하겠다. 때문에 이같은 테러리즘의 대리전적 수용은 국가 정책추구의 합리적 수단으로 저강도 수준 분쟁의 유용성을 높이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미국 RAND 연구소의 브라이언 젠킨스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테러리스트의 업적을 인정할 것이고, 그들 또한 자신들의 전략을 다른 국가와의 대리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현대의 전통적인 전쟁의 대체방안은 군사적 경쟁을 약화시키고, 군사적 승리가 전통적인 의미를 상실하는 저강도 수준의 장기전이다. 비록 전통적인 기존의 군사기관에 의해 합법적인 전쟁형태로서는 거부되었지만, 테러리즘은 미래에 인정될 전쟁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자신들의 적을 공격하기 위해 현존하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고용하거나, 자신들을 위한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상황조건은 정치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국가간 상호 직접대결의 회피가 가능한 테러리즘의 대리전적 수용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경향의 증가는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테러활동에 대한 정치, 군사적 지원은 지원행위가 은밀하고 간접적인 한 개전의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전략은 재래식 전쟁에 비해 인력, 장비, 재정 지출면에서 사용자에게 값이 아주 저렴하다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기존질서의 변화를 원하는 국가는 환경조건에 적용가능한 저강도 수준의 폭력을 사용하는 분쟁형태의 수용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게 되었다.
핵무기 출현에 따른 테러리즘과 같은 저강도 수준의 폭력사용의 국가전략 출현은 아래의 지적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재래식 전쟁의 중요성이 강조된 마지막 전쟁이었다. 총체적이며 아마도 영원한 과거의 망령은 "미묘한 무장 평화의 균형을 만들어 냈고, 이런 무장 평화의 균형상태는 가장 위험하고 조직적인 새로운 유형의 전쟁인 테러리즘의 출현을 촉진시켰다."
또한 강대국의 지배 논리하에서 약소국가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정치적 해결이 진행되어질 때에 이들을 공식적이고 직접적인 군사력에 의해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비공식적이고 간접적인 폭력에 의해서 대항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약소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제 3 세계 국가들이 강대국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기존질서를 파괴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저강도 폭력사용 양태인 비정규적인 테러리즘인 것이며, 이런 현상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준 국가적 단체로서 인정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테러리즘 사용이고, 이들에 대한 중동산유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원현상인 것이다.
더욱이 수단적 속성을 가진 테러리즘이 여러 주권국가에 의해 정치적 도구로서 선택되고 있는 매혹적인 이유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재래식 전쟁에 비해 비용이 싸다는 점이며, 테러리즘은 핵전이나 재래식전에 비해 결점이 적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즉, 제한된 투자에 의해 적대국으로 하여금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할 수 있으며, 국제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국가는 지원에 대한 책임을 용이하게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의 강력한 출현과 종족폭발(Ethricity Explosion)에도테러리즘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종교적이며 종족적인 민족 간의 갈등에서 생기는 폭력발생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유형의 폭력과 테러리즘은 이미 196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인종,종교 및 지역집단들 간의 동질의식과 단결의식이 강화되고, 이에 따른 기대의 불균형 및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가장 손쉽고 극적인 방법이 폭력사용이란 인식과 연결되어져 있다.
이같은 폭력사용은 주로 종족을 달리하는 문명권 간의 문제였으며, 그 대표적인 것은 동남아시아의 회교문제,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지의 문제이고, 또 다른 예는 아프리카의 흑.백 갈등에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 팔레스타인 문제도 여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고, 개혁과 개방의 결과로 해체된 구소련의 대체국인 독립국가 연합 내의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시위나 민족 간의 총돌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하겠다.
상기의 원인에다 이른바 게릴라의 신화(Myth of Guerrilla)가 국제 테러리즘 발생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모택동의 농촌게릴라, 호지명의 게릴라전, 팔레스타인의 시오니즘(Zionism)등이 정권 탈취 투쟁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하고 있는 신화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형성된 탈식민지화 과정의 독립투쟁은 제국주의 세력인 서구열강에 대항한 토착민족세력의 유일한 투쟁수단으로 테러리즘이란 폭력사용을 수용시켰고, 이 결과 독립쟁취에 성공한 저항세력의 지도자가 적대국가의 승인을 받은 주권국가의 지도자로서 변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정치목적 달성의 도구로서 테러리즘 활용의 역사적 선례는 작금의 국가 간 테러리즘의 수평적 사용을 증가시키고 있고, 오늘날 국제 테러리즘의 발생에 고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내용이 국제정치체제의 구조적 속성에서 기인하는 테러리즘 발생의 제 원인이라 볼 수 있고, 이외에도 수단으로서 테러리즘 사용의 합리성을 높여주고 있는 현대사회란 환경조건이 테러리즘 사용의 타당성을 높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4) 현대사회구조이론
수단으로서 선택되어 사용되고 있는 테러리즘에 도구적 합리성과 타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촉진시키는 환경적 배경은 인류가 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현대의 생태학적 상황조건에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현대적 상황들이 테러수단 사용을 쉽고, 용이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리즘의 발생을 촉매하는 현대사회의 환경은 첫째, 고도의 도시집중화 현상, 둘째, 기술의 발달에 따른 고도화된 교통체계의 존재와 대중전달매체의 발달, 셋째,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무기체계의 고도화, 넷째가 발생한 테러리즘에 대한 주권국가 차원의 묵인현상의 존재 등을 들 수 있다.
고도로 집중화된 현대의 도시 자체는 테러리스트가 목적달성에 필요한 공격표적을 제공해주고, 공격 후 용이하게 은신할 수 있게 해주며, 자행한 테러리즘 행위 원인을 전파할 수 있는 대중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의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즉, 고도의 밀집된 현대의 생활양식은 목적의식을 가진 테러리스트에게 심리적 효과와 상대방을 억압할 수 있는 최적의 공격표적을 도시에 집중시켜 놓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시민생활의 근간이 되는 상수도원, 도시가스 저장소, 발전소, 거대한 대형건물, 주요 공공건물 등과 같은 목표는 선택된 대상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선택 가능한 목표물이 접근이 용이한 상태로 산재해 있는 것이다. 또한 교통.통신수단의 발달은 발생한 테러리즘 행위가 테러리스트가 의도한대로 일반 대중에게 신속하고 정확하며 생생하게 전달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테러리즘 발생지역에 관계없이 테러리스트가 의도한 목적의 전파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테러리즘 행위에 대한 영감을 잠재적 테러리스트에게 제공해 주고 있으며, 테러리스트 상호간의 정보, 기술, 무기, 훈련 등의 협력강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간에 정치.사상적 친화력의 강화를 통해 테러리즘이 보다 용이하게 실행되고, 실행 후 신속히 도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통신수단의 고도화에 따른 발달된 대중 전달매체(Mass Media)는 테러리스트의 의사전달과 발생된 사건에 대한 신속 정확한 보도라는 속성속에서 "테러분자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이와같이 테러와 대중 전달매체는 상호 상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테러리즘은 T.V.가 없으면 존재이유를 상실하며, 테러리즘이 없으면 T.V.는 가장 극적이고 인기가 있는 대상을 상실한다."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양자의 상징적 관계에 대해 심리학자인 해커(F.J.Hacker)는 "만일에 테러리즘 발생의 대중전달을 차단할 수 있다면 국내 그리고 국제 테러리즘의 75%를 줄일 수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국제 테러리즘의 발생이 가능한 토양의 제공은 테러리즘의 성장과 국제화에 수 많은 방법으로 기여해 왔는데,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젠킨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국제 테러리즘은 우리 시대의 기술에 잘 맞는다. 현대의 제트기 여행은 테러리스트들을 어느 대륙에서도 마주칠 가능성이 있게 한다.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통신 위성들은 거의 실시간적인 접근을 전 세계 추종자들에게 제공한다. 무기와 폭약은 점증적으로 유용하고, 현대 산업사회는 공격받기 쉬운 수 많은 목표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과학기술 발달의 결과가 제공해주고 있는 테러리즘 발생의 촉매적 요인은 접근 가능한 다양한 구식무기가 산재해 있다는 점, 그리고 무기체계의 정밀화, 소형화, 고성능화를 가능케 하여 소형무기 사용을 통한 테러리즘의 효과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즉, 강대국들에 의한 거대한 양의 무기가 과학기술에 편승하여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이 결과 신형무기에 의한 구형무기 대체현상은 국제 암시장과 제 3 세계 지역국가 등에 대한 구식무기의 할인판매를 성행시키고 있다. 특히 일부국의 비밀정보기관에 의한 친반란(Pro Insurgency), 대반란(Coun-ter Insurgency) 성격의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에 대한 의도적인 무기지원은 상대적으로 테러리스트로 하여금 테러리즘 활동에 필요한 무기의 획득을 용이케 하여, 폭력의 자유화 현상을 결과시키고 있다.
또한 무기체계의 고도 정밀화는 테러리스트에게 테러리즘 행위에 대한 안전성을 향상시켜주고 있다. 즉, 테러목표에 대한 접근, 시행, 탈출과정에 있어 테러리스트에게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었으며, 파괴력의 향상은 테러리즘을 더욱 합리적인 도구로서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속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더욱이 발생한 국제 테러리즘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묵인하는 현상까지 존재하고 있다. 많은 주권 국가들은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경우 자국의 영향권하에서 테러리즘의 행위가 발생할지라도 국익추구라는 측면에서 발생된 테러리즘 행위와 국익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이에 대해 묵인하거나 인내하는 풍토가 국제사회에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관행으로 인하여 수단적 테러리즘의 발생을 사전에 억제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국가에 의한 의도적인 테러리스트 단체에 대한 지원, 후원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가에 의한 정치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테러리즘의 수용은 힘의 추구라는 정치현실주의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속성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하겠으며, 여기에다 사용에 따른 비용 대 효과면에서 합리성이 존재하고, 사용을 용이하게 해주는 현대사회라는 환경적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에 테러리즘의 수용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국제정치가 이상주의(Idealism) 논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한 테러리즘의 발생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런 추론의 전제는 테러리즘이라는 저강도 수준의 폭력사용 현상에 대한 비대칭적 시각의 존재이고, 이 결과는 테러리즘에 대한 국제적 대응노력의 한계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5) 폭력이론
(1) 프란츠 파뇽의 폭력론
프란츠 파뇽이 이 이론을 내 놓았을 때의 시대적 상황은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에 폭력과 긴장이 존재하는 “식민지적 상황”이었다. 파뇽은 식민지 지배국의 착취적인 억압과 약탈은 피식민자들에게 열등감과 증오감을 유발시키고 이것은 식민지의 민중의 자의식에 폭력적인 분위를 일으켜 식민지 상황은 항상 폭력적인 상황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탈 식민지화는 열등감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자존심을 회복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폭력은 자존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폭력은 일련의 새로운 죄악(식민지화)을 파괴하는 일일뿐이다. 그러나 피식민자의 폭력적 대항은 식민자의 군사조직을 파괴할 수 있을만큼 크지 못하기 때문에 파뇽은 무장혁명을 국제화 시켜 국제적 차원의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여 국제 테러리즘의 사상적 근거를 제시 하였다. 이러한 파뇽의 폭력론이 현재 국제 테러리즘의 발생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파뇽의 폭력이론은 자유세계의 자경지식층과 인권 민권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저서를 탐독한 젊은이들과 학생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였으며 제 3세계 국가의 폭력 사용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하였다.
(2) 마르쿠제와 신좌익
마르쿠제의 사상은 현실 비관적이고 욕구 불만적이며 부정적이다. 특히, 미국사회의 비대한 사회적 억압의 본질을 철학적․심리적으로 분석하여 선진국의 사회구조는 물론 인간 목표와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 하였다. 그는 서방세계의 엘리트들이 고의적으로 낭비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엄청난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결국은 국가는 물론 개인간의 빈부의 차를 심화 시켰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급진적인 집단과 학생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었으며 중상류 계층에 속한 일부 젊은이들은 옮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에 혜택을 받았다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진정한 혁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체제속에 버림받은자인 소외자라고 주장 하였다. 이러한 소외자들은 직장이 없는 자들, 정치적이거나 인종적 ․출신적 이유로 박해를 받는 자들, 제 3세계의 대중들, 소비성 사회에 염증을 느낀 학생이 포함된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소외자들이 기존체제에 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폭력수단을 자연권적인 저항권이란 측면에서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소외자들의 그들 나름대로의 새로운 세계 또는 대중의식이 지배하는 세계를 구축하려던 의도는 전례없는 부와 권력 그리고 강력한 정보기구와 커다란 보수적 분위기가 작용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쉽게 실현 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고, 점차 직접적인 폭력 내지는 파괴행동을 수단으로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마르쿠제의 정치철학은 월남전 반대운동, 흑인 민권운동, 실업자 시위, 빈부격차 등의 학생들의 도전에 활용되었으며 서방세계의 젊은 테러리스트 단체들에게 신좌익 사상의 영향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3) 마리겔라의 도시게릴라 이론
현대적 테러리즘의 이론적 배경이 파뇽의 폭력론, 마르쿠제의 신좌익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면 폭력수단인 테러리즘의 구체적인 사용에 대한 전략․전술을 제시한 것은 마리겔라라고 할 수 있다. 마리겔라는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에서의 테러리즘 전술과 도시게릴라의 전략․전술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그의 저서는 세계 각 국으로 배포되어 현대적인 테러리즘과 게릴라의 교본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리겔라의 도시게릴라 이론과 전술은 마우쩌뚱, 호치민, 체 게바라 등의 농촌 거점 전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혁명세력들의 농촌에서의 도시 포위전술과 달리 마리겔라는 현대 사회 특성으로 보아 처음부터 대도시에서 작전을 시작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 주요 원인은 체 게바라의 실패가 농촌과 도시의 연계의 결여에 기인하였다는 점, 파나마 운하지역에서 미국의 중남미 경찰 및 군의 대정글 및 대폭동 진압 훈련이 강화되었다는 점, 미국의 무기 원조 특히, 헬리콥터의 공급으로 인하여 정부군의 기동력 향상은 농촌 게릴라를 고립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테러 리스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반체제자들이 도시에 밀접해 있으며 게릴라 투쟁 대상 목표들(파괴 목표)이 도시 지역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마리겔라가 제시한 다양한 테러리즘의 기술의 사용에 의한 혁명 전략․전술은 세계 각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사용되어지고 있다.
4. 테러의 종류
1) 광의적 종류
(1) 반체제 테러리즘
반체제 그룹이 국가 전복등 , 기존의 질서를 파괴해, 권력을 획득 하려고 해 국가를 공격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테러리즘을 반체제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또, 반체제 그룹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를 지배 하고 있는 권력, 가치 체계로부터 일탈해, 현체제를 공격하는 그룹을 말한다. 반체제 테러리즘은, 한층 더 범죄형태, 허무형태, 민족형태, 혁명형태에 분류된다.
가. 범죄형태 테러리즘
범죄 그룹에 의해 행사 되는 테러리즘을 말한다. 몸값 획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나 최근, 남미 콜롬비아등으로 다발 하고 있는 마약 거래의 이권 옹호를 목적으로 한 「마약 테러리즘」, 이탈리아의 Mafia의 테러리즘이 그 대표예로서 들고 있다.
범죄형태 테러리즘은, 일관 한 체계적인 정치 행동 계획을 가지지 않고, 현체제를 전복 시키는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해 현체제의 품에 뛰어들려고 하는 예외적 케이스이고, 지배 체제에 대한 기생적인 관계가 그 특징으로 해 들고 있다.
나. 허무형태 테러리즘
체계적인 정치 행동 계획을 가지지만, 그 내용이 「현상 부인」=「현체제의 파괴」에 그쳐, 현체제가 해체되면 새로운 좋은 체제가 발생 한다고 한 막연히 한 예측 이외 구체적인 전망을 가지지 않는 허무주의자 그룹에 의해 행사 되는 테러리즘을 말한다.
