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참으로 인정머리 없는 늙은이였다.
오늘날 한국의 불교 신도들이 불상 앞에 아침 저녁으로 밥상 차려 올리고, 초하루며 무슨 재일 무슨 재일 따져가며 온갖 제철 과일과 맛난 음식들을 푸짐하게 올리면서 소원 들어달라고, 아들 합격시켜 달라고, 남편 승진시켜 달라고 손바닥이 닳도록 기도하건만, 사실 붓다는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붓다는 단 한 가지도 소원을 들어주는 분이 아니다.
붓다 시대에도 오늘날의 보사들처럼 빌고 떼쓰고 우는 신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요술을 부려서라도 소원을 이뤄달라, 운명을 바꿔달라, 죽은 아들 좀 살려달라 벼라별 요구가 많았다.
확실히 말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해줄 이는 없다. 붓다도 못하지만 공자도 못하고 예수도 못하고 마호메트도 못하고 산신도 못한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도 못한다. 그런 건 없다. 붓다도 처음 들어본 보살이 많다. 그러니 거짓말이다.
여기 그 사례를 보자.
비구 밧칼리는 마가다의 서울 왕사성에 있는 한 도공의 집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의 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이 점점 깊어져 이제는 회복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절망적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소원은 다시 한번 붓다를 뵙고 예배를 드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이런 호소를 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붓다나 예수를 예배하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다 못해 신부, 목사, 스님이라도 보고 싶을 것이다.
병 간호를 하던 시자가 죽림정사에 가서 이런 뜻을 전했다.
그러자 붓다는 밧칼리의 소원대로 도공의 집을 방문한다.
붓다가 정말 찾아오자 깜짝 놀란 밧칼리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붓다는 그를 만류하면서 머리맡에 앉는다.
"저는 살아날 가망이 없습니다. 조금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던 끝에 마지막으로 붓다를 뵙고 발에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때 붓다는 뭐라고 말했을까?
내 발에 예배하면 죄가 용서되고 극락에 태어나리라고 말할까?
아니면 당장 병이 낫는다는 빨간 경면주사 부적이라도 써줄까?
아니면 징을 두드리면서 구병시식이나 천도재를 하라고 할까?
아니면 미친 듯이 진언이라도 외우라고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오직 진리만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붓다다.
붓다가 그에게 한 말은 경전에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밧칼리, 당신은 이 무너질 내 육신을 볼지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알아야 한다. 진리를 보는 눈이 있는 사람만이 붓다를 알아 본다. 진짜 붓다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아야만 한다." - 잡아함경 47:25 밧칼리경
붓다는 죽어가는 제자에게조차 진리를 향한 용맹정진을 요구한 것이다. 진리만이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쇠나 구리, 나무로 만든 불상에 열심히 기도하면 낫는다고?
구병시식, 천도재를 하면 죽을 사람도 살아난다고?
그런 일은 없다. 다만 그 간절한 기도를 듣는 생체시계가 있어 가끔 이상한 기적이 일어나기는 한다. 그런 법칙 역시 진리 안에 있다. 바이오코드를 10년쯤 공부하면 아마 무슨 말인지 귀가 열릴 것이다. 그럴수록 오직 진리(반야)에 의지해야 한다.
* 한편 밧칼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더 자비한다면, 이런 문답도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재미 삼아 적는다.
붓다> 내 몸도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는 육신인데 날 보지 말고 반야를 보라. 그래야 붓다가 누군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날 아무리 바라봐야 돌로 만든 상이나 흙으로 빚은 상이나 쇠로 구운 상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밧칼리> 제 앞에 서 계신 분이 붓다 아니십니까?
붓다> 내 형상을 보고 붓다를 보았다면 그건 가짜다. 진짜 붓다는 형상이 아니다. 나는 반야를 보았기 때문에 붓다이지 이렇게 생겼다고 해서 붓다가 된 것은 아니다.
밧칼리> 저는 곧 죽습니다. 시간이 없는데 어찌 반야를 보리까. 죽지 않게 도와주소서.
붓다> 나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풀기 위해 출가했었다. 내가 생로병사의 문제를 풀었는가?
밧칼리> 붓다께서도 때가 되면 죽는다고 하셨잖습니까.
붓다> 아니다. 밧칼리 비구가 만일 반야를 본다면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알 것이다. 밧칼리는 죽지 않는다. 그대는 비록 이 생에서 반야를 보지 못했지만 비구로서 쌓은 공덕이 있으니 다음 생에도 훌륭한 비구로 태어날 것이다. 그때 더 열심히 수행하면 반야를 보게 될 것이다. 반야를 보면 생로병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요, 죽는 것이 바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 말라. 눈 감는 즉시 눈을 뜰 것이다. 다음 생에는 게으르지 않게, 철갑코뿔소 송곳 같은 뿔처럼 반야를 향해 달려라.
- 이익태 선생님 작품
#바이오코드 #아나파나사티
첫댓글 붓다가 제자에게 요구한 진리란 무엇을 뜻하는지요?
삼법인인가요?
붓다가 말한 진리는 태고 이래 천지간에 충만한 것이기는 하나 무명에 물든 인간은 보지 못하니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아나파나 사티를 하여, 4성제와 8정도를 통해 수련을 해야만 비로소 보인다고 했습니다. 4성제와 8정도란 거짓에 속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법입니다.
네 이재운선생님의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4성제와 8정도를 통해 보인다는 것....수련은 해야만 보이고 그 보이는 진리가 수련을 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말로써 글로써 이해시킬 수 없는 것입니까?
지금 선생님의 소설 금강경을 어렵게(?) 구해 읽고 있는 중입니다^^
징기즈칸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