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아의 홍수 네레티브에 대한 크로키
(계약으로 확언된 창조의 이야기)
(창세 6—9장)
장 들로르므 신부님의 강의록에서(1994년 9월 강의)
도입
이 이야기는 에덴동산의 이야기만큼이나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잘못 다루어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낯선 파괴현장을 상기하며 이야기가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이야기 전체 배열
모든 것이 두 번 이야기 되어 있으며, 두 판본 사이에는 예를 들어, 하느님을 야훼 혹은 엘로힘이라 부르는 방식에서 시작하여, 대립된 세부사항들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현재 성경본문에서는 두 판본을 모두 제공하고 있는데, 창세기 1장과 2-3장에서처럼 두 판본을 차례로 두 개의 이야기로 배치하지 않고, 두 판본을 연결시키나 혹은 뒤섞으면서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만들어 제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하면, R1(하느님을 야훼로 부르는 판본), R2 (하느님을 엘로힘으로 부르는 판본)으로 구분할 것이다. 반복되는 이야기들의 미궁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래의 도식을 참조할 것이다.
A – 악의 급격한 확산, 하느님의 결정, 노아의 예외
a/ 악, 하느님의 실망과 파괴할 결심. 노아 (6,1-8: R1)
b/ 하느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심; 엘로힘(6,9-22: R2), 야훼(7,1-5: R1)
B – 홍수의 시작,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다(7,6-16)
R1 과 R2 가 뒤섞여 있다(이따금은 야훼, 이따금은 엘로힘)
C – 홍수(R2 와 R1 가 뒤섞여 있다)
a/ 물이 차오르다, 노아와 방주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죽는다.(7,6-16)
b/ 엘로힘은 기억하고 개입하신다.(8,1)
c/ 물이 빠져나가다(8,2-5)
D - 방주에서 나오다
a/ 노아가 까마귀를 한 번, 비둘기를 두 번 날려 보낸다.(8,6-12: R1)
b/ 노아가 마른 땅을 보고, 엘로힘은 나오라고 명령한다.(8,13-19: R2)
E - 땅 위의 생명을 위하여: 신의 약속과 인류와의 계약
a/ 노아의 제사. 야훼는 인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한다.(8,20-22: R1)
b/ 엘로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축복한다. 인류와의 계약(9,1-17: R2)
2 - 비극: 인류와 생명의 모험, 해 볼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a/ 전체 독서를 하면서, 불일치를 확인했을 것이다.
- 홍수의 원인에 관하여
(많은 비
혹은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커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림)
- 지속기간에 관하여
․ R1에 따르면 장마는 40일이며 방주 속에서는 101일을 보낸다
․ R2에 따르면 월력으로 1년 11일 곧 365 일이다.
- 생존한 동물들의 수에 관하여
․ R1 에서는 정결한 짐승 일곱 쌍, 불결한 짐승은 한 쌍
․ R2 에서는 모든 종류의 암수 한 쌍.
이렇게 텍스트는 세부사항의 정확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이야기의 여러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b/ 그렇다면 이야기는 무엇에 관심을 두는가?
이야기 전체 배열을 통해 이해해보자.
- 이야기 전체가 물이 차오르는 것과 물이 빠져나가는 것 사이에서
어떤 급변이 있는가.
․ 엘로힘의 기억 “엘로힘께서… 기억하셨다.”(8,1)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 인류와 살아남은 이들의 세상에 충격 받은 하느님의 형상과 함께…
․ 하느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셨으니, 그분은 거기에 무관심하실 수 없다.
- 이야기의 초점은 파괴에 있지 않고, 노아에게 있다.
․ 예외인 것, 바로 이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새로운 시작의 길을 터준다.
✓ 작업하기 :
․ 시작과 마지막이 어떻게 서로 대응하는가?
․ 인간 안의 악 앞에서 그분의 반응과 비교해보라.
6,5-7과 8,20-22 (R1)
6,11-13과 9,9-17(R2)
․ 이 두 반응 사이의 뉘앙스 차이가 보이는가?
3–창세기의 전개에서 대홍수 이야기의 자리
창세 1-4장의 이야기에 비해, 홍수 이야기(혹은 오히려 홍수의 결정적 차단 이야기)는 어떻게 하느님께서(매우 인간적인 모습으로 소개됨) 인간 역사에 적응하시는지를 보여준다. 하느님은 당신이 꿈꿀 수 있었던 것에 응답이 있기까지 인류와 함께 교육자가 되신다.
- 창세 1장과 2장에서, 창조주는 세상과 사람을 보시니 ‘좋았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을 위해 ‘좋은’ 것에 대해 고민하신다.(남-녀, 알맞은 협력자)
- 창세 3장에서, 사람은 하느님 말씀에 신뢰하기 보다는 오히려 선과 악을 직접 아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그의 눈이 존재의 조건을 보게 된다. 나쁜 것이 좋은 것과 뒤섞여 있고, 생명을 주고 또 살아가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문화의 발전과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셋의 후손에서 에노스와 에녹)을 보여준다. 그러나 또한 윤리적 악에서 인간 생명의 파괴까지 폭발적인 증대도 보여준다.(마음속에 자리한 살인, 폭력, 악)
바야흐로 이때 창조주는 하나의 문제를 고심한다.
살아 있는 것들을 창조하는 모험이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어떻게 악을 박멸하고, 땅 위에 유일한 흠 없는 자를 구할 수 있을까?
성공으로 이끌 방책이 하나 있다. 바로 홍수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방책일까? 무엇을 더 후회하신 것일까?
창조한 것에 대해? 혹은 파괴한 것에 대해?
왜냐하면 결국 창조주는 완전히 파괴하기를 포기한다.
이것은 창조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선과 악 사이에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살덩어리들’(그 약함과 죽을 운명 속에서도)이 살아 마땅하다는 것을 막지 못한다. 창조는 노아와 그 가족으로 대표된 인류와의 계약으로 확인된다.
✓ 작업하기:
자신이 느끼는 어려움들이나 질문들을 대해 하나의 고백록을 적어보라.
함께 토론하면서 새로운 소통의 영토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장 들로름므 강의록에서(1994년 9월)
수정 정리: 마리 테스, 안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