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나 명절을 앞두고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놋그릇을 닦는 일이었다. 짚으로 수세미를 만들어 기왓장가루를 묻혀 어깨에 힘을 주어가며 놋그릇을 닦아내는 엄마는 노란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그 후 엄마는 놋그릇 대신 철 수세미로 연탄재를 묻혀 스텐그릇을 닦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 혼자서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우리를 키우던 때도 엄마는 그릇 닦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그 스텐그릇들 속에서 엄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생기를 길어올리는 것도 같았다.
명절 무렵이면 엄마는 그 그릇들을 닦아서 마루에까지 널어놓았다. 그러면 엄마 손끝에서 반짝반짝한 윤기를 얻은 스텐그릇들은 우리 집을 환히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엄마는 그 환한 빛에 마음을 빼앗겨 그토록 열심히 닦아대었던 것일까?
그렇게 그릇을 닦아낸 다음 엄마는 비로소 음식장만을 하셨다. 명절이나 제사가 어린 우리에게는 맛난 음식을 풍성하게 먹는 날로 여겨졌던 때였다. 그러나 모든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에 오르기 전에는 함부로 먹을 수 없고, 또 어른들의 몫이 먼저였다. 그러나 식혜만은 예외였다. 식혜만은 엄마가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
엄마가 어떻게 식혜를 만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식혜가 넘치지 않토록 지키느라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만 들은 기억이 난다. 식혜를 낮에 끓이면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왜 밤에 끓여야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았다. 나는 식혜는 밤에 끓이는 것으로만 여겼다.
올 명절 음식의 첫 작품으로 식혜를 만들었다. 엄마와 달리 나는 대낮에 전기밭솥에 밥을 해서 보온으로 해 놓고 그 사이에 티비도 보고 한 숨 자기도 했다. 과연 이 식혜를 내 아이도 그렇게 맛나게 먹어줄까? 만약 아이가 맛나게 먹지 않는다면, 그것은 잠을 설치며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차례도 없고 아이와 단촐하게 보내는 명절이다. 하지만 나는 내 생애 최고의 잔칫날처럼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랬다. 장보기 메뉴를 몇 번 씩 확인하고 집안 대청소도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하는 음식은 몇 가지 안 된다. 무엇보다 며칠 전부터 손도 불편하고 체력도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는 아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헤아려봐도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다행히 식혜가 맑고 시원하고 상큼하게 잘 되었다.
이렇게 맛난 음식은 자랑하며 그 비법을 공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1. 보리에 물을 뿌려가며 3일 정도 키워 싹을 키운다.
2. 싹이 난 엿기름을 볕에 잘 말린 다음,
3. 믹서기로 분쇄한다.
4. 엿기름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바락바락 주물러 둔다.
6. 쌀을 씻어 둔다.
7. 1 시간을 기다린다.
8. 고실고실할 정도로 물을 잡아 밥솥에 쌀을 앉힌다.
9. 밥이 되는 동안 불린 엿기름물을 체에 걸러 받아두고,
체에 있는 엿기름에 다시 물을 붓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엿기름물을 받는다.
10.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9의 엿기름 앙금이 가라앉은 맑은 웃물만 붓는다.
11. 6시간 정도 후에 밥알이 삭아 위로 동동 떠오르면 커다란 그릇에 옮겨 넣고 생강과 유자청과 설탕을 넣고 끓인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그리고 모두 모두 복된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와~~맛있겠네요.^^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식혜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시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당연히 시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것 먹기만 했지요. 생각해 보면 참 알량한 며느리였던 것 같아요. ㅎ.ㅎ.ㅎ... 맛난 음식 많이 차려서 아들내미랑 즐겁게 드세요~~~
보리싹까지 틔워서 만든 식혜. 정갈하고 깔끔한 맛이 느껴집니다.
맛난 식혜군요 음식은 정성이라 했는데 정성이 가득한것 같네요 즐겁게드시고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