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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아트테라피(Food Art Therapy)로의 초대
이정연 저
인간은 혼자서 그리고 여럿이서 삶을 영위한다. 인간 관계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사랑과 미움, 경쟁과 협동, 지배와 복종 등 여러 가지 빛깔의 역동성을 지닌다. 그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두운 면이 갈등이다. 사실 실험실에서 신제품을 만드는 일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매일 매일 인간관계를 잘 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까지 잘 지내다가 오늘 사소한 일로 틀어지는 드라마가 지구상에서 어디든 발견된다.
그러한 갈등은 표면상의 이유야 다 다르겠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나는 이런데 너는 저렇고, 나의 생각은 올바른데 너는 잘못 되었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만이 사실이요 진리라는 생각을 하는 이상,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립구도로 갈 수 밖에 없으며, 우리 사회는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지게 된다.
심리학에서 자아정체감, 자기분화, 개성화와 같은 개념들은 독립적이고 성숙한 자아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들이다. 그러한 개념에 치중하다보면 자아를 찾는 길은 타인과 다른 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늘 뒤따라주었음을 생각한다면, 자기만의 세계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기만의 내면세계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자아는 찾아보려고 몰두할 수록 보여지지 않는 그림찾기와 같다. 그렇다면, 나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기보다는 현재보다 더 나은 성숙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음식 재료를 매개체로 예술활동을 하면서 심리치료하는 푸드 아트 테라피라는 생소한 영역을 소개하고 동양의 지혜를 빌려 함께 마음을 나누는 자연치유적인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1. 현대 사회와 테라피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기분이 나빠서 불행한 경우가 많다. 감정의 흐름은 기상 변화와 같이 늘 다르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감정에 휩싸여 들뜨기도 하고,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 특히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해도 여전히 인간은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으며, 잠재적으로는 무슨 무슨 증후군의 주인공인 셈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일 수도 있고, 경주일 수도 있으며, 젊은 사람에게는 게임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살다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 남들은 행복한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든지, 최선을 다해도 왜 이렇게 나아지지 않는 지 등등의 하소연을 하고 싶을 때가 많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무기력해지거나, 남을 원망하거나, 다른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내가 원한 인생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바쁘게 살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의 변해가는 속도에 어지러울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교차로에 서서 과연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가, 어느 게 나의 목표인가, 이 길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사색에서부터 사소한 감정의 물꼬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등에 업고 현대 사회의 어지러운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대를 반영하는 듯, 인간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쉽고 가벼운 문화가 만연하고 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골치아픈 것은 싫어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유흥산업, 코미디 프로, 인터넷 사주팔자 등 머리를 쓰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오락 프로가 늘어나고 있다.
각종 테라피가 번성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위 바디 앤드 마인드 비즈니스(body & mind business)가 현대 사회에 지친 영혼을 상대로 제품을 개발하고 장사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으며, 테라피, 스파, 요가, 명상과 같은 단어가 이젠 생소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현대 사회의 빠른 개발 속도에 비해 심리적인 치유와 회복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 우리가 당면한 아이러닉칼한 모습이다.
2. 왜 음식인가?
흔히 음식이 곧 보약이라고 한다. 건강을 다루는 프로가 늘면서 이제는 일반인들도 음식에 대한 과학적인 상식을 많이 습득하게 되고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찾는 경향도 늘게 되었다. 인기 드라마 <대장금>은 한류 열풍을 타고 동남아, 그리고 미주 전역에 한국 전통 궁중음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웰빙 바람과 함께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이며, 아동이나 젊은 세대들도 음식을 만들거나 배우는 것을 취미 활동으로 삼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 비해 요리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공개하는 남성들을 대하면서 생활양식의 변화된 일면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음식이 보약이란 말을 단지 신체적인 면뿐 아니라 심리적인 면으로까지 연장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빵이나 과자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아이들은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부엌에서 맛있는 간식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채고 환호성을 지른다. 예전에는 아랫목이 가족 구성원들의 구심점이었지만 지금은 소위 키친이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다.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음식의 조리 과정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 그대로 새겨져, 우리는 다 성장한 후에도 예전에 먹던 그 맛에 향수를 느끼고 편안하고 푸근한, 그래서 가장 속을 달래주는 할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점을 찾아 다니지 않는가.
나는 특별히 잘하는 운동이 없는 반면, 상상을 즐긴다. 만약 저녁 찬거리로 예술도 하고 우울증도 낫고 식사도 맛있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외출하기 힘든 애기 엄마와 아이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텐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즐거워 하시겠지. 하루에 세 끼를 먹으면서 신선하고 빛깔 곱고 감촉도 좋은 식품을 먹을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얼마나 아까운가.
