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후기
이 책은 판보췬范伯群 선생의 중국현대통속문학사中國現代通俗文學史(揷圖本)(北京大學出版社, 2007年)를 번역한 것이다. 1931년생인 판보췬 선생은 1955년 푸단(復旦)대학을 졸업했고 200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수십 년간 쑤저우蘇州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했으며 퇴직 이후에는 푸단대학 고대문학연구중심에서 연구 활동을 지속했었다. 중국 현대 작가 위다푸郁達夫에 대한 연구로 본격적 연구 활동을 시작한 판 선생은 이후 루쉰魯迅, 빙신冰心 등으로 지평을 넓혔고,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중국 사회 전반에 억압 분위기가 사라지는 등 학문 연구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에 통속문학으로 연구 방향을 전향하여 학문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판 선생의 학문적 성과는 현대 통속문학 연구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속문학 연구의 가치와 의미를 제고했고 중국 근현대 통속문학을 문학사 연구 시야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든 것이다. 문학사 양날개론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주장을 이제 대다수의 문학연구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원앙호접파문학자료鴛鴦蝴蝶派文學資料(1984), 예배육의 호접몽禮拜六的蝴蝶夢(1989), 중국근현대통속작가평전총서中國近現代通俗作家評傳叢書(1994), 중국근현대통속문학사中國近現代通俗文學史(2000) 그리고 중국현대통속문학사(2007) 등 그가 직접 저술하였거나 주편을 맡아 내놓은 저서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중 중국현대통속문학사는 판 선생 일생의 열정과 노력, 학문의 깊이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최대 역작이다. 판 선생은 2001년도 쑤저우대학을 퇴임한 후 5년의 시간을 공들여 이 저서를 내놓았다. 중국에서 이 책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300여 장에 이르는 각종의 희귀 사진과 그림 때문이다. 이 사진과 그림을 수집하기 위해 판 선생은 수없이 발품을 팔았을 것이며 먼지 쌓인 자료를 끊임없이 뒤졌을 것이다. 노학자의 열정과 노고가 느끼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내용이 부실하다면 그리 환영 받지 못할 것이다. 베이징대학 쿵칭둥孔慶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판 교수가 25년 동안 이 책의 사진과 그림을 모았다면 내용을 위해서는 30년 가량의 시간을 준비했다고. 외면적으로만 보면, 이 책은 판 선생이 주편한 중국근현대통속문학사보다 소략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따지면, 이 책이 오히려 더 정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번잡하고 잡다한 내용이 덜어지고 정리되었다는 느낌이 확연하며 작품 외적인 상황, 말하자면 작가간의 교류 관계, 문학잡지 발행의 내막에 관한 서술 등 통속문학계 전반의 작동 기제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학문적 정합성과 엄정성을 넘어 판 선생의 자유로우면서도 유연한 학문적 태도와 깊이 있고 너른 학문의 품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편 이 책이 각광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후학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간 중국현대문학사에서 다루지 않았거나 잠시 이름만 거론하고 지나친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 소개하고 있으며, 일반 독자 혹은 서민과 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세계(말하자면, 통속문화계와 그 밑바탕이 된 도시의 일상 사회)를 비교적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잃어버렸던 한쪽 세계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이유로 앞으로 중국에서 이 책에서 다뤘던 작가와 작품, 문학 및 문화적 사건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판 선생은 2004년 「나그네: 석양 노을 아래에서의 방황」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학술 경력을 ‘성가(成家)―전환―회귀’의 세 단계로 나눈 바 있다. 루쉰, 위다푸, 빙신 등의 작가를 연구하던 ‘성가’ 단계에서 통속문학 연구로 ‘전환’해 이제 총체적 근현대문학사 연구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제3단계 ‘회귀’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문학사 담론의 의의에 대해서는 「해제」에서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중국현대통속문학사』의 독특함은 매체 관련 서술에 구현되어 있다.