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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준비
노즈는 총 31피치(예전엔 34피치로 등반)로 완경사와 수직벽, 오버행과 페이스, 크랙, 침니,
미세한 크랙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엘캡에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대표적인 루트다.
다양한 테크닉과 지구력, 시스템 등 암벽등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요구한다.
등반거리 약 1,600m의 장거리 루트로, 특히 펜듈럼 구간이 많아 주마 트래버스와 펜듈럼의
원활한 시스템 구사능력이 요구된다.
노즈는 대부분 제4피치까지 전날 등반하고 내려와서 하루 정도 쉬고 다음날 주마링으로
제4피치까지 올라 등반을 계속하게 된다.
중간의 테라스에서 비박할 수 있어 포타레지가 필요없는 만큼 짐을 많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등반자가 많이 몰리면 비박지가 모자라 포타레지를 사용해야 한다.
노즈는 제22피치인 대천장을 중심으로 수직벽과 오버행이 시작된다.
수많은 트래버스와 펜듈럼, 미세한 크랙부터 침니까지 다양하다.
이곳에 캠과 너트를 설치하면서 등반해야 한다.
대부분 후등자는 주마링을 하게 되는데, 체력과 지구력, 주마링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등반스타일은 경량 속공등반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고전적인 홀링과 전체를 인공등반으로
할 것인가를 등반자들이 성격에 맞춰 결정한다.
최근에는 일본의 유지 히라야마와 독일의 한스 플로린 간의 속도등반에 불이 붙어
히라야마가 몇 년 전에 세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7월2일 아침 자신의 기록을
1분 정도 더 단축시킨 2시간43분33초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필자도 몇 년 전 정보와 연습 없이 당일등반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 마디로 급히 서두르고 너무 얕잡아보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빅월에서는 서두르는 것보다는 침착하고 안전한 등반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번에 1박2일로 여유 있게 등반한 결과 당일등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반드시 한 번쯤은 해보고 당일등반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장비는 등반자에 따라 다르지만 캠 3~4세트, 너트 1세트, 퀵드로 10개, 카라비나 5개,
120cm 슬링 1개, 60cm 3개, 래더 1조, 로프 60m 2동(인원에 따라 달라짐), 안전벨트,
주마, 캠회수기 등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물, 포타레지, 의류, 침낭, 식량, 장갑, 랜턴 등 많은 장비가 소요된다.
이들 장비는 등반자의 능력과 등반기획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속도등반
노즈의 어프로치는 엘캡의 중앙 앞 잔디밭 도로변에서 약 10분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등반대처럼 우리도 제4피치까지만 하고 내려올 계획으로 준비했다.
아침을 챙겨먹고 여유있게 집사람, 홍례와 같이 1박2일의 식량과 장비를 짊어지고
출발지점에 다다랐다. 엘캡을 보는 순간 3년 전 추락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내 몸이 허공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지? 그만 멈춰야 하는데…”하며 생각하고 밑을 보았다.
확보를 보고 있는 길수의 손이 바위에 부딪히면서 내 몸도 허공에 섰다.
허리와 발목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부러진 다리의 심한 고통을 참으며 한쪽 발로 10여 번 하강했다.
바닥에 내려와 네발로 엉금엉금 기었다. 그리고 바위벽을 쳐다보았다.
집사람과 홍례, 길수가 하강하고 있었다.
노즈의 바위벽을 쳐다보고 있는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망의 눈물인가? 아쉬움의 눈물인가?
노즈를 오르고자 하는 황혼의 작은 꿈은 눈물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좋지 않은 추억은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생각하자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준비했다.
노즈는 인수봉의 고독의 길 정도의 완경사를 70여m 오르고 나면 제1피치 출발점이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지난번 해봐서 그런지 완만해 보이며 자신감이 생긴다.
제1피치는 약 70도 경사에 미세한 핑거크랙으로 50m쯤 된다.
바위면은 차돌처럼 미끄러우며 돌기부분이 하나도 없어 암벽화의 마찰력을 기대할 수 없다.
예전에는 촘촘히 박혀있는 하켄을 따라 오르던 곳인데,
지금은 클린클라이밍의 일환으로 하켄을 모두 뽑아버렸다.
따라서 하켄구멍을 이용하여 오르게 되는데 미끄러워 까다롭다.
