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눈 속에서도 봄빛이다.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에 따뜻한 봄기운을 쬐고 싶다면 꽃 중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매화를 찾을 일이다. 바람결에는 아직 찬 기운이 묻어나지만, 저기 활짝 핀 매화 한 송이는 강한 봄의 온기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어딘가에, 분명하게, 봄이 왔다는 작은 신호탄인 셈이다. 예로부터 선비는 매화를 사랑했다.
임종 직전의 퇴계가 "저 매화에 물 주라(命淮盆梅)"고 말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잎이 적고 가지가 곧으면서도 우아한 자태가 매화의 첫째 매력이고,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용기가 그 다음 매력이다. 지조 있고, 고결한 선비의 기상을 담아내기에 손색이 없는 모양새. 그래서 매화의 꽃말은 '고결·결백·깨끗한 마음·인내' 등의 순결한 단어 일색이다.
서너 송이 매화가 봄의 희망을 상징한다면 활짝 핀 매화의 군무는 천 리까지 퍼지는 향기를 의미한다. 꽃구름처럼 황홀한 자태도, 가슴 깊이 스며드는 매화의 향이 더해질 때에야 비로소 빛이 나는 법이다. 순천 선암사에서는 일주문 밖에서도 그 향기로 매화가 피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본 한 화백은 자신의 매화 그림 옆에 '꽃일랑 보질 말고 천 년 향기 보옵소서'라는 간절한 시 한 구절을 적어 넣었다. 매화의 겉모양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그 깊고 은은한 향기는 전할 길이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다. 맑은 달밤, 시리도록 푸른 달빛과 차가운 밤 공기 사이로 은은하게 피어나는 매화의 향은 상상만으로도 온몸 저릿한 서정을 준다.
이른 봄, 매화를 찾아 나서는 길은 바로 남으로 떠나는 여행길이 된다. 무더기로 핀 매화의 향연을 감상하려면 섬진강으로 가거나 해남 땅을 찾아야 한다. 매화가 피는 가장 북단이래야 경상북도 울진이 끝일만큼 매화는 남쪽의 꽃인 때문이다. 덕분에 꽃구경은 봄마중이 되고, 매화를 보는 그 순간부터 겨울이 끝났음을 실감할 수 있다. 섬진 매화마을에서는 매화나무 아래에 보리를 심어 한층 봄 느낌을 강조했다. 매화가 만개하는 3∼4월 동안, 매화나무 아래로 파릇한 보리 싹이 도드라지면 아무리 코끝에 찬바람이 스쳐도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 마음에 봄이 깃든 탓이다.
매화는 눈으로 보고 말 것이 아니라 꽃대궐 속을 거닐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바람을 타고 꽃비가 되어 내리는 꽃잎 세례를 맞아 보아야 그 진짜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마치 눈이라도 내리듯 황홀한 장관이 펼쳐지면 누구라도 설레는 맘을 감출 길이 없어 만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한 폭의 풍경화 속에 빠져든 느낌이랄까.
그래서 매화를 좇아 여행하는 것을 '탐매(探梅)여행'이라 한다. 누구나 그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으니까. 한 해 동안 매화꽃이 머무는 시간은 겨우 보름뿐. 부지런한 사람만이 매화의 황홀경을 맛볼 수 있다. 봄이 매화를 만들고, 매화가 다시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곳으로 한달음에 내달려 보자. 눈도 코도 만족하는, 후회 없는 봄마중이다.
1 섬진 매화마을을 찾은 상춘객들. 어깨 너머로 섬진강이 넘실거린다.
강·산·매화의 그림 같은 조화 섬진 매화 마을
맑고 깨끗한 섬진강이 굽이도는 백운산 기슭에 있는 마을. 20여 리에 걸쳐 피어나는 하얀 매화꽃이 푸른 강과 함께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이 마을의 김오천씨가 1931년에 일본에서 들여온 매화나무 5,000그루가 오늘에 이른 것. 며느리 홍쌍리씨가 '청매실농원(061-772-4066)'을 열어 매실 전파에 힘썼다. 이곳의 매화는 백매(白梅)가 대부분으로 3월 중순이면 만발해 산허리에 흰구름이 휘감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청매실농원 내에 가지런히 놓인 2,000여 개의 매실 항아리도 볼거리.
개화시기: 3월 8일∼3월 중순(3월 중순에 만개) 광양 매화축제 3월 8∼16일, 광양시청 문화관광과(061-797-2322)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 I C - 전주에서 임실을 거쳐 남원으로 - 구례에서 19번 국도 타고 직진 - 간전교 건너 861번 지방도 좌회전해 우측
주변 맛집: 동흥식당 재첩국, 재첩회가 봄의 입맛을 살려준다. 055-884-2257 / 재첩국 5000원, 재첩회 2만∼3만원
2 보해매실농원. 만발한 매화 속을 거니는 사람들.