고립화 한 반체제파가 적극적인 혁명의 기획에 착수할 수 없는 경우, 혁명을 보류로 해 이런 종류의 파괴에 종사하는 경향이 보여진다.
순수 유형으로서의 허무형태 테러리즘의 구체적인 예를 지적 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신좌익 운동으로부터 파생한 허무주의적 경향을 가지는 독일 적군파(RAF=바다․마인호후․그룹), 일본 적군, 붉은 여단이 이것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다. 민족형태 테러리즘
국가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적, 분리 주의적인 것으로 마르크스주의나 종교적인 요소를 안고 있는 혼합적인 형태가 많이, 허무주의자 그룹의 경우와 같게 순수 유형으로서의 민족형태 테러리즘을 지적 하는 것은 곤란하다.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적 귀속 의식의 보편성,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라고 하는 세계 종교가 말하는 보편 구제 등이라고 민족주의가 합체 할 경우에는 그 목표로 하는 곳(중)은 전인류에 대한 보편 구제적인 것이 된다.
(2) 체제측 테러리즘
국가의 지배자가 자기의 권력과 권위에 대한 도전을 억제해, 그 통치, 지배를 강제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집행적인 테러리즘을 체제측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이에 대표적인 것으로 정부당국이 하는 진압전술을 들 수 있다. 이는 현체제에 대한 위협 제거를 위해서(때문에) 행동을 일으킨 일반 개인이 하는 진압전술의 형태를 취해, 테러리즘이 될까 진압행동이 될까는 공격 목표의 성격, 공격 수단의 분별, 무분별의 정도에 의한. 테러 전술의 제도화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체제측 테러리즘은, 폭력(Violence)으로부터 실력(Force)으로 변신한다.
또, 강제 행위는, 대응형태와 선제형태로 나눌 수 있지만, 대응형태의 강제는 직접적인 도발 또는 위협에 대해서 행해지는 것이다. 선제형태의 강제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자극도 없는데 개시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 체제측 테러리즘은, 제도화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점차 선제적으로 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체제측 테러리즘은, 자경단형태, 비밀 공작원 형태, 공무 집행형태, 대량 살육 형태에 분류된다.
2) 협의적 종류 및 방법유형
(1) 항공 테러리즘
가. 항공기 납치
1931년 페루의 혁명 분자들이 그들의 혁명강령을 살포하기 위해 팬암(Pan Am) 항공기를 납치한 이래 지금까지 900여 회의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항공기 납치는 초창기에 주로 동구 공산권 국가에서 서방 자유국가로 탈출하여 정치적 망명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진영으로 나누어져 공산권 국가들과 심각한 이데올로기 대결을 벌였던 서방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공산주의 국가에서 서방 자유진영국가로 항공기를 납치하는 하이제커(Hijacker)에 대해 대부분 아무런 처벌 없이 정치적 망명을 허락하거나 심지어는 이들 하이제커들을 영웅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항공기 납치를 촉진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1960년 중반 이후 점차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항공기 납치를 통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항공기 납치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1968과 1972년 사이에 절정을 이룬 항공기 납치는 1969년 한 해 동안 85건이 발생하여 주당 약 2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 테러리즘 중 항공기 납치가 수적으로 많은 이유는 테러리스트들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주장하는데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항공기 납치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교류의 증대로 인해 항공기 이용객은 다양한 국적의 국민들이 섞여 있어서 항공기 납치가 발생하면 국제적인 이목을 모을 수 있고, 통신체계의 발달로 전세계 구석구석까지 TV등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의 정치적 목적을 손쉽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항공기 이용객을 인질로 삼아 공격목표 가 되는 대상국가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항공기 납치의 증가 원인이 되고 있다.
1931년부터 시작된 항공기 납치 사건은 1961년의 11건을 제외하고는 1931년부터 1967년까지 10자리 미만의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1968년부터 항공기 납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8년에 발생한 항공기 납치 건수는 전년도인 1967년의 6건에 비해 6배가 증가한 35건이 발생했다. 1969년도에는 85건의 항공기 납치가 발생하여 1968년의 2배를 상회했는데, 이는 월평균 7건의 항공기 납치가 발생한 것이다.
1974년이후 항공기 납치는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항공기 납치가 국제사회에 커다란 도전이 됨에 따라, 각국은 자국 항공기에 대한 보안시설을 강화하는 등 항공기 납치에 대한 대책을 부단하게 마련하였고, 이것이 항공기 납치 감소로 연결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항공기 및 공항의 보안시설이 완벽하지 못하고,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를 납치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다고 간주하고 있어 항공기 납치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항공기는 일단 이륙하고 나면 그 성질상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승무원만 제압하면 승객 및 승무원을 인질로 할 수 있다. 또한 항공기에 탑재되어 있는 통신시설로 테러리스트들이 요구하는 어느 지점과도 통화가 가능하고, 그들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은 세계 어느 곳이라도 비행이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항공기 납치가 일어날 경우 전세계적으로 이목을 쉽게 끌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테러단체에 의한 항공기 납치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하이제커들은 그들의 목적달성을 위해 보도매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나. 항공기공중폭파
1969년에 최고조에 달했던 항공기 납치는 점진적으로 줄어들어 1992년에는 12건이 발생했다. 항공기 납치가 이렇게 줄어든 이유는 국제사회의 항공기와 공항에 대한 보안시설의 강화와 대테러리즘 정책의 추진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항공기 납치의 점진적 감소는 비행중인 항공기에 대한 공중폭파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행중인 항공기에 대한 공중폭파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최초의 항공기 공중 폭파사건은 1949년 5월 7일 아시아 지역인 필리핀에서 발생했다. 한 여인이 필리핀 항공사(PAL) 항공기에 탑승한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범죄자 2명을 고용해 폭탄을 기내에 설치하여 공중에서 폭발하도록 했다. 동 사건으로 탑승하고 있던 13명이 모두 희생되었다. 이 사건이후 1995년까지 97회의 항공기 공중폭파로 2,261명이 무고한 생명을 잃었다.
항공기 공중폭파 사건은 항공기 납치사건과 비교해 볼때 발생 빈도수가 낮지만, 항공기가 수천미터 상공을 비행중일 때 폭발물이 터지도록 장치됨으로써 일단 성공하면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하게 되어 그 어떤 형태의 테러리즘보다 위협을 더해주고 있다. 19세기초 러시아의 화학자인 키파르치치가 암살용으로 폭탄을 발명했을 때만 해도 신뢰도가 극히 낮고 성능도 원시적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대의 폭탄은 가공할 만한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테러리스트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 폭파에 사용한 컴포지션 C-4는 위력이 TNT의 1.34배나 되는 고성능 폭약으로 단지 350그램으로 거대한 항공기를 휴지조각처럼 만들수 있다. 또한 가소성으로 형태변경이 용이하고 비금속성으로 금속탐지기로 검색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최근에 발생한 항공기 폭파사건의 경우 과거와 비교할 때 희생자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1949년부터 1969년까지 20년동안에 25건의 항공기 공중폭파 사건으로 384명이 사망한 반면에, 1988년 12월에 스코트랜드의 로커비(Lockerbie)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 103기 폭파사건으로 270명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70년대 초부터 항공기 폭파사건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968년부터 항공기 납치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각국은 이에 대응하여 탑승자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고 항공기에 무장한 보안요원(Sky Marshal)을 탑승시킴으로써 항공기 납치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은 항공기 납치보다는 항공기 공중폭파라는 극단적인 전술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항공기 납치와는 달리 항공기 공중폭파의 경우 일단 성공만 하면 배후가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한 예로,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범 김현희가 탈출에 성공했거나 자살에 성공했더라면 이 사건은 심증은 있으나 완벽한 물적 증거가 없는 사건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셋째는 재래식 금속탐지기로는 발견이 어려운 플라스틱 폭발물을 손쉽게 구할수 있고, 이러한 폭발물을 테러리스트가 직접 탑승하지 않고도 다른 탑승객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의 수화물 속에 숨겨넣음으로서 항공기를 공중에서 폭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코산 셈텍스와 같은 플라스틱 폭발물은 최근에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폭발물로 항공기 안전운행에 커다란 위험이 되고 있다. 1990년 3월에 체코의 하벨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들이 체코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을 당시에 1,000톤의 셈텍스를 테러리스트 단체의 후원자로 알려지고 있는 카다피가 정권을 잡고 있는 리비아에 판매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이 셈텍스는 이미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상당수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셈텍스 200 그램이면 대형 항공기를 폭파할 수 있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이 앞으로 셈텍스를 15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한항공 858기 사건과 팬암 103기 사건은 항공기 공중폭파의 심각성을 보여준 사건이였다. 이러한 형태의 항공 테러리즘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항공기 납치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자 국제사회는 항공테러리즘의 한 형태인 항공기 납치를 위한 대책마련에 급급하면서, 향후 발생 가능한 항공 테러리즘의 유형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마련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했던 것이다. 또한 항공기 공중폭파 사건은 연쇄적이기 보다는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이에 따라 각국정부는 대중들의 공포와 항공기 안전에 관한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나면 다음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에 소홀해지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다. 항공시설과 승객 공격
항공기 납치와 항공기 공중폭파에 대비한 각국의 대응책이 강화되자, 테러리스트들은 상대적으로 공격하기가 용이한 항공시설과 항공기 이용객을 그들의 공격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초까지는 거의 없었던 항공시설과 항공기 이용객에 대한 공격이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증가했다. 항공시설에 대한 공격은 공항에 대한 공격과 공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항공사 대리점에 대한 공격으로 크게 나누어 진다.
민간항공 역사상 가장 심각한 항공시설 및 이용객에 대한 공격사건은 1972년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Lod Airport)에서 발생한 에어 프랑스(Air France) 항공기에 대한 공격 사건이였다. 에어 프랑스 항공기편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받기 위해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승객들을 향해, 3명의 일본적군(Japanese Red Army-JRA)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수류탄과 자동소총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성지순례중이던 푸에르 토리코인들을 포한한 28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대리 테러리즘(Proxy Terrorism)으로 이러한 형태의 공격은 테러리스트 단체들간의 교류가 빈번해짐으로써 자주 발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테러단체들은 그들에게 소속되어 있는 요원들의 신분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노출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보안검색이 강화되자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리즘 공격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단체들은 그들과 연계를 가지고 있던 일본적군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을 고용하여 에어 프랑스 공격사건을 자행했던 것이다.
로드 공항에서 자행된 사건은 이스라엘이 자국 항공기에 대한 항공기 납치와 항공기 공중폭파에 대한 보안책을 강화하여 공격이 불가능 해지자, 테러리스트들이 공격이 용이한 공항과 이용객을 상대로 자행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얻을수 있는 교훈은 조금이라도 헛점이 있거나 보안대책이 미비한 곳은 언제든지 테러리스트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각국 정부는 항공기 납치와 항공기 공중폭파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마련에만 고심해왔다. 이에 따라 1960년대에 항공기가 공중납치에 노출되었던 것 처럼, 현재에는 공항과 항공사 사무실이 테러리스트 공격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항에는 보안요원들이 상주해 있지만 고도로 훈련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발생했을 때 과연 그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항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항공사 사무실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보안대책은 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1975년부터 1995년까지 항공사 사무실에 대한 공격이 343회나 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보안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공항의 경우 1990년까지 매년 10회 이하의 공격만을 받았으나, 항공사 사무실은 지난 1992년에만 50회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이 용이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이후 이러한 형태의 공격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라. 미사일공격
첨단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민간항공기의 안전운행은 커다란 진전을 보여왔지만, 그 이면에서는 항공기 납치, 공중폭파 등의 항공 테러리즘의 증가로 인해 항공교통의 발달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항공기 납치가 국제사회의 보안대책 강구로 점차 어려워지자 그들의 전술을 바꾸어 항공기 공중폭파라는 극단적인 유형의 항공 테러리즘을 자행해 왔다.
현대의 고도화된 무기체계와 테러리스트의 공격기술은 국제사회의 항공 테러리즘 대책수립에 커다란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형태변경이 자유로워 소형라디오나 카세트 녹음기에 설치가 용이한 셈텍스와 같은 폭탄은 비금속성으로 재래식 X-Ray와 같은 금속 탐지기로는 탐지가 어려워 테러리스트들의 항공기 폭파공격은 현재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항공 테러리즘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항공 테러리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테러리스트들의 항공기에 대한 공격양상이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항공기 납치가 가장 큰 위협이 되었으며, 1980년대는 항공기 공중폭파와 항공시설에 대한 공격이 점차적으로 증가해 왔다. 현재 이러한 3가지 형태의 항공 테러리즘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항공 테러리즘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민간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다.
실제로 테러리스트들은 지대공 미사일(Surface-to-Air Missile)로 무장하고 있다. 테러리즘 전문가들은 민간 항공기를 공격하기 위해 화생방 무기는 물론 핵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테러리스트들의 민간 항공기에 대한 공격중 미사일 공격은 심각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테러리즘 전문가들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미사일 공격은 현재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민간 항공기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미사일 공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73년 9월에 소련제 SA-7 미사일로 무장한 4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태리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리스트들은 로마의 푸시미노 공항 근처에 있는 아파트를 비밀리에 전세내어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고 이스라엘 항공기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1973년 2월에 발생한 이스라엘의 리비아 민간 항공기 격추사건에 대한 보복을 위해 리비아가 사주한 사건이였다. 시나이 사막 상공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F-4 전투기가 비행중이던 리비아 민간항공기를 격추하여 탑승객 118명중 110명이 희생된 사건이 발생하자,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아랍국가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Holy War)을 촉구했으며 반드시 보복할 것을 맹세했었다.
로마 공항에서의 이스라엘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2년 후에 또 다시 이스라엘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사건이 프랑스의 오를리 공항에서 발생했다. 1975년 1월 13일에 2명의 테러리스트들이 13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륙하는 이스라엘 항공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스라엘 항공기가 아닌 유고슬로비아 항공기에 명중되어 탑승을 기다리고 있던 승객과 항공기가 피해를 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 항공기에 대한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공항시설을 향해 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한 후 사라졌다. 이 사건 이후에도 리비아의 보복성 미사일 공격은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케냐에서도 계속되었다.
민간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1980년대에 드러서면서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발생한 45번의 미사일 공격중 38번이 1985년 이후에 발생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7년과 1992년에는 각각 7번 그리고 1993년에는 1973년이후 가장 많은 9번의 민간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있었다.
이처럼 민간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1980년대 중반이후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항공기 공중폭파가 심각해지자 각국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은 좀더 작전이 용이한 미사일 공격으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미사일 공격으로 항공기 공중폭파에서 얻을 수 있는 파괴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테러리스트들이 하고 있다. 셋째, 전세계적으로 많은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RPG-7, SA-7등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현대의 미사일 제조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여 운반 및 조작이 간단해 미사일을 이용한 항공기 공격이 용이해지고 있다. 넷째, 현대의 주요 국제공항은 수많은 대형 항공기의 이착륙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로, 공항 주변의 둘레가 거의 수 킬로미터에 달해 테러리스트들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지점의 선정이 매우 용이하고 보안요원들에게 발각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술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리스트 단체들의 극단적인 사고 역시 민간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의 증가원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항공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함에 있어서 각국 정부는 당시에 나타나는 공격유형에 대한 대책마련에 급급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에 따라 테러리스트보다 항상 한단계 앞서지 못하고 알려진 공격유형에 대한 대처방안 마련에만 치중하는 헛점을 드러내왔다. 지금까지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의 발생빈도는 높지 않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민간 항공기의 안전운행은 크게 위협받을 수도 있다.
