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일찍 늙는 법 10년 늦게 늙는 법
조지 베일런트 지음 / 이덕남 옮김
나무와 숲 / 2004년 3월 / 495쪽 / 15,000원
▣ 저자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 대학교 성인발달연구소장으로 193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성인발달연구 분야에서 널리 존경받고 있는 학자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된 성인발달연구자로서도 유명한 베일런트 박사는 브리함 여성병원의 정신과 의사이며 하버드 의대 교수이기도 하다. 저서로는『삶에 적응하기(adaptation to life)』『자아의 지혜(wisdom of the ego』『알코올 중독의 발달사(The natural history of alcoholism』등이 있다.
▣ 역자 이덕남
197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영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스마트 러브』『로완과 마법의 지도』『꿈은 알고 있다』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겹겹이 에워싸며 퍼져나가는 잔물결처럼 인간의 삶도 이전 단계의 발전을 거쳐야만 다음 단계의 발달이 생겨난다. 성공적인 노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아기의 환경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습관이나 결혼생활 그리고 종교나 사회적 유대관계 등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 대한 관리자로서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추는 것은 성공적인 삶의 뿌리가 된다. 불행을 극복하고 성격을 변화 성장시키는 등의 사회적․정서적 성숙은 성공적인 노년의 삶을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할 발달과제인 것이다. 윤택한 노년생활이란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닌, 무엇인가에 열정을 갖는 활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노화란 상실이나 쇠퇴의 의미가 아니다. 노년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수명의 제한 속에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는 삶의 한 단계일 뿐이다.
우리는 문명의 발달로 주어진 장수라는 선물을 수혜 받은 세대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은퇴 후에 주어질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저자가 각 계층별로 세 집단의 연구대상자들에 대한 삶을 유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례로 들어가며 비교해줌으로써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게 될 노년의 삶을 투영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각기 다른 삶의 유형을 통해 만족하지 못한 노년기의 삶은 어떤 원인 때문에 실패하게 되었고, 건설적인 노년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갖춰야 하는가에 대한 요소들을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 차례
1. 성인 발달 연구
2. 사회적 ․ 정서적 성숙
3. 유년기가 노년에 미치는 영향
4. 성공적인 노화의 열쇠
5. 의미의 담지자
6. 통합 : 죽음 앞에서 겸허하기
7. 건강한 노화 : 두 번째 관문
8. 퇴직, 놀이, 창조성
9. 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로워지는가?
10. 영성, 종교, 그리고 노년
11.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도 변하는가?
12. 건설적인 노화
10년 일찍 늙는 법 10년 늦게 늙는 법
조지 베일런트 지음 / 이덕남 옮김
나무와 숲 / 2004년 3월 / 495쪽 / 15,000원
1장 성인 발달 연구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인구의 고령화로 노화를 둘러싼 상충된 논의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현대 의학이 가져다 준 장수라는 선물은 인간에게 저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축복이 될 것인가? 인간은 남은 생애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 인구 통계학자들에 따르면, 현재 젊은 성인들은 80세 이상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년을 넘긴 후 80세가 될 때까지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이상적이 모델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연장자들이 만족할 만한 삶, 또는 그렇지 못한 삶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평생을 통해 관찰한 세 집단의 연구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실증 자료는 물론 이론적인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하버드 졸업생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들 중에는 음산한 호텔식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연구대상으로는 루이스 터먼 교수의 ꡐ천재아 연구ꡑ에서 찾아낸 중산층의 우수한 지능을 가진 여성들이다. 이들 중에는 재능이 뛰어나지만 당대의 성차별주의에 눌려 자기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여성들도 있고, 65세를 넘긴 후부터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여성들도 있다. 마지막 집단으로는 이너시티(Inner City), 즉 대도시 중심부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사람들로서, 저학력이지만 직업과 사회생활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남성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성인발달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위의 세 집단의 삶을 연구하면서, 성공적인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요소들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과거에 일어났던 나쁜 일이나 환경이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변화를 위해서는 우연히 만난 훌륭한 인물들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회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감사와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친구를 사귈 줄 아는 법을 배우는 것이 성공적인 노년의 삶을 제공한다. 이 말은 은퇴 후에도 창조적인 삶, 즉 무엇인가를 하고, 배우려는 열망이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객관적으로 건강한 육체보다는 주관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는 것이 질병을 앓더라도 고통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2장 사회적 ․ 정서적 성숙
이 장부터는 연구 결과를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세 집단의 삶을 사례로 들고자 한다. 그리고 성인의 발달 과정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며, ‘칠십 노인들이 스물 다섯 살 난 젊은이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의 질문에 대해 사회적 성숙과 정서적 성숙이라는 관점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애덤 카슨은 하버드를 졸업한 후 의사가 되었다. 그는 스물 두 살에 결혼했는데, 처음에 그의 아내는 누이처럼 다정한 사람이었다. 카슨은 엄격한 규율 속에 자란 때문인지 금욕적인 아내를 선택했다. 그러나 카슨은 의존적이고 유아적이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결혼생활은 무미건조해졌고, 불화가 거듭되었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지속했다.
