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갑고 황량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로 가는 유일한 길목
- 네팔 체풀룽마을, 의료혜택 받은 적 없는 주민 위해 현대식 병원 건립 꿈을 현실로…
- 건물자재 옮기는 데만 두 달… 셰르파 400명의 열정도 빛났다
- 화물차 종점에서 체풀룽 마을까지 울퉁불퉁 산길 1주일을 걸어야 도착
- 패널·철골조·시멘트 등 일일이 운반, 종교 수행하듯 그렇게 병원 만들어
- 병원 운영비용 온정 이어졌으면…
'신들의 땅' 히말라야. 해발 8000m 전후의 고봉들이 거대한 벽을 이루는 이 신령스러운 땅에 대한 인간들의 도전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0여년 전부터다.
숱한 도전 끝에 인간은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지상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올랐고, 그 이하 8000m급 봉우리들도 차례로 밟았다.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대업을 이룬 이래, 세계인 중 8000m급 14좌 완등자만 23명에 이를 정도가 됐다. 그 중에 여자도 2명이나 된다. 한국은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 김재수 씨 등 5명이나 배출, 최다 완등자 보유국이 됐다. 그만큼 신들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더 새로울 것도 없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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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체풀룽 마을 아이들 |
그런데 여기서 가리키는 '인간'이란 서방 세계와 개화된 아시아 중남미의 일부 국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일 뿐, 현지인들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신들의 나라'에도 수천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 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수천m 산골짜기에 몇 가구 또는 몇 십 가구씩 무리를 이뤄 살면서 신들의 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서방의 '인간'들은 히말라야를 높은 산, 올라야만 할 산, 고급 트레킹 여행지 등으로만 인식했을 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지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산정 높은 곳으로만 향하던 이방인들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진짜 히말라야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을 건넨다.
백두산 보다 높은 해발 2880m에 위치한 네팔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에 신이 산을 창조하고 인간이 터를 닦은 후 처음으로 원주민들을 위한 무료 자선병원이 건립돼,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먹을 것과 입을 것, 잘 곳만 있으면 웬만큼은 살 수 있다. 하지만 아프거나 다쳤을 때는 어쩌나. 병원에 가거나 의사의 왕진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한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민간요법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아주 작은 상처가 덧나서 결국 다리를 자르거나 심할 경우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 아무리 오지라 할지라도 컴퓨터게임이나 영화, 놀이공원은 없어도 되지만 병원이나 의사는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슈바이처 박사가 인류애와 박애정신을 실천한 위인으로 칭송받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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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인 한국 자선병원 히말라야 토토 하얀병원. |
네팔의 체풀룽 마을은 지구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에베레스트로 가는 유일한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가구라고 해야 20호 남짓할 뿐이다.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 끝 지점에서부터 꼬박 1주일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간혹 경비행기를 이용해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원정대나 트레킹 여행객들도 루크라 공항에서 내린 뒤 베이스캠프로 가기 위해서는 이 마을을 지나야 한다. 이 마을을 지나는 모든 세계인들은 이제 좋든 싫든 태극기와 네팔 국기가 함께 펄럭이고 붉은 십자가 선명한 흰색 건물을 볼 수 밖에 없다. 이름하여 '한국 자선병원 히말라야 토토 하얀병원'이다.
인류 중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한 히말라야 고산 오지마을 현대식 병원 건립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 바로 한국인들이고, 더구나 부산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이뤄 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국가나 기관도 못한 일을 부산 사람들이 이뤄낸 것이다. 세계인들이 병원 앞 게양대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 민간외교 차원에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넓이 만큼의 광활한 땅에서 유일무이한 병원. 비록 대지 330㎡(100평)에 건평 115㎡(35평)에 불과한 아주 작은 병원이지만 거의 평생동안 의료혜택이라고는 받아 본 기억조차 전무한 체풀룽 마을 20여 가구 주민들과 아이들을 포함한 인근 2500여 명 히말라야 사람들에게는 에베레스트 보다 더 높은 '희망의 빛'이다. 그 빛을 쏘아 올린 사람들은 한국의 대표적 산악시인이자 부산의 원로 산악인으로서 '(사)아름다운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권경업(60) 씨가 주축이 된 15명의 '세상 가장 낮은 희말라야 원정대' 대원들이다.