(2) 해상 테러리즘
가. 기원 및 현황
지금까지 입수가 가능한 자료를 통해 확인된 최초의 해상 테러리즘 사건은 1924년 1월에 홍콩 연안에서 발생한 영국 선박의 납치 사건으로, 납치과정에서 선장이 살해되었다. 1940년부터 1959년까지는 8건의 해상 테러리즘이 발생했는데, 이중 6번은 선박에 대한 폭파시도였다. 지금까지 발생한 해상 테러리즘 사건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은 1960년 3월 6일 쿠바의 하바나에서 발생한 불란서 상선의 폭파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100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여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카스트로를 반대하는 세력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1961년부터 1971년까지 10년동안 9건의 해상 테러리즘이 발생했는데 이는 항공기 납치 등 다른 형태의 테러리즘 발생건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동안 항공기 납치는 280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해상 테러리즘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해상 테러리즘의 발생건수가 다른 유형의 테러리즘 발생건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해상 테러리즘보다는 항공기 납치를 포함한 항공 테러리즘의 성공율이 높아 항공 테러리즘을 선호했다고 볼 수 있다. 항공기 납치의 경우 일단 조종사만 제압하고 나면 짧은 시간내에 테러리스트 지원국으로 탈출하기가 쉽고, 무력에 의한 구출작전의 징후가 보이면 손쉽게 특정국가를 탈출할 수 있는 전술적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항공기 납치의 경우 밀폐된 공간에 다국적의 승객을 인질로 잡을 수 있기 때문에 협상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그 어떤 형태의 테러리즘보다 항공기 납치사건은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세계 언론매체을 쉽게 끌어들여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해상 테러리즘은 1970년 중반기부터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단지 4건이었던 해상 테러리즘은 1971년부터 1979년까지 32건이 발생하여 800%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1970년대에 해상 테러리즘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항공 테러리즘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국제사회가 이에대한 각종 대응책을 마련하여 항공기 납치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으며, 이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이 점차적으로 성공율이 낮아진 항공 테러리즘보다는 해상선박을 공격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러리스트들은 공격이 용이한 목표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해상 테러리즘이 1980년대 초에도 계속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해상 테러리즘 방지를 위해 승선객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5년 이탈리아의 호화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의 납치사건이 발생한후 국제해상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해상 테러리즘 방지를 위한 협약의 체결을 촉구하고 나섰고, 그 결과 1988년에 해양항해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행위 억제를 위한 협약(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Unlawful Acts Against the Safety of Maritime Navigation)이 체결되었다. 또한 IMO는 해상 테러리즘 방지를 위해 해상 테러리즘 발생시 대응방안을 포함한 포괄적인 지침서를 마련하여 회원국들에게 배포하여 숙지하도록 하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1980년 중반이후 해상 테러리즘은 점차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 발생한 3건을 제외하고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단 한건의 해상 테러리즘도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해상 테러리즘이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테러리스트들은 조그마한 헛점이 보이기만 하면 또다시 해상 교통로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 발생유형
1960년부터 현재까지 68건의 해상 테러리즘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목적 역시 다양하다. 화물선이나 여객선을 폭파함으로써 공격대상 국가에게 경제적 타격을 가하기도 하며, 여객선을 납치하여 인질석방의 조건으로 작전중 체포되어 감옥에 갖혀 있는 동료 테러리스트의 석방이나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동료 테러리스트의 석방을 위해 저질러진 해상 테러리즘 사건으로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은 1985년 10월 7일에 발생한 이탈리아 호화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Achille Lauro)호 납치사건이었다. 4명의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alestinian Liberation Front-PLF)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지중해를 돌면서 순항하는 호화 여객선인 아킬레 라우로호를 납치하여 180명의 승객과 331명의 승무원을 인질로 잡고, 50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납치범들은 범행과정에서 불구자인 미국국적의 유태인 레온 클링호퍼(Leon Klinghoffer)를 살해하여 바다에 던져버리는 잔인함을 보였다. 2일간이나 계속된 협상과정에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테러리스트들은 이집트로 무사히 빠져나갈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이탈리아 당국에 투항했다.
클링호퍼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정부에게 납치범들의 인도를 요청했다. 이에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납치범들이 이미 이집트 영토를 떠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PLO)의 보호하에 있다고 발표했고, PLO는 이를 부인했다. 1985년 10월 10일 이집트 항공기를 이용해 PLO 본부가 있는 튀니지아로 납치범들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미국은 공군 전투기을 동원해 이태리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비행장에 납치범들을 태운 항공기를 강제로 착륙시켰다. 미국은 납치범들의 재판을 위해 인도를 요청했으나 이탈리아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아킬레 라우라 납치사건을 주도한 아불 아바스(Abul Abbas)를 석방했고, 아바스는 로마를 거쳐 유고슬로비아로 도망쳤다. 나머지 3명의 납치범들은 재판을 받고 4-6년의 징역을 선고 받았으며, 아바스는 제노아법원의 궐석재판(闕席裁判)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아킬레 라우로 납치는 국제적으로 해상 테러리즘의 심각성을 보여준 사건이였으며, 해상 테러리즘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일관된 정책이 부족함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다. 대응방안
㉠ 국제협력체제 강화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함께 전면적인 전쟁의 위험이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남사군도의 영유권 분쟁에서 나타났듯이 해상에서의 국지적인 분쟁과 안전한 해상운송을 위협하는 해상 테러리즘과 같은 불법적인 폭력행위 발생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해상교통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해상 테러리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 국가들만의 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며, 불법적 행위에 대하여 총체적인 대응방안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아킬레 라우로 호화 여객선 납치사건 발생시에 관련 국가들의 대응에서 밝혀졌듯이 국제사회의 해상폭력에 대한 대응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탈리아는 납치범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주범인 아바스를 방면(放免)하여 유고슬로비아를 거쳐 튀니지아로 빠져 나가도록 했으며, 이집트는 자국의 비행기를 테러리스트들의 탈출용으로 제공하여 테러리즘을 공개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해상안전을 위해 해상 테러리즘을 자행하는 자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법의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다. 아킬레 라우로 사건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이탈리아와 이집트의 태도는 해상 테러리즘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해상에서의 법과 질서의 보장 그리고 해상운송의 안전확보을 위해 국제사회가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대책마련을 위해 노력을 경주할때 해적행위 및 해상 테러리즘은 최소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각국은 인식해야 할것이다.
㉡ 대해상 테러리즘 특공대의 전력강화
테러리즘의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국가들이 테러리즘 근절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강경정책(Hardline Policy)의 수립과 시행이라고 믿고 있다. 해상 테러리즘에 대한 강경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법적 행위를 자행하는 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특수부대의 보유가 필수적이다. 1960년 중반이후 테러리즘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미국, 독일, 이스라엘등 국가들이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를 창설했다. 한국도 1982에 공포된 대통령 훈령 제 47 호에 의해 마련된 ꡐ국가 대테러 활동지침ꡑ에 따라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를 창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특수부대들은 육상에서 벌어지지는 인질납치 혹은 항공기 납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목적으로 창설되어 작전환경이 다른 해상 테러리즘 발생시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데는 제한점이 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미국은 해상 테러리즘 발생시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SEAL 팀으로 알려진 대해상 테러리즘을 전담할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운용하고 있다. 한국도 해군내에 해상 테러리즘을 전담할 특수부대를 두고 있는데, 3면이 바다이고 남.북으로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 해상 테러리즘 자행 가능성이 높은 것을 고려해볼 때 대해상 테러리즘 전담 특수부대의 규모를 확대하여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은 평화시 발생하는 해상 테러리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방안이며, 유사시에 해상과 공중을 통해 동시에 침투시켜 해상을 포함한 남한 전지역을 교란할 수 있는 특수부대 병력을 10만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한국 해군의 대해상 테러리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우방국 대해상 테러리스트 특공대와 연례적으로 연합훈련(聯合訓鍊)을 실시하여 선진 대테러리즘 전술 및 신교리를 습득함은 물론 상호 정보교환을 활성화 시켜나가야 할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작전수행을 위해서는 평소에 실질적인 훈련이 실시되어져야 하며, 정확한 정보의 수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치밀한 작전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 정보수집 및 정보교류 강화
해상 테러리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있어서도 정확한 정보수집 활동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해상 테러리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목적은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나 사후처리에 능숙한 기술성을 과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치밀한 사전대책(Preventive Measures)을 마련하여 사건발생 자체를 억제하는데 있다. 해상 테러리즘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은 테러리스트 단체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전검거, 자금 및 무기지원 경로의 차단 등을 하지 않고서는 해상 테러리즘의 근절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각국 해군은 해상 테러리즘에 관한 정보활동을 강화함은 물론 필요하다면 외교적 노력을 동원하여 이해관계에 있는 해군간에 비군사적 선박의 위치와 자국선박에 대한 불법적 공격행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보교환은 양자간, 다자간 그리고 지역적 협의를 통해 점차적으로 확대시켜 나갈때 최대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한국 해군은 해상 테러리즘에 대한 정보교환을 한.미 그리고 한.일 해군간의 정보교류회의 개최시 의제로 채택하여 협의를 한다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다. 더나아가,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서 태평양 해양력 심포지움(Western Pacific Seapower Symposium)을 통해 많은 국가의 해군들이 해상 테러리즘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불법적 행위에 대한 정보교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것이다.
㉣ 연합해상보안군의 창설
국제법상 모든 선박은 공해나 영해에서 무해통항을 보장받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국제법의 정신을 위협하는 해적행위 및 해상 테러리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해역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정찰을 통해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것이다. 광범위한 해역을 특정국가 해군만의 노력으로는 감시 및 정찰이 불가능함으로 우선적으로 해상에서 발생하는 불법적 행위로 부터 빈번하게 고통받는 국가들이 참여하여 이들 국가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그 범위를 설정하여 역활을 분담한다면 가능할 것 이다.
또 다른 방법은 관련 국가들이 군사적 그리고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해적소탕, 해상 테러리즘 예방, 해상을 통한 마약거래 근절, 돌발적 사고방지, 그리고 해난구조 등 다목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연합해상보안군(Combined Maritime Security Force-CMSF)을 창설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CMSF를 이용한 현시방법은 군사적인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해적 및 테러리스트들에게 해상교통의 발달과 해양의 평화적 이용을 저해한 행위를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심리적 억제효과를 거둘수 있다고 본다. CMSF 운영의 핵심은 물리력의 행사보다는 문제해역을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정찰활동을 하는데 있으며, CMSF의 운영이 국제해사기구 산하에 있는 지역통제센터와의 긴밀한 협력하에 이루어 진다면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다.
㉤ 선박내의 습격 및 폭탄공격 예방정책 수립
해상 테러리즘 예방을 위한 방법중에 하나는 이러한 형태의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지역을 피하거나, 멀리 떨어져 항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 하다면 야간에 통항하지 않도록 항해 스케줄을 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방법을 수용할 수 없다면 선박내의 경계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경계와 보안이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식별되면 해적행위나 해상 테러리즘 발생 가능성은 낮아질 것 이다.
항해중이 아니고 정박중일때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정박중에 선박을 폭파하는 사건이 빈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박중 해상폭파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인가된 사람의 출입통제을 철저히 해야하며, 테러리스트의 수중 및 수상 침투를 예방하기 위해 주요 항구의 완벽한 항만 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승선객에 대한 보안검색 강화
해상 테러리즘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승선객이 탑승시 엄격한 보안검색을 강화하여 선박을 납치할 기미가 보이는 승객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를 행하고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승선을 거부함으로써 해상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인 경우에는 그들 자신이 승선해 있으면서 항해중에 폭탄을 장치해 폭파되도록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테러리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와같은 극단적인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수화물에 폭탄을 장치하여 항해중에 폭탄이 터지도록 하는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표를 구입하고도 승선하지 않은 승객이 있다면 그 승객의 수화물을 조심성 있게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3) 폭탄 테러리즘
가장 일반적이고 다각적인 형태로 테러의 각 유형에 응용되는 형태이다. 테러범들은 특정 건물 혹은 차량, 열차 등에 테러를 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으로는 우편폭탄, 차량폭탄, 시한폭탄 등이 있다.
(4) 일반 시설물 테러리즘
시설물에 대한 테러는 대사관, 정부청사, 군사시설, 방위 산업체, 석유 비축시설, 발전소, 대형 건물 등 사회 기간산업에 대한 테러로 공격을 당할 시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테러 집단의 공격 목표가 된다.
(5) 교통시설물 테러리즘
항공과 항만 교통을 제외하더라도 육상 및 지하의 교통시설들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철도역이나 철도시설의 주요시설들에 대한 파괴는 국민생활의 커다란 불편을 끼치며 국가 비상시 지역 연결의 부재로 테러 의도자의 목적달성을 용이하게 한다.
(6) 사이버 테러리즘
사이버 테러리즘이 앞으로 인류의 시급한 문제가 되리라고 하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이버 테러리즘이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사이버 테러리스틀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트럭에 폭탄을 싣고 공격 목표물을 향해 돌진할 필요가 없다. 비행중인 항공기 폭파를 위해 미사일을 발사할 이유도 없다. 국방관련 기관에 침투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하고 중무장하여 침투할 필요도 없다. 테러리즘을 자행하는 동안에 목숨을 잃을 염려도 없고 체포될 염려도 없다.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들의 은거지에서 발견되지 않고 원하는 공격 목표물을 정하고 공격할 수 있다.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죽음의 그림자를 전세계에 드리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Ⅲ. 세계의 주요 테러 집단
1. 아시아지역의 테러조직
1) JRA
일본 공산당 연맹에 탈퇴한 후사코 시게노부에 의해 1960년대말에 창설된 JRA는 1970년 4월 일본도로 무장한 9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요도호를 납치하여 북한행을 요구하는 항공기 납치로 세상에 실체가 드러났다. 테러리즘을 통해서 맑스-레닌주의 전세계 혁명을 달성하고,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목표를 내걸고 무차별적인 공격에 가담했다.
이러한 활동은 세계혁명을 위한 투쟁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1971년 JRA는 수차에 걸쳐 폭탄공격과 은행강탈등을 자행했다. 그러나 1972년에는 조직내부의 극심한 분열로 10여명의 요원을 고문하여 사망케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일본 경찰의 포위망이 가까워지자 대부분의 JRA 요원들은 해외로 도주하였다.
JRA는 요도호 납치후 북한에 남아있던 요원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단체인 PFLP와 연계되었으며, 이후 PFLP을 대신해 대리 테러리즘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1972년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에서 고조 오카모토를 포함한 3명의 테러리스트들은 성지순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 항공기 이용객에 대한 무차별 무장공격으로 25명을 살상했다.
이후 JRA는 해외에서 수차례의 충격적인 테러리즘을 자행하여 악명을 떨쳤다. 1975년에는 쿠알라 루품 주재 미국 영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을 인질로 잡아 일본에 수감중인 5명의 동료 테러리스트들을 석방시켜 리비아로 탈출시켰다. 1977년 9월에는 일본항공 소속 항공기를 봄베이에서 납치하여 159명의 인질석방 대가로 600만불을 일본정부로부터 받아냈고 5명의 동료 테러리스트를 석방시키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이후 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JRA에 의한 테러리즘은 사라지는듯 했지만 1987년에 발생한 로마 주재 영국 대사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필두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LTTE
인도의 남부 해안에 위치한 스리랑카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전체 인구의 70%를 점하고 있으며 불교를 믿고 있는 상할리족과 북동지방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힌두교의 타밀족 사이의 관계는 늘 긴장되어 있으며, 특히 타밀 이주자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긴장되었다. 이러한 긴장의 결과로 발생한 일련의 폭력사건은 통상 공동체 상호간의 투쟁형태를 보였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타밀족 사이에 이람독립국(State of Eelam) 창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LTTE는 소규모의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하고 1977년에 스리랑카 북부에 이람국 창설을 목표로 출현하였다.