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 도시문화의 최초 발상지이자 서식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근현대문학과 예술은 최소한 그 탄생과 발전의 초기 단계에 자연스레 상하이를 중심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근현대문학은 대도시의 시민을 주요 독자로 삼기 마련이고 도시 대중을 기본 독자로 삼자면 매체의 힘을 빌어야 한다. 경제 발전은 상하이 도시문학 흥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우선 독자층이 증가했고 그와 비례해 문학 간행물이 성행했다. 판보췬 선생에 따르면, 1949년 이전 중국에 세 차례의 문학 간행물 붐이 있었다고 한다. 1902-1907년의 『신소설新小說』과 『수상소설繡像小說』 등, 1909-1917년의 『소설시보小說時報』와 『소설대관小說大觀』 등, 그리고 1921년의 『소설월보(小說月報)』와 『토요일(禮拜六)』 그리고 『자라란(紫羅蘭)』 등이 그것이다.(3장, 6장, 9장 참조) 이 잡지들은 대부분 상하이에서 발간되었다. 사실 루쉰이 4대 견책譴責소설의 하나로 지목했던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의 작가 리보위안李伯元은 대형신문 『지남보指南報』(1898.6.6. 창간)의 주필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 최초의 소형신문(小報)인 『유희보遊戱報』(1897.6.24. 창간)의 주편을 맡아 소형신문 붐을 일으켰다. 이후 신해혁명 이전까지 상하이에는 약 40종의 소형신문이 간행되었는데, 위의 4대 견책소설은 바로 이 소형신문에 연재되면서 근현대 상공업의 번영과 대도시의 흥성을 반영하고 피드백 하는 사회소설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매체와 관련된 문학사 서술은 다른 어떤 문학사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함이다. 판 선생의 문제의식을 20세기 중국문학 전반에 확장시키는 것은 이후의 과제일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2007년 당시 중국학 전문 신흥 출판사로 주목받던 차이나하우스의 이건웅 사장이 베이징대학출판사로부터 직접 판권을 입수해 당시 내가 회장으로 있던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에 번역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미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는 초창기의 ‘셴다이(現代: 1917-1949)’문학에 치우쳤던 상황을 극복하고 이른바 진다이(近代: 1917년 이전)와 당다이(當代: 1949년 이후) 문학을 아우르고 있던 참이었고, 그동안 엄숙문학 위주의 연구 관행에 통속문학의 문제의식을 아우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판사의 제안을 흔연히 수락했다. 그리고 통속문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6명으로 구성된 번역팀을 구성했다. 46배판의 본문 596쪽의 분량을 한두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모두 6명이 나누어 번역하였다. 한국어판 서문과 자즈팡과 리어우판의 서문 두 개와 서론, 제1장은 임춘성이, 제2장과 제4장은 신홍철이, 제3장, 제6장, 제9장, 제14장은 신동순이, 제5장, 제8장, 제20장, ‘후기를 대신하여’는 김봉연이, 제7장, 제11장, 제15, 16, 17장은 유경철이, 제10장, 제12, 13장, 제18, 19장은 전병석이 맡아 번역했다. 나눠서 번역한 후 용어와 작품명 등을 통일하고 유경철이 한 차례, 임춘성이 두 차례 통고(統稿)했다. 그럼에도 미진한 부분은 옮긴이의 책임이다.
번역을 시작한 후 마냥 미뤄지는 작업을 기다려준 이건웅 사장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수많은 도판과 번거로운 고유명사 표기 등을 꼼꼼하게 작업해준 편집부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대한다.
2014년 8월 24일
두 번째 통고를 마치고, 옮긴이를 대표해
임 춘 성 씀
첫댓글 2007년쯤인가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가 와서, 당시 출판이사와 논의해서 번역팀을 꾸렸다. 그런데 출판사 사정으로 늦어지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주의깊은 독자라면 알아차리겠지만, 해제 날짜와 후기 날짜가 간격이 길다. 그 사이 띠엄띠엄 몇 차례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재미가 새로웠다. 출판사에서 가격을 너무 쎄게 매긴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매우 읽고 싶은 책입니다. 번역해주셔서 편하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임춘성 선생님을 비롯한 번역자분들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