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간화선에 대한 통찰
이 이야기는 황전이의 지금 이 순간의 안목(眼目)입니다. 안목이란 수행의 정도에 따라 그 변함이 끝이 없습니다.
인연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참선 수행을 이야기 하자면, 달마대사님 시절에는 달마대사님이 중심이었고, 육조 혜능대사님 시절에는 육조 혜능대사님이 중심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법상종, 위앙종, 운문종, 임제종, 조동종의 오종가풍이 중심이었습니다.
황전이의 안목으로 보면 이러한 중심들은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 시대가 사라지면 그 중심 또한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이란 흐르는 물처럼 머무는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이라는 근본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옛 물은 아닙니다.*
오종가풍이 사라질때쯤 해서 대혜종고 스님이 조주 무자(無子)를 중심으로 간화선이 등장하게 됩니다.
대혜종고 스님이 조주 무자의 중심으로 간화선 중심을 세우는 목적은 참선 수행자들이 제대로 된 참선은 하지 않고 선학(禪學)에만 열중했기 때문입니다.
오조가풍이 중심일 때에는 수행자들의 근기가 출중하여 선학(禪學)보다는 참선이 중심이었는데, 오조가풍이 사라진 뒤의 수행자의 근기는 하열하기 때문에, 참선 보다는 선학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대혜종고 스님은 선학의 수행자를 참선의 수행자로 바꾸기 위해서 간화선이라는 중심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대혜종고 스님이 간화선을 세운 목적은 그 시대의 참선수행자들이 간화선을 발판으로 해서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일념으로 끝없이 정진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황전이의 안목으로 보면 이제는 시절인연에 따라 대혜종고 스님의 간화선도 흘러갔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가 있었고 이조시대에는 이조백자가 있었습니다.
이조백자는 고려청자를 바탕으로 삼아 만든 독창적인 이조시대만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현대도자기는 고려청자와 이조백자를 바탕으로 해서 창조해낸 도자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도자기 보다는 이조백자를 더 선호하고 이조백자보다는 고려청자를 더 선호하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그 작품성이 대단히 뛰어난 점도 있지만, 골동품이라는 미명아래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탓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에 들어와서 작가들이 현대도자기 보다는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를 재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꼬집어서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그 모양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결코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그 시대의 풍토에서 밖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풍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그 사람들의 심성(心性)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과학의 힘이나 영적인 힘으로 이미 변해버린 풍도(風土)나 그 시대의 사람들의 심성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시대에도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풍토를 바꾸고 도공의 심성만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그 시대에 살았던 모든 인간들의 심성을 바꾸기 이전에는 결코 고려자기나 이조백자 같은 명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황전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이 시대의 간화선 수행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누구를 중심으로 간화선 수행을 해야만 할까요?
황전이 안목으로 보면, 경허선사님을 중심으로 간화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허선사님 수행이력을 보면, 대오(大悟)하기 이전에 우선 간화선을 할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황전이 안목으로 보면 간화선은 간화선을 할만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경허선사님을 통해 간화선의 자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발행한 <경허집>을 보면,
경허선사님은 천성이 소탈하고 활달하며 밖으로는 꾸밈이 없어서 무더운 여름에 경을 보매 대중들은 모두 옷을 입고 바로 앉아서 땀을 줄줄 흘리는데, 혼자서 웃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태연하게 형상과 거동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일우강사가 보고는 문인들에게 이르기를 <참으로 대승법기로다. 너희들은 도저히 미칠 수 없느니라.> 하였다.]
황전이 안목으로 이 대목을 보면, 경전 삼매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십 삼세에 동학사에서 개강하니 교의를 논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나간 시대에도 그러하였지만, 이 시대의 참선 수행자는 간화선 수행을 하기 이전에 경허선사님처럼 경전에 달통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전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경허집을 보면 경허선사님께서 간화선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 지자, 시절인연에 의해서 전날 은사님을 찾아가는 도중에 홀연히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가니 집주인들이 내쫓는지라 다른 집으로 갔으나 역시 똑같았다. 그 마을 수십 가구를 다 가보아도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이곳에는 전염병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 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죽는 곳에 들어 왔는가!” 라고 했다.
경허선사님은 그 말을 듣자 모골이 송연하고 심신이 황망하여 마치 죽음이 당장 도달한 것과 같고,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밖의 청산 같았다.]
자, 이 이야기를 황전이 안목으로 파설해 보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날 경허선사님께서 옛 스승을 찾아갔겠습니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날 폭풍우가 불고 전염병이 그 마을을 덮었겠습니까?
