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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개정되어 출판된 우 빤디따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의 길>을 PDF 파일로 나누어 올립니다.
첨부파일의 용량이 5M로 한정되어 있어 4개로 나누었습니다.
이 가르침이 위빠사나 수행에 도움이 되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두 행복하시기를...
정원 김 재성 손모음
위빠사나 수행의 길
우 빤디따 사야도 (U Paṇḍita Sayadaw) 가르침
정원 김재성 옮김
나모 따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싸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존귀한 분, 공양받을만한 분,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 경배합니다.
삼 귀 의
(Tisaraṇa)
붓담 사라남 갓차미
담맘 사라남 갓차미
상감 사라남 갓차미
두띠얌삐 붓담 사라남 갓차미
두띠얌삐 담맘 사라남 갓차미
두띠얌삐 상감 사라남 갓차미
따띠얌삐 붓담 사라남 갓차미
따띠얌삐 담맘 사라남 갓차미
따띠얌삐 상감 사라남 갓차미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Saṅgaṃ saraṇaṃ gacchāmi
Dutiyaṃ pi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Dutiyaṃ p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Dutiyaṃ pi Saṅgaṃ saraṇaṃ gacchāmi
Tatiyaṃ pi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Tatiyaṃ p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Tatiyaṃ pi Saṅgaṃ saraṇaṃ gacchāmi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저는 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도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도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도 저는 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도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도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도 저는 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
(慈觀)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상가와 재가자들 모두가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많은 덕을 갖추신 고귀한 스승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한량없는 덕을 갖추신 부모님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도량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마을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지방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상가의 모든 스님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사(四事)의 모든 시주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국가의 정부가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도둑, 강도, 거짓말쟁이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한량없는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인간, 천상의 천신, 범천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옥에서 범천에 이르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선행에 의해서,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영원한 행복인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바른 길을 따르고 잘못된 길을 따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게 되더라도 위난과 고통과 재난과 적, 그리고 모든 악을 만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지금 발원한,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내가 행한 선행의 공덕이, 우리의 부모와 스승과 친척들과 수호신장과 천신들과 모든 존재들에게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 공덕에 의해 모든 존재들이 기뻐하기를 기원합니다.
<제목차례>
삼 귀 의1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2
우 빤디따 사야도 (U Paṇḍita Sayadaw)3
초판 머리말4
개정판 머리말6
지금 이 순간 그대는 깨어있는가?6
1. 수행자의 정의 6
2. 수행의 방법과 보고의 방법 8
3. 수행의 이익 11
4. 세 단계의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와 수행의 목적14
5. 위리야(viriya, 정진)의 여러 가지 의미 16
6. 수행자의 의무18
7. 세 가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 20
8. 실재하는 것 ① 22
9. 실재하는 것 ②26
10. 번뇌와 그 원인 ① 28
11. 번뇌와 그 원인 ② 32
12.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 ① 36
13.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 ② 39
14. 계(戒)의 길 42
15. 정(定)의 길, 혜(慧)의 길 46
16. 방일(放逸)과 불방일(不放逸) ① 50
17. 방일과 불방일 ② 53
18. 방일과 불방일 ③ 57
19. 방일과 불방일 ④ 60
20. 방일과 불방일 ⑤ 64
21. 방일과 불방일 ⑥ 67
22. 불방일의 가치70
23. 불방일의 이익 ① 73
24. 불방일의 이익 ② 77
25. 마음챙김(sati)의 방법 81
26. 명칭과 실재 ①83
27. 명칭과 실재 ② 86
28. 위빠사나 수행의 비결 89
29. 다섯 가지 덮개의 제거 92
30. 지혜-분명한 앎 ① 94
31. 지혜-분명한 앎 ② 96
32. 지혜-분명한 앎 ③ 99
33. 지혜-분명한 앎 ④ 100
34. 지혜-분명한 앎 ⑤102
35. 지혜-분명한 앎 ⑥ 103
우 빤디따 사야도 (U Paṇḍita Sayadaw)
우 빤디따 스님은 1921년 7월 28일, 현재 미얀마의 수도인 양곤에서 태어나셨다. 7세에 처음으로 사원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초급과 중급 과정의 빨-리경전 구술시험을 통과한다. 12세에 출가하여 사미가 된 후, 기초적인 경전과 논서를 배웠으며, 18세에 빨리어 상급과정의 시험을 통과한다.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된 후, 여러 스승 아래에서 본격적인 교리연구를 하여 1951년에 실시된 법사(法師, Dhamm-acariya)시험에 합격한다. 29세가 되던 1950년에 마하시 스님의 지도하에 위빠사나 수행을 닦는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1954년에 시작되어 1956년에 끝난 상좌부 불교 제 6차 결집 때에 우 빤디따 스님은 경전의 교정을 보는 역할을 맡게 된다. 1955년(34세) 이후 스님은 경전을 가르치는 법사의 역할은 뒤로 하고 마하시 스님의 지시에 따라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위빠사나를 지도하게 된다.
1959년, 마하시 스님과 함께 스리랑카로 가서 새로이 건립된 위빠사나 센터에서 3년 동안 위빠사나 지도를 한 후, 1962년에 귀국. 귀국 후, 몰민과 만달래이 등에 있는 마하시 센터 분원에서 위빠사나를 지도한다.
1982년 8월, 마하시 스님의 입적 후, 마하시 스님의 뒤를 이어 우 빤디따 스님은 마하시 수행 센터의 원장이 된다. 그 후, 1990년 10월 마하시 센터를 떠나 마하시 센터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새로이 세워진 수행센터 빤디따라마의 원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수행자들을 지도해 왔다.
