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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5계단 / 믿음은 말씀을 행함으로 기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061229(금, 다섯째 시간, 금요심야)
M.T: 큰 이적들은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한 사람들에 의해 성취되어 나타났습니다.
신약과 구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서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는지 많은 모범을 볼 수 있습니다. 큰 이적들은 단순히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한 겸손한 사람들에 의해 행하여졌습니다.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下)
구약에 나타난 행동하는 믿음
(Faith in Action in the Old Testament)
(수 1:1-4)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은 2절에서 요단을 건너 온 땅과 해지는 편 큰 바다까지의 땅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만히 앉아있어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그들의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땅을 그들의 발바닥으로 밟아야 하는 믿음의 행동을 함으로 그것을 성취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주신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땅을 그들의 발바닥으로 밟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요단강 앞에 이르렀을 때의 상황은 그들이 요단강을 발바닥으로 밟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최고조로 범람하여 언덕에까지 차오르는 위기의 상황이었고, 만일 그들이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그 순간 범람하는 그 요단강의 물이 그들 모두를 삼켜버릴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멈칫멈칫하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수 3:7-17)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1:3절의 말씀을 다시 확증하는 것에 불과함)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말씀대로 행하기에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현실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처음에 요구하셨던 그대로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으로 하여금 요단강에 들어가, 요단강물을 밟고 멈추는, 믿음의 행동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들어가 발바닥으로 요단강물을 밟고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물이 멈추고 모두가 안전하게 요단강을 건너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3:15-17)“···[15]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요단강물이 언덕에 넘치던 현실상황 가운데 그들이 요단강물에 들어가야만 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요단강물이 멈춘 상태에서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것은 믿음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단강물이 언덕에 넘치던 그 상황에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강에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벽을 이루고 그들이 모두 요단강을 건널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육지를 밟는 순간에 요단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현실상황과 상관없이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동할 때에 기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신약에 나타난 행동하는 믿음
(Faith in Action in the New Testament)
(눅 5:18-25)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24]···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예수께서 집 안에서 가르치는 동안 병고침을 얻기 위해 한 무리가 그들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중풍병에 걸려서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군중이 너무 많아 그들은 예수님께로 갈 수 없었으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로 주님 앞으로 달아내렸습니다. 누구의 믿음으로 그런 것이었을까요?
성경구절은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라고 말합니다. 그들 모두의 믿음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믿음이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갔고 지붕의 기와를 벗기고 그를 예수님께로 달아 내렸습니다. 그 병자도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20,24절)고 말씀하실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나아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20,24절)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일어나 걸으라고요? 당신은 이 사람들이 나를 여기까지 운반해 온 것을 보지 못하셨어요? 나는 절대 일어날 수 없어요. 당신이 나를 먼저 고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에게는 아무런 치유의 흔적도 없었으나, 그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병고침은 그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만일 그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기를 거부하였다면 그는 병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행동했음으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한편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3:5)는 말씀과 동일한 원리였던 것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경제기적(초자연적인 방법)을 성취한 사람들.
(The Ones achieved the Miracles of finance in Faith in Action)
(시 35:27) 『···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 하소서』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분이시지 불통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재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경제의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경제적인 것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행동할 때에 경제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경제기적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기적이 아닙니다. 모든 기적이 그렇듯이 경제기적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왕상 17:8-16)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10]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무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11]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마 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 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고후 9:6-10)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멕시코 살틸로 사과농장 농부의 믿음의 행동과 그 기적의 결실
거듭된 흉작으로 재정이 극도로 쪼들리게 되었고, 풍성한 수확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들은 그는 풍성한 사과 수확의 씨앗으로 거액의 헌금을 드렸다. 이 헌금을 하느라 그는 극도로 쪼들리게 되었다. 힘에 겨울 정도의 거액을 헌금하고 살틸로의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헌금을 한 바로 그날 밤 때아닌 추위가 몰아닥친 것이다. 이로써 농장의 사과꽃들이 모조리 얼어붙었다. 이와같은 사태를 맞자 의심이 먹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결핍의 공포로 인해 하나님이 그의 헌금을 열납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그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그는 아내에게 지혜롭게 다짐했다.
“추수를 위해 믿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이제 우리는 기도할 도리밖에 없소. 자연의 결과는 좋지 못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연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 부부는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소문이 나돌면서 그로부터 보름 동안 그들은 심한 마음 고생을 했다. 누구나 “올해 사과 농사는 끝장”이라고 했다. 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이웃 농부들의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우리는 사과를 수확할 겁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예요. 우리는 믿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믿음으로 거둘 겁니다.”
보름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얼어붙은 꽃들이 매달려 있던 나무마다 아주 작은 사과 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해서 보일 듯 말듯했지만 어쨌든 살아있었고 상태도 양호했다. 사과는 날마다 알이 굵어져 마침내 탐그럽게 익었다. 그 해 마을에서 사과를 수확한 집은 이 신실한 농부네 집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확은 그 어느 해보다도 풍성했다.
자, 이제 가장 감동적인 부분으로 넘어가자. 그 해 다른 농장이 다 흉작이어서 이 농부의 사과는 전에 없이 비싼 가격에 팔렸다. 이 부부는 “바라는 추수량에 맞춰 씨를 뿌려야지 작년 추수량에 맞춰 뿌려서는 안 된다.”는 재정의 법칙에 대한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우리는 장래 추수의 규모에 따라 시를 뿌려야 한다. 과거 추수의 규모에 맞춰 파종해서는 안된다.
없는 것에 연연하여 파종하지 말라. 과감하게 미래의 추수를 바라고 투자하라. 그렇잖아도 돈이 없어 죽겠는데 어떻게 그러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득이 충분치 않다면 전보다 더 많은 씨를 뿌려야 더 많이 거둘 수 있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많이 드릴수록 많이 거둔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아멘.
(30배 60배 백배의 축복받는 원리, 존 아반지니, 나침반, pp138-140)
첫댓글 앉아 있기만 하는 믿음에서 발바닥으로 밟는 행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I think Action in faith is obey to God's words.
늘 행복한 말씀으로 함께하셔서 좋습니다.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