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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성서 해석학 (김보민 목사)
目 次
Ⅰ. 서 론
Ⅱ. 본 론
1. 칼빈의 신학에서 성서의 위치
2. 칼빈의 성서관
3. 칼빈의 성서 해석
1) 전제
2) 동기와 목적
3) 성서해석 방법
a. 명백한 간결성
b. 성서의 사고와 원저자의 의도를 탐색할 것
c. 성서의 배경 연구
d. 본문 자체의 순수한 의미 규정
e. 본문의 문맥 연구
f. 성서 말씀의 적용 범위
g. 비유 해석의 문제
h. 그리스도의 범위
Ⅲ. 결 론
참 고 문 헌
성서해석학
Ⅰ. 서 론.
칼빈이 기독교 강요를 저술할 때 그 요점이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를 요약해주려는데 있다고 주장했고 오직 성서를 통해서만 개혁 교회를 지도하려 했던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신학은 이른바 "말씀의 신학"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사상 세계에 접근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의 성서 이해를 먼저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j. Horoutunian이 비판했듯이 칼빈이 성서에 관한 많은 신학자들과 교회사가들의 탐구 노력은 불행스럽게도 그의 <기독교 강요>에만 의지하였고 그 주석들이 내린 결론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으로서 전지전능자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물론, 그 외형에 이르기까지 이를테면 그 문자 하나하나까지도 다 틀림이 없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성서의 모든 기록은 역사적으로도 정확하고 어느면으로 보든지 사실과 차이가 없으며 또 자연 과학적으로도 사실과 부합 하다고 맏는다. 축자 영감설과 성서 무오설이 지배하며 성서의 성격도 이 교리에 따라 규정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 아래 사는 우리가 종교 개혁자들의 "성서 원리"를 Sola Scriptura<성서만으로>라는 옛 부르짖음을 우리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그것에서 성서에 대한 우리 자세를 반성하는 일은 가장 긴급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칼빈은 성서의 권위 문제를 다루면서 성서의 권위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영감으로부터 왔으며 권위의 증거는 성령의 내적 증거와 성서의 자정력임을 역설적으로 취급하였다. 성서의 제일성을 "그리스도"에게서 찾았고 신. 구약의 차이점을 기능적인 면에서 즉, 선교 지속에서 두 소원의 차이를 발견했다. 여기에서 개혁자인 칼빈의 성서 원리가 무엇이며 칼빈이 성서 해석의 전제와 동기 및 목적을 설정한 후 성서 해석을 추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칼빈 신학에서 성서의 위치
"성서는 모든 신학의 기본적이고 첫째되는 자료요, 그 논리 구조의 표준이 될 뿐만 아니라, 성서에 대한 어떤 이해가 곧 신학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개혁이래 교회의 거의 모든 투쟁은 한 마디로 성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온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성서를 권위의 상좌에 둔다. 이것을 성서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17세기의 정통주의자들의 성서 문자주의와는 달리 칼빈이 강조한 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의 신학을 성서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교리와 신학이론이 철학적 사색이 아니고 오직 성서 말씀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말함으로써 중세 스콜라주의 철학과는 다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 그의 성서주의는 성서에 있는 교리적 교훈을 이를테면, 예정과 섭리와 같은 어려운 교리를 되도록 쉽게 설명하며 변증하려는 태도를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 잘 나타나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지식을 취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칼빈은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위하여 그의 "성서관"을 논하고 있다. 그의 성서관은 {기독교 강요} 제1권 6장에서 10장 까지에 기록되었는데 6장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성서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밝히며, 7장에서 9장 까지에는 성서의 정당성(Validity)을 논하고, 제10장에서는 창조되어진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과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일치하는가를 논하고 있다. "칼빈의 신학은 성서를 근거했고, 성서를 내용 자료로 했고 성서를 그 해석의 방법으로 했다. 그는 물론 위대한 조직 신학자이지만 이 조직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그가 투철하고 깊이 있는 성서신학자 임을 보여주고 있다."