최대 규모, 다양한 품종의 자랑 보해매실농원
해남 보해매실농원은 무려 14만 평에 달하는 그야말로 '꽃천지'. 매화의 종류도 다양해서 다섯 가지 색의 매화를 구경할 수 있으며 동백꽃이나 들꽃 등 매화 이외의 꽃도 가득하다. 이곳은 '보해양조(주)'에서 매실을 생산하기 위해 조성한 농원. 자유롭게 자란 매화의 자연미로 이름 높다. 미풍에 실려오는 매화의 향기는 일대를 온통 감쌀 정도. 사람이 많이 몰려도 끄덕없는 큰 규모가 자랑이다. 도시락을 준비하면 매화꽃 아래에서 먹을 수도 있다.
개화시기: 3월 중순∼3월 말(3월 23일경 만개). 보해매실농원 061-532-4959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 목포 대불공단 - 영산강 하구언 지나 영암호 방조제에서 산이면 방향 806번 지방도로 좌회전 - 초승리 지나 우측
3 선암사 들어가는 길. 4 선암사의 고매(古梅). 가지의 굵기부터 다르다. 5 섬진 매화마을 내 '청매실농원'. 2,000여 개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600년 된 고매(古梅)의 수려한 향기 선암사
전남 순천에 자리한 고찰. 굳이 매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절의 생김이 고와서 사시사철 인기 있는 곳이다. 이곳의 매화는 400∼600년 된 것들이 대부분으로 향이 깊고 빛깔이 아름다워 매화 중에서도 '명품'에 속한다. 3월 중순이면 백매와 홍매가 조화롭게 활짝 피면서 사찰 지붕이 온통 꽃구름으로 덮이고, 경내에는 꽃향기가 가득하다. 매화를 아끼는 스님들은 꽃잎을 따서 잘 말렸다가 손님에게 차를 낼 때 차 위에 띄우기도 한다고. 꽃도 좋고, 절도 좋고, 두루두루 좋은 봄나들이 명소다.
개화시기: 2월 말∼3월 초(3월 초에 만개). 선암사 종무소 061-754-5247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선암사 IC - 낙안읍성 방면 857번 지방도로 우회전 - 우측에 선암사 이정표
주변 맛집: 국일식당 꼬막, 토하젓, 굴무침 등 30여 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이 맛있다. 061-857-6420 1인분 8000원
6 송광설중매원 매화.
순수 토종 매화의 한결 같은 미소 송광설중매원
경북 칠곡군에 자리잡은 매실 농원. 7,000평 규모에 700그루의 매화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규모는 다른 곳에 비해 작지만 순수한 토종 매실이라 꽃들이 야무진 느낌이다. 영남대학교 교수였던 권병탁씨가 송광사에 들렀다가 500년 묵은 고매의 매실을 주워 온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날 농원을 설립하게 됐다. 그래서 이름도 '송광' 설중매원. 백매와 홍매가 골고루 섞여 있으며 역시나 향이 깊고 은은해서 인기다. 생산되는 매실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개화시기: 3월 20일∼4월 10일(3월 말에 만개). 송광설중매원 053-254-8688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왜관 IC - 경북과학대학 이정표 따라 직진 - 동국대교 건너면 바로 우측으로 기산면사무소 지나면 나온다.
주변 맛집: 양반고을 오리고기 전문점. 기름기를 뺀 오리훈제의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054-971-3001 오리훈제 4만원
우리나라에서 제일긴 면으로 이름난 다압면은 백운산과 지리산 계곡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을 경계로 경남 하동군과 마주보며 하얀모래 파란 물과 어울린 그 자락에서 화신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다. 산아래 둔덕과 산자락에 심어진 매화나무에서 꽃이 만발하면 섬진강 주변은 온통 하얀 매화꽃 구름과 향기에 휩싸인 그 모습은 선경이다.
섬진마을이 있는 다압면은 강변의 백운산 아래 산자락에 있다. 여기서 매실농사를 짓는 가구는 800여호 중 약 70%정도. 그 중심은 ‘삼박재’라 불리는 자그만 골짜기의 섬진마을이다. 섬진마을 사람들이 매화를 심기 시작한 것은 30여년 전이며, 지금은 이 마을 70여 가호 중 60여집이 매화나무를 키운다.
매실의 수확철은 6월이고, 마을 건너편 북쪽이 화개장터, 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고향 평사리다. 섬진강의 봄 소식을 가장 먼저 느낀다는 섬진마을. 이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들의 합창소리에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라는 표현을 쓴다.
■ 교통안내
- 광주, 순천,여수권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옥곡IC에서 부산과 마산, 진주권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 IC에서 빠지면 당일코스로 가능하다. - 서울과 중부권에서는 하루쯤 묵어올 준비를 해야 하는데, 호남고속도로를 계속 타는 것보다는 전주IC에서 남원-구례를 거쳐 들어가면 더욱 편하다. 전주 IC-남원-구례-화개교. 114km (1시간 30분~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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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산으로 광양시의 옥룡면, 다압면, 봉강면, 진상면에 걸쳐있다. 주산인 백운산은 서쪽으로 도솔봉(1,053m), 형제봉(1,125m), 동쪽으로 매봉(867m)을 중심으로 한 남쪽으로 뻗치는 4개의 지맥을 가지고 있다.