47세가 된 카슨을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내와 이혼 후 새 아내를 맞은 카슨은 행복한 결혼 생활로 인해 환자들과도 친밀한 교류를 나누고 있었고, 부모와도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의 훈계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65세 때에는 의학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 의학의 전통과 의학의 윤리적 기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환자들과 의사소통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70세가 된 카슨은 병원을 맡아줄 젊은 의사를 찾은 뒤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교회의 사회문제 위원장직을 맡으며 의학의 영적인 기능 등에 대해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국제적인 의학윤리를 정립하는 새로운 열정을 쏟았다. 또한 지난 4년 동안에는 지역 환경 운동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성공적인 삶은 지나친 욕망과 모험, 또는 과도한 경계나 자기보호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자기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균형을 갖춘 삶을 살 때 그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균형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성숙이 갖춰져야 한다. 즉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들이 성장하면서 성숙한 방어기제로 변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아도취나 편견 그리고 부정(투사), 과음, 무관심(해리)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기제들이 승화, 유머, 이타주의, 억제 등의 성숙한 방어 기제로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서적인 발달과 수년 동안의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내면화가 필요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성숙한 방어 기제를 가지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인간의 성숙은 중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두뇌 발달에 의존한다. 따라서 두뇌에 손상을 입을 경우, 정상적인 성숙 과정이 파괴된다. 연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두뇌 손상은 알코올 중독이나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빚어졌다. 빌 로먼의 경우가 바로 알코올 중독의 대표적인 예다.
「빌 로먼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색도 하지 못한 채 불행을 숨기고 살아왔다. 57세의 빌 로먼을 만났을 때, 그는 뉴욕시 법정 변호사답게 유창하고 교양 있는 말투를 구사했다. 그러나 침착하고 세련된 겉모습은 사교를 위한 위장일 뿐, 정서적으로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고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휴가도 즐기지 않았고 시민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성에게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사업에 실패한 뒤 자살했다. 그러나 로먼은 대저택에서 매우 유복하게 자랐다. 대학에 다닐 때도 하버드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동아리 활동을 했으며, 성적도 우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도 종군 기념 청동 상장을 세 개나 받았다. 이런 활동적인 성격 탓에 사교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는 대학시절부터 술을 자주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한번 술을 마시면 폭주를 했다. 과음의 후유증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60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서른 살 때, 가까이 지내던 여성들 중 한 여성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그녀의 거절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이라고 불평을 했다.」
빌 로먼과 같이 비난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행위는 투사(부정)의 방어기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교적이었음에도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오로지 즐거움을 자신의 일에서 찾았으며, 어머니의 보호막과 배타적인 사교 클럽활동이 사회적 유대관계의 전부였다. 게다가 기부에도 인색했다. 하버드의 동창회보에도 로먼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씌어있지 않았다. 단지 55번째의 동창회보에 그의 부음이 실렸을 뿐이었다. 적응적 기제를 적용하는가, 아니면 비적응적 기제를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계급이나 지능, 그리고 교육 수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다.
