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산김씨의 연원(淵源)
선산김씨는 신라왕실의 후손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제8자(子)이며 고려태조의 외손자인 상서령 일선군(一善君)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선산(善山)으로 삼았다.
후대에 삼척, 온양, 희천, 진주, 원주, 영광 등으로 분관되었다.
고려시대 선산김씨는 크게 성창(盛昌)한 명문사족이다. 많은 분이 봉군(封君)되고 시호(諡號)를 받은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경장상을 배출한 명문대가(名門大家)로 그 후예들은 개경을 중심으로 세거하면서 고려의 융성발전에 지도적 역할을 다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7세 휘주(疇)의 장자인 휘선공(善公)은 중현대부 병부상서를 지냈고 일선부원군 문순공이며 三子인 휘거공(巨公)은 고려 18대 의종 때 문하시중(종1품)으로 현 원주김씨의 시조가 되시고 五子인 휘석공(碩公)은 문하시랑(정2품)으로 현 영광김씨의 시조로 선산김씨에서 분파되었다.
고려말엽에 검교중랑장을 지낸 16세 김문(金文)은 슬하에 성원(成元), 성부(成富), 성룡(成龍), 성여(成呂)의 4형제를 두었는데 이로부터 선산김씨는 4대 계파(系派)를 이룬다.
장자인 김성원은 서운정을 지내고 중서령으로 중서령공파 파조(派祖)가 되었고 그 아들 김기(金起)는 정순대부 광주목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화의군에 봉하여졌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선산으로 내려가 고려의 유신으로서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은거 종신하였으며 선산 입향조이다.
둘째아들인 판서공파조 김성부는 고려조 전의부정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 공신에 책봉되어 벼슬은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태조가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이어(移御)할 때 호종하였다가 태조가 환도할 때 복귀하지 않고 함경도 길주에 정착하였다. 그 장자인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 밀양교수, 차자인 경적(敬迪)은 강화교수를 지내고 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을 중심으로 길주, 성진, 이원, 풍산, 북청, 홍원 등에 산거(散居)하였다.
셋째아들인 좌의정공파조 김성룡은 여말(麗末) 산원동정을 지냈고 조선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어 벼슬은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에 이르고 화의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그의 아들 김탁(金逴)은 통정대부 병조참의, 증손 정신(鼎臣)은 통정대부, 안동도호부사를 지냈으며 후손들이 경기도 이천을 중심으로 산거하고 있다.
넷째아들인 별장공파조 김성여는 고려말 별장동정에 이르고 그 자손은 평안도에 세거(世居)하며 그 아들 김선(金選), 손자 김요신(堯臣), 순신(舜臣)이 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행적은 알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개국과 동시에 4형제가 모두 경상도, 함경도, 경기도, 평안도로 헤어져 살고 있다.
※ 본관지 연혁(本貫地 沿革)
선산(善山)의 본래 명칭은 일선군(一善郡)이다.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36년(614)에 일선주(一善州)로 승격하여 불렀고 제35대 경덕왕(景德王)16년(757)에 숭선군(嵩善郡)으로 고쳐 불렀고 고려 제6대 성종(成宗)14년(955)에 선주(善州)로, 인종(仁宗)22년(1143) 일선현으로, 조선조 태종(太宗)13년(14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 행정구역으로는 구미시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