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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은을 배려하는 무터의 마음은 각별하다.
원래 무터는 지난 2월 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나흘 연속으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SFS)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약간 변경되자 마지막 날 자신을 대신할 바이올리니스트로 최예은을 SFS에 추천했다.
무터의 추천을 SFS가 받아들인 덕택에 최예은은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SFS와 이 곡을 연주하는 기회를 잡았고, 연주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받았다.
최예은의 SFS 데뷔 전날인 지난달 28일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호텔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단독으로 만난 무터와 최예은은 사제(師弟)라기 보다 모녀(母女)지간에 가까웠다.
무터의 방에서 열린 인터뷰는 원래 일문일답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두 사람이 의견을 교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담(對談)이 될 때도 있었다.
◇ "음악가의 인생은 깁니다"
일단 최예은에게 요즘 연주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 물어봤다. 비슷한 나이의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무대에 자주 서지는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최예은 = 한 달에 두세번 정도입니다. 지금 당장은 준비할 것이 많지만, 매우 즐기고 있지요.
솔직히,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연주회를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예요. 한 달에 한달에 4∼5차례 하는 음악가들도 많으니 거기 비하면 연주회가 적은 편이죠.
▲무터 = 예은이는 전세계적으로 경력을 관리해 주는 에이전트를 둔 지 약 1년밖에 안 됐어요. (최예은은 지난해에 세계적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인 'IMG 아티스츠'와 계약했다)
이름을 세우는 데는 시간이 걸리죠. 지휘자들과 관계를 확립하고 오케스트라들과 공연 주최사들과 레코드회사들과 관계를 만드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약간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가고 있어요.
음악가의 인생은 깁니다. 20대 초반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최예은의 경력 쌓기가) 꽤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정말 많은 문(門)이 있는 곳이거든요. 연주회를 할 때마다 예은이에게는 여러 개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은이는 나의 양녀나 다름없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주목받던 무터는 1976년 '음악의 황제'로 불리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을 만나 많은 조언을 듣고 강력한 후원을 받았다. 이제는 자신이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 무터의 뜻이다.
▲무터 = 저는 17년 전에 재단(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돕는 '안네-조피 무터 재단')을 세웠습니다. 저는 인생 초기에 훌륭한 멘토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제 바이올린 선생님인 아이다 슈튜키(Aida Stucki·1921∼2011), 그리고 제가 13살 때 헤르베르트 폰 카랴얀을 만났습니다.
어떤 나이가 되면, 또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오르면 그간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되돌려 주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서 제게는 (젊은 음악가들을 후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은이는 거의 저한테는 양녀가 됐죠. (두 사람 다 웃는다)
▲최예은 = 예, 정말 그렇죠.
▲무터 = 예은이는 인간으로서도, 음악가로서도 훌륭해서,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울 겁니다.
◇ 최예은 "나의 롤 모델은 무터 선생님"
음악가든 아니든, 롤 모델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지 두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최예은은 두 손으로 무터를 가리켰으며, 무터는 귀를 막는 듯한 몸짓을 하면서 '랄랄랄랄라'라며 딴청을 피웠다. 그러다가 민망해서인지 곧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무터는 "뻔한 것은 넘어가기로 하자"고 말했으나, 최예은은 말을 이어 갔다.
▲최예은 = 여기 계셔서 그런 게 아니고, 무터 선생님이야말로 정말 제가 인간으로서나 음악가로서나 이상으로 여기는 분입니다. 항상 감명을 받고 있어요. 어떤 분인지에도 항상 감명을 받고, 또 음악을 하는 방식과 활동에도 감명을 받습니다.
무터 선생님은 음악 경력이나 새 프로그램이나 새 레코딩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아주 관심이 많으셔요. 좋은 방향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는 방법을 찾으시고요. 도쿄에서 했던 음악회가 생각나네요. 쓰나미 피해자들을 위해 바흐의 곡을 앙코르로 연주하셨죠.
◇ 무터 "목사님 영향 많이 받아"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난 무터는 자신에게 영향을 많이 준 인물로 6살이었던 자신에게 세례를 준 파울 그랩(Paul Graeb·1921∼) 목사를 꼽았다.
그랩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머리에 엄청난 부상을 입어 한때 전신마비 위기에 몰렸으나 이를 이겨내고 목회자가 된 후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주택 마련 등 사회사업을 했다.