피치 확보지점은 쌍볼트에 체인을 연결해 확실하며 피치 전 구간에 볼트는 한 개뿐이다.
따라서 캠을 설치해야 하는데, 손가락 두 개 정도 들어가는 작은 구멍이라
에일리언 캠이 효과적이다.
제2피치 역시 제1피치와 비슷하다.
등반길이 약 50m, 수직으로 곧바로 오르는 실크랙을 따라 오르다 마지막 부분에서
우측으로 넘어가서 볼트에서 우측으로 펜듈럼한다.
에일리언 1세트와 너트 작은 것 한 개가 필요하다.
제3피치는 곧바로 이어지는 핑거크랙을 오르게 되는데, 올라갈수록 크랙이 좁아진다.
20여m 올라서는 작은 너트가 필요하며, 이곳을 지나면 우측으로 볼트 3개가 있다.
볼트에서 우측으로 이동해 크랙으로 진입한다.
우향 크랙을 따라 30여m 오르면 쌍볼트가 나온다.
제4피치는 곧바로 이어지는 크랙을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트래버스를 해야 하는데,
슬링으로 연결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슬링을 잡고 20여m 걸어가면 쌍볼트가 나온다.
이곳 제4피치는 여러 명이 서있을 수 있는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60m씩 세 번의 하강으로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쌍볼트를 설치해 놓았다
식량 도난
우리는 다음날 등반할 배낭을 제4피치에 걸어두고 하강했다.
우리가 내려가는 사이 외국인들이 제1피치에서 홀링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일 우리와 겹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내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샤워장에 가서 씻고 소고기파티를 하기 위하여
마켓에 들렀다 돌아왔다.
길수가 LA에서 돌아와 합류했다.
몸도 피곤하고 앞 팀과 겹칠 것을 우려하여 내일 하루를 쉬기로 했다.
대천장의 미세한 크랙
신중한 자세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중했다.
약 500m 고도의 아무런 확보물도 보이지 않는 수직벽에서 프리클라이밍으로
돌파하는 쾌감은 남달랐다.
15m의 페이스를 돌파하여 오르고 나니 반가운 쌍볼트가 보인다.
“완료!”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졌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아 미친놈처럼 위를 쳐다보고 웃었다.
제14피치, 첩첩산중이다.
데드르의 미세한 오픈크랙으로 50여m가 이어지는 고난도 크랙이다.
장비설치도 만만치 않다. 작은 사이즈의 캠만 사용이 가능하다.
제19, 제20피치는 좌측으로 횡단하는 구간이다.
선등자는 쉽게 갈 수 있지만 후등자들이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다.
제21피치는 우측으로 트래버스하면서 계속 오르는 구간이다.
비교적 양호한 크랙과 페이스로 이어진다.
제22피치(5.13)는 엘캡 앞 잔디밭에서도 훤히 보이는 대천장 구간이다.
미세한 크랙으로 오르지만 우측으로 계속해서 구부러져 있고, 크랙상태가
미세하여 장비설치가 힘들다.
제23피치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크랙이다.
비교적 양호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캠들이 필요하다.
제24피치는 수직으로 이어지는 미세한 크랙이다.
대천장 구간부터 난이도가 올라가지만 제24피치는 더욱더 까다롭다.
대천장부터 수직벽과 오버행으로 연결되며 고도감을 느낄 수 있다.
제24피치(예전의 제27피치)에서 어두워져 랜턴을 밝혔다.
원래 목표가 제24피치 캠프5였으니 계획대로 잘 되고 있었다.
서둘지 않고 신중히 진행했다.
여유를 갖자고 다짐하고 오르고 있는데 밑에서 집사람과 홍례가 걱정된 목소리로 침착하게
하라고 주문이 온다.
아마도 날씨가 어두워지니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크랙이 끝나고 완경사가 좌측으로 이어진다.
완경사지만 바위가 미끄럽고 특별한 홀드가 없어 한 동작 한 동작 밸런스를 요구하는 구간이다.
드디어 반듯한 테라스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곳이 우리가 묵을 수직벽에 매달린 지상 최고의 호텔방이다.
큰 소리로 “완료!”를 외쳤다.
이어서 길수가 올라오고 집사람, 가장 마지막에 홍례가 올라온다.
모두들 힘이 넘쳐 보인다. 여유가 있고 즐거워 보인다.
덩달아 나도 힘이 생기고 기분이 찡하다.