여섯 가지 발달과제
하버드 대학의 성인 발달 연구는 꽃이 피는 과정을 저속도 촬영 기법으로 찍는 것과 같이 연구 대상자들이 청년에서 증조부, 고조부로 변화하는 삶의 과정을 관찰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사회적 발달은 연속성을 지니며,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지평이 넓어짐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면 끝없이 잔물결들이 생겨난다. 이 때 먼저 생겨난 물결은 나중에 생겨난 물결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에워싸면서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인의 발달도 이전 단계의 발달을 거쳐야만 다음 단계의 발달이 생성되는 것이다.
성공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발달 과제를 거쳐야 할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단계로 제시할 수 있다. 첫 번째, 청소년기에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설 수 있는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두 번째,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상호관계를 통해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친밀감을 가져야 한다. 세 번째 , 성인은 사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가치 있는 직업을 찾아 그 분야에서 성공을 해야 한다. 네 번째, 생산적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 다섯째,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전통을 물려주는 의미의 담지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통합의 과제를 완성해야 한다. 이 과제들 중 노년기의 발달 과제에 해당하는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의 과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3장 성공적인 노화의 열쇠
생산성
생산성을 이룬다는 것은 결혼을 하고 다음 세대를 돌보는 것을 말한다. 유년기는 분명 노년에 영향을 미친다. 유년기에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믿음, 자율성, 독창성을 발전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희망과 자아는 폭넓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유대로 확장되며, 그것이 결국은 풍족한 노년의 밑바탕이 된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들은 인생을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세상을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생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버드 연구대상자들 중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던 3분의 1은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조기 사망했다. 생산성 과제를 달성하는 것은 건실한 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너시티 출신인 빌 디마지오는 최악의 빈곤 속에 자랐다. 막노동자였던 아버지는 디마지오가 아직 10대였을 때 불구가 되었고, 어머니는 열여섯 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검사결과 지능이 82였던 디마지오는 가까스로 10학년을 마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50세에 이른 디마지오를 만났을 때, 그는 매력적이고 책임감이 넘치며 헌신적인 남자가 되어 있었다.
디마지오는 15년 동안 토목공사 현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목수가 될 기회를 갖게 되어 목수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결국 목수가 된 디마지오는 자기 일을 매우 사랑했다. 그리고 가정에도 최선을 다했다. 친척들과도 꾸준히 왕래하며 지내고, 많은 공동체모임 활동에도 참여했다. 최근 디마지오와 그의 아내는 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지적인 면에서 한계를 지녔던 디마지오는 가족을 보살피는데 성실했고, 사회생활에도 능동적으로 임하는 생산성 과제를 달성함으로써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공동체 활동을 하기 위해 교육을 많이 받거나 지능이 높아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의미의 담지자
생산성 과제는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보살핌은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에 편중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의미의 담지자라는 과제에는 정의라는 덕목이 내재되어 있다. 즉 사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고, 사회적인 후계자를 창조해 내는 임무를 말한다. 따라서 의미의 담지자란, 과거의 문화적 성과들을 대변하고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단체나 조직, 모임에 속한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을 말한다. ꡐ생산성을 구현하는가ꡑ 아니면 ꡐ의미의 담지자가 되는가ꡑ 에 대한 두 가지 과제 사이의 구분은 초록과 노랑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하지만, 이 두 과제는 노년의 삶을 보람되게 하는 중요한 발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터먼의 연구대상이었던 마리아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그나마 아버지가 비명횡사한 탓에 진짜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라난 라틴계 여성이었다. 그녀는 영어를 몰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어머니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는 늘 주변의 편견이 따라다녔다. 어렸을 때의 마리아는 근시가 너무 심해서 칠판 글씨를 보려면 맨 앞줄에 앉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한 번도 시력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가정 형편도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리아는 속기사로 취직하여 곧 결혼도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처럼 남편 역시 딸이 태어나자마자 멕시코로 달아나 버렸다. 마리아는 홀로 어린 딸을 키우고 어머니를 돌보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마리아는 40세 때 개념 숙달 검사(우수한 지능을 가진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지능 검사)에서 141점을 받았다. 반면 스탠퍼드 의대생들과 버클리 대학 박사 과정 지원자들이 받은 점수는 평균 90점에 그쳤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어머니와 딸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공부에 대한 열망이나 재능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65세까지 연방정부에서 타이피스트로 근무했다. 그리고 7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터먼의 연구 대상 여성의 평균 수명보다 무려 15년 이상 이른 나이였다. 마리아는 병든 노모를 돌보고 딸을 키우는데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마리아는 사회적 혜택을 누리지 못했지만, 가족 관계에서만큼은 진정한 의미의 담지자였다.
