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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승[金顯承,1913.2.28 ~ 1975.4.11]시인
김현승[金顯承,1913.2.28 ~ 1975.4.11]시인
1913년 평양에서 출생. 숭실전문학교 졸업.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을 발표하고 등단.
첫시집 『김현승 詩抄』(1957) 이후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 『절대 고독』(1970), 『김현승시선집』(1974) 등의 시집과 평론집 『한국현대시해설』(1972) 등을 간행. 전라남도문화상·서울시문화상 수상. 1975년 작고 후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 간행.
김현승[金顯承,1913.2.28 ~ 1975.4.11]시인. 그는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사이에서 1913년 4월 4일 아버지의 신학유학지인 평양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이 평양신학교를 마치고 제주도 성내교회를 거쳐 광주로 오게되자 그는 광주 숭일초등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에 진학하기 까지 10년간 광주에서 살았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시와 양심의 시를 개척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관념의 세계를 신앙적 정면대결 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윤리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자아 탐구에 고뇌, 끝내는 신의 절대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시의 중심 사상이 된 고독은 신을 잃어 버렸기 때문인데 그는 여기에서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 탐색을 통하여 인간 생명과 진실을 노래,보편적 진리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나타내어 주목을 끌었다. 특히 그는 사상이 없는 시는 무정란이라는 시론까지 전개하며 사상과 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종교와 철학의 추상과 관념을 물화하여 형이상성으로 시를 감각화했다. 투명한 언어의 엄격성,함축미,간결한 정제미 등은 그의 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붓을 꺾고 침묵을 지키다가 8·15광복 후 1949년부터 다시 작품을 발표, 「내일」 「동면(冬眠)」 등 지적이고 건강한 시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1951년부터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로 있으면서 박흡(朴洽)·장용건(張龍健) 등과 함께 『신문학(新文學)』(계간)을 6집까지 발행, 향토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957년에 처녀시집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를 간행하고, 1963년에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 1968년에 제3시집 『견고한 고독』, 1970년에 제4시집 『절대고독』을 간행했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자연의 예찬을 통한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띠었으나, 8·15광복 후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보여 주었고, 말기에는 사랑과 고독 등 인간의 본질을 추구했다. 1973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았고 1974년 『김현승 시선집』을 출간했다. 김현승의 30년도 초기시는 일제 식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연을 예찬하고 동경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이 짙게 깔려 있다. 그 무렵 나의 시에는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 이점 또한 그 당시의 한 경향이었다. 불행한 현실과 고초의 현실에 처한 시인들에게 저들의 국토에서 자유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은 거기서는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자연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흉악한 인간-일인들과 같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고, 지상에서 빼앗긴 자유를 광대 무변한 천상에서 찾는 의미로 함축되어 있었다. 그의 이와 같은 진술은 30년대가 망국민족이라는 일제하의 암울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자연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로맨티시즘이나 센티멘탈리즘으로 나타낸 것이다. 불행한 현실 아래에서 자유롭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고 그 자연을 통해서 민족의 염원이나 미래의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 있어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현실극복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가장 친근한 존재였다. 해를 쫒아버린 검은 광풍이 눈보라를 날리며 개선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이 땅, 하고서,강하고 튼튼한 역사를 또 다시 쌓아올리고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에서 그의 첫 작품인 위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것이 아니라 암흑시대와 민족적 열망을 암시한 것인데'검은 광풍'은 일제하의 참담함을, '해'는 '밝은 미래'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거 해는 미래의 역사를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이 시는 어둠과 광풍이 부는 이 땅의 눈물로 얼룩진 패배의 역사를 쌓았으니 젊은 당신들은 우리의 조국에 빛나는 미래의 해를 불쑥 올려야 한다는 것을 노래했다. 