그랩 목사는 오르가니스트인 부인과 함께 1960년대부터 기증받은 미술 작품을 예배당에 전시하고 이를 판매해 공익사업 기금을 마련해서 치매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건립했다. 현대 미술 작품을 예배당에 전시하는 데 대한 종교적 거부감이 꽤 크던 시절이었다. 무터는 그랩 목사 부부가 설립한 공익재단(www.hanna-und-paul-graeb-stiftung.de)의 이사이며, 자선 연주회를 열어 이 재단이 운영하는 ' 디아코니아(섬김)의 집'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무터: 그 분(그랩 목사)은 예술은 신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신은 우리에게 창의적이 될 수 있는 재능, 예술을 할 수 있는 재능을 주셨고, 그래서 교회 공간은 예술 작품을 전시하기에 훌륭한 곳이라는 거죠. 미술가 친구들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아서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집을 지으신 겁니다.
바로 이런 것이 제게는 인생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롤 모델이 됐어요. 부상을 당하고 여건도 어렵더라도 당신이 빛나는 빛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공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셨지요. 그래서 직접 만나서 아는 분들 중 모범으로 가장 먼저 꼽고픈 분이 그 분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삶을 사시는 분들은 많아요. 특히 직장생활과 가사·육아라는 이중 부담에 도전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저는 존경심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의 길을 비춰 주는 빛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마하트마 간디 같은 분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때로는 우리 자신의 어머니가 그런 빛이 되기도 하죠.
◇두 사람 다 가족 중 유일한 음악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가족, 그리고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넘어갔다. 무터와 최예은 모두 음악가 가정 출신은 아니다. 무터의 아버지는 언론인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최예은 = 저는 제게 영향을 많이 준 분으로 제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과 어머니를 꼽고 싶어요. 어머니도 기독교인이시죠.
저희 부모님은 음악가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중학교 교사였고 아빠는 엔지니어셨어요. (음악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죠.
▲무터 = 그런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지? 내 경우는 부모님이 클래식 음반을 들으셨거든. 그래서 내가 대여섯살 때쯤 돼서는 나도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기분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고 싶어졌지. 예은이네 집은 어땠어?
▲최예은 = 부모님께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라디오에서 항상 클래식 음악을 들었어요.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도 그랬고요.
▲무터 = 음악이 이미 네 삶의 일부였구나.
▲최예은 = 그리고 악기를 하는 어린아이들이 많아서, 저는 무남독녀라 그 애들 사이에 끼고 싶었어요.
▲무터 = 친구들과 취미 생활을 함께하고 싶었던 게로군.
▲최예은 = 그렇죠. 친구를 사귀려고.
▲무터 = 말하자면 너의 바이올린은 애완동물 같은 거였네.
▲최예은 = 그렇죠. 제게 바이올린을 처음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음대 학생이었는데, 처음에 바이올린을 켰을 때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무터 =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처음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나네. 참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어.
▲최예은 = 정말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전에 피아노를 쳤지만, 너무 단순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터 = 그렇지. (웃으며) 피아니스트들이 그 얘기 듣고 무척 싫어하겠는데!
▲최예은 = (웃으며) 아시잖아요. 다른 기분인 거. 몸에 더 가까운 느낌.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그 때 이미 다른 동료들에 비해 더 예쁜 소리를 내는 방법의 차이를 알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저한테 정말 재능이 있다고 하셨고,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믿었죠. (두 사람 모두 웃는다)
◇10년 전 두 사람의 첫 만남
최예은이 무터 장학생이 된 계기에 대해 물어봤다. 최예은은 어린 시절부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꾸준한 후원을 받으며 성장했으며, 무터와 인연이 닿아 무터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뮌헨으로 이사했다.
▲무터 = 10년 전이라니. 맙소사.
▲최예은 = 저도 못 믿겠네요.
▲무터 = 네가 DVD로 영상물을 보내온 거 기억이 난다. 통상적인 레퍼토리를 담은 거였는데, 그때 이미 꽤 장래성이 있어 보이더라고.
(기자에게) 그래서 뮌헨으로 예은이와 어머니가 함께 오시도록 초청을 했죠. 그래서 어느 날 만났는데, 아주 수줍어하더라고요.
(최예은에게) 그런데 그 날에 대한 기억이 어떻지? 겁이 났던 건가?
▲최예은 =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주 걱정이 됐어요. 걱정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충격적이었죠.
▲무터 = (웃으며) 무슨 뜻인지 알겠다.
▲최예은 = 제가 보던 CD 표지와 똑같았는데, 말을 하고, 움직이고, 미소를 짓는 것이... 사실 전에 직접 본 적이 없었거든요.
▲무터 = (웃음) 서울에서 한 내 연주회에도 안 왔단 말야? 이제야 비밀이 밝혀지네. 기분 나쁜데! (무터는 1984년 KBS 교향악단과 첫 내한공연을 했으며, 1993년 이후로는 몇 년에 한 번꼴로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
▲최예은 = 어쨌든, 오셔서 "안녕, 네 이름이 뭐니?"하고 물으시길래 "예은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걱정을 많이 했죠.