2. 칼빈의 성서관
성서라고 할 때, 칼빈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말씀", "율법, 예언, 그리고 복음", "신화(The oracles of God), "너에게 선포된 말씀","하늘 교리에 관한 정문서(Vritter proof of the heatenly doctrine) 또는 경건의 원리 등등을 그 동의어로 사용한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from God), 도는 하늘 교리에 관한 기록 즉 "하늘로부터 온 것"(from heaten)이긴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을 통해서 즉 "인간의 선교를 통하여"(by the ministry of men)들려지기를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요구하시는 그런 성격의 것이라는 것이 칼빈의 입장이다. 즉 "……하나님의 뜻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되어야 하며, 그리고 그들의 입은 우리에게는 곧 유일한 참 하나님의 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3. 칼빈의 성서 해석
칼빈은 위대한 성서 해석가였다는데 어느 누구도 주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칼빈의 주석서들은 번역, 편집해 준 Joseph Hlaroutunian은 칼빈이 갖고 있는 성서 주석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휴머니스트로서의 그의 , 다른 성서주석들에 대한 한 지식, 개혁가와 교회인으로서의 통찰력, 그리고 그의 탁월한 성서 주석의 기술과 성서의 정신세계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그의 탁월한 성서 주석의 기술과 성서의 정신세계에 대한 파악력……. 이 모든 것은 그로 하여금 언제나 새롭고 놀랄 만한 주석가가 되게 한다". 그는 1540년, 나이 30세에 최초로 로마서 주석을 낸후, 그가 죽은(1564년, 55세)이후에 나온 최후의 주석서, 여호수아와 에스겔 1-20장(1565년)주석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2/3이상(21권)을 그리고 신약은 요한2,3서와 계시록을 제외한 전부(24권)을 주석해 낸 정열의 성서 학자였다. 또한 칼빈은 성서 주석의 핵심을 "교회의 교화"에 두었으며 교회의 유익을 위한 해석이었음을 강조했다. 그의 성서 주석은 "내 청중들의 현재적인 교화를 위해서"(for the present edification of my hearers)라는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주석들 중에서 그의 청중들이란 바로 신학생들만이 아니라 "교회"라는 것이 명백해 진다. 그는 어느 곳에서도 교회를 교화시키기 위한 대의를 잊은 적이 없다. 그럼 먼저 성서 해석학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본 후에 칼빈의 성서 해석을 고찰하려고 한다. "해석학(Hermeneytics)말은 원래 헬라어 동사 hermeneuo에서 파생된 hermeneutike란 말에서 나왔으며, 그 뜻은 특히 성서를 해석하거나 설명하는 과학 혹은 기술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 과학이란 사람 사이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있고 표현에 애매한 점들이 있어서 저자와 독자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차이를 제거함으로써, 저자가 의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성서 해석학은 신학의 중요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성서 해석학의 일차적 근본적 필요성은 이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성서에서 말씀하신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다. 성서 해석학의 이차적 필요성은 성서 기자의 생각과 현대인의 생각 사이에 간격을 잇는데에 있다. 성서 해석학의 이대 필요성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알자는 것과 성서 기자의 생각과 현대인의 생각을 분리시키고 있는 언어적,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간격을 잇자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분명하고도 참된 신앙을 가지기 원한다면 본문 비평과 역사적 비평학은 필수적인 성서학이다." 그러면 이제 칼빈의 성서 해석의 원리를 논술하고자 한다.