권 시인과 생업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현지에 가서 병원건립을 위해 땀과 열정을 바친 대원들의 뜻에 감탄한 만화가 허영만 화백과 '코미디시장'의 전유성 씨 등 유명인의 후원 및 동참이 이어졌고 스포츠 토토, 부산 부민병원, 블랙야크 등 기업체 및 병원의 후원과 물품 기부도 큰 힘이 돼 오는 10월14일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차갑고 황량하기만 한 '세계의 지붕' 아랫목에 훈훈한 군불을 지피고 있는 부산이 낳은 '세상 가장 낮은 히말라야 원정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지난해 11월10일 부산에서 다소 생소한 이름의 원정대가 출정식을 가졌다. 이 원정대의 이름은 '세상 가장 낮은 히말라야 원정대'. '원정대'라고 하면 보통은 아주 높은 봉우리 등정이나 극지 탐험을 위해 꾸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원정대는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졌다. 이 원정대는 등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상남북도 넓이의 공간에 병원 하나 없이 살아가는 네팔의 히말라야 원주민들을 위한 자선병원을 짓기 위한 목표가 있을 뿐이었다. 대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유명인이라고 해봐야 산악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권경업(60) 시인이 단장으로, 산악소설가 겸 프리랜서 산악작가인 신영철(61) 씨가 기록담당 대원으로 참가하고 있을 뿐, 나머지 10명의 대원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소시민들일 뿐이다. 가정주부에서부터 전기 배관 패널작업 철골 등의 기술을 가지고 생업을 영위하는 일반인들 일색이었던 것이다. 원정대장인 이명식(58) 씨 조차 전자기술을 가진 등산애호가일 뿐이다. 다만 대원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비록 자신의 삶은 크게 내세울 것 없어도 더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애정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 뿐.
대원들과 출정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청중 모두가 원정대가 하려는 일과 목적, 그리고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이 지으려는 네팔 체풀룽 마을은 해발 2880m에 위치한 산간마을. 지상 최고봉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에 있다. 원정대가 도달하려는 곳은 높은 고도가 아니라, 인류애와 사랑이라는 무한한 가치였다. 출범 당시 12명이었던 대원은 문종상, 이상일, 이종한 씨가 합류해 15명으로 늘었다.
■기자재 운반부터 난코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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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평범한 소시민들로 구성된 '세상 가장 낮은 히말라야 원정대' 대원들이 지난 6월 해발 2880m 오지인 네팔 체풀룽 마을에서 원주민들을 위한 '한국 자선 토토 하얀병원' 건립공사에 열중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은 지난해 말 이들의 출정식 당시 "역사상 가장 높고 자랑스런 원정대이며, 당신들의 인류애는 저 에베레스트의 만년설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사진제공 (사)아름다운 사람들 |
자신들은 가장 낮은 원정대라고 했지만 어쩌면 가장 높은 원정대이기도 한 이 원정대의 발걸음은 초반부터 쉽지 않았다.
이미 2005년에 병원 부지는 마련했고,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인 기자재 구입에 나서 출정식 이전에 모든 건축 자재와 의료기기 생활도구 등이 완비된 상태였다. 총 중량만 12t에 육박하는 화물이 출정식 일주일 전 40피트짜리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에서 인도 캘커타항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인도와 네팔에서의 통관 및 운송 절차가 순조롭지 않게 진행되면서 원정대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단장인 권경업 시인은 "캘커타 부두에서 수취인 성명 영문 스펠링 하나 틀렸다는 이유로 보름 지체됐고, 철로와 육로 운송 과정에서도 이런 저런 시비거리에 발목 잡혀 또 보름 이상 허비하는 등 난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로 인한 물류비용 손실만도 한화로 약 4500만 원.
게다가 화물차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종점에서부터 산길을 걸어서 1주일이나 가야 하는 체풀룽 마을까지 사람이 직접 운반하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었다. 셰르파만 연인원 400명이 동원돼 두 달 넘게 걸린 대장정이었다. 패널이나 지붕 자재 등을 등에 지고 운반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거의 묘기 수준이었지만 그 자체가 상당한 고행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모래만 빼고 시멘트 90포(3600㎏) 철골조 등을 포함한 모든 자재를 국내에서 가져가는, 그것도 해발 3000m에 육박하는 오지로 운반하는 일이 그렇게 쉬웠을 리야 만무한 일.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말 자재 운반이 겨우 마무리됐다.