새벽의 보드라운 촉감이 이슬 어린 창문을 두드린다.아우야 남향을 열어제치라어젯밤 자리에 누워 헤이던 별은 사라지고선명한 물결 위에 아폴로의 이마는 찬란한 반원을 그렸다. 꿈을 꾸는 두 형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고 바라보는 푸른 해안은 어여쁘구나배를 쑥 내민 욕심 많은 풍선이 지나가고하늘의 젊은「퓨우리탄」-동방의 새 아기를 보려고 떠난 저 구름들이바다 건너 푸른 섬에서 황혼의 상복을 벗어 버리고 순례의 흰 옷을 훨훨 날리며푸른 수평선을 넘어올 때어느덧 물새들이 일어나 먼 섬에까지 경주를 시작하노라. -「아침」에서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된 이 작품에서도 '새벽', '바다' 등을 통하여 새 시대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상실된 조국의 절망의식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두 형제'에서 우리는 암울한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희망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이제 푸른섬에서 암울한 시대를 상징하는 황홀의 상복을 벗어버리고 물새들처럼 자유롭고 평화롭게 이 세상을 날아 보자는 갈구의 의식을 강렬하게 내보인다. 또한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줄곧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살았던 그는 기독교를 소재로 하거나 내면화한 시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로 그의 시에 대한 논의는 기독교적인 특징과 관련하여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그의 시를 종교시로 연관해서 생각하면 안된다. 그의 시에서 보면 절대적인 신앙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중반에 쓰여진 시들을 보면 기독교적인 신앙과 신에 대해 부정했다. 꿈을 아느냐 내게 물으면, 먼길 올 제, 이제 너의 뿌리깊이 그는 자연을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보고 동반자적 실체로 인식한다. 여기에서 그가 기독교 정신의 조화로운 관계에서의 신과 관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라타너스를 '너'로 지칭하여 동반자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플라타너스가 가지고 있는 싱싱한 푸른잎,든든한 가지 등이 요인이며 그 나무의 실체는 바로 생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현승의 시세계를 이루는 중심주제는 역사와 현실인식, 자연과 사물의 경고성탐구, 존재론적 고독의 문제, 초월과 구원의 문제 등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반기의 시편에서는 주로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였으며, 점차 사회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외부상황에 대한 관심을 후기 시에 이르러 인간내면, 존재에 대한 실존적 물음 등으로 옮아가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 고독을 시적 주제로 보여주고 있다. 1934년 5월 《동아일보》에 두 편의 장시로 문단에 데뷔하여 광복이전까지 18편의 시를 발표하였는데, 이들 시는 생애의 말년인 1974년 김현승 시전집이 간행될 때 『새벽교실』이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합본되었다. 그가 데뷔했던 무렵은 그 시기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고, 당시에 발표했던 작품들은 초기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후의 시세계와는 뚜렷이 구별되고 있으며, 민족적 울분을 직접적인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자연 이미지의 감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함으로써, 당시 1930년 시단의 모더니즘의 기교주의적 성향과 카프계열의 시들이 가지는 예술성 결여의 문제를 아울러 극복하려는 시적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일관되게 정직, 청결, 고독, 엄격성 등을 기반으로 한 시적의 삶과 인간적 삶을 통해 인간 본질에 관해 어느 시인보다 끈질긴 탐구를 보여주었다. 제 1기에서는 일제하의 어두운 현실에서 망국민족의 희원을 자연을 통하여 제시, 민족적 로맨티시즘과 센티멘탈리즘으로 노래했다. 제2기에서는 해방이 후부터 도덕과 윤리의 회복을 위해 양심과 생명을 줄기차게 기도하면서 신을 추구했다. 제 3기는 유일신에 대한 부정과 신앙에 대한 회의로 고독에 빠진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고독은 실의와 허무가 아니라 철저한 자아탐구인 순수의 '견고한 고독'이다. 마지막으로 제4기에서는 '회개'로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와 구원의 신념을 갖는다. 그리고 작고하기 까지 신에 몰두한다. 김현승은 초기부터 신앙의식을 기본으로 하여 관념어와 종교적 언어로 시를 썼다. 그러나 그가 일생 동안 인간 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고 시를 썼기 때문에 그것이 꼭 종교시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구나 그가 보여준 주지주의 와 이미지즘은 한국시사에 큰 성과로 남는다. 