1. 전 제
칼빈의 성서 해석에는 기본적인 대전제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성서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루어진 신의 계시의 책이므로 성서의 진정한 해석자는 성령이라는 전제이다. 즉 성령의 내증의 도움을 받지 않는 성서 해석은 성서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서를 "사사로이"(벧후 1:20) 풀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사로운"해석의 금지는 결코 교황신복자들의 말하듯이 성서 해석의 권한이 교회의 의회에만 있고 개인에게는 없다는 의미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사사로운 해석의 금지"는 오직 성서의 예언이란 어디까지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탁이며 뿐만 아니라 이 신탁 역시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고서 비로소 선포된 것이기 때문에 해석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한 확인을 받을 때만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겸허한 복종이 전제 될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진정한 해석이란 성령의 내증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전제되어 있다 하겠다. 이러한 신앙이 전제되어 있지 않는 성서 해석은 축자주의, 인본주의 비복음적 학문주의 또는 괴이한 알레고리즘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성서 해석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탁에 대한 성령의 내증을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오류를 지닌 인간들의 저술에 의한 [책으로써의 성서]를 전제하면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성서 해석의 다양성을 찾아볼 수 있다. 칼빈은 성서 해석의 다양성을 받아 들였으며 동시에 성서속에 나타나는 필사자의 오류와 문자적 불일치를 성서 해석의 걸림돌로부터 제거하였다. 즉 그는 그가 발견한 "필사자의 오류"를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완전한 목적에 대한 신앙에 의하여 해소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서의 완전성과 필사자의 오류를 역설적으로 이해하였는데, 그의 성서 해석은 이러한 기초위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동기와 목적
칼빈은 성서 주석을 하고 성서를 해석한 목적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였으며 "교회의 교화"를 위함이었다. 칼빈은 말하기를 그의 성서 주석은 "내 청중들의 현재적인 교화를 위해서"( for the present edification of my hearers)라는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칼빈은 주석을 저작한 것이 교회의 목회자로서 자기의 텍스트를 어떻게 신도들에게 알리게 할 것인가 하는 목회자적인 동기였음을 볼 수 있다. "그때 당시 카톨릭 교회가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된 잘못된 기독교 이해는 다만 당시 성서 자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것을 신도들에게 알려주지 못하기 대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의 권위보다 성서의 권위를 더 높이고 이것을 일반 신도 대중으로 하여금 성서의 본문 자체의 뜻을 알도록 지도하기 위하여 성서를 주석 하였다"
3. 성서 해석 방법
Hans-Joachim kraus의 칼빈의 성서 주석에 대한 글을 참고하여 칼빈의 주석 방법을 이해하려고 한다. 크라우스(Kraus)는 칼빈의 성서 주석에서 여덟 가지의 해석 원칙들을 제시하였다.
a. 명백한 간결성
그는 시몬 그레뇨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들은 해석자의 최고의 미덕이 명백한 간결성(Perspicua breitas)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 편지의 다음 내용은, 곧 "명백한 간결성"이 서술의 최고 미덕만이 아니라, 해석의 결정적인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해석이 장황하고, 탑처럼 높이 쌓아 올리고 수레의 짐처럼 과중하게 적재된 내용들을 열거함으로써 성서 본문의 말씀을 왜곡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루터가 창세기 주석에서 "장식과 예증"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 알레고리를 칼빈은 엄격하게 추방하고 있다. 칼빈은 해석의 과정에서 쓸데없는 것을 제시하려고 할 경우에는 전혀 그런것이 들어설 자리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칼빈은 성서의 내용이 명백한 것과 같이 해석의 내용도 명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b. 성서의 사고와 원 저자의 의도를 탐색할 것
칼빈은 시몬 그레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것을 해석자의 "거의 유일한 임무"라고 표현했다. 곧 해석자가 설명해야 할 성서 저자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설명해야 된다는 것이다. 해석자는 이 범위에서 잘못된 발걸음을 더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 성서 저자의 의도를 밝힐 때에는 항상 그 저자의 독특한 언어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과정을 전제하고 있다.
c. 성서의 배경 연구
성서 저자의 의도를 적절하게 규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배경 (Circumstantia)을 연구해 내어야 한다. 역사적, 지리적, 제도적, 그리고 생호라 조건적인 사정과 성서의 저자가 말했던 환경을 연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에서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이해를 달리해야 할 표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위하여 칼빈은 모든 자료와 가능성들을 적용하고 있다. 칼빈은 자주 환경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본문을 해석하기 이전에 먼저 간략하게 내용을 묘사하는 논증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는 성서의 본문에서 전체적인 배경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성서의 구절과 단어에서도 그 역사적인 배경과 전통적인 과정을 해명하였다.
d. 본문 자체의 순수한 의미 규정
"이처럼 성서의 배경이 밝혀진 다음에는 저자의 의도가 명백히 인식될 수 있도록 어느 본문이나 해당 귀절의 순수한 의미(Sensusgenuinus)가 규명되어야 한다. 이 순수한 의미는 주요의미, 실제적인 의미, 단순한 의미, 또는 문법적인 의미라고도 불린다. 칼빈은 성서가 스스로 말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나 스스로 말하는 성서의 사용법에 따라 언제나 그 시대의 구체적인 이해와 현상적으로 참된 의미를 찾아내었다. 이점에서 '성서 자체가 스스로 해석한다'는 표현은 이미 잘 알려진 원칙이다.