경허선사님께서 경전 공부를 통해 간화선 수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기에 시절인연의 도리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연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도리를 더 깊이 통찰해보면 수행자가 자격이 갖추어지면 다음 단계의 수행을 위해 저절로 모든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경허선사님께서는 전염병 마을에서 간화선으로 들어가도록 해주는 스승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곳에는 전염병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 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죽는 곳에 들어 왔는가!> 이 말은 스승님이 아니면 해 줄 수 없는 말입니다. 스승님의 말이 아니라면 <몰골이 송연하고 심신이 황망하여 마치 죽음이 당장 도달한 것과 같고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밖의 청산 같았다.>라는 이러한 경계를 맛보지 못합니다. 이러한 경계를 맛보아야 만이 사실 화두(話頭)를 들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언어에는 강력한 에너지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 시절인연에 따라 수행자를 깨어 놓습니다.
이 도리를 황전이 안목으로 보면, 불보살님들께서 마을 사람들의 모습으로 순간, 나투신 것으로 보여 집니다.
[경허선사님께서는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에 구속되지 않고 조도(祖道)를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 하고 발원을 마치고,]
여기서 문자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경전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경전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문자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하지, 경전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경허선사님의 이 경지, 이 상황이 되었을 때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대목부터입니다.
[평소에 읽은바 공안을 생각해보니 이리 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참구할 분(分)이 없으나]
*황전이도 몇 년 동안은 의리선 공부를 해왔습니다. 황전이가 의리선 공부를 한 이유는, 마조스님이나 조주스님 같은 분들이 계시던 시절에 참선 수행을 했으면 활구(活句)를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러한 시절이 아니라 활구를 꿈에라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연한 의심이 아닌, 제대로 된 의심을 하기 위해서는 공안을 닥치는 대로 의리(義理)로 풀어버리는 수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황전이가 경험한 것에 의하면 이 시대에는 화두를 참구하기 이전에 먼저 의리선 공부를 해서 천칠백 공안을 하나로 뚫을 정도가 되면, 스승을 찾아가 그 의리선을 점검을 받고 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그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끝없는 정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화두가 들리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화두 '이뭣꼬' 나 '無'자등 그 어떤 화두가 되었던 그 화두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경지가 되면 화두는 의심을 넘어 하나의 알 수 없는 힘으로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황전이는 이러한 경험을 스스로 이시대의 간화선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전이가 의리선(義理禪))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수많은 공안들이 의리로 완전히 풀어질 때, 그때가 <금강경에서 말하는 四相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닦아 놓은 복이 있어 선지식을 만나면, 활구를 맛볼 것이고, 닦아놓은 복이 없어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자칭 대오(大悟)자가 되어 많은 수행자를 눈멀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경허선사님의 이 대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영운선사의 들어 보인 바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 왔다.>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다.]
경허선사님께서는 의리(義理) 수행을 나름대로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화두를 찾아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대목이 이 시대에 맞는 간화선을 하는 방법입니다. 스승이 화두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화두를 찾아드는 방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두를 들었으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황전이가 알고 있는 몇몇의 간화선 수행자들은 화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화두를 참구하며 억지로 의심을 일으킵니다. 분명히 알아둘 것은 억지로 일으킨 의심은 자신을 속이는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억지로 일으킨 의심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데 있습니다.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 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 같이 삼개월을 화두를 순일 무잡하게 들었다.]
지금도 이보다 더 용맹정신으로 화두를 들고 있는 수행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두를 타파하지 못하는 것은 경허선사님 같은 경험을 맛보지 못했거나,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오래전에 정년퇴직을 몇 개월 앞둔 거사님이 황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거사님이 말하기를 불교 입문한지가 일 년이 조금 넘었는데, 누가 '신묘장구대다라니'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해서 열심히 했는데 병들었던 몸이 조금은 좋아 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황전이에게 앞으로도 계속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면 되는지 물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전이는 이제 그만 하면 되었으니까 이제부터는 경전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뜸 하는 말이
“수월(水月)스님은 '신묘장구대다라니'로 도를 이루신 분인데, 어째서 그만 하라고 하십니까?” 하고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전이가 하는 말이
“그럼 수월 스님처럼 글자도 모르고 젊어서 머슴을 산 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경허선사님 같은 스승을 만난 일이 있습니까?” 하니 다시는 연락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몇몇 수행자들은 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고, 도인이 된 후의 일만 생각하고 도인의 수행을 따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요즘 간화선 수행자들은 경허선사님이 하셨던 수행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구는 할 수 있습니다. 간화선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자신에 맞는 간화선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후 경허 선사님께서 대오(大悟)를 하셨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 여기 옮겨 놓지는 않겠습니다.
경허선사님께서 하신 대오(大悟)는 경허선사님만의 시절인연 이야기이니까요.
갑자기 조사 어록에서 본적이 있는 한 게송이 떠올라 여기 옮겨봅니다.
옛 길에
토끼 한 마리가
누워 있는데
눈치 빠른 솔개는
단숨에 낚아 채고
뒤 늦게 온
사냥개는 냄새를 쫓아
주변을 빙빙 돌고만 있네.
참구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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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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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이 맞아야 토끼고기를 맛본다네... 나는 과연 불교를 뭘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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