4장 통합 - 죽음 앞에서 겸허하기
통합은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효과적으로 잘 보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업이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사멸에 대한 공포는 어디에나 늘 존재한다. 그러나 생명이 유지되는 한 노년에도 계속해서 성장과 쇠퇴가 반복된다.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세상에 나는 오직 나 하나뿐이며, 한번 태어나 한번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통합이다. 생산성의 미덕이 보호였다면 통합의 미덕은 바로 지혜이다.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 앞에서 생명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게 한다. 삶의 어느 한 단계가 다른 단계보다 못하다거나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터먼의 연구 대상인 엘렌 켈러는 트럭 운전기사의 미망인이자, 소도시로 순회 공연을 다녔던 연주가의 딸이었다. 노년의 켈러는 매달 850달러의 연금과 얼마 되지 않는 예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집을 저당 잡힌 일도 두 번이나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딸은 정신지체아였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자녀에게서 증손까지 보는 기쁨을 누리며 그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훤한 이마에 웃는 인상이었으며, 세련된 맵시를 지니고 있었다. 켈러는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많았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해 나갔다. 그녀는 많은 죽음을 체험하면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사후에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버드의 졸업생인 헨리 에머슨은 한때 휴렛패커드의 중역으로 일했으며, 그 후에는 20년 동안 성공적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했다. 노년에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방은 컴퓨터 등의 사무기기가 잘 정돈되어 있어 그가 퇴직상태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에머슨은 웃기 잘하고 때론 불평을 잔뜩 늘어놓지만 듣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고, 젊었을 때는 친구들과 테니스, 스키, 항해 등을 즐기던 활동파이기도 했다. 76세의 에머슨은 인터넷을 통해 백혈병에 관한 자료를 찾거나 포도밭을 가꾸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적 위안을 찾았다. 올해에는 자녀들에게 항해하는 방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6개월 뒤 에머슨은 세상을 떠났다. 에머슨은 항상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려고 했다. 최근에는 고조부의 손목시계를 고치기도 했다. 에머슨의 창조적 욕망은 그 시계처럼 후대의 손에 의해 생명력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미래를 향한 것이었다. 헨리 에머슨은 삶의 의미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겨울 정원처럼 계속해서 사람들로부터 변함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5장 건강한 노화 - 두 번째 관문
육체적 노화를 극복하는 방법
앞선 장들에서는 정신․사회적인 노화와 관련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몇몇 발달 단계를 살펴보았다. 즉 성공적인 노화를 정의하자면 기쁨과 사랑, 그리고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이 장에서는 육체적 노화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성공적인 노화에는 사회적․정서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80대에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점진적인 근력의 쇠퇴는 노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 쇠퇴의 정도는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사람은 제 나이에 맞게 늙어간다. 그러나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늘 의욕이 넘치게 생활하며, 절친한 친구를 곁에 두고 정신 건강을 유지해 나간다면, 실제로 병에 걸리더라도 ꡐ아프다는 느낌ꡑ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따라서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의 유무에 관한 것만이 아니며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건강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풀기 위해 두 사람, 즉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75세 남성과, 병을 앓으며 불행하게 살다간 남성의 노년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하버드의 연구 대상인 알프레드 페인은 불행하고 병약한 삶을 살다 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장점이라면 불평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알코올 중독에 걸렸는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페인은 뉴잉글랜드 범선 사업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 난지 2주만에 산후후유증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두 살 되던 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페인은 어린 나이에 거액의 신탁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유모들의 젖을 먹으면서 할머니와 나이 많은 고모들의 손에서 자라났다.