제1시집 『김현승시초 金顯承詩抄』(1957)와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1963)에 나타난 전반기의 시적 경향은 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였으며 점차 사회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들의 특징은 가을의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는데 덧없이 사라지는 비본질적이고 지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꽃잎·낙엽·재의 이미지와 본질적이며 천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뿌리·보석·열매의 단단한 물체의 이미지의 이원적 대립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역사나 사회 속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김현승의 초기시의 경향은 시집 『견고한 고독』에 이르러서 전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근원적 실존을 탐구하는 내면화의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현상적 삶에 대한 그의 관심이 청교도적 윤리관속에서 천착되었다면, 이와 같은 존재성찰의 문제 또한 기독교적 초월의식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조리한 현실을 노래함에 있어서는, 김현승의 시는 이미지와 진술, 때로는 경구적 어조의 문장 등을 혼합하여 시적 의미 맥락을 구성하고 있는 반면, 존재탐구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 의미를 시로 형상화함에 있어서는 대부분 감각적인 비유독이란 언어로 대표되는 인간적 사고와 삶, 참회와 신에 대한 찬미로 대표되는 종교적 사고와 삶과의 관계라 할 것이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가을에는 ㅡ「가을의 기도」 전문 「가을의 기도」. 이 시는 모든 것이 생명을 마감하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시인의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가을의 고독감 속에서 좀더 겸허해진 마음으로, 그 동안 살아온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고, 더욱 경건한 삶을 준비하려 하고 있다. 「가을의 기도」는 시와 종교를 거쳐 최종적인 죽음의 자리에 다다르는 삶의 과정을 성숙과 조락의 가을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을의 기도」에는 봄의 바다와 여름의 백합,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인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로 삶의 사계절이 내포되어 있다. 茶를 몹시 즐긴다고 하여 아호까지 茶兄으로 한 김현승 시인은 다복하고 비교적 여유있는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서구문명에 접한 가정환경과 경건하고 철저한 기독교 교육으로 장성한 연유인지 그의 시는 다분히 서구적 성향이 짙다. 시의 리듬 역시 몹시도 딱딱하고 사용하는 용어들조차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많다. 그는 문인생활 40여 년간을 통하여 발표작과 미발표작을 합쳐 총 275편의 시작품을 남겼다. 그의 시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절실하고 가치있는 문제를 대상으로 시대와 삶의 진지한 이해를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준 당대 최고의 시인이다. ≪참고문헌≫ 숭실어문학회 편, 『다형 김현승 연구』, 서울 : 보고사, 1996
그가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32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이 학교에는 양주동과 이효석이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에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 교지(校誌)에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했다.
이어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아침」,「황혼」,「새벽교실」등을 계속 발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중 략……
그려!
……중 략……
울분의 덩어리가 수천 수백 강렬히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려!
마침내 비연의 감정을 발끝까지 찍어버리고
금붕어 같은 삶의 기나긴 페이지 위에 검은 먹칠을 하고
캄캄하던 동방산 마루에 빛나는 해를 불쑥 올리려고
밤의 험로를 천리나 만리를 달려나간 젊은 당신들-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나의 영혼을 불러 놓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플라타너스」전문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에는 /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는 구절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간 온갖 정성을 기울여 여름내내 화려하게 가꾸었던 잎을 스스로 떨구고 '마른 나뭇가지'가 된 나무처럼 인간도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리고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회귀해야 하는 시간이 바로 가을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영혼'은, '굽이치는 바다'로 표상된 젊은 날의 열정과 번민을 극복하고, '백합의 골짜기'라는 영적 환희의 세계까지도 초극함으로써, 마침내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은 절대 고독의 경지에 이른 경건하고 원숙한 인간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김현승은 후기에도 이 고독이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며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 등의 불후의 명작들을 연이어 발표하여 이미 오래전에 작고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고독의 시인'이라 불리우고 있다.