e. 본문의 문맥 연구
어느 귀절을 해석할 때에 그 본문의 콘텍스트(context)를 연구하면 많은 해석학적인 어려움들이 해명되고 적절하게 정복될 수가 있다. 성서의 모든 부분들은 그 전체로서, "그 주변에 제시된 것들이, 곧 그 문맥이 신중하게 관철되어야 한다." 칼빈의 해석이 항상 본문이 전제적으로 지닌 표현과 내용을 연구하여 내려고 노력한 데에 바로 그 장점이 있다.
f. 성서 말씀의 적용 범위
성서 해석은 십계명의 성서적인 어의를 벗어나며, 어디까지 벗어나도 허락되느냐는 것을 칼빈은 어떤 방법론적인 예비 연구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는 어떤 표현의 본래적인 의도를 규명하는 원칙에 따라서 자기의 성서 해석 전체를 추진시키고 있으며 저자의 의도를 엄격하게 추구하면서 "단어 이상의 의미로 발전시키는 해석"을 하며, 그는 이것을 "생명력 있는 해석"이라고 묘사한다. 그의 특별한 종교 개혁적인 교훈들이 바로 이러한 해석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는 사실은 물론 적잖은 문제성도 결국 내포하고 있다.
g. 비유 해석의 문제
해석자가 어떤 비유적 표현(metoymicus sermo)을 해석해야 할 때에는 특수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상징적인 언어 형태의 문제이다. 여기서는 묘사된 것들을 비유적으로 서술된 방식에 따라서 예리한 통찰력을 기울여 해명해야 될 과제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방법론적인 사고와 해석학적인 원칙의 설정이 필요 불가결하게 된다. 비유적인 표현은 결코 알레고리가 아니다. Hunter는 비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자연이나 일상생활에서 취재하여, 한 영역에 타당한 것이 다른 영역에도 타당하다는 가정 아래서 어떤 영적 진리를 비추어 주려고 하여 만든 비교이다. 그러므로 비유적인 설화 방식은 "과장법"으로도 이해할 것이 아니다. 과장법인 표현들은 시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비유적 표현에서는 예를 들면,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표현에서 가시적인 물건의 이름이 그 물건을 통하여 선명하게 표현된 숨은 사실에 부과되어 있다." 여기서 상징은 그 본질로 보아 구체적인 물건을 통하여 선명하게 제시된 내용과 상이한 것이다. "칼빈은 신약성서에서 수많은 예문들을 인용하면서, 축자적인 해석을 반대한다." 축자적 해석은 "비유적인 표현 방법"의 특성을 오해하는 것으로서 본질적인 동이성의 결과에 귀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h. 그리스도의 범위
칼빈의 성서 해석에서 그리스도의 범위(Scopus chriltus)가 차지한 범위를 시사하는 모범적인 문장을 하나 인용해 보자 "우리는 성서에서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의도를 지니고 읽어야 한다. 이러한 의도에서 벗어나는 자는 한 평생 성서를 애써 연구할지라도 그는 결코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하고서도 슬기로울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만 모든 지혜와 깨달음이 충만하게 갖추어져 있다.. (골 2:3) 성서 해석은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찾으려면서 수행해야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가 성서의 진리를 밝혀 주는 최고의 표준으로나, 해석학적인 예비 지식의 내용으로 내세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성서의 본문을 해석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데, 이것은 그의 작품 어디에서나 입증되고 있다. 칼빈은 초대교회 오리겐 이후 많이 사용되어 온 우의적 해석을 "지혜로운 일이라 하는 대신 유치하다" (Puerile)고 했으며, 이 방법은 "조금도 건전한 방법도, 있을 만한 방법도 되지 못한다"고 했으며, 또한 "성서를 비뚤어지게 하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대담한 짓이라"했다. 또한 이것을 루터와 함께 "원숭이의 장난"이라 평했다. 이런 입장에서 칼빈은 어거스틴, 크리소스톰, 제롬 등의 우의적 해석을 비평했다. 우의적인 방법은 오해를 끼치며, 이 오해는 학자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이것을 피해야 할 "악"이라 했다. 칼빈은 우의적 해석을 적극 반대하였다. 그는 "儀文은 죽이는 것이고, 靈은 "살리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리겐과 다른 사람들이 이 句節의 뜻을 아주 심하게 왜곡시켜서 부패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精巧한 우의적 해석법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不必要할뿐만 아니라 해롭다는 가장 害毒스러운 잘못된 주장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성서의 진정한 意味를 부패시키는 許可證을 준 것이다. 우의적 해석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서의 敎訓을 무미한 도덕이나 추상적인 철학의 교훈으로 바꾸거나 혹은 역사상의 어떤 사건들과 무리하게 관련시켜서 해석하려는 폐단들이 많았다. "기독론적인 성서 해석은 칼빈의 구약성서 주석에서 미래를 묻는 질문과, 약속과 예언에 합치된 경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칼빈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역사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학문을 근거 삼아 루터는 성서를 해석하였다. 