▲무터 = 그래도 연주를 잘했으니까. 그걸로 된 거지.
▲예은 = 어떻게 연주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모차르트 조금, 그리고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바흐와 파가니니였어요.
▲무터 = 전체 메뉴인 셈이었지.
▲예은 = 아직도 기억이 나는 점이, 어느 악장의 어느 부분을 연주하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연주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고, 나중에, 그러니까 한 달쯤 뒤에 저를 돕고 지원하기로 하셨다고 이메일로 알려 주셨어요.
▲무터 = 아주 개성이 있는 점에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장학생을 찾을 때는, 자기 관점이 있는 사람, 개성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음악과 깊은 내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맞는 음표를 연주하는 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음표들 사이에 뭐가 있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예은이는 그런 능력을 지녔어요. 물론 그 능력을 더 길러야 하고 성장해야 하지만, 기본은 있는 거죠. 그래서 그때도 예은이를 보면 훌륭했어요.
◇무터 내년 10월 내한공연
한국에서 연주할 계획에 대해 두 사람에게 물어봤다. 무터는 내년 10월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리사이틀을 열 계획이다. 파트너는 오래 호흡을 맞춰 온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르키스다.
▲무터 = 프로그램은 라벨,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마지막 소나타(제10번 G장조) 등입니다. 꽤 다양하고 흥미로운, 모던한 프로그램이죠.
▲예은 = 추진하고 있는 연주회가 있긴 한데, 확정되지 않아서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쓸모없는 조언은 없다"
두 사람에게 지금까지 들은 최고의 조언과 가장 쓸모없는 조언을 꼽아 달라고 했다. 무터가 먼저 "쓸모없는 조언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터 = 만약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조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길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것을 보거나 듣더라도, 바로 동의할 수 없다는 그 점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어디로 가고 싶은지 깨닫게 되는 경우도 꽤 자주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조언이든, 무슨 얘기를 듣든, 보고 평가하고 나서 일단 정리해 두면 돼요. 나중이 되면 갑자기 가치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최고의 조언이라면, 카랴얀의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만약 당신이 당신의 목표들 모두를 이뤘다면, 아마도 목표 설정을 지나치게 낮게 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세운 목표들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그 대신 목표를 계속 위로 밀어올리는 것이 저의 목표예요. 등산하고 비슷한 것이죠. 봉우리에 올라가면 새로운 산맥이 보이고, 그러면 또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고... 그래서 인생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면 사람으로서도 폭이 넓어지는 거예요.
이제 예은이가 대답할 차례네.
▲최예은 =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조언들이 워낙 많은데, 무터 선생님과 같은 의견이예요. 쓸모 없는 조언이란 없어요. 많은 조언들을 통해서 다른 면을 이해할 수 있는 거고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는 선생님의 충고가 기억나네요. 솔직히 말하면 그 때(그 충고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저와 선생님이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터 = 아냐 아냐 아냐. 브람스가 "연습은 1시간 적게 하고 책을 1시간 더 읽으라"라고 했지. 그리고 그 말이 맞아. 음악가들, 특히 젊은 음악가들은 공식을 찾는 데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써. "만약 8시간을 연습하면 무대에서 기분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처럼.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음악은 살아 있는 몸에서 나오는 것이거든. 우리는 늘 삶으로 돌아가야 하고.
▲최예은 = 작곡가들의 삶이나 문화 같은 것 말이죠.
▲무터 = 그래서 인생을 살아 봐야 하는 거야. 그래서 바이올린 연습은 줄이고 머리로 연습을 많이 하라고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 내 조언이야.
▲최예은 = 선생님이 준 가장 중요한 조언을 꼽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예요. 그게 항상 내가 스스로에게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랍니다.
◇"도그마는 위험"
무터의 연주 스타일은 매우 독특하다. 백열(白熱)하는 개성이 있고 대담하다. 20세기 후반에 대세가 됐던 즉물적(卽物的)이고 객관주의적인 연주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정격연주', '원전연주' 등으로도 불리는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 즉 음악 작품이 쓰여지던 당대의 연주 방식을 문헌학적으로 연구하고 그 시대의 악기를 사용해 이를 재현하겠다는 흐름에 대한 의견을 무터에게 물어 봤다.
▲무터 = 이른바 정격연주 방식의 단점은 독단적인(도그마적인) 관점입니다. 도그마는 위험하지요.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건 그렇습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관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격연주의 독단적인 관점은 만약 바흐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관점입니다. 베토벤이 모던 피아노를 위해 작곡하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까요.