또한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서정적 토운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비가시적 세계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김현승 시의 미감을 형성하는 가장 큰 요인이며, 시의 구조를 조직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시인 특성론』: 국학자료원, 2000
≪참고문헌≫ 김현승, 『김현승 시선집』, 서울 : (주)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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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1934년 시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때 당신들은'
광주광역시의 무등산 자락에 있는 김현승 시비 김현승(金顯承, 1913년 4월 4일 ~ 1975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다형(茶兄)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기독교 정신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하여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었다. 생애 개신교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평안남도 평양 출생이며 제주도 북제주와 전라남도 광주에서 성장하였다.(출생지는 평안남도 평양이며, 일곱 살 때부터 전라남도 광주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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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가을의 기도 2013.7.29 다형 김현승 전집 2012.9.20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2008.10.20
김현승 시전집 20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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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의 작품시기를 중심으로
Ⅰ. 서 론
다형(茶兄) 김현승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에 충실했으며 그 신앙에 회의하여 신을 떠나 고독의 세계에 빠져 인간 중심주의의 강렬한 도덕의식을 시화하기도 했다. 양심과 신앙 속에서 시작생활을 했던 김현승은 이 지상에 60여년 머무는 동안 270여 편의 시와 1권의 산문집을 남겼다. 그의 시작생활에서 양심적이라 함은 그의 생활에 있어서 인간 중심의 사고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요, 신앙적이라 함은 누구보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심성을 시화했음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김현승에게 있어서 어느 한 면의 극단적인 강조나 배제의 관계가 아닌 때론 상충하고 때론 병행하면서 시화하고 있는데, 이 관계에 대한 고찰은 김현승 시정신의 맥락을 살피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세계의 중요한 특질로는 신앙의 시, 기도의 시, 고독의 시, 견고의 시, 도덕의 시라는 점으로 지적되고 집약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시에 나타난 정신사적 맥락을 살핌에 있어 양심과 고독이라는 언어로 대표되는 인간적 사고의 삶, 참회와 신에 대한 찬미로 대표되는 종교적 사고의 삶과의 관계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시와 삶속에 나타난 이 두 가지 요소의 변증법적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정신사적 면모를 파악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일제식민지 치하의 어둠과 해방 후의 혼란을 거쳐 오면서 일관되게 정직, 청결, 고독, 엄격성 등을 기반으로 한시적인 삶과 인간적 삶을 통해 인간 본질에 관해 어느 시인보다 끈질긴 탐구를 보여 왔음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현승의 일생을 통한 시적 작업을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신중심의 세계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그 중심의 위치에 따른 시인의 삶과 시정신의 변모를 알아보기로 한다.
Ⅱ. 김현승의 시세계
1. 제 1기 -- 초기 김현승의 시세계
이 시기는 김현승의 문단 데뷔부터(1934) 1937년 절필하기까지 씌어진 시들로 이루어진다. 『새벽교실』에 묶어진 시편들로 시대적 불행에 대한 인식과 이를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의 서정으로 노래한 시기이다. 이것은 당시 기교에 머물던 모더니즘의 시풍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김현승 만의 독특한 인간 중심적인 시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김현승의 초기시를 살펴보면 새벽에의 기다림과 새벽을 의인화시켜 형상화한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은 그의 초기 시 전편에 흐르는 비관적 현실인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표적인 시로서는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새벽’ 등을 들 수 있다.