악기를 다룰 줄도 모르고, 바느질이나 조리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도 잘 할 수 있는 표현 기법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 하던 중에 문득 과일과 야채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물감으로도 재현해낼 수 없는 다양한 색, 질감, 그리고 형태를 고루 갖춘 재료들과 놀면서 대화도 하고, 작품도 만들어 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면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 되겠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음식은 단순히 식량일 뿐 아니라 인간의 생활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으레 제단에 음식이 바쳐졌으며, 하늘에 고하고 안녕을 비는 정기적인 의례를 치루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만두는 원래 중국의 남만인의 음식이라고 한다. 제갈량이 멀리 남만(南蠻)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자, 종자가 만풍(蠻風)에 따라 사람의 머리 49개를 수신(水神)에게 제사지내야 한다고 진언하여 제갈량이 살인을 할 수는 없으니 만인(蠻人)의 머리 모양을 밀가루로 빚어 제사하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풍랑이 가라앉았다는 고사가 있으며 이것이 만두의 시초라고 한다.(http://www.search.naver.com)
이와 같이 음식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왔으며, 민속명절 뿐 아니라 일상 생활의 모임에서도 현재도 그 상징성을 구현한다. 회식에서 건배를 하거나, 발렌타인 데이에 쵸콜렛을 주고 받는 것, 대입 합격을 비는 찹쌀떡 등은 모두 행복과 안녕,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소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과일이나 야채로 마음의 풍경을 표현하고, 개인적 소망과 기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먼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인류 공통의 생활양식인 것이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음식이 가져다 주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심리적인 위로, 그리고 재미있는 놀이를 심리치료에 적용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재료와 방법을 멀리하고 굳이 다른 방법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하여 하나 둘 기법을 개발하다보니 이제는 체계화할 필요가 느껴질 정도의 자료가 모이게 되었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음식이 지니는 심리적인 보약의 속성을 확신하고, 심리치료에 과일이나 야채, 그리고 곡류 등의 재료를 적용한 자연주의 예술치료 활동이다. 보기만 해도, 만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재료를 사용하여 예술 작품을 형상화해보면서 활기와 에너지가 생기고, 또 끝난 후에는 즉석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먹으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놀이이며, 체험학습이지만, 여기서 좀더 나아가 작품에 담긴 추상적인 의미를 다루어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야가 트이게 된다면 테라피로서의 치료 효과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3. 음식과 이야기 그리고 테라피
실제 상담장면에서 때로는 언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서 적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릴 때에는 말을 배우고 익히고 전달하는 게 미숙하고, 사춘기에는 이유없는 반항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를 거부하며, 성인이 되어서는 능숙한 위장과 기만으로 애매모호한 표현이 많아지고, 나이가 더 들어서는 굳이 자신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자체를 꺼리는 일이 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언어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이면서도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뿐 아니라 상담 장면에서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대화를 이끄는 언어가 대화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면 다른 대안적 도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치료는 비언어적 활동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는 효율적인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예술치료의 하나로서 나만의 상형문자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재료와 색채, 형태를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의미를 나름대로 분석해보면서 또 다른 느낌을 감지하게 된다. 아, 내가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자기분석 과정에서 억압된 감정이 분출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된다. 백 마디 말보다 상호 공감이 더 쉽게 형성되고 라포가 형성되고 난 다음이라면 치료적 대화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이 적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야채를 다듬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지금처럼 가공식품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어느 부엌이든 원재료를 다듬는 일이 하나의 과제였다. 식구가 많고 살림이 큰 집일 수록, 넓은 마당에 둘러 앉아 제 철에 수확한 먹거리를 나르고, 분류하고, 다듬고, 저장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집안에 중요한 모임이나 행사가 있을 때에도 음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아이들에게 큰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음식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콩을 까고, 무말랭이를 널고, 곶감을 말리고, 부침개를 부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특별한 주제를 정한 것도 아니요, 정보 교환도 아니며,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의지하여 노동과 여가를 함께 즐기는 과정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푸드 아트 테라피에서는 그러한 음식 준비과정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출발하므로 다른 테라피에 비해 서로 마음의 벽을 트고 활발하게 작업하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
식품을 매개체로 하는 치료과정이 다른 예술치료과정에 비해 더 자연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며,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집단의 결속력을 증진시키고, 대인관계가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오게된다.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가족이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가족간에 굳이 무리해서 비싼 외식을 하거나, 해외여행을 계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은 그저 손끝에서 빚어진 물체가 아니다. 작품에는 만든 사람의 인생이 반영되어 있고,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투영되어 있으며 나아가서는 인류의 문화가 상징적으로 배어있다. 특히 재료를 미술 물감과 같은 인공 재료가 아니라 식품으로 사용한 경우에는 인간의 생활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이야기로 표출되는 장점이 있다. 나이든 사람일 수록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예를 들어, 소금언덕을 만들어보는 작업을 노인들이 열심히 몰입하고 예전에 살던 마을에 대해 구체적으로 회상하고 설명하는 사례를 보게 될 때 그러한 확신을 더하게 된다.