대학 시절 페인은 쉽게 사랑에 빠지곤 했다. 그의 사랑은 자기를 돌봐줄 사람에 대한 의지였다. 그래서 몇 차례나 결혼을 했지만, 하나 같이 불행했다. 페인은 다른 사람과도 친밀해 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가장 불행했던 시절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47세 때에는 유년기라 대답했고, 70세 때에는 스무 살에서 서른까지의 시기라고 말을 바꾸었다. 또한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 증세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의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페인은 68세부터 과체중에 고혈압과 통풍을 앓았고, 폐질환까지 앓고 있었다. 73세 되던 해에 그는 양로원에 살고 있었는데, 치아가 몽땅 빠진데다 신장과 간 기능이 나빠져 있었으며 음주운전 사고후유증으로 경미한 치매 증세까지 보였다.」
페인은 넉넉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거듭된 이혼 등으로 거액의 유산을 날리고, 연금까지 압수 당했다. 페인은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더구나 자녀들과도 일 년 혹은 3년에 한번 만나볼 정도로 교류가 없었다. 알프레드 페인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으로 건강하지 못한 노년에 이르렀다. 그는 75세까지 살았으나 병약하고 불행한 노년기를 보냈다.
「이너 시티의 연구 대상자인 리처드 러키는 알프레드 페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으나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러키는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 속에 자라났다. 대학 졸업 후에는 두 가지 사업을 동시에 시작했는데, 늘 자기 관리가 철저했고, 결혼생활도 행복했다. 그러나 70세 때의 몸 건강 상태는 페인보다 나빴다. 고혈압에 췌장염을 앓고 있었고 심장이 좋지 않아 심장 박동 조절장치를 달고 있는데다 척추 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이 병자라고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76세가 되어서는 건강상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췌장염이 말끔하게 완치되기까지 했다. 아직도 심장 박동 조절 장치를 달고 있고, 고혈압이 있지만, 얼마 전에는 두 달 동안이나 스키를 즐기기도 했다. 요즘은 남북 전쟁에 관한 책까지 쓰고 있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러키에게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러키는 또한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고 가능한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녀들이나 손자들과도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몇 안 될지 모르나 그 친구들과 훨씬 깊고 소중한 관계를 맺는 반면,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기기를 바란다. 75세가 된 러키의 아내는 일 년 수입이 50만 달러가 넘는데도 여전히 직접 잔디를 깎고 마굿간 청소를 한다. 러키는 노년에 수채화를 그리기도 하고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또한 75세에 해양학 관련 기술을 익혀 해양학 연구위원이 되었다. 러키는 창조와 배움에 대한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성공적인 노화의 열쇠는 금전이 아니라, 자기 관리와 사랑이다. 이 두 사람의 인생에서 보았듯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계급이 아닌 사랑과 보살핌이 노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또한 러키처럼 병을 앓으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이겨내는 것은 통증을 잊게도 하지만 병을 완치시키기도 한다. 육체적 건강은 주관적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육체적으로 건강할지라도 자신의 건강이 매우 나쁘다고 푸념할 것이다. 반면 쾌활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병을 앓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육체적 건강은 정신적인 건강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건강한 노화를 예측케 하는 요소
비흡연이 젊음을 유지 : 50세 이전에 담배를 많이 피웠는지 않았는지는 육체적 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45세 이전에 담배를 끊었다면 20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 할지라도 7~80세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적응적 방어 기제 : 연구 대상자들이었던 세 집단 모두에게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을 약속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바로 적응적 방어기제였다. 이는 위기와 불행을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성숙한 방어기제가 노년의 질병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적으로 육체적 무능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무능한 상태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 알코올 중독은 노년의 정신적․사회적인 건강은 물론 육체적인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알코올 중독인지 아닌지의 측정 방법은 술로 인해 배우자나, 가족, 직장, 법, 건강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알코올 중독은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가 스트레스를 야기 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알맞은 체중, 안정적인 결혼 : 비만은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육체적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행복한 결혼생활과 규칙적인 운동은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사회적 건강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
교육 정도 : 노년의 육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의 요소는 자기 관리와 인내심이다. 이너시티 출신의 경우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담배를 끊거나 음식을 조절하고 술을 자제하는 성공률이 높았다. 또한 하버드 졸업생과 터먼 연구의 여성들은 이너시티 출신보다 이 부분의 성공률이 높았다. 교육수준이 육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 않지만 예지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능한 많은 교육을 받고 싶어하고, 지적 추구를 위해서는 자기관리와 통제가 따르기 때문인 것 같다.
