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금강산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말사
신흥사 참배를 마치고 오후 5시경에 건봉사에 들어섭니다.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성군의 고찰이다.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운다. 고성군 금강산 자락 깊숙이 있어, 울산에서는 평소에 가보기 쉽지 않은 곳이다. 건봉사에는 특이하게도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함꼐 있는 사찰이다.
6.25전쟁 이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로,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원각사"라 이름하여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불이문
6.25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이다.
건봉사 불이문은 독특하게도 기둥이 4개다. 1920년에 세워졌으며 해강 김규진 선생이 글씨를 썼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규모가 꽤 크며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지만 꼭대기에 오리가 앉아 있어 솟대라 할 수도 있겠다. 돌기둥이 서있는 부분은 널직한 공터로 되어있는데, 과거 건봉사의 번창했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공양간
신흥사 참배를 마친 일행들은 곧장 이 곳 건봉사에 도착하자 마자 법당에 들어 부처님께 참배 후 서둘러 저녁 공양부터 먼저 합니다. 공양간은 깔끔하게 새롭게 단장한, 나무 내음이 흠뻑 베어나오는 새집입니다.
758년(경덕왕 17)발징화상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한국 염불만일회(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의 시초이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중건한 뒤 절 뒤쪽에 봉형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라 개칭하였고 1358년(공민왕 7)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바꾸어 비로서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이 되었다.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
건봉사에 봉안된 진신 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법사가 636년(선덕왕 5)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문수보살전에 기도 끝에 얻은 진신사리 100과중 일부이다. 자장법사는 643년 귀국하여 이 사리들을 통도사,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봉정암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그런데 임란 때 왜군들이 통도사에 난입하여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해 가벼렸다.
그뒤 사명대사가 통도사 사리를 되찾아오고, 통도사 금강계단을 중수하여 사리를 다시 모셨는데, 그 가운데 12과를 나누어 맨 처음의 승군을 규합한 인연이 있었던 건봉사에 봉안하였다.(석가여래치상탑비)
이것은 귀중한 진신사리가 다시 약탈될 경우를 우려해 나누어 분장한 것이다.
봉안된 진신사리는 1986년 6월 도굴꾼들에 의해 도굴되었었으나, 6월 하순부터 도굴꾼들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사리를 돌려주라"고 꾸짖는 꿈을 며칠간 계속 꾸게되었고, 꿈의 계시에 불안에 떨기 시작한 도굴범이 7월14일 서울 봉천동 ㄱ호텔로 찾아가 사리 12과 가운데 8과를 맡겨놓고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나머지 4과는 공범 중 한 명이 가지고 달아나는 바람에 증발되었다.
법당에 봉안된 진신사리 5과는 참배불자들의 친견을 허락하고 있으나, 촬영은 절대 금지이며, 오후 7시 이후에는 금고형의 사리함이 닫혀진다.
국내에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찰은 더러 있으나, 건봉사처럼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된 곳은 없다. 그런데 건봉사 진신 치아사리는 사명대사가 봉안한 사실이 분명하므로 그 가치가 더욱 높은 셈이며. 치아사리는 세계에 15과 뿐인데 건봉사에 12과 스리랑카(불치사)에 3과가 보관된 희귀한 보물이라고 전해진다.
저녁공양 후 종무소와 함께 통로하며,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에서 스님의 법문을 청합니다.
이 날은 서울에서 버스 한 대를 타고오신 불력회 절염불 회원님들과 함께 합니다.
철야정진
법문을 뒤로하고, 서울에서 오신 20여 명의 불력회 법우님들의 철야 절수행에 순례길의 우리 정토사 도반님들도 몇 분 함께합니다.
새벽 4시20여 분까지 계속되는 철야정진에
절수행을 그다지 하지않던 우리 정토사 도반님들은 초죽음입니다. ㅎㅎ 불력회 회원님들은 자세하나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108배도 제대로 않던 나 자신은 더 죽음입니다. 그래도 몇몇 도반님들과 끝까지 남았습니다. ㅎ 또다른 깨달음입니다.
숙소는 깔끔하게 대형 방으로 되어있고 샤워시설도 잘 갖춰진 호텔급입니다.
강국장님의 간단한 공지를 경청하고... 참배를 나섭니다.
적멸보궁
숙소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적멸보궁에서의 저녁예불은 비구니스님이 함께한다.
건봉사는 되찾은 부처님 진신사리 8과 가운데 3과는 적멸보궁 석탑에, 나머지 5과는 법당에 봉안하여 참배불자들의 친견을 허락하고 있다.
범종각과 종각에서 본 사찰의 풍광
능파교
이 다리는 1708년(숙종 24) 처음 건립되었고, 1745년과 1880년에 중수되었다.
능파교를 건너면 석단이 보이고 대석단의 중앙통로 좌우로 높이 158cm의 사각형 석주 2기가 우뚝 서 있다.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새겨져 있다.
4시 새벽 예불에 모두 참석하고
아침공양을 마친 후 등공대를 향합니다. 가기전 종무소 앞에서 인원 체크부터 합니다. 네줄씩 줄지어 서 본지가 오랜것 같네요^^ 보이는 그림 문의 열쇠를 쥔이가 인솔하에 등공대를 향합니다.
등공대를 오르는 길은 절집 뒤편 산길을 올라야하며, 민통선을 통과하기 때문에 검문을 받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갈 수 없고, 건봉사 종무소의 허락을 얻어 10명 이상 단체로만 이동하여 갈 수 있다.
등공대
정토사 도반님들과 서울에서 오신 불력회 법우님들과 함께 108참배를 올린다.
"등공" 육신이 살아있는 그대로 허공을 날아오르면서, 몸은 벗어버리고 영혼만 부처님의 연화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등공은 염불만일회에서 이루어진다.
일념으로 염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죽은 후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법회이다.
장군샘의 물 맛은 끝내준다.
불이문을 벗어나 약 500m 가량 내려오면 건봉사의 부도밭이 있다.
그곳에는 50여 기에 달하는 부도와 탑비 12기가 있다. 원래 건봉사는 2백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흩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었고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현 위치에 부도전을 조성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건봉사에서
진명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