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윤회하는가?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새로운 몸을 찾아가는 것을 윤회라 하는데..
아트만을 부정하는 불교에서는 과연 무엇이 윤회하는 것인가?
이것은 분명 문제가 되고 논란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데..
나는 그런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로 무아와 윤회를 한 솥에 넣어 요리하려다 생긴 문제점으로 본다.
해서 불자가 윤회를 대할 때는 무아와 윤회를 섞이지 않도록 테크닉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
1. 먼저 인도에서는 불교를 알기 전에 아트만이나 그 비슷한 게 윤회한다고 믿고 있었다.
석가 부처님의 출가 동기가 생노병사의 苦 해결이라 하는데. 그것은 윤회하는 삶에서 벗어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힌두교인이 아니더라도 윤회에 대해
내가 윤회하고 그 업보는 내가 받는 것으로 알고 있듯이.. [나]가 무엇인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몸이 죽어도 죽지 않고 남아 다음 몸을 찾아가는 [나]가 있다고 믿었다.
곧 윤회는 5온의 주인인 [나]가 있고, 그 작자가 한다고 아는 게 된다. 그리고 불자라 하더라도 재가자의 대부분은 윤회를 그렇게 알고 있다.
2. 그렇게 알다가 5온의 주인인 나나 5온 안에는 나가 없다고 알면 무엇이 윤회한다고 알아야 하는가?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고 하듯이..
업이 윤회하는 것으로 알 게 된다. 이제 많은 불자들이 [자아 윤회]를 버리고 [업보 윤회]를 알고 있는 데 그 의미는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업보 윤회에는 자아가 없다. 자아가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에이는 내가 죽어서 어떤 몸으로 태어났을 때 거기에 에이였던 나는 없다는 것이다.
사건 하나를 보자.
어린이가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라면 어찌 함부로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루쥐타오는 아들이 백정 룽씨를 아주 두려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번 룽씨를 보기만 하면 울부짖으며 기를 쓰고 집으로 도망갔다. 시간이 오래 되자 마을 사람들은 이 일이 수상하다고 여겨 남자아이에게 그 원인을 물었더니 아이는 여전히 그의 전생에 자신이 외할아버지 집에서 키우는 흰 돼지었는데 룽씨가 사다가 자신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에서는 에이(=흰 돼지)가 다음 생 비(=아들) 에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저 사건은 1. 자아 윤회가 되는 것이지 2..인 업 윤회가 아니다.
업 윤회란 누가 돼지를 죽였다는 행위가 과거에 있었다면 그로 인해 죽인 행위와 죽은 행위로 인한 업보가 생긴다.
곧 살인한 업에 대해서는 살인한 업보를 받을 것이요, 살해 당한 업은 살해 당한 업보로 나타나지만 거기에 전생의 에이나 비는 없다. 오직 업과 업보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업윤회는 자아윤회보다 혼돈스럽고 책임이 불분명한 것으로 보이기에 범부들은 자아 윤회를 선호한다,
한편 업 윤회를 보면서
죽은 자는 후 생에 누구고 죽인 자는 누구라고 하게 되면 자아 윤회가 되며, 12연기법의 유전문이 되는 것이다.
유전문은 업 윤회 아닌 자아 윤회를 보야주는 연기법이다.
3. 만일 무아를 깨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업이란 주체가 있다고 여기는 경우의 행위를 말한다. 그러기에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는 것은 불교만의 독특한 주장으로 힌두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일 뿐이다.
그러나 힌두교나 자이나교가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 진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무아를 깨친 아라한은 업이란 말 대신에 행위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행위가 있지만 그에 의한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석가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를 이룬 이후 업은 더 이상 짓지 않았다는 게 된다. 다만 그 전에 지은 업에 대한 업보는 받아야만 되었다고 하면서.
그러니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는 말은 일견 논리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이는 데 그것은 바로 무아와 윤회를 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업보는 분명 작자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업보를 짓는 작자가 있는 세계는 12연기법의 유전문 세계가 되며,
작자가 없는 곳은 환멸문 세계가 된다 하겠다.
한편 환멸문이라 하여 그것은 유전문 세계를 벗어난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인가?
부처님은 출세간이라 하여 세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 머물고 있었느냐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부처님 역시 업보 세계인 유전문 세계를 벗어난 곳에 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