6장 퇴직, 놀이, 창조성
남아있는 인생을 충실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분명 앞으로 남은 삶에서 크나큰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퇴직은 실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삶의 문제로 평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퇴직이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는 타의에 의해 갑작스럽게 퇴직하는 경우나 급여 외의 수입이 없는 경우 그리고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해 일을 도피처로 삼았던 경우 등이다. 그러나 퇴직 기간을 잘 지내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오히려 줄이게 되고, 흡연이나 우울증, 알코올 섭취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퇴직은 삶에 있어 또 하나의 이정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을 통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이들이라면 퇴직 후에 전직이나 전업을 통해 계속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퇴직 후의 삶을 보람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이 필요하다.
첫째 - 부모나 삶의 동반자가 사망한 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직장동료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만남을 형성해야 한다. 손자 손녀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
둘째 - 은퇴 후 행복한 생활에 꼭 필요한 활동이 놀이 활동이다. 카드 게임과 같이 경쟁이 뒤따르는 놀이 활동은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하며, 자만심을 버릴 수 있도록 하고 재미를 제공한다.
셋째 -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꾸려 가는 동안 잃어버렸던 시간적 여유를 되찾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이나 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이 이러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은 천진한 호기심으로 젊음의 활력을 되찾게 해주고, 성숙한 삶의 결실을 맺도록 해준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특별한 이유를 가진 노년이 되어야 한다.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는 것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맞이할 수 없는 멋진 선물이지 않은가! 단지 아침을 먹기 위해 일어나는 노년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이다.
「퇴직 후, 삶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 중의 하나로 터먼 연구의 대상이었던 메리 엘더를 들 수 있다. 그녀는 젊었을 때 촉망받는 신문사 통신원이었다. 유명한 영화배우와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는 베를린에 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성차별과 전쟁 등의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언론인의 길을 포기해야 했다. 노년기에 들어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들도 모두 독립한 뒤 엘더는 노인의 복지와 권리 확대를 위한 운동단체의 활동에 동참하였다. 처음에는 그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의 교정을 보는 일을 담당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편집장이 되었고, 75세에는 편집장이 되었다. 또한 노년층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돕기 위해 노인회관의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는 미술사 강의를 들으며 같은 반 동료들과 어울려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최근에 엘더와 연인으로 지내던 남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엘더는 그와 70세에 사귀기 시작하여 75세까지 사랑을 나누었었다. 그가 죽은 후 엘더는 노인 회관 당구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슬픔을 달랬다. 메리 엘더는 딸과도 가까이 지내며 가끔 손자들과 장기간 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중년에 마음껏 창조력을 발휘한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정신적․사회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활력 면에서 훌륭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여성들의 창조력은 남성에 반해 꾸준히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더 이상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관절염으로 고생한다 할지라도, 놀이에 참여하고 창조성을 발휘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면,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즐겁게 여겨질 것이다.
7장 영성, 종교 그리고 노년
희망과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무엇이라고 칭하든 간에, 사랑에 대한 어조는 밝고 희망적이다. 그러므로 희망과 사랑이 없는 생의 마지막 날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쇳소리나 심벌즈 소리처럼 괴로운 소리로 전달될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떠한가? 깊은 믿음과 영성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 역시 사랑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일이다.
청소년들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도 있다. 정체성은 성인 발달의 첫 과제이며, 종교는 종종 정체성 확립을 돕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종교와 영성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종교는 다른 신앙과 구별되는 배타적인 믿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영성은 온 세상을 품어 안는 포괄적인 믿음을 말한다. 또한 종교는 강령과 교리문답을 수반하여 성서와 문화에 뿌리를 두는 반면, 영성은 언어나 이성 등의 한계를 초월하여 감정과 경험에 의존한다. 따라서 종교는 외부로 오는 것이지만 영성은 나의 능력이나 경험에서 온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아이들의 인식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작용에서 시작하여, 점차 세상에 대한 복잡하고 은유적인 관점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신은 점차 보편적인 고매한 권능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개인간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상대에 대한 이해가 지혜를 형성하듯이, 각기 다른 종교를 인정하면서 영성이 형성된다. 각자 개인적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들이 어떤 종교를 믿느냐를 떠나 서로가 고매한 권능을 공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서로의 종교적 영적 경험에 대해 귀 기울일 줄 알게 되면 영성이 발전하는 것이다. 노년이 되면 영성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종교적 믿음은 노년의 우울증과 관계가 깊다.