그러나 기독론의 미래 적인 해석은 칼빈에게서 나오고 있다. 신약성서의 해석에서도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는 운동이 결정적인 해석의 의도이다. 이것은 물론 성서의 명백성이 그리스도에게만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타난 운동이다. 칼빈의 성서 해석 방법론의 중요한 면들을 이제 종합적으로 지적하면서 성서 저자의 의도와 성서 본문의 역사적인 상황과, 문맥과, 성서 단어의 의미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묻는 문제들을 취급한 칼빈의 견해가 그의 성서 주석을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서해석사의 역사 비평적인 배경까지 결정하여 주었다.
Ⅲ. 결 론
종교개혁이래 거의 모든 투쟁은 성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서에 대한 이해가 처음부터 크게 대두된 것은 물론 종교 개혁때 였다. 칼빈과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중세의 교회가 교회의 권위만을 주장한 나머지 성서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서를 하나의 교회의 예속물로 전락시켜 버린데 대하여 도전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갖는 권위를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啓示인 성서는 교회의 교리 이전에 이미 존재했으므로 성서를 교회의 권위 아래 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지적하였던 것이다. 이 장에서는 칼빈의 성서관을 요약하고 한국 교회의 성서해석사를 간단히 요약하면서 성서관의 견해차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성서를 보는 기본적 방향을 제시한 후 한국 교회에서의 성서 해석학의 과제를 간단히 제시함으로 이 논문의 결론을 맺으려 한다. 1)칼빈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말씀", "신탁"(The oracles of God)이란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을 통해서 주어진 인간의 冊임을 말했다. 즉 칼빈은 神言로서의 성서의 성서와 인간의 말로 씌여진 서책으로서의 성서와의 逆說的 調和를 강조했다. 칼빈은 분명히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말이란 파라독스(paradox)를 시인하였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성서 비평학이 가능하게 되었다. 2)칼빈은 성서 권위의 소재를 하나님 자신에게 두었다. 즉 성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에서부터 권위의 소재를 찾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성서의 진리가 인간의 추측이나 판단,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신비한 증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영감에서 권위의 소재를 찾았다. 복음서 기자들은 성서 안에서 결코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도구로서"(as instrument of spirit)만 말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감"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칼빈은 말하기를 성서는 영감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저자의 인간적 不完全에도 불구하고 무오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불완전에서 피할 수 없이 생기는 文字的 誤謬도 인정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문자적 오류 때문에 성서의 권위가 손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칼빈은 생각했다. 축자 영감설은 칼빈 자신이 말한 교리가 아니라 그의 후예들의 勞作일 뿐이다. 칼빈은 성서 권위의 證據로써 성령의 내적 증거를 주장했다. "성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적인 증명 또는 교회의 결의에서보다는 우선적으로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inium spiritus Sancti Internum)를 통하여 확증된다고 말한다. 3) 칼빈은 그리스도 중심적 원리에서 신구약 성서의 통일성을 찾고 기능적인 면에서 그 차이점을 말했다. 신구약 성서는 그 본질과 기초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동일한 하나님, 동일한 신언, 그리고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선교하는 선교 방법 사이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칼빈은 구약과 신약의 두 계시의 차이가 내용보다는 오히려 형식과 지책(administration)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4) 칼빈은 성서 해석의 대전제를 두 가지로 주장한다. 