[작품1.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제 3연]
위의 시는 일제치하 암울한 현실을 연상시키는 시어로 당시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말해주고 있다. 1930년대는 국제적으로 파쇼독재가 강화되던 시기며, 국내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의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시발인 만주사변을 계기로 20년대 문화정책이 더욱 강화된 무단정책으로 부활되던 시기였다. 일제의 노골화된 식민정책에 대한 반항할 수 없는 이 시기는 이 땅의 젊은 시인으로 하여금 현실도피적인 경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작품2. ‘새벽’]
작품 1에서 보여 지는 현실인식의 어두운 그림자를 작품2에서는 현실극복에의 갈망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시에서 새벽은 의인화라기보다 인격화되어 있다. 새벽이 비유의 대상에서 나아가 인격을 부여받은 시인 자신과 정서적인 일체감으로 나타난다. ‘새벽’, ‘아침’등 시사적인 언어를 통해 내일의 세계에 대한 희망적 함축을 노래하고 있다. 새벽, 아침, 햇발, 축복, 종달새 등의 시어는 자연을 나타내는 시어에서 나아가 시대적 의미를 지니고 강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여기에 이러한 자연을 의인화 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소망이 간절하다는 것과 아울러 친근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김현승의 인간 중심주의는 일제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민족애로 연결되었고 그 시대적 불행을 극복하고 민족의 희원을 상징한 동경의 세계를 제시하기 위해 자연을 선택하였다. 이와 같은 시적 태도는 ‘새벽교실’이란 시를 비롯하여 그의 초기시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당대의 자연을 노래한 시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웠던 자연에의 몰입이나 자아상실을 그의 인간중심주의, 휴머니즘에 의해 극복하여 어디까지나 인간의 해석을 위한 자연을 시적으로 대상화했던 것이다.
2. 제 2기 -- 해방이후 시대적 전환기
제2기는 인간의 위상에 대한 질문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로 해방 이후부터 『옹호자의 노래』를 간행한 1963년까지의 시기이다. 물론 이 기간 중에 그의 처녀시집 『김현승시초』가 간행되기도 했지만, 김현승은 『김현승시선집』에서 이 시집속의 일부, 즉 해방 후에 쓴 시편들을 『옹호자의 노래』속에 묶어놓고 있다. 자연시를 통해 출발한 김현승의 인간 중심주의는 제 2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 시간 동안 ‘가을’을 소재로 한 많은 자연시가 ‘기도의 시’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시로 ‘가을의 시’ ‘플라타너스’ ‘가을의 기도’ 등을 들 수 있다.
[작품3. ‘플라타너스’]
이 시에서 보여지 듯 김현승에게 있어서 자연은 인간의 동반자적 관계, 즉 가을의 시간적 의미가 죽음을 통해 순수함을 회복하는 것으로, 정신의 한 극점으로서의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신의 세계로 지향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자연은 과거의 인간적 삶의 희망을 의미하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적 사람의 본질을 밝혀주는 대상이 되고 있다. 우선 이 시에서 자연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나무’와 시적 화자인 나와의 내적 대화를 듣게 된다. 이 대화가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은 나무의 인격화, 즉 자연의 인격화에 따른 친밀성이다. 이런 친밀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1연과 2연에서와 같은 자연의 예지와 침묵 속에 드러난 사랑의 참뜻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김현승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기본정신과 기독교정신의 조화로운 관계에서의 시적 형상화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자연은 신의 은총이 구체화된 형상이고 인간이 신성을 파악하는 구체적인 매개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신성에 대한 간구한 기원이 현실적 삶의 문제와 결부될 때 그의 시는 사회현상에 대한 가열찬 도덕의식과 함께 인간성의 회복, 양심의 절대성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나타남을 보게 된다.
[작품4. ‘가을의 시’]
자연시 중에서도 ‘가을’을 소재로 한 시가 어느 시인보다 많은 것이 김현승 시의 한 특징이기도 한데, 거의가 경건한 ‘신성의 시’이다. 김현승의 ‘가을’ 시편들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와 더불어 ‘옹호자의 노래’ ‘양심의 금속성’ ‘신성의 자유’ 등에서는 강렬한 현실인식 혹은 현실참여의 음성으로 그의 시가 변조되고 있기도 하다. 즉 사회의 부조리나 왜곡된 삶 앞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인간수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기본정신이 시의 전면에 드러난 현상으로 그의 시세계의 기본바탕이 인간중심에 놓여 있음에 대한 확인이었다.
