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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장미가 있는 신작로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황전이의 직업은 자가용 기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께서 사업차 목포(木浦)로 가게 되었습니다. 목포는 황전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아원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목포로 가는 도중에 왠지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나면 황전이가 살았던 그 고아원을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늦여름이라 날씨는 화창한데 상당히 더워서 나무 그늘의 싱그러움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음, 시간적으로 2~3시간 여유가 있어서 자동차를 고아원이 있는 곳으로 몰았습니다. 십여 년 만에 찾아온 곳이지만, 고아원 주변에는 변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비포장도로가 포장이 되고 별로 높지 않는 건물이 몇 채 들어 서 있을 뿐, 옛 시절 그대로였습니다. 황전이는 자동차를 작은 신작로가에 있는 고아원 정문 옆에 약간 비켜 세우고 차에서 내려 어린 시절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칠백 명이나 살았던 고아원 건물의 뼈대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낡은 부분을 덕지덕지 수리한 흔적을 보아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세를 얻어 살고 있다는 인상이 풍겨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놀았던 넓은 운동장에는 새로운 단독주택들이 서로 한 치의 공간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지어져 있었고, 예전의 고아원 건물은 세월 속에 낡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동안에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30십여 미터나 되는 돌담과, 두 번째는 어린 시절 황전이가 살았던 그 건물 벽과 돌담이 닿는 곳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붉은 넝쿨장미가 마치 이 고아원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처럼 참으로 아름답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장미를 보자 황전이는 왠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움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황전이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살면서 이 넝쿨장미가 꽃을 피우며 산들 바람에 생긋생긋 재롱을 피울 때마다 한 동안 넋을 잃고 신작로에 서 있곤 하였습니다. 고아원에 살면서 유일하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오직 이 넝쿨장미였으니까요! 황전이는 손으로 돌담의 감촉을 느끼면서 걸었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늙은 병사 같은 돌담의 감촉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알 수 없는 전율이 눈물로 변해 온몸을 적시는 것이었습니다. 황전이는 한동안 넝쿨장미의 향기에 취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데, 찰칵 찰칵... 신작로를 온통 흔들어 놓은 엿장수 가위 소리가 황전이의 추억을 산산이 부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황전이는 무의식적으로 엿장수 가위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엿을 실은 리어카가 신작로 모퉁이를 막 돌아서서 황전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신작로에는 오후의 늦더위 탓인지 개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고, 엿장수 가위 소리가 대문을 두드려도 인기척하나 없었습니다. 엿장수는 가위를 치면서 사람들의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보통인데, 그 엿장수는 더위에 지쳤는지 자신이 엿가위를 왜 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표정으로 힘없는 걸음 거리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까이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본 흑인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삐쩍 마른 몰골에 얼굴색은 얼마나 검은지, 흑인이 엿장수를 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고물 리어카에는 빈병 몇 개만 달랑 있었는데 리어카가 자신을 끌고 가는지, 자신이 리어카를 밀고 가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황전이는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엿이라도 좀 사줄까 하는 생각으로 다가가 보았더니,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그는 이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황전이 보다 대 여설 살 더 많은 고아원 선배였습니다. 순간, 반가움보다는 측은함에 알 수없는 눈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왔습니다. 황전이와 그는 넝쿨장미의 그늘에 엿 리어카를 내려놓고 서로 한 동안 말없이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황전이는 처음으로 가슴으로도 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른 나이에 칠십대의 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만입니까?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무슨 병이 있습니까? 무슨 병이 있길래 얼굴이 그렇게 시커멓습니까? 병원에 가본 일은 있습니까?” 황전이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사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보았는데, 흑달병인데 너무 늦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네...” 