LTTE는 그들의 정치적 목표인 이람국 건설에 장애가 된다고 간주하는 온건 타밀족의 정치인들을 주로 암살했으며, 스리랑카 정부와 인도 정부간의 어떠한 평화적 협상도 거부하고 있다. 초기의 공격목표가 온건 타밀족에 한정되었지만 1983년 대규모의 반정부 투쟁이후에는 스리랑카 정부군, 경찰에 대한 공격은 물론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스리랑카에 근접해 있는 인도의 타밀나두주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해온 LTTE는 일반적으로 인도내에서는 테러리즘 캠페인을 하지 않았으나, 이들의 활동이 인도정부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성장하자 1987년에는 LTTE의 근거지를 공격하여 LTTE의 세력은 많이 축소되었다.
3) NPA
1968년에 창설된 NPA는 필리핀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의 군사조직으로 노동자 및 농민 혁명을 통해 집권정부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게릴라전의 전단계로 테러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무자비한 테러리즘을 통해 정부의 과도한 대응정책을 유발시키고, 정부의 무능을 증폭시켜 보다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노동자 및 농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NPA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과 부패가 농민과 노동자들의 NPA 지원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창설초기에 NPA의 대원 수는 2,000여명 이였으나 현재는 약 20,0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점차 세력이 성장하자 NPA는 공산당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방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시도는 물론 보안군, 경찰간부, NPA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에 대한 살해 및 협박 등을 통해 도시지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2. 중동지역의 테러조직
1)PFLP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이 대패한 직후, 외과의사 출신인 하바시(George Habash)가 기존에 있던 군소단체인 아랍민족주의 운동의 돌아온 영웅(Heroes of Return), 팔레스타인 해방 국민 전선(National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그리고 독립 팔레스타인 해방전선(Independent Palestine Liberation Front)을 통합하여 PFLP를 결성하였다.
하바시는 평화적 협상에 의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고 총체적 팔레스타인 해방은 오로지 이스라엘의 파멸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무자비한 테러리즘이 가장 효과적이며, 극도의 공포 조성을 위해 비전투원인 민간인들도 공격목표로 삼고 있다. PFLP의 최종 목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PFLP는 결성 초창기에는 상당히 많은 대원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데올로기의 비유연성에 따른 내부 갈등으로 조직이 와해되어, 현재 약 1,000여명의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PFLP의 무자비한 테러리즘 전술은 전세계적 비난은 물론 동구 공산 사회주의 국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 Hezballah
헤즈볼라는 이란의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무슬림 군국주의 노선에 크게 영향을 받아 1983년에 조직된 정치.군사조직으로, 3,000여명의 대원을 거스리고 있는 중동지역 최대 테러리스트 조직이다. 시아 무슬림(Shia Muslim) 이데올로기와 일치하지 않는 국가와 개인에게 극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헤즈볼라는 이란 호메이니의 혁명을 모델로 삼아 레바론에 시아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며, 서구 국가의 어떠한 영향력 행사도 배제하며, 레바론내의 이슬람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테러리즘을 전술로 활용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후세인 무사위(Husayn Musawi)가 이끌고 있던 이슬람 아말(Islamic Amal)과 다와 파티(Dawa Party) 레바론 지구당이 합쳐져서 탄생되었는데, 레바론 동부의 베카 계곡(Bekaa Valley)에 본부가 있다. 정치, 군사, 이념적으로 이란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란의 혁명군이 훈련과 교리교육은 물론 물적지원도 하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헤즈볼라는 테러리즘 수행에도 이란과 상호 긴밀한 협조아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작전에는 각기 다른 코드네임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슬라믹 지하드(Islamic Jihad), 혁명정의기구(Revolutionary Justice Organization) 그리고 지구상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기구(Organization of the Oppressed on Earth)등이 있다.
헤즈볼라는 주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 단체가 자행한 주요사건은 1983년의 베이루트 미 해병대 사령부 차량폭탄 공격 그리고 1992년의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 공격사건 등이다.
3)HAMAS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과격 테러리스트 단체로, 1987년에 무슬림 형제당(Muslim Brothers)에서 분리되어 창설되었다. 하마스를 조직한 사람은 무슬림 형제당에서 활발히 활동을 했던 아마드 야신(Ahmad Yasin)이며, 1987년 인티파다(Intifada)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생한 후 모습을 나타냈다.
하마스는 이슬람 전통과 혁명사상을 강조하면서 지지세력의 기반을 적극적인 조직활동을 통하여 확대하고 있으며, 실제로 고도로 발달된 행정조직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마스는 중앙의 지도부인 3개의 위원회와 조직의 활동분야별로 독립조직형태로서 4개의 하위조직을 두고 있다. 즉 하마스는 웨스트 뱅크 지역에 3명의 지역 책임자를 두고 있으며, 가자지구에 1명의 책임자를 두고 있다. 각 지역마다 지역 책임자의 리더쉽하에 계속적인 세분화된 세포조직 체제를 가지고 있다.
하마스는 군사조직으로 에즈 에딘 알 까삼(Ezz Eddin al-Qassam)를 두고 있는데, 하마스의 모든 테러리즘을 계획하고 자행하는 행동조직이다. 1992년 한해동안 14회의 테러리즘을 자행했으며, 초기에는 칼 등을 이용한 원시적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정밀한 무기를 사용하거나 차량을 이용한 폭탄공격, 그리고 자살 특공대를 이용한 테러리즘을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에 이슬람 팔레스타인 국가(Islamic Palestinian State)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달성을 추구하고 있는 하마스는 1991년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을 시발점으로 1993년 워싱턴 중동평화조약등 모든 정치적 협상에 반대하고 있고, 협상에 적극적인 PLO 지도자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하마스는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북미와 유럽지역의 국가들에서 정치적 선전을 통해 자금모집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PFLP-GC
PFLP-GC는 PFLP에 가담하여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했던 아메드 지브릴(Ahmad Jibril)이 조지 하바시의 지도력에 반감을 가지고 1968년 탈퇴하여 결성한 무장 테러리스트 단체이다.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PFLP-GC는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재래식 군사능력을 갖추고 있다.
PFLP-GC는 육상, 해상은 물론 항공침투 능력을 갖춘 준 군사조직으로, 구소련제 SA-7 대공 미사일, RPG-7 대전차 로켓트, 중화포, 경항공기 등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PFLP-GC는 테러리즘 자행을 위한 우편폭탄, 플라스틱 폭탄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고, 대형 폭탄을 탑재하여 공공건물을 공격할 수 있는 무인 동력 행글라이더 등을 보유하고 있어 이스라엘 보안당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지브릴은 군사전략 및 전술에 뛰어난 시리아 육군장교 출신으로 시리아 군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라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시리아는 PFLP-GC에게 기지제공 및 대원들에 대한 훈련 등을 지원하는 댓가로 PFLP-GC 요원들을 대리전에 투입하고 있다.
PFLP-GC는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들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르메니아 해방군 등에게 테러리즘 전술을 전파하기도 했다. 대원은 주로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모집하여 훈련시킨후 이스라엘 공격에 투입하고 있다. PFLP-GC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기법으로 폭탄을 장착한 열기구와 헹글라이더를 이용하기도 한다.
3. 중남미 지역의 테러조직
1) SL
남미의 테러리스트 단체중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SL은 페루 공산당(Peruvian Communist Party-PCP)에 반대하는 당원들이 탈당하여 대학교수 출신인 아비마엘 구즈만(Abimael Guzman)이 중심이 되어 1969에 결성되었다. 네오 마오이스트(Neo-Maoist)임을 주창하고 있는 SL은 남미에서 가장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는 테러리스트 단체이며, 소작농민을 이용하여 농촌지역에서 먼저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점차 대도시 주변으로 확대하여 정부전복을 기도하는 반란 단체이다. SL은 동시 다발적인 테러리즘 공격은 물론 도시 게릴라전을 자행하고 있는데, 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삼가하고 있다.
정부 타도를 부르짖는 다른 여타의 남미 테러리스트 단체와는 달리 SL은 쿠바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으며, 주로 은행강도와 금전강탈을 통해, 그리고 그들이 영향권에 두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전쟁세(War Tax)를 부과하여 단체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SL은 농촌지역에서 공세적인 사상교육을 단행하여 12~15세의 소년들을 단체에 끌어들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교육정도가 낮고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소년들을 이용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SL은 테러리즘 자행시 셀 조직(Cellular Structure)을 활용하고 있는데, 각 셀(Cell)에는 적어도 한명의 여자 테러리스트가 포함된다. 이들 여자들은 주로 정보원, 메시지 전달원으로 활용되는데, 때로는 공격조에 포함되기도 한다. SL이 가장 잔인한 테러리스트 단체로 알려진 이유는 소름끼치는 암살행위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신체를 절단한 후 시체는 공공장소에 버려둠으로써 테러리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SL은 농촌, 소작농 중심의 혁명을 신봉하고 있지만 지도층은 중산층 출신의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중운동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유지하여 농촌지역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1992년 9월 페루정부의 소탕작전때 SL의 지도자 구즈만이 체포되었고, 1995년에 상당수의 다른 지도급 요원들이 체포되어 SL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후지모리 대통령 정권에 대항하여 테러리즘을 자행하고 있다.
2) M-19
M-19는 1970년에 결성되었지만 1973년 혁명주의자들이 콜롬비아 사회를 공격하기 위한 자금원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을 강탈함으로써 모습을 나타내었고, 1974년 1월에 보고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시몽 볼리바르의 칼(Sword of Simon Bolivar)을 훔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M-19란 단체명은 1970년 4월 19일 선거에서 대통령 구스타보 로하스 피니라(Gustavo Rojas Pinilla)가 패배하자 권력의 재장악을 위해 무장투쟁을 촉구하면서 비롯되었다.
M-19는 1977부터 급격하게 세력을 팽창하여 대원들이 1,000여명에 이르게 되었고,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쿠바로부터 훈련지원을 받아 공격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핵심요원들의 충원은 주로 중류층 지식인과 학생이 주가 되었으나 1980년대 중반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요원충원의 변화는 1985년 M-19가 소수의 게릴라 공격에서 정식 군작전으로 공격 유형을 전환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M-19의 주요 공격유형은 도시지역의 점령은 물론이고 고위급 군 지도자 암살, 군사시설에 대한 무장공격 등 다양하며, 자금조달을 위해 외국인 회사의 근무자, 그리고 기업인을 납치하기도 하고 대규모의 마약거래를 하고 있다.
남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 단체와 상호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는 M-19는 1980년대 중반이후 국제적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 스페인의 ETA와도 훈련과 자금의 상호지원 약속을 맺기도 했다.
4. 유럽지역의 테러조직
1) RAF
1968년에 조직되어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단체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독일의 Red Army Faction(RAF)은 1960년대 학생들의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모습을 드러냈었다. 원래는 바더-마인호프 갱(Baader-Meinhof Gang)으로 불리웠던 RAF는 전세계적 맑스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체제주의 활동과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활용했다. RAF가 내세우고 있는 정치적 목적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존재를 독일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RAF를 결성했던 초창기 핵심요원들은 1970년대 중반에 체포되어 투옥되거나 국외로 탈출한 상태이다. 하지만 더욱더 폭력적 성향을 가진 조직원들이 충원되어 아직까지도 암약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고학력자들이며 전문직 종사자 출신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RAF의 조직개념은 다단계 구조로 되어 있다. 핵심요원은 20~30의 전투요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지하에서 활동하며 치명적인 테러리즘 공격을 담당하고 있다. 핵심요원 주위에는 연락지원, 은신처 제공, 자금지원을 담당하는 요원들이 있고, RAF의 이념적 논리를 제공하고 법률적 자문을 담당하는 동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RAF는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의 테러리스트 조직들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1980년 중반에는 프랑스의 Direction Action과 합동으로 테러리즘을 자행하기도 했다. RAF는 테러리즘을 자행하기 전에 특정사건을 통해서 어떠한 세부목적을 달성할 것이며, 어떠한 공격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최대의 효과를 올릴 것 인지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는 구소련제 RPG-7 등 최첨단 무기들이며, 여러가지 치명적인 살상력을 갖춘 폭탄제조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핵심요원들이 대부분 체포되어 휴면기에 있는 상태이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2) ETA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테러리스트 단체중의 하나인 ETA는 스페인 정부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리즘 공격을 통해 맑스주의 바스크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에 따라 1959년에 조직되었다. 지도부의 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이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민족주의이며 ETA는 단일 조직이 아니고 느슨한 동맹관계를 가진 여러개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조직마다 독립적인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다.
이들 조직중에 가장 공격적인 조직은 ETA-Military Wing(ETA-M)으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리즘 캠페인을 자행하고 있다. ETA-Political․Military Front(ETA-PM) 역시 테러리즘을 주 전술로 사용해왔으나, 최근에는 혁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중을 위한 사회혼란 책동에 주력하고 있다. ETA-M은 정치정당인 헤리 바타수나(Herri Batasuna-HB)를 통해 정치권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ETA는 스페인 정부 각료, 군지도자, 그리고 바스크 중도주의자들을 제거하는 것을 주목표로 삼고 있으며, 아울러 정부 및 공업시설에 대한 폭탄공격을 통해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1968년이후 약 600여명 이상이 ETA의 테러리즘 공격으로 사망했다. ETA는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자금조달 역시 인질납치, 무장은행강탈 등 테러리즘을 통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
ETA의 조직구조는 매우 정교하고 고도의 은밀성 유지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조직 구성은 3~4의 세포조직으로 되어 있어 경찰에 거의 노출되어 있지 않고, 작전에 투입되고 나서는 일정기간 동안 Basque 지방에 잠적했다가 활동을 시작한다. 신분이 노출된 조직원들은 철저하게 지하로 숨어들어 버리고, ETA를 지원하는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은신처를 제공받고 있다. 또한, ETA의 활동에 필요한 정보, 통신, 기타 분야의 지원을 담당하는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다.
ETA의 국제적 연계 또한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이 동일한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공화군(Irish Republican Army-IRA)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ETA는 또한 중동 지역의 테러리스트 단체 기지에 조직원들을 파견하여 테러리즘 교육을 시키고 있고, 니카라과이에서도 ETA 조직원들이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ETA에 대하여 지원을 해주고 있는 쿠바는 ETA 테러리스트에게 은신처 제공은 물론 자국의 훈련기지에서 고도의 군사교육을 이수하도록 협조하고 있다.
바스크 지역은 민족주의 감정이 널리 확산되어 있고, 주민 상당수가 ETA의 정치적 목적에 찬성하고 있어, ETA의 테러리즘 캠페인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Ⅳ. 세계 주요 테러 대응 조직
1. 유럽지역의 테러 대응조직
1) SAS
대테러리즘 특공대의 대명사인 SAS는 원래 테러리즘 사건의 담당을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가 아니다. SAS는 군사적인 기습공격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수집을 위해 1941년 데이비드 스털링(David Stirling) 중령에 의해 창설되어,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과 이태리군에 대항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SAS는 6개 대대의 여단으로 성장했으나, 1952년에 3개 대대(21 SAS, 22 SAS, 23 SAS)로 구성된 연대급 부대로 축소되었다. 각 대대는 4개의 중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중대는 사병 72명과 장교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SAS는 케냐, 보르네오, 예멘 등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진압과 대테러리스트 작전에 주로 투입되어 왔다. SAS는 1960년대 말까지 우방국 원수의 경호원들에게 경호에 관한 군사기술을 전수했고, 이 기간 동안에 SAS의 우수한 대원 15~20명이 한 팀이 되어 테러리즘을 연구하고 항공기 납치범 그리고 기타의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전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는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는 북아일랜드에 파견되어 대테러리즘 작전에 임하고 있다.