또 다른 사례로 신경정신과 치료와 미술치료, 놀이치료 회기에서는 치료자의 말을 거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문고리에 매달려 장난만 치던 한 아동이 라면으로 벽화만들기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가족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하던 일이 있었다. 처음에 어떻게 풀려나가는 가가 상담의 전체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본다면, 푸드아트 테라피는 다른 치료에 비해 내담자가 방어나 경계심을 갖지 않고 치료에 들어서게 하는 쉬운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자연주의 테라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체험학습에서는 오감을 경험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숲 냄새도 맡고, 새소리도 듣고, 시냇가에서 올챙이도 잡아보면서 인위적인 학습과정에서 메마르기 쉬운 감수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전인적인 발달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일을 만지고, 소금을 솔솔 뿌려보고, 야채썰기를 하면서 우리는 자연과 가까워지고, 생명체가 지닌 칼라 에너지와 생명에너지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대파를 한 껍질 벗기면 파뿌리는 흰색이면서 줄기로 가면서 점점 투명한 연녹색, 그 다음엔 녹색으로 이어진다. 메론이나, 단감, 방울 토마토 등 식품의 색채에는 어느 물감의 색채와는 다른 싱싱함이 배어있다. 식품이 단지 재료가 아니라, 생명체들간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그리하여 닫힌 마음을 치유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면 이것은 테라피의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게다가 자연이 빚은 식품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해체한 후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경험은 자연과 인간의 순환과 연결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큰 수술을 받고도 방사선 치료와 같은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해야하는 많은 환자들에게 나는 푸드아트 테라피를 권하고 싶다. 죽음보다 더 힘든 고통과 불안을 경감시키는 데에는 일상생활에서 생명에너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가족원들이 집에서 간단한 재료로 창의적인 활동에 몰입하면서 즉각적인 즐거움과 활기를 함께 경험하는 것은 분명히 건강을 되찾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5. 누가 치료하는가?
누가 치료하는 가하는 질문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내담자와 치료자간의 관계 설정에 관련된 중요한 기준이다. 푸드 아트 테라피에서는 내담자와 치료자가 작품을 통해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다른 치료에 비해 내담자가 훨씬 더 자기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편이다.
치료자는 내담자와 같은 인간이며 별다른 초능력을 가진 게 아니므로, 치료자와 내담자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담자보다 수많은 병을 더 많이 앓아본 경험이 있다면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 공감이 쉽게 이루어지고, 라포 형성에 더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숙련된 치료자는 작품에 대해 직접적인 분석이나 해석을 섣불리하지 않는다.
사회구성주의의 관점에서는 내담자와 치료자가 협력하여 새로운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 내담자의 문제를 내가 가진 사고틀 안에 가두려는 생각, 내가 내담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고 처방한다는 생각 등 치료자가 전문가라는 생각을 모두 버리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치료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 치료자는 앞서서 선두지휘하기 보다는 내담자와 함께 숨쉬고 함께 파동을 이루는 중요한 한 축이 되어주는 것이다. 치료자는 왼 팔과 같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오른 팔, 오른 손이 많은 일을 하고 왼 팔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왼 팔이 없으면 신체의 균형을 잡기 어렵고 오른 팔도 힘을 제대로 못 쓴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치료자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치료 분위기를 조절하고 내담자가 균형을 잡아가도록 동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판단된다.
푸드아트 테라피는 내담자가 자신이 문제를 풀어내도록 지지해준다. 내담자의 이야기에 적절히 개입하기도 하고 상호 협력하여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내담자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가는 작업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면, 푸드아트 테라피는 직접적으로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내담자가 작품 활동을 통해 어떤 문제이든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갈 수 있는 자신감을 배양하는 데 있다. 재미가 없다면 표현활동은 번거롭고 귀찮으며, 어떤 경우에는 구속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의도된 작업일 수록 내담자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자발적으로 몰입하는 제작 과정, 창의적인 작품 제작, 그리고 상호협력적인 해석을 통해 자신의 힘을 인식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치료의 기능이다.