3. 제 3기 -- 고독의 탐구
제 3기는 『견고한 고독』『절대고독』의 두 시집이 간행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 1기와 제 2기 에서는 암묵적으로나 신앙을 전제하고 시작활동을 했으나, 제 3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앙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고독’의 세계로 침잠하게 되며 이러한 고독의 추구결과 ‘견고’한 것들에 대한 지향성을 보여준다. 신의 상실은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런 점에서 제 3기의 시는 신성 속에서 인간에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구체적인 움직임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로 나타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로는 ‘인간은 고독하다’ ‘제목’ ‘견고한 고독’ ‘절대고독’ ‘고독의 끝’ ‘보석’ ‘검은 빛’ ‘시의 맛’등을 들 수 있다.
[작품5. ‘절대고독’]
‘고독’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권이다. 이 시에서의 고독은 절망적인 고독이 아니다. 이를테면 ‘부모 있는 고아와 같은 고독’이며 ‘고독을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도 가장 즐거운 시 예술의 활동이며, 윤리적 차원에서 참되고 굳세고자 함이다’라고 김현승은 말하였다. 그는 서구적이며 기독교적인 시인이다. 그런데 고독을 추구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는 신앙과는 별개로 노경의 경지에서 인생을 재발견하려는 집요한 추구가 ‘고독’으로 집약된 것으로 보인다. 제 2기에서 자연과 인간, 사회와 인간의 관계가 중심적으로 나타났음에 비해 제 3기에서는 시인 자신의 내면세계로 침잠하고 또 인간본질의 문제에 대한 시적 형상화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유일신에 대한 부정과 신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고독에로의 방향전환으로 나타났다. 즉, 신을 부정하고 난 뒤의 고독으로, 이 고독이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은 것은 양심적인 삶의 태도와 자아보존의 기능으로서의 견고성은 지향하면서 이를 인간의 본질인 ‘자유’를 향한 순수의지에로 승화시키려는 그의 노력 때문이었다. 이것은 기본정신과 기독교정신의 관계로 보아 둘 사이의 변증법적 지양의 궁극, 인간본질을 향한 탐구정신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4. 제 4기 -- 고독극복, 신에로의 귀의
제 4기는 1973년 그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난 뒤의 시세계를 의미한다. 『날개』와 『마지막 지상에서』에 수록된 시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 시들은 지금까지 그가 수록해왔던 인간 중심의 세계가 아닌 ‘절대신앙’으로서의 기독교에로의 귀의와 신을 통한 구원에의 간절한 몸짓이 담겨져 있다. 신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통해 추구하던 고독의 가치가 일시에 허물어진 다음에 쓴 ‘마지막 지상에서’라는 시는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구원에의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로서는 ‘절대신앙’ ‘촌 예배당’ ‘나무’ ‘생물’ ‘부활절에’ 등을 꼽을 수 있다.
[작품6. ‘마지막 지상에서’]
이 시에서 시상은 ‘지평선’과 ‘무덤’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절대고독’의 시편들에서 보이는 무덤과 지평선의 이미지와도 상통하는 것으로 그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던 시어의 하나였다. 제 4기에서는 시정신이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시적 형상화의 노력에 비해 시적 성과가 뒤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적 평가 이전의 문제로 단순한 신앙의 수락이 아닌 신앙과 고독사이의 치열한 대결과 고뇌가 내포된 후의 결과, 즉 인간본질의 참다운 태도로서의 변화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Ⅲ. 맺 는 말
김현승의 시세계를 인간중심적 기본정신과 신 중심적 특수정신과의 치열한 상호갈등과 침투의 과정이라는 맥락 속에서 살핀다면, 그의 최후의 변모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자체 내에 포함한 매우 풍부하고도 구체적인 절대정신의 자기 회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서는 시와 철학과 종교가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통일이 단지 논리적인 조작의 결과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급작스런 질병에 의해 쓰러진 인간으로서의 시인의 감투적인 시적 모색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한국시가 김현승에게 진 빚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김현승의 시세계를 인간중심의 기본정신과 이의 확대와 심화가 특수정신인 기독교 정신과의 상호 연계 속에 드러나 있음을 논했다. 이와 같은 결론은 김현승의 시세계를 기독교 정신의 구체적 발현이라는 전제에서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인 정신과 신 중심적인 정신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얻어진 것이며, 이와 병행하여 각 시기별 시적 주제와 시 정신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그의 시를 해석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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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의 시세계(시대적인 개별적 접근 - 작품 중심의 시대적 접근)