1970년대에 이르러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고 공격빈도가 급증하자 대테러리즘 업무을 담당하는 요원을 증원하여 72명의 대원과 6명의 장교로 구성된 대테러리즘 전담 특공대를 만들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SAS는 1980년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 인질억류 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여 최고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로서의 명성을 전세계적으로 얻게 되었으며, 독일 GSG-9의 모가디슈 항공기 납치 구출작전, 아센 열차 납치 구출작전, 이태리 수상을 역임했던 알도 모로 납치사건 등에 SAS 요원들이 파견되어 전술적 지도와 신경무능화작용탄(Stun Grenade)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성공적 구출작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활약과 명성으로 인해 전세계 각국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 창설의 모델이 되었으며, 미국의 델타포스 역시 SAS의 도움으로 창설되었다.
SAS의 본부는 웨일즈(Wales) 근처의 히어포드(Hereford)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대부분의 훈련이 이루어 지고 있다. SAS대원은 다른 영국군 부대에서 지원하는 자들 중에 우수한 자원을 엄격한 심사하에 선발하여 16명단위로 훈련이 이루어 지며, 다시 4명 1개조로 세분화 된다. 모든 대원은 킬링 하우스(Killing House)로 알려진 특수시설에서 밀폐지역전투능력(Close Quarters Battle Capability), 각종 화기 및 폭발물 처리능력은 물론이고, 4명 1개조에서 한명은 반듯시 작전에 투입되는 국가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원들이 습득해야 하는 공수, 레펠, 육박전 훈련, 폭파, 통신기술 등은 SAS대원으로 선발되기 전에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밀폐지역전투(CQB)에서의 사격훈련이다. CQB 기본 사격과정은 6주동안 계속되는데, 이 기간 동안 최소 1,200 에서 1,500발의 실탄사격이 이루어 지고 있다. 기본 사격훈련이 끝나면 이동 타겟트에 대한 사격, 신속한 탄창교환 훈련, 총기고장 수리 등 계속되는 반복훈련을 통해 사격의 명수로 양성되게 된다. 일정 수준의 훈련이 이루어지고 나면 발생가능한 상황을 상정해 놓고 끊임없이 반복적인 모의 구출작전을 실시하여 실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실제 사격이 이루어지는 모의구출 작전에서 SAS대원들이 인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SAS대원의 사격능력을 입증해 주고 있다.
SAS가 최정예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요인중의 하나는 SAS내에 운용하고 있는 작전연구팀(Operational Research Team)이 대테러리스트 작전에 필요한 특수장비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인데, 신경무능화작용탄(Stun Grenade), 특수공격작전용 사다리(Special Assault Ladders) 등이 바로 작전연구팀이 고안해낸 장비들이다.
SAS는 미국의 델타포스, 독일의 GSG-9 등 서방국가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대테러리즘 전술개발과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들 특공대의 실제 작전투입시 특수장비의 지원과 대원들을 파견해 자문역할을 하는 등 테러리즘 근절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2) GSG-9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중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 의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무참하게 살해되자, 서독 정부는 테러리즘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특공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브란트(Willy Brandt)수상은 Hans-Dietrich Genscher 연방 내무장관에게 대테러리스트 특공대 창설을 지시했다. 악명을 날렸던 나치 독일의 친위대인 SS에 대한 반감이 여전했기 때문에 군의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특공대를 창설하지 않고, 대신에 연방국경경찰(Federal Border Police) 예하에 특공대를 창설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창설된 서독의 특공대가 Grenzchutzgruppe(GSG-9)이며, 총대원은 88명으로 구성되었다.
본(Born)의 외곽에 자리한 세인트 오거스틴(St. Augustin)에 기지를 두고 있는 GSG-9는 테러리즘 관련 임무를 수행하며, 위기상황하에서의 VIP 경호,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예상되는 독일 주재 외국 대사관 방어, 국가의 주요 시설물에 대한 수비 등을 담당하고 있다. 초대 GSG-9 대장으로 임명된 웨게너(Ulrich Wegener)는 경찰 베테랑으로 테러리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부대와 긴밀한 협조로 오늘날의 GSG-9을 있게한 장본인 이며, 1976년 이스라엘의 엔테베 인질구출작전에 동행하여 이스라엘 특공대에게 전술적 조언을 하기도 했다.
창설당시의 GSG-9은 구성면에서 보면 3개의 공격대로 되어 있으며, 통신 및 정보분대, 화력분대, 연구 및 장비분대, 정비 및 군수분대, 훈련분대등의 지원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도록 조직되어 있었다. 1983년에는 1개의 공격대가 추가되어 현재는 4개의 공격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공격대는 원래 30명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증원되어 42명으로 되어 있으며, 작전단위는 5명으로 되어 있다. 대테러리즘 작전의 핵심은 정보의 수집임을 인식하고 있는 GSG-9은 코미사르(Komissar)로 알려진 컴퓨터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전세계의 테러리스트 단체에 대해 추구하는 목적, 조직구조, 공격양상, 무기, 핵심대원 등 모든 자료를 입력하여 과학적 분석을 함으로써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고, 상황발생시 효과적인 진압작전에 활용하고 있다.
GSG-9의 대원선발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GSG-9의 대원으로 응시하기 위해서는 국경경찰대에서 2년이상 우수한 성적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만 자격이 주어지며, 3일동안 계속되는 체력, 심리, 사격, 지능, 일반상식 등의 테스트를 통해 일차선발이 이루어진다. 1차에 선발된 인원은 5개월 동안의 기초체력, 사격, 무술등의 엄격한 훈련을 받게 되는데 1차 선발인원의 10% 이상이 탈락된다. 2차를 통과한 지원자는 또 다시 3개월 동안의 훈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 기간에는 팀공격 훈련, 전술훈련 등을 받는다. 일단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최종적으로 GSG-9의 대원으로 선발되면, 외국제의 모든 화기 조작술을 익히게 되며 9백만불의 예산을 투입하여 설치한 항공기, 열차, 선박, 대사관 등의 모형물에서 시나리오에 따라 실전과 똑같은 모의구출작전을 반복적으로 실시하여 최고의 엘리트 대테러리즘 특공대원으로 양성되게 된다. GSG-9의 대원들은 최고의 능력을 유지하여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50~60 시간을 훈련에 임하고 있으며, 대원들은 일년에 두번 실시되는 테스트를 통해 검증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GSG-9은 대테러리즘 관련 기술, 정보, 그리고 장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교환하기 위해 FBI, SAS, GIGN, 샤렛트 매트칼, 델타포스에 대원들을 파견하여 공동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다.
GSG-9의 명성은 모가뒤슈로 납치된 루프트한자 항공기의 인질 91명을 성공적으로 구출함으로써 확인되었다. 모가뒤슈 작전후 싱가폴, 사우디 아라비아 등 40여개 국가에서 대테러리즘 특공대 구성을 위해 GSG-9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SAS에서도 영국 주재 이란 대사관 점거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구출작전을 감행하기 전에 GSG-9의 협조를 구한 바 있다.
3) GIGN
뮌헨 올림픽 사건이후 프랑스 역시 대테러리즘 특공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테러리즘 특공대 창설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73년 9월 5일에 발생한 프랑스 주재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관 점거 및 인질억류 사건이었다. 무장한 5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관에 침입하여 13명을 인질로 잡고, 이들의 석방조건으로 투옥 중인 동료 테러리스트의 석방과 자신들의 안전한 출국을 요구했다. 동 사건은 아랍 국가의 대사들이 협상 조정자로 나서서 평화적으로 해결했고, 프랑스 정부는 아무런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관 점거 사건 직후인 1973년 11월 프랑스 정부는 대테러리리스트 특공대 GIGN(Groupement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을 창설했다.
창설 초기에 GIGN은 제 1 GIGN과 제 4 GIGN의 2개의 부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76년에 2개의 부대는 통합되었고, GIGN의 임무가 점차적으로 늘어나자 1979년에는 핵심 인원을 15명에서 42명으로 보강했고, 다시 1984년에 58명(장교 6명)으로 증원했다. GIGN은 12명으로 구성된 4개의 타격대(Strike Unit)로 되어 있으며, 4개의 타격대 중 1개 타격대는 비상 대기조로 언제나 그리고 어디로든 출동태세를 갖추고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GIGN은 프랑스의 인질구출작전이 주된 임무이지만, VIP에 대한 경호, 핵발전소 등 주요 시설물에 대한 방어, 극악범 호송 임무도 아울러 수행하고 있다.
GIGN 대원의 선발은 헌병대 근무자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1차 서류와 GIGN 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100명을 선발하고, 이들이 일주일 동안 체력, 담력, 사격능력 검사를 받게 되는데, 체력검사는 완전군장 8 km 달리기, 암벽타기, 레펠훈련 등이며, 담력검사는 훈련된 사나운 군견과 무술 유단자와의 연속대결 등이며, 사격은 권총 및 소총 사격능력 평가가 포함된다. 2차관문을 통과한 응시자들은 8개월간의 각종 대테러리즘 전술과 전기를 연마하게 되고,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료하면 정식으로 GIGN의 대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대부분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원들이 받는 훈련에는 낙하훈련, 레펠훈련, 전투수영훈련 등의 각종 특수훈련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에서 타국의 특공대와는 달리 GIGN은 전투수영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해상에서 선박납치 사건이 발생하거나, 해안에 있는 호텔과 같은 위락시설의 점거와 인질억류에 GIGN이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GIGN의 특징중의 하나는 매년 9천발 이상의 권총사격과 3천발 이상의 소총사격, 계속되는 모의 인질구출작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훈련은 대부분의 특공대에서 실시하는 것들이다. GIGN은 대원 개개인들은 맞서게 될 테러리스트들을 심리적으로 압도하기 위해 정신수양훈련(Mental Training)을 하고 있으며, 테러리스트 단체에 대한 공격유형과 추구하는 목적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작전에 투입될 경우 테러리스트 및 단체에 대해 세밀한 사항까지 파악하고 있음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GIGN이 갖추고 있다는 것이 강점중의 하나이다.
GIGN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최고의 엘리트 대테러리즘 특공대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인 연구와 각종 훈련을 통해 그 어느 특공대보다 훌룡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금까지 창설이후 GIGN이 행한 작전은 실패한 적이 없으며, 지난 20여년 동안 560여차례의 특수작전을 통해 모두 5백 50여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무력화시켰으며 3백 50여명의 인질을 구출해 냈다. 1976년 지부티에서의 발생한 스쿨버스 인질구출작전, 1979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회교원리주의자들이 일주일간 장악하고 있던 회교성지 메카사원 진압작전, 1983년 파리의 오를리 공항 납치범 제압작전 등이 GIGN이 행한 대표적인 작전이다.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구출작전은 1994년에 발생한 에어 프랑스 항공기 납치사건의 구출작전이다. 알제리의 우아리 부메디엔 공항에서 알제리 회교원리주의 테러리스트 4명이 자국의 항공기를 납치하여 프랑스의 마르세이유 마리난 공항에 강제 착륙시키고 프랑스 정부와 대치하자, GIGN이 투입되어 납치범 4명을 사살하고 인질 1백 70명을 성공적으로 구출했다.
GIGN은 명성에 걸 맞게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제 3세계 국가의 대테러리즘 특공대원들의 훈련을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의 특수부대 역시 GIGN부대를 방문하여 대테러리트 특공대 훈련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 이태리의 중앙보안기동대(NOCS)
훈련과 실제 작전투입시 가죽모자를 착용하는 데서 유래하여 얼간이들(Leatherheads)로 지칭되기도 하는 NOCS는 붉은 여단이 납치한 NATO의 도지어 장군의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NOCS는 1978년 알도 모로 전수상이 납치된 후에 SAS와 GSG-9를 모델로 삼아 창설되었으며, 대원은 5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훈련은 레펠, 사격, 폭파, 무술 등이 주로 이루어 지며, 자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이데올로기, 투쟁방법, 장비 등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2. 중동지역의 테러 대응조직
1) Sayaret Matkal
이스라엘의 대테러리스 공격능력은 1953년에 창설되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하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세적 방어임무를 수행했던 101단(Unit 10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101단의 과격한 작전수행은 많은 국제적 비난여론을 일게 했고, 101단은 공수대대에 흡수되고 말았다. 1967년 6일전쟁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되자 정규전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할 수 없음을 자각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대이스라엘 테러리즘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정보국 산하에 사렛트 매트칼이라는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1970년대까지 사렛트 매트칼의 대원은 200여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원선발은 육.해.공군의 우수한 복무기록을 가지고 있는 자에 한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훈련은 밀폐공간 전투, 낙하, 레펠 훈련 등 기타의 대테러리즘 특공대와 비슷하지만, 이스라엘을 둘러 싸고 있는 아랍국의 적진에 직접 투입되어 실전을 많이 쌓아 특공대원으로서의 자질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렛트 매트칼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국 비행기에 대한 납치에 대항하기 위해 항공기 보안요원(Sky Marshal)으로 모든 엘 알 여객기에 탑승하여 항공기 납치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아랍국의 대이스라엘 테러리즘 공격에 대한 보복작전에 투입되는 것도 사렛트 매트칼이다. 1968년 12월 PFLP에 의한 엘 알 항공기 납치에 대한 보복으로 40명의 사렛트 매트칼 정예 요원들이 베이루트 공항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여 13대의 비행기를 폭파하기도 했다.
사렛트 매트칼은 1972년 5월에 발생한 사베나(Sabena) 여객기 납치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여 최초로 대테러리즘 능력을 검증 받았다. 검은 구월단(Black September Organization) 소속의 테러리스트 4명이 사베나 여객기를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으로 공중납치하여, 탑승객 100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이스라엘 정부당국과 대치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된 371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석방을 요구했고,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적십자의 대표자를 협상 중개인으로 활용하여 시간을 벌었고, 그 동안에 구출작전을 준비했다. 항공기 정비 기술자로 위장한 사렛트 매트칼 요원들이 납치된 항공기에 은밀히 접근하여 테러리스트 2명을 사살하고 2명은 생포하는데 성공했다. 사렛트 매트칼의 구출작전은 최초의 성공적인 항공기 납치 구출작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질구출작전의 대명사로 알려진 1976년의 소말리아 엔테베 작전도 인질구조팀이 제35공수여단과 골라니 코만도 대원들의 합동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사렛트 매트칼이다.
3. 중남미 지역의 테러 대응조직
1) SEAL TEAM
해상(Sea), 항공(Air), 육상(Land)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진 SEAL은 1962년 1월 1일 케네디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창설된 미 해군의 최고 엘리트 특수부대이다. SEAL의 고유 업무는 해상, 항공, 육상의 입체적인 침투를 통해 적 상황을 관찰하고 작전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적의 해안기지나 항만시설 등을 파괴하는 것이다. 다른 미군의 특수부대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 참가하여 군수기지(Logistics Base) 폭파 및 고급정보 수집에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도 투입되어 미국의 외교정책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SEAL 팀이 순수한 군사업무의 수행에서 대테러리즘 활동을 시작한 것은 444일간이나 계속된 테헤란 미국 대사관 점거사건 이후 이다. 1979년에 발생한 테헤란 미국 대사관 사건의 진압과 인질구출 작전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의 운용에 문제점이 노정되고, 준비과정에서 헬리콥터 충돌로 인질구출작전이 수포로 돌아갔으며, 미국 정부는 테러리스트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드리는 합의각서에 서명하는 등 굴욕적인 수모를 당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SEAL 내에 1백명 규모의 SEAL-6를 창설하여 대테러리즘 능력을 보강했다. 특히, 선박납치, 해안의 주요시설물에 대한 공격 등의 해상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것이 주된 창설 목적이었다.