첫째로 성서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루어진 신의 계시의 책이므로 "성서의 진정한 해석자는 성령이다"는 전제이다. 둘째로 성서는 오류를 지닌 인간들의 저술에 의한 [책으로써의 성서]임을 전제한다. 그래서 칼빈은 성서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성서속에 나타나는 필사자의 오류와 문자적 불일치를 인정하면서 성서 해석을 시도하였다. 또한 칼빈은 성서를 주석한 동기와 목적이 교회의 유익과 교회의 교화를 위해서였다. 즉 신도들로 하여금 성서의 본문 자체의 뜻을 알도록 지도하기 위하여 성서를 주석 하였다. 칼빈은 성서해석의 핵심을 성서의 본문 자체의 "순수한 의미"(Sensusgenuinus)를 발견하는데 주력하였다. 이 순수한 의미란 주요 의미, 실제적인 의미, 단순한 의미, 또는 문법적인 의미라고도 부른다. 칼빈은 순수한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헬라어, 언어학, 지리학, 지리적, 역사적, 의학 그리고 철학등 기가 도달할 수 있는 모든 연구와 지식은 성서의 본문을 해명하는데에 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은 말하기를 주석가가 먼저 주의 할 것은 성서로 하여금 성서가 말하는 것을 말하게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성서로 하여금 말하게 하지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는 그의 생각에 의심되거나 혹은 불확실하다고 판정되는 성구는 그것이 정통의 교리를 옹호하기에 아무리 편익을 주는 문구라 할지라도 결코 인용하거나 그런 뜻으로 해석하거나 하지 않았다. 칼빈은 그 당시에 복잡한 성서 해석들과 모든 학설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모든 학설들을 암기하여 자유자재로 인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멜랑히톤, 부처, 쯔윙그리, 외콤람파우디스 등의 다양한 해석 방법 등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확인하여 당대의 해석적인 방법론들을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완벽한 자신의 주도적인 방법론하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칼빈은 그 당시에 복잡한 성서 해석들과 모든 학설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모든 학설들을 암기하여 자유자재로 인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멜랑히톤, 부처, 쯔빙글리, 외콤람파우디스 등의 다양한 해석 방법 등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확인하여 당대의 해석적인 방법론들을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완벽한 자신의 주도적인 방법론하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과 제
1. 성서 해석학의 독자성이 시급하다.
이제까지 한국에서의 성서 해석학은 교의학의 심판대 앞에서 늘 심판을 받고 정죄를 받아 왔다고 보아도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성서 해석학은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 되었으며 축자 영감설과 성서 무오설의 지배를 받아 왔다. 그래서 교리와 교권의 지배하에서 성서 해석의 독자성을 빼앗겼으며, 극히 제한된 영역에서만이 성서 해석의 방법론이 논의되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교리나 교권이나 신조나 신학의 지배를 탈피하여 성서로 성서를 해석하게 하는 독자성이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2. 성서 해석 방법론의 발굴이다.
성서 해석학의 또 하나의 과제는 성서와 현실과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성서 해석 방법론의 발굴이다. 칼빈은 16세기의 모든 성서 해석학의 이론들을 정통한 후에 독창적인 성서 해석 방법론을 발굴하여 사용하였다. 성서 해석의 방법론을 발굴하려면 1) 말씀의 계시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글임을 동시에 인정하며 2) 성서 비평학을 과감하게 적용하여 성서의 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3) 오늘의 우리 상황 속에서 재고백 할 수 있고, 선교할 수 있으며 4)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5) 교회의 유익을 도모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학국교회에 가장 적합한 성서 해석의 방법론이 발굴되어야 할 것이다.
참 고 서 적
1. 데이콘,A. 이병섭역. 칼빈주의.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56
2. 머레이,J. Calvin on Scripture and Divine Sovereignty. 나용화역. 칼빈의 성서관 주권사상. 서울:예수교 2문서 선교회, 1976.
3. 김이곤. "성서해석과 한국교회" 基督敎思想, (1976. 3): 61∼70.
4. 김정준. "한국교회와 해석 문제." 基督敎思想, (1967. 2): 45∼53. "성서의 주석가로서의 칼빈" 칼빈 신학의 현대적 이해
5. 문희석. "칼빈의 성서 해석에 대하여" 교회와 신학. 서울:장로회 신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