푸드아트 테라피는 소집단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데, 치료자가 주관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최소화되고, 집단원 각각의 프리즘을 통해 나타난 의미를 교류하고, 서로 다양한 반응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집단을 운영해본 결과, 치료는 치료자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원들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무르익는다는 것을 실감한 적이 많다. 치료자는 그러한 장을 진행하는 전문가라고 보여진다.
또한 치료자도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내담자나 그들이 만든 작품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닫게 되므로 치료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푸드아트 테라피에서는 함께 치료하고 함께 성장한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고 하겠다.
6. 자기효능감과 푸드아트 테라피
Maslow, Rogers, Satir 등은 사람들이 전인적으로 성장하는 데 자아존중감이 중요한 개념임을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수용할 때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바탕이 마련된다고 보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 비해 자신을 낮추고 자기주장을 드러내기를 삼가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을 성장 과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은 편이다.
한편,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상담을 해 온 나의 경험으로는 자아존중감보다는 자기효능감이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개념으로 느껴진다. 물론 자아존중감과 자기효능감이 전혀 무관한 개념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생존하기 위해 학업, 취업, 결혼, 승진 등 여러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하며, 자신의 능력과 인격을 시험당하는 불가피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하는 데에는 자아존중감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보다 직접적인 개념으로서 자기효능감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기효능감은 특정 영역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활동을 실행하기 위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주관적인 믿음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을 서지 않으면 일을 추진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며 작은 난관에도 쉽게 좌절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 한다. 반면에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 더 힘든 일일지라도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고 인내와 끈기로 일을 수행하여 실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자기효능감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학업, 스포츠, 정신건강 등 여러 방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내담자 스스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고 의미부여를 해보면서, 심리적으로 즐거움과 해방감을 경험하고, 위축된 잠재력을 신장시키는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여기에서의 창의적인 경험은 개인의 인지, 정서, 행동에 동시적으로 변화를 가져와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활기있게 참여하고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작은 일에서의 성공 경험이 자기효능감을 증진시키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과 가능성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자기효능감을 획득하는 것은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푸드아트 테라피는 단기간에 작품을 만들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치료에 비해 자기효능감의 변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판단된다.
다만, 개인의 치유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두는 일반적인 다른 치료에 비해, 집단의 상호작용 자체가 지니는 건강성을 인정하고 함께 형성해가는 창의적인 활기가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자기효능감을 증진하여 자기치유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고 본다.
7. 푸드아트 테라피의 전제: 대긍정의 세계
가슴이 더워온다
우주 어느 곳에서
꽃 한 송이 마악 피어나고 있나보다
-----허형만(2005), 시집 <첫차> 중 생명-----
물리학자 카프라(1999)는 저서<생명의 그물>에서 이 세상은 생태계라는 하나의 체계에 속해있으며, 모든 유기체는 서로 상호의존적이고 순환적 인과관계를 지닌다고 본다. 이러한 유기체적 관점은 서양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를 비롯한 동양의 신유가(新儒家)와 도가(道家) 사상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화엄의 법계연기설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전영숙, 2002). 이러한 동양의 지혜를 현대 신과학이 하나씩 밝혀나가고 있다.
개별적인 자아를 찾기보다는 너와 내가 한 뿌리임을 수용하는 불이(不二)의 일체감에서 대긍정의 세계가 경험된다. 너와 내가 하나의 생태계에 속해있음을 인정하고,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열매로서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거나 다툴 필요가 없어진다. 이러한 인식적 자각과 정서적인 공감이 이루어지면, 사소한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악순환이 사라져 결국 나의 정신과 신체에 유익한 영향을 준다. 모든 갈등을 물리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함께 끌어안고 세상과 화해하며 살 수 있게 된다면. 이보다 더 나은 심리치료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많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힘이 되는 상호의존의 장 속에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건강한 균형을 잡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대긍정의 세계는 단순한 윈-윈의 원리로는 불충분하며 역설적인 진리를 함께 포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부정을 수용한 긍정이요, 상극을 끌어안은 상생의 길이다. 푸드 아트 테라피는 이러한 동양적 사유에 근거하여 나의 주관이 빚어낸 대립과 모순을 버리고 나부터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어 더불어 사는 대긍정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