미 해군의 특수전사령부(Special Operation Command) 산하에 속해 있는 SEAL은 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제 1특수전단에 1,3,5 팀이, 대서양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제 2특수전단에 2,4,6,8 팀이 소속되어 있다. 이중 SEAL-6 는 델타포스와 함께 합동특수전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에 소속되어 있으며, 대원선발과 훈련은 혹독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SEAL-6의 대원은 SEAL 팀내에서만 선발하며, 서류심사를 거쳐 7주 동안의 체력검사 그리고 30주에 걸처 수중정찰, 스쿠버 다이빙, 해안상륙 및 파괴, 잠수정 훈련 등 각종 특수훈련을 받는다. SEAL-6는 우방국의 대해상 테러리즘 특공대의 능력향상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으며, 한국 해군내의 대해상 테러리즘 특공대와도 정기적인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2) DELTA FORCE
미국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인 델타포스는 특수전 장교 출신이며, 1960년대에 SAS에서 근무한 바 있는 차알스 베크위드(Charles Beckwith)에 의해 1977년 11월에 창설되었다. 델타포스가 출현하게 된 계기는 독일의 GSG-9의 모가뒤슈 인질구출 작전이었다. GSG-9이 성공적인 작전의 수행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자, 대테러리트 특공대의 필요성을 인식한 미국정부가 합동참모본부(Joint Chief of Stff)에게 대테러리즘 능력을 갖춘 부대의 창설을 명령함으로써 델타포스의 창설이 이루어졌다.
극소수의 인원으로 출발한 베크위드는 SAS의 대원 선발방법에 따라 대원들을 선발했다. 대부분 특수부대 대원들이 응시한 가운데 치러지는 예비 선발과정은 산악달리기, 18마일 속보 등 혹독한 체력검사 등이 포함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합격한 후보 대원들은 심리평가와 인터뷰를 통해 평가를 받았다. 예비과정에 지원한 30명중 7명만이 델타포스 대원이 되었다. 완전한 형태의 델타포스로 자리 잡기위해 필요한 병력의 선발은 레인저, 그린베레로 알려진 특전단 대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 졌고, 1978년 5월에 73명이 모든 선발과정을 통과했다. 이들 73명은 다시 19주간 동안 대테러리즘 작전에 필요한 모든 기술습득 훈련을 마쳤다.
창설 초기에는 1개의 작전대(Operational Squadron)만이 있었으나, 대원들의 선발이 완료되자 1개의 공격대가 추가적으로 편성되었다. 이들 공격대들의 훈련은 사격능력 향상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야간사격을 포함해 매일 4시간, 매주 5일 간의 사격훈련이 진행된다. 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설에서 모의 타겟트를 이용해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여 정밀하고 과학적인 사격훈련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모든 인질납치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호러 하우스(House of Horror)라고 불리는 특수 모의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항공기 납치가 위협으로 다가서자 연방항공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FAA)이 보잉 727기를 제공해 델타포스가 훈련에 이용해 왔으며, 실제로 미국 전역의 공항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모든 종류의 민간 항공기에 대한 구조, 특징 등을 파악하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인적사항, 공격형태, 무기 등 대테러리즘에 필요한 정보는 FBI, CIA 등으로 부터 직접 제공받아 활용하고 있다.
한편, 델타포스의 대원들은 유럽 및 기타의 외국 주요 도시를 방문하여 예상되는 공격목표에 대한 정찰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요 도시에 대한 방문을 통해 작전에 투입될 수도 있는 외국의 생소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델타포스는 SAS, GSG-9, GIGN, 그리고 이스라엘의 샤렛트 매트칼 등과 상호 교환훈련을 하고 있으며, 이들 특공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1979년 테헤란 미국 대사관이 점거되었을 당시 인질구출작전 실시에 앞서 이들 특공대장이 참관하여 모의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4. 기타
1) 한국경찰특공대
전세계적으로 테러리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한국 정부도 테러리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테러리즘 지침을 마련하고, 이에 근거하여 테러리즘 사건에 대비하여 경찰내에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를 1983년에 창설했다.
한국의 경찰특공대는 최근까지 경찰청에 하나의 특공대만이 존재하였으나, 한국과 일본에서 분산 개최되는 2002년 월드컵을 대비하여 전남, 부산 등 지방경찰청에도 경찰 특공대가 창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지방 경찰청의 특공대는 관할 지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의 해결을 책임지고 있는데, 이는 신속한 출동과 사건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찰청의 특공대는 약 120여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방 경찰청의 특공대는 약 25명 내외의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특공대는 예상되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주로 대테러리즘 업무를 수행하며, 아울러 주요 인사에 대한 빈틈없는 경호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날로 심각해지는 강력 범죄 사건의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인질 사건 등에도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여 사건을 조기에 해결하기도 했다.
경찰 특공대의 대원들은 주로 특전사, 해병 수색대, 해군 수중폭파팀 출신이 대부분이며, 사격과 무술 분야 등에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우수한 자질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적으로 각종 훈련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찰특공대는 세계 유수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와 정기적인 훈련교류를 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한국 경찰특공대의 우수성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실제로 경찰특공대의 대원들이 미 CIA 교육 훈련에서 우등으로 수료를 하고, 서구의 특공대원들과의 합동 교육에서도 항상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Ⅴ. 세계 각국의 주요 테러사건 분석
1. 미국- 알 카에다의 9․11테러사건(오사마 빈라덴)
1) 사건개요
지난 9월 11일 8시경 미국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로스앤젤레스 행 아메리칸 항공(AA) 소속 767 여객기가 아랍계로 보이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다. 항공기 납치 후 조종실을 장악한 테러범들은 조종사에게 뉴욕으로 향하도록 협박했고, 8시 40분 경 조종사를 위협하고 있던 테러리스트는 납치한 항공기가 뉴욕에 다다르자 조종사를 살해하고 직접 조종간을 잡고 비행을 시작했다. 잠시 후 92명을 태운 여객기는 110층 짜리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건물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아메리칸 항공 소속 여객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장악됐을 무렵인 오전 8시14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또 한 대의 767 여객기가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이륙했다. 오전 9시5분, 승객과 승무원 등 6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항공(UA) 소속의 이 여객기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장악돼 빠른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을 들이받았다. 두 건물은 각각 오전 9시50분과 10시29분 차례로 무너져 잿더미로 변했다.
한편, 오전 9시경, 워싱턴 DC의 델레스 국제공항에서 승객 64명과 함께 이륙한 로스앤젤레스 행 아메리칸 항공 소속의 보잉 757 여객기가 또 다시 공중 납치되었다. 조종실을 장악한 테러리스트들은 여객기를 몰아 9시 40분경 국방부 청사 서쪽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뉴저지주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오전 8시경 45명의 승객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가 실종된 UA 소속 767 여객기가 납치되어 피츠버그시 남동쪽 130㎞에 있는 서머싯 카운티 공항 북쪽에 추락해 폭발했다.
2) 사건의 특징
미국 경제의 심장부인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과 안보의 요체인 국방부 등에 대한 동시 다발적 테러리즘 공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첫째, 무고한 승객이 탄 민간 항공기를 납치하여 상징성이 매우 높은 건물을 파괴하고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사용한 수법이 동원된 최초의 항공 테러리즘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항공 테러리즘은 항공기 납치, 항공기 공중폭파, 공항과 항공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 항공기 이용객에 대한 무장 공격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둘째, 비록 적국의 항공기나 미사일이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허를 찌른 공격이었다. 미국 본토가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 국민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셋째, 테러리즘이 미국의 정치, 군사, 경제의 중추인 워싱턴과 뉴욕에 동시다발적으로 자행되어 미국 국가 기능을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마비시키고 수 천명의 사망자를 낸 테러리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넷째, 납치된 여객기 네 대 중 세 대가 건물 충돌에 성공할 정도로 범행 계획이 치밀했다는 것이다. 또 건물과 충돌할 때 최대한의 폭발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화염성이 뛰어난 제트 연료가 가장 많이 실린 대륙 횡단 장거리 비행기만 골라 네 대를 납치한 것도 이번 공격의 계획의 치밀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섯째, 이 번 사건의 경우 과거의 테러리즘 사건과는 달리 요구 조건도 없고, 사건의 책임을 주장하는 단체도 없었다. 과거의 아일랜드 공화군(IRA), 바스크 조국해방(ETA) 등과 같은 테러리스트 단체들은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선택적이며 차별적으로 테러리즘을 행해왔다. 이들 단체들은 자신들의 대의 명분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테러리즘을 자행했다. 통상적으로 테러리즘 직후 성명을 통해 그들이 테러리즘을 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 과정을 밝혔다. 그들의 테러리즘 대상은 상징성을 띤 군 시설이나, 대사관, 항공사 등 그들의 적대감을 대표하는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산물을 이용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이 번 사건은 국가보안국(National Security Agency),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 등 세계 일류를 자랑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이런 대규모 테러행위 음모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 테러범들은 암호와 특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특정 사이트에 접근하여 가상 공간을 그들의 전략회의실로 사용하고, 전자우편을 연락수단으로 사용하여 사전 노출이 되지 않았다. 사실상 전 세계에 2억 개 이상 존재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모두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보화 시대의 대테러리즘 대응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이 번 사건은 피해 규모로 보면 전쟁 수준이며, 사건의 치밀성과 계획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점등에 비추어볼 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이다. 뉴 테러리즘은 과거의 테러리즘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테러리즘(Old Terrorism)이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 의사소통 행위 측면이 강했다고 하면, 뉴 테러리즘(New Terrorism)은 전쟁의 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적의 궤멸이 목적이므로 승리 이외에 요구 조건이 있을 수 없으며, 상대방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미국의 심장부에 사상 최악의 공격을 감행한 테러범들은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데 성공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3) 미국 대 참사의 배경
미국에서 발생한 동시 다발적 테러리즘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 참사였다. 정확한 최종 수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6천 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사망한 2,300명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희생자 수치이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초래한 사건은 과연 막을 수 없었는가? 이 번 참사는 어찌 보면 예견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무역센터는 1993년에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바 있었다. 또 다시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8년의 세월이 필요했을 뿐이다.
미국 대 참사는 막을 수가 있었고, 막지 못했더라도 피해의 폭을 줄일 수는 있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정부가 본토의 테러리즘 위협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사전 예방 노력을 게을리 한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년(1990-2000) 동안 미국을 포함하여 북미지역에서 발생한 테러리즘 건수는 총 20건으로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치이다. 아울러, 이들 20건 중에 미 본토에서 발생한 사건은 1993년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 폭파사건이었다. 그리고, 미 본토에서 미국 국적의 항공기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 당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본토에 대한 테러리즘 위협을 간과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신속한 위기관리 체제의 부재가 대 참사를 불렀다.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지만, 유사시 테러리즘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효과적이고 신속한 위기관리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세계무역센터 공격에 이용된 항공기가 8시 14분과 9시5분에 납치되었고,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것은 9시 50분과 10시 29분이었다. 한편, 미국 국방부 공격에 이용된 비행기는 9시경에 이륙하여 곧 바로 납치되었고, 국방부로 돌진한 것은 9시 40분 경 이었다. 납치 후 공격까지 최소 30분에서 1시간 30분 가량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항공기 납치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 한 즉시 납치된 항공기의 항로를 정밀추적하고, 동시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것이 기본적인 조치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항공기 납치를 전통적인 항공기 납치 유형으로 잘못 판단하고 신속한 위기관리체계의 가동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항공기 납치 사건의 경우 특정 지역에 강제로 착륙하여 납치범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선전하거나,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금품을 강탈하거나, 동료 테러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당국에서는 9.11 사건을 그러한 평범한 사건으로 간주하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납치범들이 납치한 항공기를 무기로 삼아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로 돌진하는 자살 공격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만약, 위기관리체제가 신속하게 이루어져 전투기가 출동되었다면 승객과 승무원의 희생은 불가피했겠지만 극단적인 방법으로 충돌 직전에라도 격추하여 대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신속한 위기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세계 경제의 상징인 세계 무역 센터의 공격과 붕괴로 이어졌고, 미군 최고의 통수본부인 국방부가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국방부는 미군의 모든 지휘체계와 우주 통제에 이르기까지 미국 국방정책과 대외 군사 안보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미국 군사력의 상징이다. 동시에 미국의 육해공군과 해병대 지휘 중추가 있는 곳이며,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15,000개의 핵탄두를 운영하는 최종적인 지휘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전 세계 미군의 사령탑으로 난공불락의 방위능력을 자랑하던 국방부가 공격당하고 마는 결과로 이어졌다. 뉴욕에 이어 워싱턴에도 테러의 위험이 감지되면서, 곧바로 F15 요격기가 출동했지만 납치된 여객기보다 3분 늦게 도착함으로써 국방부 피습을 막아내지 못했다.
셋째, 모두 20명 내외로 추측되는 범인들이 네 대의 여객기를 거의 동시에 납치하는 데 성공할 정도로 미국 공항과 기내의 보안이 허술했던 항공 보안체계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항공기 납치를 포함한 항공테러리즘의 방지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항 보안이다. 1989년 테러범이 폭탄을 설치해 팬암 항공기가 폭발했을 때도, 1996년 TWA 비행기가 롱아일랜드 상공에서 공중 폭발했을 때 갖가지 보안 대책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은 참사의 악몽이 일반인의 뇌리에서 사라질 때쯤이면 흐지부지되었다. 검색 강화에 따른 탑승객 불편과 새 검색 장비를 마련하는 데 드는 엄청난 예산을 이유로 관련 항공업계가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국의 의지도 확고하지 못했다. 이번에 테러범들이 비행기 4대를 공중 납치해 사상 최악의 테러 행위를 자행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보안 허점과 직결되어 있다. 특히 기내 칼 반입 허용, 조종실 출입문 허술, 검색요원들의 소홀한 소지 물품에 대한 검사 등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보안상의 허점을 테러범들이 여지없이 활용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물론 미국 항공당국은 폭발물이나 총기 등 위험물을 검색할 수 있는 최신예 금속 탐지기를 배치하는 등 나름으로 보안 강화 조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재래식 금속 탐지기는 셈텍스(Semtex)와 같은 플라스틱 폭탄이나 무기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임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넷째, 체계적인 대테러리즘 정책의 부재에서 기인했다. 대테러 정책의 시작은 테러리즘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대테러리즘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테러리즘의 공격 유형 변천과 전개과정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테러리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모든 유형의 테러리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전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핵무기 등과 같은 고(高) 위협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이번처럼 납치된 비행기를 통한 테러 행위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으며, 이러한 허점을 테러리스트들이 악용한 것이다.
2. 한국-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사건(김현희)
<1987.11.29> 북한이 파견한 2명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1988년 인류의 대제전인 서울 올림픽 게임을 저지하기 위해 아부다비브를 출발해 방콕을 거쳐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를 공중 폭파함. 동 사건으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테러리스트중 한명인 김승일은 자살했고 레바논에서 체포된 김현희는 한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에 회부됨. 사형선고를 받은 김현희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사면됨(북한의 공권력이 직접적으로 개입된 국가 테러리즘의 전형적인 사건)
3. 페루-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 인질극(투팍 아마루 혁명운동)
페루의 좌익 성향 테러리스트 단체인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Tupac Amaru Revolutionary Movement) 소속 테러리스트 23명이 웨이터로 위장하고 아오키 모리히사 페루 주재 일본대사 초청으로 일왕 생일 기념 리셉션이 열리고 있던 일본 대사관저에 폭탄 3발을 터트리며 난입, 관저를 완전히 장악하고 페루의 외무부 장관, 국회의장 그리고 한국의 이원형 주 페루대사을 포함한 각국 외교사절 등 200여명을 인질로 잡음. 자동화기와 수류탄으로 중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은 관저 장악후 후지모리 대통령의 모친.여동생을 포함한 여성들과 노인등 1백70명은 석방함. 테러리스트들은 일본이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을 지원하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저를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그들 단체의 지도자인 빅토르 폴라이를 비롯 투옥중인 동료 전원을 석방할 것을 요구함.테러리스트들은 경찰과 대치과정에서 인질들을 추가적으로 석방하고 현재(1997년 4월 25일)까지 72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페루 정부와 대치중에 있음(세계 최대의 외교관 인질억류 사건으로 기록됨)
4.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 자폭 사건(헤즈볼라)
<1992.3.17> 헤즈볼라 소속의 자살 특공대가 트럭에 폭탄을 가득 싣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돌진하여 29명이 사망하고 242명이 부상당함. 헤즈볼라는 그들의 지도자인 세이크 무사이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공격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짐
Ⅵ. 테러의 예방
1. 사전적 예방
1) 테러리즘의 발생원인이 되고 있는 객관적인 환경요소의 제거
테러리즘의 발생근원이 되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 비탄, 좌절, 억압, 불신, 경제적 빈부격차에서 초래되는 상대적 박탈감, 불안심리, 실업, 빈곤 등 정치․사회․경제․심리적인 면에서의 문제점들을 제거하거나 점차 개선해 나감으로써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을 줄여 테러리즘에 선호하는 계층의 생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2) 테러리즘 조직의 근거지 섬멸 및 무기 지원 유입 등의 봉쇄
테러리즘 조직 및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하여 제거하거나 구금하며 테러리즘의 조직 안식처 또는 도피처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필수 적이다.