역사주의적 연주 스타일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음악의 원래 프레이징을 매우 주의깊게 관찰하는 점인데, 저는 이런 일을 평생 해 왔습니다.
프레이징은 그 자체로 음악의 몸짓(제스처)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바흐의 경우 바로크 활을 사용하면 (악보에 표시된) 프레이징을 물리적으로 실제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경우는 다릅니다. 베토벤의 경우 프레이징은 음악적 사고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 주는 정신적 안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토벤에서는 매우 많은 마디가 하나의 아치(길다란 이음줄) 아래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매우 흔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 경우는 보잉(활 쓰는 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호흡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작곡가가 어떤 언어로 썼는지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바로는, 바로크 활을 사용해서 바흐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런 프레이즈들을 실제로 연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현대식 활의 경우는 프로그(활 아래쪽 끝부분)가 무거워서 강한 소리를 내는 데 도움을 주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바로크 음악을 현대식 활로 연주하기를 원한다면, 가볍고 빠른 동작이 많이 필요한 일부 프레이징은 연주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죠. 활이 무거워서 가볍고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겁니다.
그래서 1700년대의 "오리지널"(무터는 이 부분에서 양손을 써서 손가락으로 따옴표 표시를 했다) 연주 도구를 이용하면 작곡 당시에 작곡가가 어떤 음향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바로크 시대에는 평상시에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믿음도 (정격연주에는) 있지요. 하지만,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178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로, 바이올린 연주법에 관한 유명한 책을 남겼다) 시대에 이미 느리게 떠는 비브라토인 '이탈리아식 트레몰로'가 유행했지요.
우리는 모든 음악에 대해 포용적이어야 합니다. 음악은 단순히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 자체보다는 폭이 넓은 겁니다. 현대에는 셰익스피어 극에서 여성 역할을 남성 배우가 하진 않죠. 이상, 저의 긴 답이었습니다.
▲최예은 = 무터 선생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바로크 음악 활을 사용하면 여러 거지 영감이 생기죠.
▲무터 = 그리고 통찰도 생기지.
▲최예은 = 맞아요. 다른 아티큘레이션이라든지...
▲무터 = 더 생동감도 있고.
▲최예은 = 음악적 언어가 다른 거죠. 그래서 그 때의 원래 언어가 뭐였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되고, 그걸 바탕으로 제 자신의 상상을 쌓아 나가는 것이죠. 우리 바흐 프로젝트에서 바로크 활을 사용한 것은 멋진 경험이었어요.
◇바흐 무반주곡 전곡 계획은 아직 없어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레퍼토리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하거나 녹음할 계획이 있는지 무터에게 물었다. 무터는 이 중 일부 악장을 앙코르 등으로 연주한 경우가 있었을 뿐 전곡을 본격적으로 다룬 적은 없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비롯해 그렇게 하지 않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도 많다.
▲무터 =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녹음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세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정말 많은 계획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도 인생을 즐겨야죠. 만약 때가 오고 준비가 된 상태라면, (바흐 무반주곡 전곡 녹음을) 하겠지요. 그리고, 설령 하지 않더라도, 저는 매우 풍성한 음악적 삶을 살았겠지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뮤즈'가 되고 싶다'
무터는 비톨드 루토스와프스키, 볼프강 림,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앙리 뒤티외 등 많은 현대 작곡가들이 쓴 작품을 초연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자신이 위촉했다. 신작 초연이나 위촉을 계획하거나 희망하고 있는지 두 사람에게 물어 봤다.
▲무터 = 작년 11월에 앙드레 프레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의 미국 초연을 했습니다. 바로크 규모의 소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죠. 올해는 저의 앙상블을 위해 프레빈이 작곡한 9중주를 초연할 예정입니다. 이후 일정은 기다려 봐야 합니다. 제가 곡을 위촉하고 싶은 작곡가들이 있긴 한데 그 분들이 수락하지 않는 한 확정되는 게 아니니까요.
▲최예은 = 저는 뭐라고 말하기가 참 힘드네요. 제가 아는 분이 많지 않아서... 어제(27일) 연주된 곡에 흥미가 갔어요. (무터와 최예은이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한 나흘간의 SFS 연주회에서는 존 루서 애덤스(1953∼)의 ' 세계를 채우는 빛'의 실내악 버전이 함께 연주됐다.)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어서, 어떤 곡을 쓰는 분인지 알고 싶더라고요.
▲최예은 = 작곡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의미가 크지요. 마치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요제프) 요아힘(1831∼1907)을 위해 썼듯이요.