■한국 산악인의 이름으로 태극기를 달다
선발대에 의해 콘크리트 타설과 기둥 철골조 설치 등 기초공사가 시작됐고 4월 말 본대가 도착하면서 병원 건립공사에 속도가 붙었다. '건축사사무소 가헌'의 설계에 따라 패널 조립식 건물로 지어지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5월말 흰색 외벽과 진료실 생활실 등 내부 공간을 갖춘 건물이 제모습을 갖췄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병원 정면에 두 개의 국기 게양대가 마련됐다. 깃봉 하나에는 태극기, 그리고 나머지 봉에는 네팔기가 게양됐다. 식량 담당으로 원정대에 참가한 김양숙(54·설송산악회) 씨는 "체풀룽 마을에서 병원을 짓는 과정을 지켜보던 주민들과 어린이들이 작은 무엇이라도 도와주려고 하던 모습, 그 해맑은 표정과 기대에 찬 눈빛, 그리고 마침내 태극기가 걸리던 순간 등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비록 조촐했지만 원주민들이 진심을 담아 마련해 준 환영회 역시 잊기 힘들만큼 감동적이었다"며 당시의 벅찬 감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국기봉 사이 바닥에 작은 동판이 설치됐다. 그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한국산악인을 도와준 네팔인들을 위해 이 병원을 바친다. 한국의 체육복권 스포츠 토토가 지원하고 한국인 전유성, 권경업, 신영철, 이명식, 심재호, 김양숙, 이윤경, 이정식, 박용학, 한원택, 김옥자, 정성철, 한신호, 문종상, 이상일, 이종한이 지었다. 이 앞을 지나가는 모든 네팔인들과 한국인들은 이 병원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껏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평범한 부산시민들이 해냈다. 그 뜻에 공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개그맨 전유성 씨, 만화가 허영만 씨 등과 스포츠 토토, 블랙야크, 부산 부민병원 등의 도움도 컸다. 9500만 원이라는 적잖은 자금을 지원한 '스포츠 토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특별히 병원 명칭에 '토토'를 포함시켰다. 그래서 병원 이름이 '한국 자선 히말라야 토토 하얀병원'이 된 것이다.
6월 말 3차 원정을 통해 지붕에 붉은 십자가 설치를 하고 전기 생산을 위한 태양광집열기 설치까지 완료됐다. 또 부민병원 정흥태 원장이 기증한 아날로그 방식 300미리 엑스레이 촬영기를 포함한 일체의 의원급 의료기기와 냉방시설, 진찰대, 책상 등의 집기류, 자원봉사를 하게 될 의료진의 생활 편의시설까지 제자리를 잡았다. 사실상 완공에 준하는 상태였다. 이제 시설 부문에서 남은 일은 이달 말 한 차례 더 원정을 통해 전자시설 작업만 하면 된다.
■누구에게나 열린 병원, 찾아가는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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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하얀병원'을 짓기 위한 공사자재를 지고 나르던 현지인 셰르파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산악인으로서 수십 차례나 히말라야를 방문했던 권경업 단장의 말 속에 네팔 주민들의 현실이 비친다. "외국 원정대가 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에베레스트 권역 마을 수 십 곳에서 길게는 3~4일씩 걸어서 주민들이 몰려든다. 원정대가 갖고 있는 약품을 얻기 위해서다. 원정대의 의료담당 대원은 졸지에 의사가 된다. 그러나 보유 약품에 한계가 있고 일정 상의 문제 등도 있어 몇 사람 봐주고 떠날 수 밖에 없다".