경관이 빼어나고 등산코스가 완만하여 가족과 함께 당일 등반이 가능하며, 철쭉꽃이 피는 억불봉에서 정상까지의 등반로에서 경관과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한려수도와 광양만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울창한 원시림을 끼고 돌며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은 백운산의 4대 계곡인 성불계곡, 동곡계곡, 어치계곡, 금천계곡으로 흘러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옥룡면 동동마을 등지에서 채취하는 고로쇠 약수는 신경통, 요통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약수제가 있는 초봄 경칩 무렵에는 약수음용을 위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제1코스 : 동동마을→ 백운산수련장→ 억불봉→ 정상→ 진틀마을 - 소요시간 : 6시간 30분(16Km)
제2코스 : 선동마을→ 백운사→ 상백운암→정상→ 진틀마을 - 소요시간 : 5시간(12Km)
제3코스 : 진틀마을→ 삼거리→ 정상→ 신선대→삼거리 →진틀마을 - 소요시간 : 4시간(10Km)
제4코스 : 논실마을→ 한재→ 정상→삼거리 →진틀마을 - 소요시간 : 4시간30분(11Km)
■ 교 통
- 광양읍 터미널- 옥룡면 답곡 방향, 시내버스 1일 15회, 소요시간 50분
■ 주변관광지
- 옥룡사지동백림, 중흥사, 백운산자연휴양림, 백운사, 동곡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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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에서 발원하여 550리 물길을 광양만에서 마무리짓는 섬진강은 맑은 물 수려한 경관과 함께 강 주변에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이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맑은 강이며 전남북과 경남의 주변고을에 양질의 식수와 농업 공업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는 영호남의 젖줄이며, 관광지와 드라이브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은어, 참게, 누치, 갱조개가 사는 마지막 맑은 강 섬진강은 5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중 가장 맑고 주변 생태계가 살아있어 마지막 남은 맑은 강으로 꼽힌다. 특히 여름부터 늦가을 까지 전국 강태공들의 낚시터로 유명하다.
강 좌측에 지리산, 우측에는 마이산 - 내장산 - 무등산 -사자산 -조계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ㄷ"자모양의 산줄기인 호남정맥에 둘러싸여 맑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청정물고기의 대명사인 은어와 누치, 참게가 살고 있으며, 강 하류 지역에서는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갱조개(재첩) 민물장어, 백합이 잡히고 있어 강의 수질이 맑고 생태계가살아있음을 증명해 준다.
■ 오시는 길
- 국 도 : 구례(간전교)-금천계곡-매화마을-망덕포구 - 국 도 : 하동 갈사리(섬진대교)-광양시 태인동-망덕포구-매화마을 - 고속도로 : 광양진월 -망덕포구 -매화마을 -금천계곡 - 구례 - 고속도로 : 하덩전도 - 하동읍(섬진교)-매화마을
■ 편의시설
- 금천계곡 매화마을에 민박, 망덕포구에 여관소재
■ 주변관광지
- 금천계곡, 매화마을, 느랭이골자연휴양림, 배알도유원지, 광양제철소, 컨테이너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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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자 : 金 宅 坤 (82세 다압면 고사리 )
조사일 : 1983년 1월
조사자 : 광양 유학회
옛적에 선비가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디 질은 험허고 밤이 짚어 인가를 찾을라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질을 못찾꼬 밤은 어둔지라 보니 바구가 큰 것이 있는기라 그 바우가 용소 바구라. 한참 자는디 꿈에 그 바구신인 큰 용이 나와서 그 바우를 지나간시롬 그 아래에 있는 꼬랑댕이로 둑을 무너띠리고 지나자 둑이 둥둥 떠나가는기라. 그러면서 그 용이 선비에게 과거 시험 문제를 가르켜주는기라. 그리하야 그 선비가 과거에 급제했다해서 용소 또는 용 무쟁 이라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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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압면 도사리 섬진마을 (일명 매화마을)에 위치한 섬진나루터에는 섬진강 이름의 유래가 된 두꺼비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말에 왜구들의 노략질이 극심하였는데 한 번은 왜구들이 강 하구로부터 침입해 오자 진상면 섬거에 살던 두꺼비 수 십만 마리가 섬진나루터로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물러갔다. 또 한 번은 강 동편에서 왜구들에 쫒기운 우리 병사들이 섬진나루 건너편에서 꼼짝없이 붙들리게 되었는데 두꺼비 떼들이 강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놓아 우리 병사들을 건네주었다. 뒤쫒아 온 왜구들도 두꺼비 등을 타고 강을 건너던 중 강 한가운데에 이르러 두꺼비들이 그대로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려 왜구들이 모두 빠져죽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때까지 다사강 모래내 두치강 등으로 불리우던 이 강을 두꺼비 "섬"자를 써서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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