▲무터 = 그리고 요아힘은 브루흐의 협주곡에도 영감을 줬고, 드보르자크의 협주곡에도 그랬지. 동시대의 그런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뮤즈(음악의 여신)가 되고 싶은 것이 당연해. 살아 있는 작곡가들을 연구하고, 음악회에도 가 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게 좋지. 지금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게 좋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어려워지거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해석이 달라진 이유
무터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금까지 두 차례 녹음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한 1982년의 첫 녹음에 비해,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한 1997년의 두번째 녹음은 훨씬 개성적이고 대담하며 정열적이다.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에 대해 무터에게 물어 봤다.
▲무터 =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주요 독일 (협주곡) 레퍼토리를 다 녹음했어요. 14살 때부터 17, 18살 때까지요. 사실 그 나이에는 제가 경험이 부족했고, 작품과 함께 살았던 기간이 길지 않은 게 당연한 거죠. 하지만 작품과 점점 친밀해질수록 더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두번째 녹음을 했을 때는 제가 성인이었고, 이 작품과 여러 해를 함께 보낸 때였죠. 그리고 쿠르트 마주어의 불타오르는 듯한 지휘도 제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후기 브람스가 아닙니다. 브람스의 중년 작품이예요. 아직도 타오르는 정열을 지니고 매우 감정이 승한 젊은이인 것이죠. 그리고 브람스는 정말 성질이 불같고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했지요. 이 점이 제가 두번째 녹음에서 부각하려고 했던 바입니다. 첫 녹음에 비해 저 자신의 기질에도 더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바이올린의 여제가 무인도에 간다면?
무터는 1986년 영국 BBC의 '무인도 음반'(Desert Island Discs)이라는 유명한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음악가,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들이 많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고른 8장의 음반을 함께 들으면서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만약 당신이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좋아하는 음반 한 장, 책 한 권과 사치품 한 가지를 고르도록 한다.
당시 23세이던 무터는 당시 음반으로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지휘한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제2번, 책으로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사치품으로는 본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꼽았다.
거의 30년이 지난 후, 똑같은 질문에 대해 무터는 어떤 선택을 할지 물어 봤다.
▲무터 = 항상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만약 오늘이라면 재즈 레코딩을 가져 갈 것 같아요. 왜냐하면 머리 속에 너무나 많은 레퍼토리를 축적해 놓고 있어서 머리 속에서 버튼만 누르면 들을 수 있거든요. 무인도에서는 재즈 음반이 가장 큰 즐거움을 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치품을 하나 들고 갈 수 있다면 여전히 제 바이올린일 겁니다. 그리고 책이라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대단한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신을 믿지만, 믿음이 아주 좋다거나 한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성경을 읽고 이 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과연 선(善)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하려는 연습이라고나 할까요. 종교를 "해석"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해악을 끼쳤기 때문에, 종교의 좋은 부분이 무엇인지 재발견하고 싶습니다.
▲무터 = 재즈 레코드를 딱 하나 꼽는다면,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것은... 앙드레 프레빈의 빈 무직페라인 실황을 (무인도에) 가져 가겠어요.
◇최예은이 무인도에 가져 갈 보물은 '활'
최예은은 음반과 책에 대해서는 금방 답을 내놨으나, 무인도까지 들고 가고 싶은 사치품에 대해서는 마음을 쉽사리 정하지 못했다.
▲최예은 = 저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이요. 무터 선생님이 카라얀과 연주한 것으로요. 천사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서 들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책으로는… 좋아하는 책은 많지만, 자주 다시 읽는 책으로는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가 있어요. 톨스토이는 단편을 많이 썼는데, 이 책은 위트도 있고 매우 의미가 깊지요. 읽으면 마음이 매우 따뜻해집니다.
사치품으로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무터 = 냉장고 어때? 좀 실용적이어야지. 내가 바이올린 가져가고, 예은이가 냉장고 가져 가면 서로 바꿔서 쓸 수 있잖아. 내가 네 냉장고를 쓰기도 하고 네가 내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최예은 = 사람은 안 되나요?
▲무터 = (웃으며) 지금 장난하니? 그게 될 것 같으면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다. (무터는 1남 1녀의 어머니다.)
▲최예은 = 활일 것 같아요. (프랑스의 유명한 활 제작자인) 브누아 롤랑(Benoit Rolland). 사실 무터 선생님이 발견해서 내게 사 주신 거죠. 연주회 때마다 이걸 써요.
▲무터 = 손으로 이렇게 당겨서 무기로 쓸 수도 있겠네. (웃음)
▲최예은 = 이 활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정말 훌륭한 활이예요. 무인도에는 이걸 들고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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