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만”(self-deception)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을 보면 “자기 기만”이라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역설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첫째, 존재론적인 면에서의 역설입니다. 자기 기만에 있어서는 속이는 주체와 속는 대상이 하나입니다. 즉 자아가 속이는 역할도 하고 동시에 속는 역할도 합니다. 보통은 두 존재가 있어서 그 사이에서 속이고 속는 법이지만, 자기 기만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인식론적인 면에서도 역설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자기 기만의 당사자는 자신에 관한 어떤 사항과 관련하여 자신이 믿는 바가 진실(사실)이 아님, 참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바로 그 내용이 진실(사실)이라고, 참되다고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한 인식의 주체자가 자신에 관한 어떤 사항을 믿기도 하고 또 믿지 않을 수도 있는지 인식 작용의 면에서 보더라도 역설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기만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또 아주 희귀한 현상도 아니라는 점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일 -- 즉 자기 기만 -- 도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살아남기 전략(survival strategies)으로서의 자기 기만이 있습니다. 이미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해 어느 정도 실상이 드러났습니다만, 인간에게는 각종 방어 기제들(defense mechanisms)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주위 환경을 만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는 자기가 겪는 불안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인 심리 활동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처한 위험 상황의 객관적 조건은 변경시키지 못하고 (혹은 변경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조건에 대한 자신의 지각(perception)이나 사고 방식에 변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자신의 주관적 인지 기능이 현실을 수용하게끔 조정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방어 기제 -- 억압(repression), 합리화(rationalization),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 투사(projection), 이지화(理智化, intellectualization), 부인(denial), 전위(轉位, displacement) 등 -- 에는 어느 정도 자기 기만의 요소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한 종류의 자기 기만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상화 작업(idolization strategies)으로서의 자기 기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적 시각에서 본다면, 이것은 한 인간이 자만의 태도를 상습적으로 강화시킴으로써 자신을 자기 이상(以上)의 그 어떤 존재인 것으로 거짓되이 자기 심령에 각인시키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은사와 조건들이 각광을 받고 남의 부러움과 칭송의 대상이 될 때 이런 식의 심리 상태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누리는 조건들이 곧 자아 가치(self-worth)의 전부인양 착각할 뿐 아니라, 또 그러한 조건들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선물임을 망각한 채 자기 고유의 생득적 산물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기만은 자신을 그 이상의 존재와 연계시키는 상향적 동일시 작용(upward identification)임과 동시에 자아 숭배(self-worship)의 최종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