그는 노인처럼 힘없이 말했습니다. “시청 보건소에는 가 보았습니까?” “시청 보건소를 가기는 갔었는데, 시청 입구에서 수위 아저씨에게 쫓겨났네...” 황전이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을 하려고 터진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한동안 모든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렸습니다. 그는 다시 멈춰버린 시간을 깨우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버릇처럼 엿가위를 치자, 슬픔에 젖어 있던 신작로가 엿가위 소리에 팡팡 울렸습니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와서 쇠로 만든 큰 기름통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는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름통이 무거워서 리어카에 실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황전이가 다가가 기름통을 리어카에 실어 준다고 하자 그는 힘이 없어 끌고 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빈 리어카를 끌고 멀어져 가는데 황전이가 보기에는 그가 자신의 죽은 시체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후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광주에서 여천을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췄는데 어디선가 엿가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그 고아원 선배가 골목길로 엿 리어카를 밀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나주 부근에서 그가 엿 리어카를 밀고 가는 것이 또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여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선창가를 무대로 삼고 살고 있는 고아원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엿가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그 선배였습니다. 고아원 친구들은 그 선배를 아는지라 불렀습니다. 그는 병이 다 나아 눈이 맑은 젊은이로 다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병이 다 나았잖습니까? 무슨 약을 먹고 병을 나았습니까? 황전이는 하도 신기해서 몇 번인가를 물었습니다. “예, 아무런 약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리어카를 열심히 끌고 다녔을 뿐입니다.” 그는 세상을 통달한 듯 얼굴에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아주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형님 말을 낮추세요? 우리가 형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리지 않습니까?” 황전이는 그가 말을 공손하게 올리는 것을 보고 친근하게 말을 하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말을 올리는 것입니다. “형님, 말을 낮추라니까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전이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처음에는 온전한 정신이 아닌가 하고 살펴보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힘없는 자신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것입니다. 끝없이... 그러던 어느 가을날 황전이는 중이 된 후로 넝쿨장미가 있는 신작로를 찾아가 이런 시(詩)를 쓴 적이 있습니다. [넝쿨장미가 있는 신작로] 넝쿨장미가 있는 신작로에 낙엽 한 잎 뒹굴고 개 한 마리 뛰어 가고 꼬맹이 하나 달려간다. 누군가 개는 바람을 볼 수 있다 한다. 꼬맹이 하나 바람이 보고 싶어 개가 되고 싶어 한다. 세월은 꼬맹이 가슴속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고 나무들은 하릴없이 자란다. 넝쿨장미가 있는 신작로에 낙엽 한 잎 뒹굴고 개 한 마리 뛰어가고 일없는 중하나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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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넘 마음아픈 사연입니다,힘든시련속에서 下心하는 道를 배웠습니다,가슴으로 소리 죽여 주는 것이못되여 소리내여 흑흑 눈물이 솓아집니다,일없는 승하나 바람속으로 사라지는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연 입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좀 아프다 싶으면 겁부터 나고 욕심 부터 올라오는게 사람인데...여기에서 나온 황전스님 선배님께선 ....병이 났다는 두려움도 죽을지도 모름다는 생각도 꼭 낳아야한다는 간절함도 세상을 향한 원망도 없이 자신도 놓고 세상도 놓고 죽음마져 놓는 무념무상속에 하나가 되었군요.그러면서 저희들이 흔히 하는 죽는다는 생각속에 머물지도 않았구요. 뼈아픈 인생살이의 이야기 입니다만 ..전 어쩐지 또 다른 부처님의 나툼이 아니였는지..싶습니다. 제 가슴 밑에서 부터 아름다운 생각하나가 싹을 틔웁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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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져 놓는 무념무상속에 ........ _ll_
캬~장미 멋집니다...글을 대하기전 장미꽃이 무심결에 감탄사가 나왔습니다...다 읽고 보니 스토리를 대변해주었네요 가슴이 뻐근합니다,,,,,전솔한 과거를 통한 법문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하심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죽음가까이 가봐야...억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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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내용이 있었군요,,,사람들 이해를 따라가기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