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정치에서 왕실의 친인척은 양반위에 군림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정책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최특권층이 되기도 하였으나 당쟁이나 정쟁으로 멸문의 화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
해주정씨 역시 조선의 태종(3대),세종(4대),문종(5대),단종(6대).중종(11대),인조(16대)의 여섯 왕실과의
혼인 또는 인척으로 부와 침의 영욕을 겪었다
1.태종의 사돈 정도공 휘 정역
정도공은 태종의 둘째왕자 효령대군의 장인이시다.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처남들과 사돈인 양녕대군의 장인,정순공주의 시아버지,세종의 장인 등
많은 인척들에게 사약을 내리거나 유배를 보냈지만
둘째 사돈인 정도공께서는 권력에 뜻을 두지 않은 청렴으로 각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4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세종때 의정부 좌찬성에 올라 해주정씨 번성의 문을 연 선조이시다.
1425년 (세종7년) 정월에 세상을 떠나니 세종으로부터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겸 영경연 서운관사에 추증되고
사제문과 정도의 시호를 받았다.
사위 효령대군
태종의 둘째 아드님으로 양녕대군이 폐 세자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자 스스로 절에 들어가 숭불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불도에 전념하였다.이는 세종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6왕을 거치며 종친의 어른으로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고 성종 9년에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배위는 해주정씨 예성부부인으로 슬하에 6남 1녀를 두어 자손이 가장 많은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를 이루고 있다.
서울 방배동 창권사에 제향되었다.
2.세종의 사돈 참판공 휘 정충경
정도공의 큰 아드님으로 세종의 8째왕자 영응대군의 장인이시다.
형조참판과 중추원 부사를 역임하고 1443년(세종25년)에 세상을 떠나자 세종으로부터 관을 비록한 장례물품을 하사 받았다.
의정부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사위 영응대군
세종의 여덟번째 왕자이다. 소헌왕후 소생중에 막내로 세종의 총애를 받아 혼인에 많은 진귀한 물품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이 그의 저택인 동별궁에서 승하하였음을 볼때 영응대군을 특별히 아끼었던 것 같다.
배위 해주정씨 춘성부부인은 정도공의 손녀이며 참판공의 셋째따님이며 영양위 휘 정종의 누이이다.
명황계감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했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묘소는 신도비와 함께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3.문종의 부마 영양부원군 휘 정종
정도공의 손자이고 참판공의 외아드님이시다.
1450년(세종32년)에 문종의 따님 경혜공주와 혼인하여 영양위에 봉해지고 단종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1455년(단종3년)에 금성대군사건에 관련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 해에 수양대군의 왕의찬탈로 문종의 유일한 사위라 하여 경기도 양근에 양이되었으나
1456년(세조2년)에 사육신 사건으로 죄가 가중되어 다시 수원,통진을 거쳐 전라도 광주에 안치되었으나
1461년 승려 성탄 등과 역모를 하였다 하여 사사되었다.
1506년(중종1년)중종반정에 아드님이신 해평부원군 (휘 미수)정국공신에 오름으로써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양위의 관작이 회복되어 증 순충적덕 보조공신 영의정 영양부원군에 추봉되고
영조때 헌민의 시호가 내려졌다. 영월 장릉의 배식단사, 공주 계룡산의 동학사 숙모전에 배향되었다.
배위 경혜공주
문종대왕과 현덕왕후 사이의 유일한 공주로 세종17년(1435년) 태어나 15세에 정도공의 손자 영양위 종과 혼인하였다.
수양대군의 왕의찬탈로 영양위가 광주로 귀양가서 사사 당하고 순천의 관비가 되었는데
전라감사가 하대함으로 감영 단상에 올라가 감사에게
"네 이놈들 내가 누구냐"하시며 호통을 치자 관비로서의 대우가 아닌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성종4년(1473년)병으로 향년 39세에 세상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