(1) 제 1 기 - 초기 김현승의 시세계(일제시제)
【작품 1-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작품 2 - 아침】
【작품 3 -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2) 제 2 기 - 시대적 전환의 시기(광복에서 1960년대 초반)
【작품 4 - 플라타너스】
【작품 5 - 양심의 금속성】
【작품 6 - 가을의 기도】
(3) 제 3기 - 고독한 시인 김현승(1960대 중반 이후)
【작품 7 - 제목】
【작품 8 - 절대고독】
【작품 9 - 고독의 순금】
【작품 10 - 파도】
【작품 11 - 눈물】
(4) 제 4 기 - 고독의 극복(1970년대 초반)
【작품 12 - 마지막 지상에서】
【작품 13 - 절대신앙】
【작품 14 - 아버지의 마음】
【작품 15 - 신년기원】
【작품 16 - 부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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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의 시세계(시대적인 개별적 접근 - 작품 중심의 시대적 접근)
(1) 제 1 기 - 초기 김현승의 시세계(일제시제)
김현승의 30년도 초기 시는 일제 식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연을 예찬하고 동경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이 짙게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무렵 나의 시에는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 이점 또한 그 당시의 한 경향이었다. 불행한 현실과 고초의 현실에 처한 시인들에게 저들의 국토에서 자유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은 거기서는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자연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흉악한 인간-일인들과 같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고, 지상에서 빼앗긴 자유를 광대 무변한 천상에서 찾는 의미로 함축되어 있었다.』
김현승의 이와 같은 진술은 30년대가 망국민족이라는 일제하의 암울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자연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로맨티시즘이나 센티멘탈리즘으로 나타낸 것이다. 불행한 현실 아래에서 자유롭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고 그 자연을 통해서 민족의 염원이나 미래의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 있어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현실극복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가장 친근한 존재였던 것이다.
결론 (김현승의 시세계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지금까지 김현승 시 세계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김현승의 시에 나타나는 '고독'에 대해 이제까지 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것은 대부분 김현승 시인이 지닌 개인적인 고독 혹은 종교적인 차원의 고독이라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중략)
제 1기에서는 일제하의 어두운 현실에서 망국민족의 희원을 자연을 통하여 제시, 민족적 로맨티시즘과 센티멘탈리즘으로 노래했다. 제2기에서는 해방이 후부터 도덕과 윤리의 회복을 위해 양심과 생명을 줄기차게 기도하면서 신을 추구하였다. 제 3기는 유일신에 대한 부정과 신앙에 대한 회의로 고독에 빠진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고독은 실의와 허무가 아니라 철저한 자아탐구인 순수의 '견고한 고독'이다. 마지막으로 제4기에서는 '회개'로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와 구원의 신념을 갖는다. 그리고 작고하기 까지 신에 몰두한다. 김현승은 초기부터 신앙의식을 기본으로 하여 관념어와 종교적 언어로 시를 썼다. 그러나 그가 일생 동안 인간 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고 시를 썼기 때문에 그것이 꼭 종교시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구나 그가 보여준 주지주의 와 이미지즘은 한국시사에 큰 성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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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현승님의 눈물을 공부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 올립니다.
이 시가 정말 어렵더라구요;;수업만 들을 때는 쉬워 보였는데;;
1) 이 시의 주제를 보니까 [순수한 삶의 추구와 생명의 심화]또는
[순수하고 진실한 삶을 추구함]뭐 이런 식으로 되어 있던 데요, 제 생각엔 이 시의
주제에 [신(또는 절대자)]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이유는, 눈물이 의미하는 것을
순결한 생명, 절대적 순수함, 최고의 가치, 영속성이라고 할 때 이 눈물-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을 경험하게 해 주신 분이 하느님이시잖아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화자는 값진 가치를 경험 할 수 없었겠죠.