3) 테러범들의 자발적인 범죄 포기 유도
주유 시설 및 인물에 대한 보안․경비를 강화하고 교육을 실시하여 테러 용의자들이 스스로 범행의 불확실성을 갖게 함으로써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4) 절대 불양보의 원칙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을 확고히 해야한다. 즉, 테러리즘에 대한 강력한 보복공격을 단행하며 테러리즘을 자행한 조직이나 개인에 대해서 국제적 비난 여론의 응징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킨다.
Ⅶ. 테러의 미래 양상 전망
인류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테러는 시대적 상황과 국제환경에 따라서 여러 가지 유형으로 변화하였고, 앞으로도 다른 모습으로 인류앞에 다가올 것이다. 그 대표적 테러의 미래를 예측해 보면, 첫째, 현재까지 전통적, 습관적으로 자행된 올드테러다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차별, 무제한적으로 자행하는 신형테러가 증가 할 것이며 둘째 국가기반 산업 등 첨단정보 시스템 기능을 방해하거나 마비시켜 국가 전체를 재앙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사이버테러가 증가할 것이다. 셋째, 세계 각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 기업인에게 테러를 자행하여 국가간, 선린 우호 관계를 훼손하고,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테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넷째, 문명을 거부한 미국 유명 대학의 교수였던 “테오도르 카진스키”가 자행한 유나바버(Unabomber)형 테러가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전종식에 따른 구소련 및 동구권과 한국 통일 후 북한의 군 전투력이 테러조직에 유입된다면 인류에게 미치는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생각되며 그에 따른 세계적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부 록> 테러의 연도별 정리집
<1920.11.21> 아일랜드 공화군(Irish Republican Army-IRA)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 더블린시 전역에 걸쳐서 11명의 영국 정보요원을 색출하여 암살함
<1931.1.21> 무장한 페루의 혁명분자들이 D. 리카드스가 단독으로 비행하는 우편물 수송 비행기인 팬암(Pan Am) Trimotor 기를 납치함. (세계 최초의 항공기 납치사건)
<1946.7.22> 유태인 극우 테러리스트 단체인 Irgun Zvai Leumi(IRGUN) 대원들이 영국군의 본부로 사용하고 있던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1947.7.25> 루마니아 군장교 3명이 민간 항공기를 터키로 납치하여 정치적 망명을 요구함.
<1948.7.16> 마카오를 출발해 홍콩을 향하던 캐세이 패시픽 항공사의 여객기가 무장한 중국인 4명에 의해 납치됨.(아시아 최초의 항공기 납치사건이며, 납치중에 추락한 최초의 사건)
<1949.5.7> 필리핀 항공사(PAL) 항공기에 탑승한 남편을 살해하여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2명을 고용해 폭탄을 기내에 설치하여 비행중 공중폭파(최초의 항공기 공중폭파 사건)
<1952.4.29> 에어 프랑스 소속 민간 항공기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베를린에 비상착륙함. (주권국가에 의해 자행된 민간 항공기에 대한 최초의 미사일 공격)
<1958.2.16> 승객 28명과 미군장교 1명 및 3명의 승무원을 태운 대한민국항공사(KNA) 항공기를 북한이 공중 납치.(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항공기 납치사건)
<1961.1.23> 포루투갈 민족독립운동 소속의 테러리스트 24명이 카리비아 해상에서 2만 2천톤급 산타 마리하(Santa Maria)호를 납치함. (전후 최초의 해상납치 사건)
<1961.5.1>미국 내셔널 항공사 소속 항공기가 권총과 칼로 무장한 안투리오 라미레즈 오티즈(Antulio Ramirez Ortiz)에 의해서 쿠바의 하바나로 납치.(최초의 미국 항공기 납치 사건)
<1966.9.28> 아리헨티나 민족주의 과격파 엘 콘도르(El Condor) 소속 20명이 아리헨티나 항공기를 납치하여 영국이 점령하고 있는 포클랜드 섬에 강제착륙 시킴.
<1967.7.22> 승객과 승무원 45명이 탑승한채 로마를 이륙하여 아테네로 운항하던 이스라엘의 엘 알(EL AL) 보잉 707기를 중무장한 5명의 PFLP 테러리스트들이 공중 납치하여 알제리 공항에 강제 착륙시킴.(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단체에 의한 최초의 항공기 납치사건)
<1968.8.28> 과테말라 주재 미국 대사인 존 메인(John G. Mein)이 반란무장군(Rebel Armed Forces)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암살당함.(최초의 미국 대사 암살 사건)
<1968.12.26> 자동소총과 슈류탄으로 무장한 PFLP 테러리스트 2명이 엘 알 항공기를 향해 무차별 사격과 슈류탄을 투척함. (최초의 민간 항공기에 대한 무장공격 사건)
<1969.8.29> 로스엔젤레스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승객 및 승무원 113명과 함께 아드리아해 상공에서 PFLP 소속 남.여 2인조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됨.
<1969.12.11>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소속 YS-11기가 승객 47명을 태우고 대관령 상공을 비행하던 중 고정 간첩 조영희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됨.
<1970.3.31> 도쿄를 이륙하여 후쿠오카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소속 항공기가 사무라이 검, 권총, 폭탄으로 무장한 9명의 적군파 테러리스트에 의해 공중 납치됨.
<1970.3.31> 과테말라 주재 서독 대사인 칼 스프레티가 대사관과 대사관저 사이에서 반란무장군(FAR)에 의해 납치됨.
<1970.6.9> PFLP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요르단의 암만에 있는 필라델피아 호텔과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동시에 점거하고 외국인 인질 60여명을 억류하고 요르단 당국과 대치함.
<1970.9.6> 무장한 PFLP의 테러리스트들이 유럽 항공사 소속의 3대의 항공기를 동시에 납치하여 요르단의 폐쇄된채 방치되어 온 도우슨 필드라는 공군기지에 강제 착륙시키고, 서독, 영국, 스위스에 투옥되어 있는 PFLP의 테러리스트들의 석방을 요구함.
<1971.11.24> 워싱턴에서 포트랜드를 거쳐 시애틀로 향하는 노스웨스트 항공사 소속의 항공기가 포트랜드에서 탑승한 D.B. Cooper 에 의해 납치됨.
<1972.5.9> 탑승객 100명을 싣고 브뤼셀에서 텔 아비브로 비행하던 벨기에의 사베나 항공기를 무장한 4명의 검은 구월단 테러리스트들이 납치.(최초의 성공적인 항공기 납치 구출작전)
<1972.5.30> 에어 프랑스 항공기편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받기 위해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승객들을 향해, 3명의 일본 적군파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PFLP의 사주에 의해 슈류탄과 자동소총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해 28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당함.
<1972.6.15> 홍콩의 캐세이 패시픽 항공사 소속 항공기가 남 베트남 상공에서 기내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공중폭파됨. 승객 81명 전원 사망
<1972.8.16> 승객 148명과 함께 로마에서 텔 아비브로 비행하던 엘 알 항공기 수화물 칸에서 2백 파운드의 폭탄이 폭발했으나, 이스라엘이 항공기 공중폭파 공격에 대비하여 수화물 칸을 폭발물의 폭발에 견딜 수 있는 특수재질을 사용하여 보호했기 때문에 무사히 로마 공항으로 되돌아와 착륙함
<1972.7.21> 북아일랜드 공화군(IRA)에 의해 8분 간격으로 26개의 폭탄이 북아일랜드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폭발되어 11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부상당하는 사건 발생. 사건의 발생이 금요일이어서 "피의 금요일(Bloody Friday) 사건"로 불림
<1972.9.5> 검은 구월단(Black September Organization)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이 AK-47로 무장하고 올림픽 참가 선수 복장으로 변장하고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하여 반항하는 2명의 이스라엘 육상선수를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서독 정부와 대치함.
<1972.12.28> 4명의 검은 구월단(BSO) 테러리스트들이 파티가 열리고 있는 방콕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초대손님으로 가장한 채 아무런 제지없이 잠입하여 대사관을 점거하고 파티에 참석한 인사들을 인질로 억류하고 타이 정부군과 대치함.
<1973.4.29> 아일랜드 공화군(IRA)이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비밀리에 아일랜드로 밀반입하려다 영국 비밀정보국의 정보망에 걸려 테러리스트들은 체포되고 무기와 탄약은 압수당하는 사건 발생.
<1973.8.5> 검은 구월단 소속의 테러리스트 2명이 아테네 공항에서 뉴욕행 TWA기 탑승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을 향해 자동소총으로 무차별 사격.
<1973.9.5>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소련제 SA-7 지대공 미사일로 로마 공항에서 이스라엘 항공기를 격추하려다 검거된 사건이 발생하여 새로운 유형의 항공 테러리즘 등장 예견.
<1973.9.28> 팔레스타인 혁명 독수리로 자처하는 두명의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자동소총과 슈류탄으로 무장하고 3명의 유태인 및 한 명의 오스트리아 세관원을 볼모로 하여 모스코에서 비엔나로 향하는 고속열차를 납치함.
<1973.12.17> 로마의 레오나드 다빈치 공항에 도착한 아랍인 승객의 짐속에서 세관원이 총기를 발견한 직후, 다른 4명의 아랍 민족주의 청년기구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자동소총을 꺼내들고 승객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함.
<1973.12.20> 예배를 마치고 공관으로 향하던 루이스 카레로 브랑코 스페인 수상이 6명의 바스크 조국해방(ETA)소속 테러리스트들이 도로에 설치한 강력한 폭탄의 폭발로 암살당함.
<1974.5.15> 이스라엘 독립기념일(5월 15일)에 중무장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두명의 아랍여성과 이스라엘 3가족을 살해.
<1974.9.13> 소총과 M-26 수류탄으로 무장한 3명의 일본 적군파 테러리스트들이 새벽 4시 헤이그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 침입하여 대사 자크 세나드를 포함한 11명의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억류함.
<1975.1.13> 두명의 테러리스트들이 136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몬트리올을 향해 파리 오를리 공항을 이륙하기 직전에 있는 엘 알 항공사 소속의 여객기를 향해 소련제 RPG-7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함.
<1975.1.27> 서베를린 시장 선거를 3일 앞두고 베를린 기독교민주당 연합(Berlin Christain Democratic Union)의 의장인 피터 로렌즈(Peter Lorenz)를 과격파 6.2 운동(Second of June Movement) 소속의 테러리스트 3명이 납치함.
<1975.8.4> 미국 포드 대통령과 일본 수상 다케오 미키가 워싱턴에서 회담을 가지기로 한 하루전에 주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프 미국 영사관에 4명의 일본적군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이 슈류탄과 소총으로 무장하고 침입하여 영사 로버트 스테빈스(Robert Stebbins)를 포함한 53명을 인질로 잡고 말레이지아 경찰과 대치함.
<1975.12.2> 남 모루칸 해방 청년기구 소속 7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자동소총과 사냥용 총으로 무장한채 바이렌에서 열차를 납치함. (최초의 열차납치 테러리즘 사건)
<1975.12.21> 카를로스로 알려진 라미네즈 산체스가 이끄는 6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중무장하고 비엔나에서 열리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장에 침입하여 4명을 사살하고, 회의에 참석중인 11명의 OPEC 회원국의 석유장관을 포함한 70명의 인질을 잡고 오스트리아 정부당국과 대치함.
<1976.6.27> 텔 아비브에서 파리를 비행하는 에어 프랑스 소속 항공기가 조지 하바시가 이끄는 PFLP와 독일의 RAF 소속 8명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아테네 이륙직후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항공기와 함께 납치됨.
<1976.10.6> 자마이카에서 쿠바로 향하던 쿠바 항공기 DC-8기가 공중에서 폭발하여 바다에 추락하여, 탑승객 73명 전원이 사망함.
<1977.5.23-6.11> 권총과 슈류탄으로 무장한 남 모루칸 해방 청년기구(Free South Moluccan Youth Organization) 소속의 테러리스트 9명이 네덜란드의 아센과 그로링겐을 왕복하는 통근열차를 납치하고 80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네덜란드 정부와 대치함.
<1977.9.5> 독일 적군파 테러리스트들이 서독 실업계의 거물로 서독 경영자협회 회장과 서독 공업연맹의 회장을 겸하고 있는 한스 마틴 슐라이어를 납치함.
<1977.9.28> 슈루탄, 소총, 플라스틱 폭발물로 무장한 5명의 일본적군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이 156명이 탑승한 일본항공사 소속의 여객기를 봄베이에서 공중납치하여 방글라데시 다카에 강제로 착륙시킴.
<1977 10.13> 무장한 4명의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82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을 싣고 마조르카에서 프랑크푸르트를 비행하는 독일의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납치함.
<1978.2.19>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2명이 키프러스의 니코시아에서 열린 한 회의장에 침입하여 50명을 인질로 잡고, 이어 키프러스 항공사 소속의 DC-8 여객기에 탑승해 있는 승객과 승무원 15명을 추가 인질로 잡아 라르나카 공항에 착륙함.
<1978.3.16> 소련제 및 체코제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이태리의 붉은 여단(Red Brigades) 소속 12명의 테러리스트들이 5명의 경호원을 살해하고 유력한 정치가로 5차례나 수상을 지낸 바 있는 알도 모로(Aldo Moro)를 납치함.
<1978.4.21> 승객 97명과 승무원 13명을 싣고 파리에서 앵커리지로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 747기가 실수로 소련 영공을 침입하자 소련 전투기가 미사일 공격을 가함.
<1979.11.4-1981.1.20> 무장한 이란의 과격 학생들이 테헤란 중심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100명을 인질로 삼음. 무려 444일간 대치하는 최장기 점거 및 인질억류 사건은 이란의 배후조종으로 이루어짐.
<1979.11.20> 이른 아침 전세계에서 몰려든 회교도의 성지 순례자 4만여명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성스러운 사원으로 알려진 '그랜드 모스크(Grand Mosque)'에 운집하여 예배를 보고 있는 순간, 중무장한 2백여명의 회교원리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이 사원에 침입하여 회교도의 이만(Imam-회교의 최고위 성직자로 카톨릭의 교황에 비유됨) 한명을 사살하고 사원을 점거함.
<1980.4.30> 무장한 아라비스탄 해방 민주 혁명전선 소속 5명의 테러리스트가 런던주재 이란 대사관을 점거한 후 대사관 직원과 영국인 등 26명을 인질로 억류한 채 6일 동안 영국 정부와 대치함.
<1980.8.2> 아침 출근을 위해 시민들로 붐비는 이태리 북부에 있는 보로그나 역에서 무장혁명핵단(Armed Revolutionary Nuclei)이 설치한 100파운드의 대형 폭탄이 폭발하여 84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부상당함.
