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파노라마
주제 : 교회 내의 문제들을 복음으로 치유함
고린도교회는 바울에 의하여 설립된 교회입니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당시에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당시의 심경을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2:3) 하고 표현합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도덕적으로 문란한 고린도라는 거대한 도시를 복음으로 정복해야할 것을 생각할 때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방금 경유해온 아덴 선교에서의 빈약한 성과(행 17:17:34) 때문으로
"떨리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누가는 바울이 고린도에
"일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행 18:11)고 전해줍니다.
이렇게 복음 전한 것을 가리켜, "나는 심었고"(3:6), "터를 닦아 두매"(3:10),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4:15) 하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말씀함은 그들이
"자라야 하고, 세워져야 하고, 양육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 후 본 서신을 보내기까지는 약 5년이 경과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동안 고린도교회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바울이 씨를 뿌린 고린도교회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1:11, 11:18)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분쟁만이 아니라,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5:1) 한 "음행"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6:1) 한 형제간의 법정 소송사건입니다. 바울은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습니다.
둘째 동기는,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7:1) 한
고린도교회로부터 보내온 질문서에 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질문서는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16:17) 한 것으로 보아 이들이 가지고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린도교회가 제기한 질문들에는, "결혼과 독신 문제"(7:1), "처녀에 대하여"(7:25),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8:1) "신령한 것에 대하여"(12: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16:1) 등이 있었습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린도전서는 로마서와 같은 교리적인 서신은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해답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실제적인 서신입니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아니 될 점은 교회 내의 모든 문제들을 복음으로 치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점을 소홀히 다루게 되면 본 서신의 핵심을 놓친 것이 되고 맙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후서 외에도 "전전서"(고전 5:9)와, "많은 눈물로 쓴 편지"(고후 2:4) 등을 보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동기
분명 고린도교회는 많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가 직면한 문제로 직행을 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목해야할 점은
본 서신의 서두에는 의외라 싶게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강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가 10번(1:1, 2, 4, 6, 12, 13, 17, 23, 24, 30), "십자가"가 6번(1:13, 17, 18, 23, 2:2, 2:8)이나 등장합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2) 말씀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회가 이런 문제들에게 함몰(陷沒)당하게 된 것은 복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치유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의 전체적인 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 하고 "십자가"로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5:12) 하고 "부활"로 마치고 있는 구도(構圖)라는 사실입니다.
즉 주님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셨다는 복음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속원리(救贖原理)에 의하여 풀어나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교회 내에 문제가 있습니까?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복음 안에 해답이 있다
바울의 치유 방법을 보십시오.
바울은 저들에게 반문(反問)을 함으로 치료를 합니다.
이는 저들이 받은 복음을 상기시키고,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방법입니다. 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3:16) 하고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 형식의 치료법은 분열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주어졌습니다.
고린도 형제들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배워서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함은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전"이라고 번역된 말은 "나오스", 즉 지성소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지성소임을 인식한다면 어찌 사분오열(四分五裂) 찢을 수가 있단 말이냐는 것입니다.
②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6:2-3)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형식의 치료법은 형제간의 소송사건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임을 가르쳐주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상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형제들은 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인식한다면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6:4-5) 하고 책망합니다.
③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6:15, 19)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형식의 치료법은 "음행"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3:16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할 때는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6:19절에서 "너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도 개개인을 가리킵니다.
고린도 형제들은 자신의 몸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망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를 인식하는 자라면 어찌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6:15하) 하고 책망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행해주신 일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병든 신앙을 치료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
고린도교회는 분명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절망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이는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내셔서 이루신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기 때문이요,
이처럼 시작하신 이가 또한 완성하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서의 서두(1:1-9)는 영광스럽기 비할 데가 없습니다.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2상)라고 말씀합니다.
㉡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2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8) 하고, 완성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나타냅니다.
㉣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4) 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 문제 많은 교회를 인하여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9) 하고, 하나님의 "미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를 믿기에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형제들아" 하고 22번이나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15:58) 하고 격려해줍니다.
현대교회의 거울
현대교회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교회 중에서 고린도교회를 제일 많이 닮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앞에 광야교회(출애굽 당시)를 거울로 제시하여,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10:11) 하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현대교회를 향해서도 광야교회가 당한 일과, 고린도교회가 당한 이런 일들을 거울로 제시하여,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하고 적용하는 것은 동일하게 진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 저들의 문제가 무엇이며, 현대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 고린도교회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현대교회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진단하고,
㉢ 바울의 치료방법을 통해서, 현대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는 것은 적실성이 있으면서도 유익한 일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