터먼 연구의 여성과 하버드 출신들의 연구를 통해 우울증과 종교적 참여관계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종교적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과거 우울증에 걸렸던 비율이 네 배나 높았다. 또한 우울증을 앓았거나 항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신앙이 매우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교적 참여가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즉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들은 종교 생활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한 것이다.
「터먼 연구 여성 집단의 한사람인 마서 조브는 비록 백내장 때문에 시력을 거의 잃다시피 했지만, 77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녀는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동맥염 치료를 위해 부신피질 호르몬제를 과잉 복용한 탓에 백내장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면역기능 저하로 수포성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정신과치료를 받거나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는 영성이 깊었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마서가 저항할 때마다 매를 들었는데, 그런 어머니를 마서는 진정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서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마서 조브는 병든 어머니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서는 의존적이고 광적인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도자기 사업을 하면서 그녀에게 가게의 경리일을 맡겼다. 그녀는 그 일이 지겨웠다. 더구나 남편이 도자기의 틀을 만들면 유약을 칠하는 일이 그녀가 하는 예술 작업의 전부였다. 창조는 늘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이 그리스 친구들과 차를 마시기 위해 외출을 나가도 그녀는 늘 집에 틀어박혀 유약을 칠해야 했다. 마서는 그러한 삶이 지겨웠다. 결국 10년 전에 남편과 이혼을 했다. 더구나 그녀는 낭포성 섬유종으로 죽어 가는 큰아들을 25세부터 40세까지 보살펴야 했다. 속수무책으로 아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15년 동안 지켜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중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신비로운 광채를 내뿜는 황금빛이 그녀를 향해 비추는 것이었다. 그 뒤, 마서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교회로 향했다.
신앙생활은 그녀에게 가슴 벅찬 위안을 안겨주었다. 아들이 죽은 뒤, 그녀는 미술적 재능을 접은 채 간호 보조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서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물리학과에서 예술에 재능이 있는 고등학교 졸업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마서는 원자핵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분야에서 그녀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 일은 필름에 찍힌 원자 입자의 충돌을 관찰한 뒤, 이론 물리학자들의 필름을 알아보기 쉽게 손질하는 일이었다.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마서는 천체물리학에 관한 논문을 읽으면서 거대한 천체에 미세한 입자 물리학을 적용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고, 나아가 우주와 영적 의사소통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서는 더 이상 바위에 부서져 가뭇없이 사라지는 불행한 파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마서 조브는 적절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지속시키지 않았기에 아주 외롭게 살았다. 교회를 통해 위안을 얻는 것 외에 공동체 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녀가 그린 수채화를 볼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마서는 창고에서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나와 보여주었다. 나는 계곡을 그린 그녀의 풍경화를 보면서 영성이 깊었지만 사회적 유대 관계를 끊고 살았던 화가 반 고흐를 떠올렸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기초는 종교가 아니라 사랑과 영성이다. 영성은 내적 삶에 귀 기울일 때 생겨난다. 신에 대한 믿음은 결국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8장 건설적인 노화 - 회복력이 넘치는 삶
나는 성인발달 연구를 통해 노화는 쇠퇴라기보다는 사회적 지평의 확장, 인내심의 강화,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의 성숙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노년기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고, 성공적인 노화는 결국 성공적인 삶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성격과 행동은 석고처럼 굳어지지 않으며 계속해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성인들도 계속해서 발달하는 것이다. 삶은 ꡐ흑이냐 백이냐ꡑ처럼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는 역설의 여정이다. 이 변화의 본질인 인격은 기질과 성격의 총합인데, 기질은 유전적인 것이며 성격은 환경 등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회복력을 지닌 사람은 신선하고 푸른 고갱이를 지닌 나뭇가지처럼 휘어져 모양이 변하더라도, 힘없이 부러지는 일 없이 금세 제 모습을 찾아 성장을 계속한다. 유전자와 환경은 회복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건강하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유대관계를 맺는 능력이 바로 회복력이다. 따라서 확대가족이 정신 건강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확대가족 속에서 우리는 건강한 동일시 기회를 더 많이 접하게 되며, 매우 다양한 취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건강한 변화를 통한 회복력으로 활력 있는 삶을 살아온 하버드 졸업생, 데이비드 굿하트의 예를 들어보자.