<1982.12.6> 아일랜드 민족해방군(Irish National Liberation Army)의 테러리스트들이 북아일랜드의 발리켈리에 있는 '드라핀 웰'이라는 술집에 폭탄공격을 자행하여 17명이 사망하고 66명이 부상을 당함.
<1983.5.5> 승객 및 승무원 105명을 태운 중국민항 소속 항공기가 중국인 국적을 가진 6명에 의해 공중납치 되어 한국의 춘천 비행장에 불시착한 사건발생.
<1983.8.31> 승객과 승무원 269명을 싣고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기가 실수로 소련영공을 침입하자 소련은 전투기 미사일로 격추하여 탑승객 전원이 사망함.
<1983.10.9> 북한의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의 테러리스트 3명이 원거리 조종 폭탄으로 서남아. 대양주 6개국 방문 중 첫번째 국가인 버마를 방문중인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기도함.
<1983.10.23> 베이루트에 있는 미해병대 사령부에 대한 헤즈볼라의 자살 폭탄공격으로 241명의 군인이 사망함.
<1983.12.12> 쿠웨이트 주재 미국 대사관, 프랑스 대사관, 쿠웨이트 국제공항, 전기통제센터 등을 포함한 6곳의 주시설에서 강력한 폭탄이 폭발하여 6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당함.
<1984.4.12> 무장한 4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텔 아비브에서 애쉬케론 간을 왕복하는 버스를 가자지구(Gaza Strip)로 납치함.
<1984.10.12>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던 브링턴의 그랜드 호텔에서 폭탄공격이 발생하여 국회의원인 안토니 베리 경을 포함한 5명이 사망함.
<1985.1.21> 북아일랜드 얼스터에 위치한 경찰서에 아일랜드 공화군이 보통 트럭의 뒷칸에 설치한 발사대를 이용해 박격포 공격을 자행해 9명의 경찰관이 사망함
<1985.6.23> 몬트리올과 델리간을 운항하는 에어 인디아 항공사 소속 항공기가 3만 피트 상공에서 폭탄이 폭발하여 승객과 승무원 329명 전원이 사망하여 항공교통 역사상 최악의 항공 테러리즘 사고로 기록됨.
<1985.10.7> 지중해를 순항하는 초호화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Archille Lauro)호가 4명의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alestinian Liberation Front) 소속 테러리스트에 의해 해상 납치됨.
<1985.11.23> 지중해 상공에서 98명의 승객 및 승무원이 탑승한 이집트 에어 소속의 보잉 737기가 납치됨.
<1985.12.27> 아부 니달 소속 4명의 테러리스트들이 로마 공항에 중무장하고 잠입하여 탑승수속을 받고 있는 항공기 이용객을 향해 슈류탄을 투척하고 자동소총으로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여 15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한 사건발생.
<1986.4.5> 서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장병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서 베를린의 라 벨레(La Belle)라는 디스코 클럽에서 새벽 01시에 강력한 폭탄이 폭발.
<1986.9.5> 인도의 봄베이를 출발하여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의 카라치 공항에 팬암 항공사 소속의 보잉 747 여객기가 도착하여 승객들이 내리고 새로운 승객들이 탑승하는 순간에 공항의 보안요원들의 복장을 한 4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아무런 제지없이 접근하여 지상에서 팬암 항공기를 납치함.
<1987.10.30> 프랑스 해군은 프랑스 영해인 로스코프에서 150톤의 무기와 탄약을 싣고 북아일랜드로 향하던 무기 밀반입선 한척을 체포함.
<1987.11.29> 북한이 파견한 2명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1988년 인류의 대제전인 서울 올림픽 게임을 저지하기 위해 대한항공 858기를 공중 폭파함.(북한의 공권력이 직접적으로 개입된 국가 테러리즘의 전형적인 사건)
<1988.12.21> 독일에서 이륙하여 런던을 거쳐 뉴욕을 향해 비행하던 팬암 항공사 소속 보잉 747기가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장착한 폭탄이 폭발하여 탑승객 259명이 사망하고, 로커비 거주자 11명도 사망함.
<1989.9.19> 프랑스의 UTA 항공사 소속의 DC-10기가 나이제리아 상공에서 공중폭발하여 탑승객 171명이 사망함.
<1992.3.17> 헤즈볼라 소속의 자살 특공대가 트럭에 폭탄을 가득 싣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돌진.
<1992.8.26> 알제리의 부메디엔 공항에서 강력한 폭탄이 폭발하여 12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당함.
<1993.2.11> 승객 및 승무원 105명을 싣고 프랑크푸루트를 이륙하여 카이로로 향하던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 소속의 여객기가 오스트리아 상공에서 권총을 소지한 모로코 거주 에디오피아인 학생인 네비우 제올데 데메커에 의해 미국으로 납치됨.
<1993.2.27> 뉴욕의 맨하탄 소재 세계무역센타 쌍동이 빌딩 지하 2층 주차장에서 폭발물이 폭발하여 인근 '포트 오소리티 트랜스 허드슨 라인' 지하철역의 천장이 붕괴됨.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5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당함.
<1993.5.1> 스리랑카의 프레마다사 대통령이 콜롬보 시내 갈페이스 광장에서 노동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진입하는 순간 폭탄조끼를 착용하고 자전거를 탄 테러리스트 한명이 대통령을 향해 돌진하여 자폭함.
<1993.7.4> 모잠비크 수도 마푸트를 이륙하여 스와지랜드의 만지니로 향하던 왕립 스와지랜드 항공사의 여객기가 AK-47 소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에 의해 공중납치당해 호주로 향할 것을 요구당함.(최초의 스와지랜드 항공기 납치사건)
<1993.8.15> 승객 128명과 7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네덜란드 KLM 항공사의 여객기가 항공기를 공중폭파 하겠다고 위협하는 이집트의 과격회교도에 의해 납치됨.
<1993.9.16> 콜롬비아 민족해방군(National Liberation Army)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이 콜롬비아 북부 세자르주에서 원유수송관을 폭파하여 22만 배럴의 수출용 원유 송유가 중단되는 사건발생
<1994.2.25> 유태인 과격파 한명이 이스라엘 헤브론에 있는 회교사원에 무장한채 침입하여 예배중이던 팔레스타인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58명이 사망하고 170명이 부상당함
<1994.4.6>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 뱅크 아풀라시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팔레스타인 회교도로 추정되는 19세의 소년이 운전하고 있던 폭탄적재 차량이 폭발.
<1994.7.18> 아리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위치한 유태인 문화센타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96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 당함.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추정됨.
<1994.10.19> 이스라엘의 최대도시 텔 아비브 중심가에서 자살 특공대의 버스 폭탄공격으로 22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 사건직후 과격 이슬람 테러리스트 단체인 하마스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
<1994.10.23>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최된 정치집회중 강력한 폭탄공격으로 야당의 대통령 후보 가미니 디사나야케 등 57명이 사망하고 300여명 부상. 분리주의 타밀족 테러리스트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
<1994.12.24> 알제리의 우아리 부메디엔느 공항에서 에어 프랑스 소속 항공기가 알제리 회교원리주의 단체에 의해 납치됨.
<1995.3.20> 일본 도쿄 중심부의 지하철에서 독가스인 사린가스 공격 사건이 발생하여 12명이 사망하고 5,500여명이 중.경상을 당함.
<1995.4.19> 극우파 경향의 티모시 멕베이가 미국의 남서부 오클라호마시 연방청사 건물에 500Kg에 달하는 폭탄을 설치한 후 폭파.
<1995.6.20> 콜롬비아 제2의 도시인 메데인시에서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는 산 안토니오 공원에서 10kg의 다이나마이트가 폭발.
<1995.7.25> 프랑스 파리 시내 한 복판인 생 미셸의 도시고속전철 지하역에서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이 터져 7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함
<1995.11.4> 이스라엘의 수상 이츠하크 라빈이 중동평화 지지 집회가 열리고 있던 텔 아비브 시청 앞 광장에서 연설을 마치고 승용차에 오르는 순간 과격파 엘 알 소속의 이갈 아미르가 쏜 3발의 총탄을 맞아 사망
<1995.11.13>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의 국가 수비대 건물앞에서 차량폭탄 공격이 발생하여 미군 5명과 인도군 2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당함.
<1996.6.25> 사우디 아라비아의 다란에 위치한 미군 기지내 호바르 주거단지에 두명의 테러리스트가 폭탄이 탑재된 유조차를 주차시킨 다음 승용차로 도주한 직후 유조차가 폭발.
<1996.7.18> 승객과 승무원 229명을 태우고 미국의 케네디 국제공항을 이륙해 파리로 향하던 TWA항공사 소속 보잉 747기가 이륙 18분후 공중에서 폭발.
<1996.7.20> 스페인 북동부 타라고나지역에서 ETA의 소행으로 보이는 3건의 연쇄 폭탄공격 사건이 발생하여 30여명이 부상당함.
<1996.7.27> 올림픽이 개최중인 미국 아틀란타 시내 중심가의 올림픽 1백주년 기념공원에서 새벽 1시경 폭탄이 폭발하여 2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이 부상당함.
<1996.11.23> 승객과 승무원 175명을 태우고 아디스 아바스를 출발해 케냐의 나이로비로 향하던 이디오피아 항공기가 납치.(항공기납치중 최대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로 기록됨)
<1996.12.17> 페루의 좌익 성향 테러리스트 단체인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Tupac Amaru Revolutionary Movement) 소속 테러리스트 23명이 일본 대사관저에 폭탄 3발을 터트리며 난입, 관저를 완전히 장악.(세계 최대의 외교관 인질억류 사건으로 기록됨)
<97. 1. 5> 우간다 반군 「신의 저항군」, 북부 카르툼 주민 200여명 학살
<97. 2.25> 중국 회교분리주의자, 신장성에서 버스폭파 테러로 7명 사망, 67명 부상
<97. 3. 10>대만 국내선 항공기 (158명 탑승)가 대만 기자에 의해 중국으로 공중 납치
<97. 3. 21>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하마스」, 텔 아비브 노천카페 자살 폭탄테러.
<97. 5. 13> 스리랑카 「타밀 엘람 해방호랑이」, 스리랑카 경찰서 습격.
<97. 6. 9> 터키 회교도, 81년 교황 암살기도범 석방을 요구해 몰타 항공 여객기 공중납치.
<97. 6. 10> 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 민간인 마을 습격으로 60여명 학살
<97. 7. 8> 인도 펀잡주에서 열차 폭탄테러로 38명 사망, 58명 부상
<97. 8. 8> 알제리 회교원리주의자, 알제리 남부 드젤라광장에서 폭탄테러.
<97. 9. 4> 팔레스타인「하마스」가 예루살렘 중심가에서 3건의 연쇄 폭탄테러을 자행.
<97. 9. 9> 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 중국 국적 화물선 무장공격.
<97. 11. 17> 이집트 「가마 이슬라미야」, 룩소르 외국인 관광객 총격 테러.
<97. 12. 27> 「아일랜드 민족해방군」, 왕당파 거두 「빌리 라이트」 살해
<97. 12. 30> 알제리 회교주의자, 라마단 금식중 서부 릴리잔지역 4개마을 습격, 412명 학살
<98. 1. 5> 알제리 회교원리주의자, 서부 릴리잔지역 주민 62명 학살
<98. 2. 24> 터키계 키프로스인, 터키항공 여객기(68명 탑승) 공중납치
<98. 3. 4> 콜롬비아 좌익게릴라, 정부군 의해 군인 80명 사망, 30명 부상 및 43명 행방불명
<98. 3. 5> 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 콜롬보 마라다나역 인근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40명 사망, 190명 부상
<98. 5. 6> 스페인 「바스크 조국해방」, 팜플로나시 시의원 총격 살해
<98. 5. 17> 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가 사임을 거부한 자프나시 신임 시장을 총격 살해함
<98. 6. 13> 알제리 「무장회교그룹」, 무수덱시 시장탑승차량 총격테러, 경호원 13명 사망 및 시장 등 다수 부상
<98. 8. 7>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로 224명 사망, 5,000여명 부상
<98. 9. 8> 필리핀 「모로 민족해방전선」, 이탈리아 선교사를 납치, 2천만 페소 요구
<98. 9. 11> 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 자프나市 의회 건물에 대해 폭탄테러를 자행, 20여명 사망
<98. 10. 18> 콜롬비아 민족해방군, 안티오키아주내 송유관 폭파, 50여명 사망
<98. 10. 19> 이스라엘 「비르셰바시」의 한 버스정류소에서 팔레스타인계 청년이 수류탄을 투척, 이스라엘인 47명 부상
<98. 11. 6> 이스라엘 예루살렘 야채시장에서 괴한들의 차량폭탄 공격으로 2명 사망, 21명 부상
<98. 12. 3> 알제리 회교원리주의자, 헤니스 밀리아나 소재 시장에서 사제폭탄 테러로 14명 사망, 24명 부상
<98. 12. 18> 인도 좌익계열의 「붉은 호랑이」, 남부 안드라 프라데시주내 5개소에 우편폭탄을 우송, 11명 이상 사망
<99. 1. 17> 홍콩 북서부 광저우시 번잡한 상가의 한 아파트 건물 1층에서 강력한 폭발물이 폭발하여 2명 사망, 6명 부상
<99. 3. 23> 파라과이 「루이스 아르하나」부통령, 출근도중 무장괴한들의 총격으로 사망
<99. 4. 9> 니제르 「마이나사라」대통령, 니제르 「하마니」국제 공항에서 경호요원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
<99. 4. 12> 콜롬비아 민족해방군(ELN), 콜롬비아 민항기(46명 탑승) 공중납치
<99. 5. 30> 콜롬비아 민족해방군(ELN) 게릴라들이 칼리시의 한 성당에서 미사 중이던 신도 등 120여명 납치
<99. 9. 18>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가 AMPARA지역의 PUNCHISIGIRIYA 마을을 습격, 어린이 7명을 포함 50여명 학살
<99.10.27> 아르메니아 국회의사당에 과격 민족주의자들이 난입하여 무차별 총기를 난사, 「샤르키언」총리 등 8명 사망
<99.12.24> 캐시미르 회교반군 소속 무장괴한들이 인도항공 여객기를 공중납치, 인도정부와 협상을 거쳐 수감중인 회교 지도자 「마수드 아자르」등과 인질들을 교환 후 도주
<2000. 2. 6> 아프가니스탄 국영 아리아나항공 여객기(178명 탑승)가 카불 공항 이륙직후 공중피랍
<2000. 3. 1> 예멘주재 폴란드 대사 「Kryzystof Suprowicz」가 예멘 소수부족에게 피랍
<2000.4.12> 스리랑카 트린코말리의 한 음악공연장에서 강력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7명 사망, 70여명 부상
<2000.5.6> 필리핀 '모로 회교해방전선'(MILF)이 남부 민다나오 섬 북부의 수리가오시에서 운행중이던 2대의 버스에 폭탄테러를 자행하여 6명사망 35명 부상
<2000.6.7> 스리랑카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가 '전쟁영웅의 날' 기념행사장에 폭탄테러를 감행, 산업개발부 장관 부부 등 27명 사망, 60여명 부상
<2000.7.31> 필리핀 '모로 회교해방전선'(MILF) 소속원으로 추정되는 괴한이 민다나오섬 몬카요의 보건소 인근 축제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주민 3명 사망, 36명 부상
<2000.10.12> 예멘의 아덴항에서 과격 이슬람 테러분자들이 미국 구축함 콜(Cole)호에 소형보트를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17명 사망 39명 부상
<2000.11.22> 이슬람 테러조직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 북부 하데라시에서 출근버스에 폭탄공격을 감행하여 2명 사망, 53명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