또 허영만 화백은 "과거 히말라야 방랑을 할 때 거의 모든 산간 마을에서 이상하리만치 많은 맹인들을 만났는데, 알고보니 그들 대부분이 간단한 안질환이 걸렸다가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시력을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이었다. '제때 치료만 받았어도…' 싶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 눈부신 설산을 평생 보지 못한 채 산골마을에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기 위해 설립된 '토토하얀병원'은 열린 병원이다. 누구라도 무료로 치료한다. 또한 앉아서 기다리는 병원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가 여러 골짜기의 중심 마을로 왕진을 나가는 '찾아가는 병원'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미리 방문 소식을 알리고 각 골짜기의 중심 마을까지만 가도 그 인근의 주민들이 마치 외국원정대 지나가는 길로 찾아가듯 몰려 올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 건립에 들어간 예산이 미화 35만 달러 정도(그 중 10만 달러는 대원들이 받기를 거부한 일당을 계산한 것으로 실제로는 25만 달러 정도 소요)다. 건립비용은 기업체와 일부 후원인들의 기부금, 권 단장을 포함한 대원들의 사비로 충당했다. 앞으로의 운영자금도 적잖이 필요할 것이다. 기부를 원하거나 동참하고 싶은 단체나 개인은 (사)아름다운사람들(051-805-7743)로 연락하면 된다. 앞으로 하얀병원 앞을 지나는 모든 한국인들은 그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껴도 좋다. 동참한 사람이라면 더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권경업 단장 인터뷰
- "원주민 셰르파들에게 30㎏넘는 등짐 떠넘겼던 30년 전 빚 이제야 갚아"
"1982년 부산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대를 이끌고 네팔 산록을 찾았을 때 받은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다. 그 이후로 반드시 이곳에 자선병원을 세우겠다는 염원을 품었고, 마침내 30년만에 숙원을 이루게 돼 너무 기쁘다. 도와준 많은 벗들에게 진 빚은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것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세상 가장 낮은 히말라야 원정대'의 단장이자 '토토 하얀병원' 설립의 일등공신인 권경업 시인은 30년 숙원을 이루게 된 감회가 남다르다. 그에게 병원 설립을 추진하게 된 동기와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물었다.
-1982년 히말라야 최초 원정때 무엇을 보고 느꼈길래 30년 숙원을 갖게 됐나.
▶원정대를 맞이한 원주민 셰르파들은 30㎏가 넘는 등짐을 지고 수십일 동안 산길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의 일당은 미화 40센트에 불과했다. 우리 돈으로 500원도 안되는 돈이다. 신들의 땅이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록에 등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지지리도 가난했고 환경은 척박했다. 아플 때 병원 치료 한 번 못 받고 잘해야 장애인, 잘못하면 사망하기 일쑤였다.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고산 원정 자체가 너무도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이후로 히말라야 고산 등반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하얀병원을 짓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또 있을 것 같다.
▶한국은 14좌 완등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게 된 산악강국이다. 그만큼 나를 비롯한 한국 산악인들은 히말라야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 빚을 히말라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히말라야에서 받은 느낌과 감정으로 내 야윈 영혼을 살찌워 시인이 될 수 있었으니 그 또한 내가 갚아야 할 빚이다.
-건물은 거의 완성됐는데 의료진 문제는 어떻게 되나.
▶의료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최선책은 한국인 의사 1명과 간호사를 파견하는 것인데 반드시 가능하다고 본다. 대한의사회 소속 회원만 11만 명이 넘는다. 분명히 자원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문의를 해 오는 사람이 있다. 차선책은 현지 의사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힘들다면 현지 간호사라도 채용할 예정이다. 네팔 법은 간호사도 처방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 돼 있다. 외과적 진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도록 비디오 오디오 냉장고 샤워실 등도 구비했다. 여름 두 달은 우기이기 때문에 휴가를 받을 수 있다.
-10월14일 준공식 준비는 어떻게 되나.
▶네팔 현지 정부 및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할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전유성 이문세 김미화 씨 등이 직접 방문해서 축하해 줄 예정이다. 일반 시민들도 동참할 수 있다. (사)아름다운 사람들로 연락주면 된다.
-소수력 발전소 건립도 준비한다고 들었다.
▶현재 태양광으로 전기 시설을 마련했는데 장기적으로 30㎾ 용량의 소수력발전소를 건립해 병원에서도 쓰고 지금까지 전기가 안들어오던 체풀룽 마을에도 나눠 줄 예정이다. 내년부터 본격화 할 예정인데 적잖은 비용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