(아들이 죽은 것에서 값진 가치라;;좀 이상하긴 하지만...)
끝 부분에서 화자는 눈물을 경험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는데
이런 것으로 볼때 이 시의 주제에는 하느님에 대한(신에 대한) 감사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이 틀렸다면 그 이유를 가르쳐 주세요/.
2)모 문제집(즐X찾기 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언X영역 종X편;/)
(가)눈물 (나)봄은 (다)그릇1 을 놓고 문제가 나오던데요
문제 보기에 이렇게 나와 있었거든요
[가,나,다 모두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소망과 신념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 보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이유가 단지 "소망과 신념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라고 하시던데,
눈물 1연에 보면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 이고저" 할때
순결한 생명에 대한 염원이 드러나 있잖아요//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3)이 시에서는 눈물을 웃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럼 이 시에선 기쁨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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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
1)‘신에 대한 감사’는 너무 부분에 치우친 것 같습니다.
주제는 전체적인 것을 포함하므로,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영혼의 기원(순결한 삶의 추구) 정도로 보면 좋겠습니다.
2)‘눈물’에서 소망이 드러났다는 학생의 언급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릇1]이 균형이 깨진 사고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으므로 전체 작품의 공통점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3) 눈물과 웃음의 관계에서, 화자는 [슬픔을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케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화자는 종교적 경지에서, '웃음'이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라면, '눈물'은 생명을 거듭나게 하는 신의 은총과 같은 '열매'라고 여김으로써 슬픔을 극복해 내고 있다. 반드시 기쁨을 부정적(대립적으로)으로 보기보다는 슬픔의 상대적인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보충학습] 오세영 [그릇1]
오세영은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존재의 상처와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세상에 버려진 고독한 존재라는 것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일찍이 김춘수에 의해 제기된 것이지만, 김춘수가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릴케류의 서양 철학을 통해 탐구했다면, 오세영은 그 고뇌를 '무명(無名)'이라는 동양적 진리를 통해 탐구한다. 여기서 '무명'이란 본질적인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인 번뇌와 아집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이 무명의 상태에서 깨달음을 통해 존재가 본래적으로 지향해야 할 영원성과 무한성을 찾아가는 노정에 놓여 있는 한편, 존재의 깨달음을 얻은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양식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절제와 균형의 미덕이라는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담고 있는 형이상학적 작품이며, 근대적 이성주의라 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삶과 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수용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팽팽하고 긴장된 힘으로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그릇'이 '빗나간 힘'에 의해 '깨진 그릇'이 되었을 때, 그것은 아무것이나 베어 넘길 수 있는 무서운 '사금파리'의 '칼날'이 되어 그 내부에 감추고 있던 긴장된 힘의 본질 날카로운 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릇'은 조화롭고 질서 잡힌 '원'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매우 불안하고 긴장된 형태로 자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사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단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 본래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이 시는 바로 그 같은 편향된 사고 방식이 가져올 수 있는 획일화된 이념, 사상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깨진 그릇'에 비유하여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그릇'이 절제와 균형이 잡힌 합리적인 세계라면, '깨진 그릇'은 절제와 균형이 무너진 비합리적인 세계가 되며, 그러한 왜곡된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맹목의 사랑'을 강요하는 매체가 바로 '칼'인 것이다.
처음엔 조화롭고 균형 잡힌 '원'의 세계인 '그릇'이었지만, 그것이 깨어질 때, '원'이 주는 원만한 세계는 마치 '칼날'과 같은 예리한 무기가 지배하는 기형적(畸形的) 세계로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잘못된 세계는 사람들에게 단선화된 이념만을 강요함으로써 정상적인 삶을 구속하고 억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에서 '그릇'과 같은 모나지 않은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시인의 중용적 생활 자세와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 의지를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