비박장소는 가로 2.5m, 세로 1.2m쯤 되며 약간 경사가 졌다.
세 명은 잘 수 있는데 대각선으로 누워야 하는 좁은 공간이다.
그래도 대암벽에서 이런 테라스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매트리스를 깔고 저녁만찬을 즐겼다.
장소는 엘캡의 노즈 제24피치의 수직벽 깎아지른 절벽의 둥지 같은 레스토랑이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져버릴 것 같은 무수한 별들이 우리의 만찬을 조명하고 있다.
오늘 목표한 곳까지 무사히 왔기 때문에 일정대로 잘 되고 있다.
특히 지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일은 일곱 피치만 올라가면 된다.
컨디션도 좋고 여유가 있는 엘캡의 저녁식사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길수는 10여m 아래에 있는 독방을 향해 배낭을 챙기고 하강한다.
나머지 셋은 가장 아래쪽에 홍례, 가운데에 집사람, 그리고 내가 가장 위에 대각선으로 누웠다.
홍례가 일어나라고 주문한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훤히 떠 있다.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저 밑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하늘, 푸르른 숲, 맑은 계곡물, 어저께 본 그대로다.
하지만 오늘 아침 풍광은 더욱더 새롭고 신선하게 보인다.
길수는 부지런하기도 하다. 벌써 일어나 우리 방까지 올라왔다.
18년만의 꿈
우리는 아침 식사 후 오전 8시경 제25피치를 출발했다.
대천장부터는 만만한 피치가 하나도 없다.
수직벽과 오버행에다가 크랙은 미세하고 불량하다.
다행인 것은 확보장소인 테라스가 올라갈수록 양호해진다는 것이다.
제26피치는 양호한 크랙을 따라 수직으로 올라간다.
넓고 쉬운 크랙을 올라서면 제27피치 출발점의 넓은 테라스인 캠프6가 나온다.
올라가자마자 로프를 고정시키고 암벽화를 벗어버렸다.
우리는 오랜만에 네 명이서 함께 모여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이곳 테라스는 한쪽이 갈라져 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볼일을 보기도 하여 예전에는 뻥 뚫렸다는
그 크랙이 지금은 거의 메워진 상태다. 보기가 안 좋다.
제27피치는 미세한 크랙을 수직으로 오르다 크랙이 없어지고 볼트 서너 개가 연결된다.
우측으로 2m 정도 펜듈럼하여 각진 모서리 데드르 크랙을 오르게 되는데, 이곳이
노즈에서 가장 어렵다는 체인징 코너스(5.14a)다.
잡을 곳도 디딜 곳도 하나도 없다.
혹시라도 뭐가 있는지 만져보고 디뎌보고 하였으나 미끌미끌한 바위는 날 거절했다.
이런 곳을 프리로 올랐다니 경이롭다는 생각만 든다.
완료하고 로프를 고정시켰다.
로프가 날카로운 암각에 걸려있어 걱정스러웠으나 후등자가 불안해 할까봐 알려주지 못했다.
올라오던 길수는 암각에 걸린 로프를 보고 놀라는 눈치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확보를 마쳤다.
제28피치는 우향 오버행으로 이어지는 크랙이다.
이곳 확보물은 좋지 않다. 계속해서 50여m의 수직벽과 오버행 크랙으로 이어진다.
제31피치 크랙을 10여m 오르다 볼트길로 이어진다.
볼트길을 통과해 완경사 30여m 올라가니 노즈 정상임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있었다.
오후 4시경 정상은 뜨거웠다.
“야! 정상이다!”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소나무를 꼭 껴안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18년이 걸렸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었다. 즐거움과 쾌감, 허무함이 교차했다. 그리고 감격스러웠다.
한참을 기다리니 걱정을 많이 했던 여자들 둘이 무사히 올라왔다.
두 달 동안 훈련한다고 고생도 많이 했는데 고맙고 대견했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길수와 강한 악수를 길게 했다.
그 강한 악수 속에는 우리들의 우정과 사랑, 자일의 정이 들어있을 것이다.
황혼에 이르러서야 엘캡에서 작은 꿈을 이룬 것이다.
이번 요세미티 엘캡 노즈 등반에 참여했던 길수와 집사람, 홍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등반대를 지원한 네파와 호상사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 글·사진 김용기 김용기등산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