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모 케이블 TV에서 “월왕구천(越王句踐)”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한때 중국 고전에 흥미가 있어 사기(史記)를 들춰 보던 생각이 나서 관심을 갖고 보고있다.
내용인즉 중국 周나라 말기 春秋戰國시대의 春秋五覇國(제,진,초,오,월) 이었던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이야기다.
제(齊) 진(晋) 초(楚)가 패권국가로서 지위가 흔들릴 즈음에 중원 이남에서 크게 부흥한 吳 왕 합려(闔閭)는
재상 오자서와 손무등의 충신을 앞세워 초나라를 제압하고 그 세력을 중원에까지 떨쳐 새로운 패권 제후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에 오의 이남에 자리하고 있던 월까지 넘보다 월(越)왕 구천(句踐)에게 크게 패하여
부상을 입고 죽었다. 이어 그의 아들 부차(夫差)가 대권을 이어받아 왕이 되어 아비의 복수를 하고자 섶나무
바닥에 누워 자며 신하로 하여금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고 항상 상기 시키게 하여서 기어이 월을
굴복시키고 회계산까지 도망간 구천을 잡아서 월을 속국 시키고 월왕 구천은 오의 노비가 되었다.
吳의 노비가 된 구천은 마구간 노비로 또 그의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는 아주 처절한 수모와 치욕을 견디며
절치부심 같이 따라간 충신 범려(范蠡)의 지략으로 부차의 환심을 사서 3년여의 노예 생활을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본국에 돌아온 월 왕 구천은 항상 자신의 옆에 쓰디쓴 쓸개를 걸어 놓고
이를 씹으며 회계산의 치욕을 상기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결국은 20여년이 지나 오를 쳐서 멸국 시키고
부차로 하여금 자살케 하였다. 이런 연유로 생긴 고사성어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어떻게 보면 처절한 복수의 일념으로 갖은 역경과 고난을 견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신이 처한 어려움 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한다는 해석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전에는 자주 듣던 말들중에
“형설지공”(螢雪之功) 이라든지 “고진감래”(苦盡甘來) 등 이런 단어가 요즘은 낮설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이런 경험들이 결코 오래전의 이야기는 아닌듯 한데... 드라마 한편에 온갖 상념을 풀어 놓고 보니 과연 나한테
와신상담이 있었는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