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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은 퀸스타운에서 북군을 공격한 이래, 잭슨의 병력은 처음 4천 5백명이었고, 이웰이 합류한 이후에도 1만 7천-8천명 정도였다. 하지만 계곡 주변의 북군은 항상 6만명이 우왕좌왕하였다.
잭슨이 처음 퀸스타운을 공격했을 당시, 뱅크스는 병력의 절반을 맥도웰에게 보냈고, 맥도웰은 리치먼드로 향할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잭슨군이 남아있자, 링컨은 맥도웰의 이동을 취소하고 뱅크스의 남은 군도 복귀시키고 프레몬트군도 동부 테네시로 공격하기로 한 원래 계획을 바꿔야 했다.
이후 잭슨은 콘라드 스토어로 숨었고, 뱅크스는 다시 잭슨이 계곡을 떠났다고 보고했다. 뱅크스는 쉴즈사단을 맥도웰에게 보냈고 맥도웰은 오는 대로 맥클레란의 주력부대로 합류할 참이었다.
하지만 잭슨군이 철도로 서쪽으로 이동한 뒤 프레몬트군의 선두부대를 격파하자 상황이 전혀달라졌다. 프레몬트는 북쪽 프랭클린으로 이동하여 10일간 꼼짝하지 않았고, 뱅크스의 일부 병력은 계곡에 남아있다가 잭슨에게 보급기지인 프론트 로얄을 기습당했고 윈체스터에서 완전히 패주하게 된다. 링컨은 다시 맥도웰의 지원을 취소하게 된다.
이 후 잭슨은 하퍼스페리까지 올라가서 워싱턴을 위협하고, 북군의 병기창을 파괴하는 대로 신속하게 후퇴하여 프레몬트와 쉴즈의 함정에서 빠져나왔다. 이 후 크로스키이에서 프레몬트군을, 프론트로얄에서 쉴즈 사단에게 강타를 날려서 두 부대는 후퇴하게 된다. 북군이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잭슨은 반도로 가서 맥클레란을 공격하는 남군의 한 축으로 활동하게 된다.
결국 잭슨의 활동으로 인해 맥도웰의 군 3만은 계곡 전투와 리치먼드 전투 어디에도 사용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북군 장군들은 잭슨에게 심리적으로 압도되어, 프레몬트는 잭슨군은 적어도 3만이라고 보고했고, 뱅크스는 잭슨이 계곡을 완전히 떠난 6월28일에, “잭슨이 곧 계곡을 북상하여 공격할 것이다.”라는 보고를 워싱턴으로 올렸다. 프레몬트나 뱅크스 쉴즈같은 북군의 정치장군들은 잭슨을 대적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그리고 불운한 장군들이었다.
잭슨은 5월 15일에서 6월 17일까지 한달동안 1000킬로 가까이를 행군하였다. 한달 사이에 서울 부산을 한번 왕복하면서 5번의 전투와 수많은 전초전을 치른 것이다. 당시 남군에는 맨발인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잭슨이 얼마나 부하들에게 엄격한 장군이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잭슨은 매우 독실한 교회 신자였으며, 일요일에는 부인이 보낸 편지도 보지 않았고, 가급적 전투를 하지 않을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군대가 ‘하나님의 군대’며, 계곡 전투는 이것을 입증했다고 생각했다. 계곡전투가 끝난 뒤 잭슨은 참모에게 “이 작전을 보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장님이야 장님”이라고 말했다.
독실한 신자로서 잭슨은 종교적 열정과 적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전투에 대한 열정이 혼합된 매우 과감한 장군이었다. 특히 부하들에게는 매우 혹독하여, 행군 중에 발생한 낙오병은 쓸모 없는 놈이라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군에서 행군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에 수십킬로의 행군을 맨발로 한다는 것은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이다. 하지만 잭슨은 언제나 부하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그로써 상상하기 힘든 전과를 얻어냈다.
또한 잭슨은 전투에 돌입하면 죽을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한번은 잭슨이 명령을 내릴때, 부대장이 당신의 명령대로 하면 누구도 살지 못한다고 하자, “너가 다치면 치료하고, 너가 죽으면 묻어주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명령을 따르기를 강요했다. 언젠가는 연락장교를 찾았는 데, 장교가 죽었다고 하자, “아주 좋아, 아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잭슨은 자신의 죽음은 물론 부하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 장군이었다.
잭슨의 계곡전투는, 잭슨의 이와 같은 열정이 잘 나타난 전투이다. 수도로 복귀하라는 남군 수뇌부의 명령에도, 잭슨은 거절하고 자신의 부대의 기동과 타격으로 적을 긴장하게 만들고 다수의 적 부대를 유인하였다. 만약 잭슨의 활약이 없었으면, 리치먼드의 함락이 3년은 앞당겨졌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일찍이 하늘은 잭슨과 같은 장군에게 천수를 준 적이 없다. 내가 명령을 내릴 때, 그것이 달성가능하다면, 잭슨은 달성했다. 나침반이 북을 가리키듯이, 잭슨은 자신의 임무를 항상 달성해냈다.’ - 로버트 에드워드 리
첫댓글 -_-;; 잭슨 장군.. 뛰어난 장군이지만.. 그 밑에서 싸우고픈 생각은 들지 않네요..
잭슨이라는 사람은 모순된 성격들이 그럭저럭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군요. 밑에서 부하노릇하기는 참 고달프겠지만 동료나 부하로서 잭슨을 부릴 수 있다면 행운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실제 부하들은 잭슨을 적군보다도 더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어느 병사는 '잭슨은 우리에게 1장의 모포와 1자루의 총, 100발의 탄알을 주고 악마처럼 몰아붙였다.' 라고 회고했습니다.
적이나 아군이나 모두 비슷한 장비, 똑같은 발을 가진 존재입니다. 명장과 범장의 차이란 악착같이 부하들을 몰아붙이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군요.
사실 남부군이 선전한 이유 중에 하나로... 대부분 공세보다는 수세로 몰렸기 때문이고.. 또한 고향을 수호 한다는 의지가 좀더.. 작용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밀리면.. 고향의 형제자매 가족들이 피해 보는 상황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겠지요... 임전무퇴랄까요?.. 그래서 잭슨의 강한 통솔에도 어느정도 따라준듯.. 실제로 탈영병들은.. 잡히면 잭슨장군은 죄다 총살했지요.. 병사들을 너무 극한으로 몰면.. 돌발 상황 아무도 장담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 초반 어느정도.. 남부군이 선전했을대 영국이 제대로 지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ㅎㅎㅎ)
가장 유능한 지휘관은 게으른넘이다, 라고 누구누구께서 하신말씀보면 잭슨은 확실히 '가장 유능한 지휘관'은 아니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