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정당추진회의 결성선언문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자본의 야만적인 탄압이 노동현장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매달려야 합니다. 한 달이 넘게 단식을 해야 하고, 천 일이 넘게 거리에서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노동자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정치적으로 엄호해야 할 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 낸 유력 정치인사들은 이제 노동자의 곁에서 멀어졌습니다. ‘노동’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았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노동정치는 시린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87년 이후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의 대통령 후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하고자 했던 과거의 모색에 비춰본다면 노동정치의 비참한 오늘이 가슴을 때립니다. 여기저기서 노동정치를 말하고 있지만 단지 입에 발린 수식어에 불과하거나 고립을 자초한 왜소한 모습일 뿐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방향이 없는 순진함과 맹목적인 헌신도 죄입니다. 현장에서 묵묵히 뒤를 받쳐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돌아 온 것은 노동정치에 대한 배신뿐입니다. 돌아보면 이 지경에까지 이른 데 대한 반성과 한탄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주위를 아무리 돌아봐도 차가운 겨울바람과 얼어붙은 땅 뿐이지만 여기에 작은 씨앗하나를 뿌립니다. 노동자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 갈가리 찢겨버린 현장을 볼 때 누구도 이 싹이 제대로 성장하리라 감히 단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만이 옳다는 독선이 아니라 누군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소명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정치가 세간의 비아냥거림거리로 전락해버린 지난 1년여 동안 우리는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이라는 다소 애매한 이름으로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 길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무너지고 찢긴 마음들을 하나로 모으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었습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보석 같은 동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치 혀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서 제대로 된 노동정치를 소망하는 동지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동지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오늘 우리는 노동자정당추진회의의 결성을 힘차게 선언합니다.
노동정치는 누구의 소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자본의 폭압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 노동이 가진 평등한 가치가 고루 펼쳐지는 사회를 꿈꾸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모든 동지들에게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우리는 몇몇 명망가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 중심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하게 그러나 우직하게 100년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이 길을 갈 것입니다. 이제 오늘 결성식을 시작으로 우리는 눈물을 거둡니다. 그 대신 더한 치열함으로, 냉철한 이성으로, 끝없는 헌신으로, 노동정치를 힘차게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거짓 진보정치의 망령을 걷어내고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먼 훗날 돌아보면 오늘 우리가 내디딘 이 첫발걸음이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될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함께 갑시다.
우리는 오늘 노동자정당추진회의를 결성하며 5대 방향을 아래와 같이 선언합니다.
1. 우리는 노동 가치와 노동자대중이 중심 토대가 되는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고자 합니다.
2. 우리는 과거의 낡은 관계를 뛰어 넘어 노동정치를 고민하는 다양한 그룹들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3. 우리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견지하는 새로운 사회질서 창출을 분명하게 지향합니다.
4. 우리는 현장투쟁과 지역운동, 녹색이 어우러지는 지역거점운동을 통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노동정치의 구조와 틀을 만들어냄으로써 노동자가 새로운 노동정치의 주체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5. 우리는 노동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확인하며 새로운 노동정치운동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노동정치의 토대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2012년 11월 10일
지역과 현장의 백년둥지, 노동자정당추진회의 결성식 참가자 일동
<추진회의 결성식 양경규 대표 발언>
저는 믿습니다.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917년 레닌은 스위스의 젊은 청년과 학생들을 모아 놓고, 이제 내 대에는 혁명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풀 죽은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납니다. 산전수전 겪었던 레닌도 민중의 역동성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운동이 새로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끝없이 추락해왔던 민주노조 운동과 새로운 노동정치에 대한 운동이 새로 시작하는 시기가 오고 있고, 그런 조건들이 충분히 성숙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레닌이 풀죽은 목소리로 연설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 싸워왔던 볼셰비키가 있었기에 러시아 민중들은 움직였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 진정한 노동정치의 꿈을 실현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현장으로 돌아가서 민중들과 함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의 정치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현장은 냉소적입니다. 무관심합니다. 다시 되겠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장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대고 몸만 대는 정치는 이제 그만하겠다고 우리는 수차례 얘기했습니다. 저는 여기 모이신 분들이 또다시 CMS 한 장의 만원의 회원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 운동의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바로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만원을 통해서 하는 정치가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한번 해보자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1917년에 레닌은 마흔 일곱이었습니다. 제가 올해 쉰다섯입니다. 저는 레닌보다 더 풀죽은 목소리로 얘기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운동에 대해 이제는 누구나 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지들, 만 원짜리 회원이 아니라 이 땅의 천만 명의 노동자를 조직하는 회원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람시가 써서 유명해진 말이 있습니다. 이성으로는 비관적이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성으로도 낙관적입니다. 지금 우리 운동에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도 지금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기고, 우리가 새로 일어날 수 있는 시기라고 믿고 있습니다.
동지들, 오늘 이 자리가 작게 한번 모여서 흩어지는 모임이 아니라, 우리 운동에 있어서 새 정치 새 진보정당 새 노동자정당의 출발이었음을 먼 훗날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 밀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