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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강해(8)
예수님의 승천
본문 : 사도행전 1장9~11절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한 다음 계속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신 사건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예수님의 지상생애와 사역이 끝나고,
천상의 생애와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이미 구약성경에 예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
시편 68편18절에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신다”는 표현이 예수님의 승천을 암시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도 요한복음 20:17절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승천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사건을 직접보도하는 본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본문은 사도행전 1장9~11절입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이 제자들이 “보는 데서”이루어졌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예수님의 승천이 신화나 조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일정한 높이만큼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본 그대로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1. 구름이 나타나 예수님의 모습이 가리운 이유
그런데 예수님이 일정한 높이만큼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구름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모습을 가리웠습니다.
이 구름은 평범하게 하늘을 떠 다니던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보내신 특별한 구름입니다.
구름이 나타난 이후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름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며,
왜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의 영도하에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이들을 떠나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출13:21~22“[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께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들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구름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순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식에 따라서 성막을 세우기를 끝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구름을 보내셔서 성막을 덮은 것을 구약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출40:34~35“[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이 본문에 의하면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을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후일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나서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할 때도 역시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을 뜻하는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열왕기상8:10~11절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처럼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과정에서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보통사건이 아니고,
여호와의 권능과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신비롭고 장엄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구름이 가리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더 이상 예수님의 승천사건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자들이 계속해서 넋 놓고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자 천사들이 나타나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고 책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장면은 일정한 거리만큼 공간이동을 했다는 것 이상은 인간이 아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사건입니다.
아마도 그 이상은 인간이 볼 수도 없고 또 보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유익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조치를 취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너무 크고 장엄하고 너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기 마련입니다.
미국동부에 가면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배를 타고 나이아라가 폭포 물줄기가 떨어지는 지점 앞을 약100미터 정도까지 접근해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바라보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폭포를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더 이상 들어가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이 지점에서도 폭포줄기에서 뿜어 나오는 물보라 때문에 눈을 뜨고
정면으로 폭포를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들어갔다가는 죽어 버리겠구나하는 생각을 직감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적당히 바라보아야 아름답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죽음밖에 없습니다.
태양빛이 우리에게 얼마나 포근하고 고마운 빛입니까?
태양빛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이 고마운 태양빛을 우리가 용감하게 약 5분만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눈이 장님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태양빛은 직시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아야 고마운 빛이지,
직시하면 죽음의 빛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을 똑 바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죄로 더러워진 인간이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의로운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은 선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들어서는 순간 직감적으로 이렇게 절규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며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하나님을 옹위하고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을 감히 직시하지 못하고 날개로 그 얼굴을 가리우고 보좌 주위를 날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계를 떠나서 일정한 거리만큼 공간이동을 하셨다는 사실 이상은 너무나 신비로운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도 없고
접근하지 않는 것이 인간들에게 유익합니다.
2. 승천의 의미
이처럼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는 예수님의 승천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몇가지 중요한 의미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의미들을 차례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이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왕, 대제사장, 그리고 선지자가 바로 그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그리스도의 세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고난 받으시는 종이 아니라
이제는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로서의 천상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신 후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권을 행사하실 것이며, 대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실 것이며,
또 성령을 보내셔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그리스도”로서의 사역들이 바로 예수님의 승천과 더불어 시작되므로,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이 이 세 가지 직분에 취임하시는 취임식이나 다름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이제 예수님이 육체의 형태로 이 세상에 계시던 시대가 끝나고 영의 형태로 세상에 임하시는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한 이후에는 아무도 예수님을 육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승천 때부터 재림 때까지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임재하실까요?
로마서1:4절이 이 질문에 대하여 답을 줍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말씀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부활하여 승천하신 이후의 예수님은
성결의 영의 형태로 임재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육체의 형태로 계시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형태로 계시는 것이 좋은가?
언뜻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육체의 형태로 계시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보면 그 정반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육체의 형태로 계속 계셨다면,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한 작은 모퉁이에서 소수의 사람들과만 함께 계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계실 수 있는 지역은 극히 제한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극히 제한됩니다.
그러나 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형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의 형태로 거하시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사건은 인간세계로부터 완전히 떠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세계안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임재하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의 형태로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든, 어느 장소에 살든, 상관없이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승천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이 세상과 결별하는 사건이 아니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어놓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또한 이제 성자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시는 시대가 종결되고 성령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을 개시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승천과 관련하여 주신 명령에는 성령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를 성령을 보내실 것이며, 이 성령이 사역을 주도하실 것을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보혜사라는 말은 돕는 자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통 깨닫지 못하다가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역사하시면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들이 다 생각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말씀인 사도행전1:8절에 보면“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가 곧 시작될 것을 주도하시고 성결의 영이신 예수님이 그 사역을 돕는 형태로 일하시는 시대가 시작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성결의 영의 형태로 임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이 사역은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능력의 사역입니다.
성결의 영으로 거하시는 예수님은 더 이상 힘없이 고난받고 죽으시는 종이 아니라 능력의 영이십니다.
앞에서 인용한 롬1:4절에서도 성결의 영으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함으로써 성결의 영이 능력의 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한 고전15:45절은 능력의 성결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죽은 영혼을 살려내는 일을 하신다고 말합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결의 영이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성결한 삶을 통해서 비로소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성결케 하는 사역 곧, 성화의 사역을 시작하실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영혼을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성도들의 한평생 동안 계속될 성화의 사역을 시작할 채비를 갖추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이 교회를 대리자로 삼고 일하시는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예수님도 영의 형태로 거하시고, 성령도 영의 형태로 거하시니까,
사실상 예수님도 성령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성령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승천하신 이후 예수님은 교회를 대리자로 삼고 일하십니다.
성령의 권능도 바로 교회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권능을 만나려면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승천과 더불어 성령이 시대가 선포되었는데,
이는 교회의 시대가 선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고
또한 성령의 능력과 권능과 지혜가 교회를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은,
교회에게 주어진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교회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성결의 영”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성결의 영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능력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결한 삶이 있을 때 온전히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성결한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때,
예수님은 그 온전한 모습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세상이 교회와 성도들을 보고 예수님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성결하고 바른 삶의 모습을 갖춤으로써 세상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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