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장 말씀 나눔. 일곱사람을 세우게 된 배경.
할레파과부(그리이스말을 쓰는 유대인)과 본토 유대인과부들간의 구제에 대한 불만이 발생하게 되었다.
개역에 구제라고 쓰여있으나 매일의 식량배급을 하는데에 헬라파 과부들이 자신들이 제대로 공급받지 못함에 대한 불만이 생기게 되었고 사도들이 그일을 해결하고자 일곱사람을 세우게 되었다. 이방으로 떠돌아 다니던 생활을 하였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말년에 예루살렘에 자신의 유골이 묻히기를 원하여 돌아왔고, 돌보아줄 친족이 없어 극빈한 상태였다. 그들에 대한 음식물과 생필품 공급이 매우 필요하였으나 예루살렘에도 극빈한 사람이 많이 있었으므로 실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초대교회에 공동생활에서 발생하는 재정과 구제, 식량공급을 전담하는 일을 맡을 사람들로서 그들의 조건은 3가지
1.성령이 충만한 사람, 어떤 번역본에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
2.지혜가 있는 사람
3. 다수의 칭찬을 받는 사람
이런사람을 뽑는데 사도들이 직접뽑은 것이 아니라 무리들이 추천하여 뽑고 사도들이 안수하여 그들에게 일을 맡기게 되었다.
뽑힌 일곱사람은 헬라식 이름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으로 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는 의도였다.
성경에는 집사라는 명칭은 본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원래 영어의 디아콘으로 봉사자라는 뜻이 한글에서 집사로 번역하였다.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어보면 우리는 구약의 이야기를 모두 요약해 놓았다.
모세는 바로의 딸인 공주의 아들로 사십년을 살게 되었고, 광야로 도피하여 사십년을 살면서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았다
팔십세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십계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광야에서 사십년을 보내게 된다.
38절 나오는 광야교회라는 번역은 광야에서 모여있는 무리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모세가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의 고달픈 종살이에서 해방자로 역할을 하였으나, 그들은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다.
42절 (아모스5장25절인용)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 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절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사십년 생활동안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이미 레위기에서 명하신대로 성막도 만들었고 제사규례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부분은 설의법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여지며 그들은 형식적 제사를 드리면서도 우상을 섬기고 있었고 정의와 공의의 삶에서는 먼 생활을 한 것으로 그들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음을 추측할 수 있다. 몰록이라는 바벨론의 신을 섬겼는데 자신의 자녀를 불가운데 드려 제물로 희생시켰다고 하며 하늘의 군대(하늘의 별들 일월 성신 숭배)를 섬겼다. 하늘의 군대를 악한 사탄의 무리를 섬긴것으로 영적해석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우리가 매주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온갖 헌금을 바치며 열심히 봉사하였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너를 모른다 네가 언제 나에게 예배를 드린적이 있느냐 예물을 드린적이 있느냐 하실지도 모를일이다.
영적인 우상으로 흑암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원자로 예수님께서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자들에 대하여 스데반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설교함으로 그들은 마음에 찔려(마음이 상하여, 노하여) 했으나 이를 갈고 시기하였다. 모세를 배척하고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조상들과 현재 예수님을 죽인 그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그들은 분노하였으며 스데반을 죽일 명분을 찾기위해 성경을 전체적인 안목으로 보지않고 부분 부분을 찾아내어 보는 오류를 범함으로 자신들의 악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이는 현대의 이단들도 또는 우리 자신들도 범할수 있는 오류이므로 신중해야 한다.십일조문제나 주일성수 문제도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5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하는도다
말씀을 대할때에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확증하고 성령에 충만해 있다고 가정하고 타인들은 종교인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함, 성령의 인도하심, 믿음에 굳게 거하고 있는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고 늘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스라엘백성의 완고함이 우리들에게도 늘 도사리고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스스로 서 있는자라고 여기는 것 스스로 지혜있고 믿음이 충만하다고 여기는 것의 위험성 또한 있는 것이다.
55절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절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의 순교당시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는 술취한 상태와 비교할수 있다, 술이 취하면 때려도 아프지 않고 감각이 무디어지므로 성령에 취한 경우 두려움없이 담대해지며 죽음까지도 이겨낼수 있음을 나누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너희가 살아서 나를 볼 자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스데반은 살아서 하늘문이 열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 사람이라고 어떤 자매님이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환상이나 꿈을 통해 만나주시는 것도 여기에 해당될수있다고 생각되어진다고 제시하심,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구절은 성경에 아홉번이 나오지만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다는 내용은 본 장에 56절 한 곳에만 나와있다고 다른 자매님이 말씀하셨다
58절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절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절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과 일치한다..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일어서서 스데반을 위해 간구하시고 응원하시니 스데반은 감사하게 육신장막을 벗어버릴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지....
마지막으로 우리 성도님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얼마나 감정의 변화에 휘둘리는지, 호르몬에 지배를 받고 있는지
사탄이 틈타서 격동할수 있는 존재인지 고백하였다.
