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대군들 특히 세종의 아들들을 살펴보면, 한두가지 이상한 점이 아닌데, 그 봉군명이 중국지명과 매우 겹친다는 것이다.
문종을 빼고 세종의 아들들의 보자
⑴수양대군(首陽大君)
⑵안평대군(安平大君)
⑶광평대군 (廣平大君)
⑷금성대군(錦城大君)
⑸임영대군(臨瀛大君)
⑹평원대군(平原大君)
⑺영응대군(永膺大君)
-수양首陽: 백이, 숙제가 죽겠다고 작심하고 들어간 수양산에서 따온이름이고, 고구려의 전신인 고죽국에 있는 산
-안평安平: 안평은 는 중국지명이고, 25사와 각종기록에도 안평공, 안평군으로 제후를 삼았다는 기록이 매우 많이 보인다.
-광평廣平: 광평 , 또한 하북성 지명.
-금성錦城: 금성은 파촉의 중심지역인 성도의 별칭이고.
-임영臨瀛: 임영은 임유관 및 瀛州지방을 통괄하는 의미로 보이며.
-평원平原: 평원 또한 중국지명으로 사서에 수도 없이 나오는 지역,
-영응英膺:? 미상
영응대군만 빼면, 중국지명을 따 대군이름을 지은 것으로 볼수 있으며, 하북 북경지역 주변지명임을 알수 있다, 문제는 이제까지 연구에서 경사=북경=장안으로
하북성과 경사인 장안은 매우 가까운 지역에 있었으며 , 또한 일개 제후라는 조선의 왕이 감히 중국의 지명을 따 자신들의 아들을 봉한 다는 것은 중화의 질서에 매우 어긋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세종은 중화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세종이 중화의 주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극이나 사서에서는 궁 밖 사가에서 자주 왔다갔다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실상은 기전畿甸을 감싸고 있는 요해지에 자신의 아들들을 봉한 것으로 봄이 적절하다.
다음은 현 중공어 위키백과 내용이다.
* 大君: (周朝),周天子的別稱 <부분발췌>
대군이라함은 주나라 때 천자의 별칭이라고 나온다.
즉 주대에는 왕이 천자였으니, 대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후대의 조선왕조에서는 대군은 왕자이다. 왕도 아닌.
그렇다면, 조선의 대군이라는 것은 제후로서의 왕王의 위치로 볼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왕/제후(대군)의 부왕인 조선의 임금은 대왕大王으로서 천자天子일 수 밖에 없는 논리가 성립된다.
시왕제 이후로 왕보다 높은 지위를 황제라 하였므로, 진정한 중국/중조의 황제는 조선의 대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실록에 구묘, 칠묘, 오묘가 혼재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현 통사에는 세종이 운동을 하지 않고 고기를 좋아하여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세종실록과, 세조실록 총서에 보면, 세종이 강무講武를 한 기록이 상당 수 등장한다, 문무를 겸비한, 천하제일 명궁 태조 리성계의 손자가 세종 리도다. 실제로 세종은 문 못지 않게 무를 매우 중시했고, 신하들에게 항상 모범을 보이는 군주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람이 말을 타지 않고, 무예를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문제다.
수양대군은 태조의 전신이라 할 만큼 모두가 그의 무예를 모두가 칭송하였고, 안평, 광평, 금성, 임영대군들은 세조의 출중한 실력에 가려졌지만 대단한 명궁으로 나온다. 기본적으로 문을 갖추었으며, 강무장 당골 손님에다, 때로는 사냥이 지나칠 정도로 무인기질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조선의 왕자들과 왕들은 책만 보는 서생이 아니라 문, 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수련을 게을리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단시 조작세력들의 조선왕조 흠집내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왕들과 왕자들 및 대신들을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가 왜 조선인가: 중원을 찾아서 대풍가와 조선태조 其 二 부분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