「데이비드 굿하트는 위탁 판매원이었던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탓에 어릴 적에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거의 3년 동안 학교를 다녀야 했다. 1931년 여름,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버밍햄에 남고, 굿하트는 어머니, 형과 함께 미시시피 주의 외삼촌댁으로 내려갔다. 그 곳의 아이들은 ꡐ도시아이들은 거만하고 남자답지 못하다ꡑ고 여기고, 도시에서 온 굿하트를 낯선 침입자 취급을 하며 놀림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따돌림으로부터의 적응방법을 찾던 그는 문득 한 가지 해결책을 떠올렸다. 반에서 제일 심각한 문제아가 되어 그들과 동화되기로 한 것이다. 그 날부터 그는 모든 규칙을 어기고 농담을 지껄이는 등의 말썽을 피우며, 그를 귀여워했던 선생님의 화를 돋우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자주 매를 맞아야만 했다.
교칙을 어기는 학생은 스스로 꺾어온 나뭇가지로 매를 맞았는데 한 번은 매 맞는 도중에 선생님의 손에서 나뭇가지가 반으로 뚝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굿하트가 나뭇가지에 미리 칼집을 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고, 대신 그는 두 배로 더 세게 매를 맞았다.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마음만은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굿하트는 교과과목의 성적은 A를 받았지만,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행동평가만은 늘 F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어머니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굿하트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삶에 지친 부모님의 잦은 다툼과 아버지의 술주정을 고통스럽게 겪어야 했다. 그래서 굿하트는 수줍음이 많고, 염세적이며, 내성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굿하트는 대학시절 숨겨진 자기감정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대학 유머 잡지에 재미있는 글을 써 올리면서 자신의 성난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2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전했을 때는 백인과 흑인 병사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훌륭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여 상관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남부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과 시 공무원 사이의 관계를 조정했고, 지난 10년 동안 디트로이트와 시카고의 도시 빈민가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지냈다. 이러한 활동은 곧 그의 가족이나 초등학교에서 겪었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다. 아버지처럼 고집불통인 백인들의 공격성을 다루는 기제를 터득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가 활용한 유머는 수동 공격성의 형태로 나쁜 행실로 인식되었지만, 40세의 굿하트는 그 유머로 인해 시민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데이비드 굿하트가 70세에 사망하자, <라이프지>는 굿하트를 용감한 민권 운동 지도자라고 소개했으며,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100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ꡐ대의를 위해 그리고 통합된 미국을 위해 헌신한 지혜롭고 유능하며 지칠 줄 모르는 지도자ꡑ라고 평가함으로써 그의 업적에 A를 선사했다. 그러나 굿하트는 성인발달연구를 위한 설문지를 제때 제출한 적이 없었고, 너무 많이 먹고, 술도 많이 마셨으며, 담배도 많이 피웠다. 나는 그에게 사회적 행동평가는 여전히 F라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는 온정과 사랑과 유머와 지혜로 수백 명의 사람에게 깊은 우정을 선사했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탓에 결국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굿하트는 소심한 성격을 능동적인 성격으로 변화시켰고, 불행했던 유년기의 방어기제를 간디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이타주의로 변화 발전시킨 회복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유전자는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태어날 때부터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역시 유전자다. 맨발로 험한 길 위를 걸어갈 때, 우리 유전자는 발바닥에 굳은살을 만들어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유전자는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다른 시각으로 부모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타고난 기질보다는 환경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역경이 인격 구조에 지울 수 없는 손상을 입힌다는 생각은 경험적 사실과는 무관한 가설일 뿐이다. 이른 아침이나 감기가 다 나은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운명을 극복한 뒤 변화된 인격은 그만큼 성숙할 것이며, 이는 성공적인 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