나의 감정속에 거하시는 것이 아닌 나의 이성과 지식속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고백도 있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 우상숭배는 우리자신들의 이야기 일수 있다
첫댓글 '성경에는 집사라는 명칭은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었는데' 이 부분은 다시 성경을 상고하셔야겠습니다. 집사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과 디모데전서 3장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원래 디아콘(deacon)이라는 영어로 봉사자라는 뜻인데 우리말에서 집사라고 번역된 것으로 압니다.공동번역에서는 보조자로 번역되어있습니다..디모데전서에서 집사의 자격도 매우 엄격하네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봉사자도 아무나 세워서는 안되겠습니다..저의 글을 자세히 읽고 좋은 지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상고하였습니다... 평상시에 빌립이나 스데반을 집사라고 칭하여서 웬지 격하시킨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개나 소나 아무나 집사직분을 주는편이니까요.. 출석 잘하고 십일조하면 무조건 집사고 일년만 교회나가면 집사직분을 주니 집사 아닌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든 형편이니까요..ㅉ
@커피향기 오늘날 작금의 기독교에는 여러 집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집사와는 다른것 같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집사(보조자) 봉사자를 세우는 조건도 매우 엄격하였다는 점은 우리 신약교회들이 깊이 상고하고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당시 집사들 영적인 수준이 스데반이나 빌립같은 성령 충만함 말,씀에도 깊이가 있었고 언행일치의 삶의 본을 보여주심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집사]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전도출판사에서 발행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게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집사라면 세상 사람과는 당연 달라야겠죠?
스테반집사를 포함한 7집사 모두가 신신한 사람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주님과 같은 생각과 영을 가졌기 때문에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하고 순교하셨겠죠.
감동적인 장면 입니다.초대교회의 11제자 대부분 순교를 당하셨고 바울을 포함한 동역자들 역시 기꺼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수가 순교를 당한걸 보면 믿음의 가치의 중함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은 우리 그리스도인도 주예수의 믿음과 말씀 진리가 내 목숨보다 귀하고 날 인격으로 주관하고 계신지 기도해봅니다.
감사합니다~순교하도록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끄심, 죽음의 순간 하늘문을 열고 인자께서 스데반의 죽음에 마중나오신듯 느껴져 참 부럽습니다~~
마가복음 14장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승천시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것을 살아서 본 사람이네요..
헬라어의 '디아코너스' 라는 뜻은 "어떤 사람의 명을 따라서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사람" 봉사자라는 단어를 킹제임스 번역에서 minister (목사).deacon(.봉사자) servant(종) 이렇게 세 가지로 번역을 하여 현대 교회에서 계급화한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명을 따라 봉사자가 된 바울은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두 같은 봉사자나 일꾼으로 번역하는 적합합니다
성경을 번역함에 있어서 단어 하나 하나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고심하고 정성을 들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외국어중에 우리 말에는 없는 단어도 있고 우리 말중에 영어로서는 번역할수 없는 단어도 있지요
집사?
그 단어만 문제 일까요?
하나님 이란 단어는 문제가 없나요?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영?
이것은 문제가 없나요?
그런것 하나 하나 따지면 우리 번역성경 모두 폐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의 코란은 절대 번역을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완벽한 번역을 해도 원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변질된다고 해서 지요
그들은 코란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기는 하는데 그것은 참고자료정도 이지 그 번역본으로
@태멘, 김수일(전주) 예배하거나 낭독하지 않습니딘
그들은 예배나 낭독할때는 꼭 원어로 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도 단어 하나 하나 가지고 따질려면 원어 성경을 펼쳐놓고 낭독하면서 여배하고 묵상해야 할것입니다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고의로 억지로 틀리게 잘못되게 번역했을까요?
그들의 고심과 그들의 수 많은 갑론을박 토론 했을것을 우리는 이해해 줘야 할것입니다
하나님 이란 단어를 볼까요?
성경에 어디 하나님이라고 나옵니까?
하늘님, 하느님, 하눌님, 한울님, 하나님,
모두가 엿날 우리 조상들이 천지신명 옥화상제를 부르든 단어입니다
어쩌면 우상이고 이방신의 이름을 우리가 천지의 주재이신 분의 이름을 그렇게 우리식으로 번역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신
귀신신자입니다
영
신령영
하나님의신 이라는 단어 하나님의 영 이라는 단어
어떻게 .....
모두가 귀신, 이방신을 부른 단어를 가져다
가장 존귀하신 분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 집사라는 단어 하나가지고 ....
이런 단어 하나 하나 따지다 보면 성경전체가 오류투성이지만 각 나라의 방언상 그려러니 하고 받아드려야
얼마전에 어떤 사람은 신(한문, 귀신 신) 이 글자를 어떻게 하나님 이름으로 쓸수 있느냐 하며 하나님을 칭하는 "신" 자를 자기 방식으로 약간 다르게 고쳐서 "하나님 신" 자라고 만들어서 신문에 광고를 했었지요
이런식으로 문제 삼으려면 끝이 없을것입니다
@태멘, 김수일(전주) 태멘님 의견 공감하며 댓글 감사드립니다~~각 나라 글로 번역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중요한 부분의 번역을 살펴 원래의 뜻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의견들이 은혜가 될때가 많습니다
개인적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