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화 ‘아버지’와 ‘할매’
아버지가 산 논은 이미 수확이 끝나 있었는데 상당히 넓었다.
“해수야, 내년에는 너도 농사 일을 도와야 된다.”
아버지는 어쩐지 묘하게 흥분해 있었다. 일본으로 가기 전 수해 때문에 집안의 논을 잃게 되었고, 그로부터 15년여 만에 아버지가 값을 치르고 논을 되찾았다. 더구나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이루었기에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동시에 한껏 고양감도 느꼈을 터라 매일 밤 기분좋게 술을 드셨다. 일본에 있었으면 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셨을지 모르나, 여기는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도 없다.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삼촌들과 큰소리로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형제도 함께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 모은 돈을 가지고 와 이만한 재산을 손에 넣은 것이다. 장남으로서는 ‘해야 할 일을 이루었다’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식사도 꽤 호화로웠다. 밥은 새하얀 백미로 지은 것이었고, 반찬도 흑돼지나 닭을 잡아 고기반찬이 만족스럽게 차려졌다. 당시에는 귀중했던 달걀이 곁들여지는 때도 있었다. 어쩌면 이 무렵이 울산에서의 생활 가운데 가장 윤택한 시기였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무서운 아버지,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가 그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일찌감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리고 마는 하루하루였다.
요코하마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도 어리둥절했다. 집 근처 작은 산 위에 학성공원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주변을 내려다보면 논과 밭들뿐으로 수도도 없이 모두 공동우물을 사용하는 그곳은 말 그대로 시골마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에 둘러싸인 그리운 땅이지만….
학성공원은 일찍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쳐들어 왔던 때 가토 키요마사(加藤清正)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의 흔적이라고 전해진다. 고전으로 식량보급을 할 수 없게 된 키요마사가 자신의 군마를 죽여 고기를 먹고 피를 물 대신에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한적한 이 학성공원이 나중에 나의 여러 가지 추억의 무대가 된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집에 혼자 있을 수는 없었다. 빨리 우리말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배려로 곧바로 소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로서는 일본에서 태어난 장남이 모국어를 모르고 성장하는 것에 위기감을 가졌을 것이다.
일본에서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가도 말도 모르는데….”
일단은 저항해보았지만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을 뿐이었다.
“말 같은 건 금방 배울 수 있어. 선생 중에 일본어를 아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다.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돼. 그리고 앞으로는 나한테 ‘아버지’라고 불러라. 오바상(할머니)은 ‘할매’다.”
“그럼 오까상(엄마)은요?”
“오까상은 ‘어머니’다. 어차피 이곳으로 올 테니까 지금부터 외워 둬.”
“네…. 아버지, 어머니, 할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말을 외워 가면 된다. 자, 내일부터 학교에 가는 거다. 어서 자라.”
“예.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 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다. 방에 들어가자 온돌 바닥에 얇은 이불이 깔려있고 그 옆에서 돋보기를 쓴 할머니가 조용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해수 왔냐, 잠깐 이리 와 봐.”
할머니가 부르는 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할머니는 그때까지 바느질을 하고 있던 옷을 내 어깨에 대었다.
“이거 새 옷이에요?”
“내일은 새 친구들을 만나니까 깨끗한 차림으로 가야지.”
“고맙습니다.”
“조금 더 걸리니까 넌 먼저 자거라.”
그 말을 듣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온돌 바닥의 열로 아렴풋이 따듯했다. 나는 바느질을 계속하는 할머니의 등 뒤에서 가만히 말을 걸었다.
“할매…”
할머니가 뒤 돌아 보고 돋보기를 조금 내리며 말하셨다.
“어라, 누구한테 배웠누?”
“좀 전에 아버지한테요.”
할머니는 방긋 웃으셨다.
“할매, 내일 학교가면 나 괜찮을까?”
“왜 그런 소릴 하냐?”
“왜냐면, 난 아직 우리말도 모르는데다 또 따돌림 당하면….”
할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본 후 다정하게 웃으셨다.
“여기는 이제 일본이 아니란다, 너의 나라야, 따돌림을 당할 리 없지, 자, 걱정 말고 자라.”
“네, 안녕히 주무세요. 할매.”
“잘 자라, 푹 자.”
‘여기는 내 나라구나…’
나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여러 번 그 말을 되뇌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내가 입학한 복산(福山)소학교는 조금 높은 언덕위에 있어 햇볕이 잘 드는 단층 교사였다. 앞에는 운동장이 있고 주변에는 10여 미터 간격으로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일본에서 다닌 학교보다도 아담했지만 나에게는 알맞은 환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가자 역시 어젯밤 나의 불안은 적중했다. 할머니를 따라 학교로 가 새 교실에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담임교사가 나를 소개한 직후 무슨 일인지 동급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교사가 수업을 시작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교과서를 펼쳐도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모두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교실 한 구석에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종이 울리자 교사는 나를 힐끔 쳐다보았을 뿐 그대로 교실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에 있는 모두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런 동급생들 가운데 몸집이 큰 소년 하나가 어쩐지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슬그머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몸집이 큰 그 소년이 몇몇 학생을 데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의 빈자리에 털썩 앉더니 마치 신기한 생물을 보는 것처럼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까까머리에 네모진 커다란 얼굴, 그 얼굴에 배치된 째진 눈을 힐끔힐끔 거리던 그 소년이 갑자기 빠른 조선말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아듣지 못해,
“미안해. 내가 아직 우리말을 몰라서.”
하고 일본어로 대답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각진 얼굴의 소년은 곧바로 조그만 눈을 바짝 치켜뜨며,
“일본말이네?”
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동시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도 적의를 품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대답했다.
“미안해, 조만간 제대로 배울게.”
“에라이~ 이놈아!”
각진 얼굴의 소년은 그런 내 모습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칼을 꽉 쥐어 잡았다. 그리고 마치 적을 대하는 것처럼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다가와,
“이거, 반쪽발이야….”
하고 쥐어잡은 내 머리를 마구 휘두르더니 그대로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나중 알게 된 그 소년의 이름은 이용대(李龍大). 나로서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그 소년과의 첫 만남이었다.
*제7화로 이동
첫댓글 지금의 학교에서 생기는 아이들의 따돌림, 차별등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일본에 억압당해 일본과 관련된 것이라면 다 싫어서 다짜고짜 그런 것인지... 상황은 이해되지만 그 상황이 모두들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화아아악 몰려듭니다...
("또" 따돌림당할까봐~)
가끔 생각해봅니다.
난 따돌림당한적이 있었나? 차별받아본적이 있어나?
따돌림 받은적 있었던것 같더라구요.
물론 차별은 지금도 다양하게 받구 있구요.
받을수도 있겠지요. 따돌림! 차별!
문제는 "또"라는데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