마하시 스님에 의해 일반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사띠빠따나 위빠사나 수행법은 미얀마는 물론 아시아와 서구의 여러 나라로 전해진다.
위빠사나의 해외 전수는 마하시 스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그 뒤를 이어 본격적인 활동은 우 빤디따 스님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마하시 수행센터의 원장 시절에는 물론 빤디따라마에서 출가와 재가의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현재(불기 2536년 5월)까지 우 빤디따 스님은 미국, 영국, 호주, 말레이지아, 네팔, 한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위빠사나를 지도해오고 있다.
외국의 수행자들을 지도하실 때의 우 빤디따 스님의 바람은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에 상좌부(Theravaada) 불교를 처음 전한 마힌다 장로의 원력과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지역으로 전해져서 제대로 정착되려면 한편으로는 그 지역의 언어로 교법(pariyatti)이 바르게 옮겨져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지역의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수행자에 의해 실제적인 수행법(patipatti)이 가르쳐져야만 한다. 마힌다 장로가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와서 시작한 일이 바로 빨리어로 쓰여진 경전을 스리랑카 말로 옮기는 일이었다.
번역된 경전이 갖추어지고 그 경전을 바탕으로 수행한 스리랑카 스님들에 의해 상좌부 불교는 비로소 스리랑카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마힌다 장로의 원력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결실을 본 것이다. 우 빤디따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서양과 다른 여러 나라에 불법(佛法, Dhamma)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나는 완전히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쇼카왕이 스리랑카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그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스리랑카에 보냈을 때의 마힌다 장로의 입장과 같습니다. 당시 마힌다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리랑카인들이 그들 스스로 승려들을 길러낼 수 있을 때라야만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라고. <빤디따라마 소식 1 호,1990년 10월> 이 말씀은 예컨데 위빠사나 수행법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춘 한국인 위빠사나 지도법사가 있어 그에 의해 가르침이 펼쳐져야 한다는 뜻이리라.
수행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드러나는 자상하면서도 엄격하신, 우 빤디따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바로 자비와 지혜를 갖추신, 살아 있는 대장로(大長老, Mahāthera) 한 분을 만나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수행법, 번뇌와 괴로움을 없애 버리는 길인 사띠빠따나 위빠사나 수행법은 자격을 갖춘 스승의 지도을 받으면서 닦아야 한다.
우 빤디따 스님은 분명 지금 우리 시대에 만날 수 있는, 드문 스승 가운데 한 분임에 틀림없다.
초판 머리말
작년 (1991년)여름 우안거(雨安居) 3개월(음력 6월 보름 - 9월 보름)을 상좌부 불교 국가 가운데 위빠사나 수행의 전통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미얀마에서 지냈다. 조금은 까다롭고, 시간이 걸리는 입국비자를 받고 방콕을 거쳐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도착한 날이 불기 2535(1991)년 7월 27일이었다. 3개월간의 우안거는 미얀마 도착 하루 전인 7월 26일, 음력 6월 보름에 시작되었다.
양곤 시내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빤디따라마(Paṇḍitarama)는 불기 2534(1990)년 10월에 개원한 새로운 수행 센터였으며 1982년 입적하신 마하시 스님의 뒤를 이어 마하시 센터에서 위빠사나를 지도하시던 우 빤디따 스님의 전법을 위해, 한 독실한 신자가 보시한 2층 건물과 임시 거처인 10여 동의 쿠티, 그리고 여성 수행자들의 숙소와 식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담한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원장 스님을 뵙고 수행에 대한 몇 마디의 법을 듣고 바로 수행 생활로 들어갔다. 남방 상좌부의 비구계를 다시 받은 날은 8월 3일 오전 8시였으며, 이후로 남방 비구의 신분으로 그곳 승려들의 생활을 익히며 위빠사나 수행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루 일과는 아침 2시 45분에 기상하여 1시간 행선(行禪:걷는 수행으로서 walking meditation이라 한다)을 마친 후 본 건물 2층에 위치한 좌선실로 올라가 4시 45분까지 약 1시간 좌선을 함으로서 시작된다. 좌선 후 약 10분 정도 자비관을 중심으로 한 예불을 하고 5시에 아침 공양을 하게 된다. 아침은 죽이나 국수 등 간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아침 공양 후 자유 정진 시간이 약 1시간 있으며, 6시 20분 비구 대중들은 마을로 탁발을 나간다. 50분에서 1시간 정도 탁발을 마치고 돌아와 간단히 쉰 후 8시에 선실에 올라가 좌선하고 9시에서 10시까지는 행선을 한다. 10시에 그날의 마지막 식사인 점심 공양을 하게 되며 12시 이후로는 행사가 있은 후(주로 포살 등의 행사) 간단한 쥬스나 물을 마시는 외에 음식은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먹지 않는다. 점심 공양 후 12시에서 1시까지 좌선, 1시에서 2시까지 행선, 2시에서 3시까지 법문 또는 점검이 있으며 3시 이후로는 1시간씩 행선과 좌선을 하여 저녁 9시에 선실을 내려와 각자의 처소로 돌아간다. 취침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9시 이후는 자유로이 정진을 해도 되고 쉬어도 되는 시간이므로 보통 10시 조금 지나 잠자리에 든다. 탁발 시간을 빼고는 센터 밖을 나가지 못하며 나갈 일도 없게 되어 있다. 모든 생활을 센터에서 지원하고 돌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판하게 된 이 법문집은 원장 스님께서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해주신 법문을 받아 적어서 정리한 것이다. 원장 스님께서는 하루는 법문, 하루는 점검을 해주시며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경책과 격려를 해주셨다. 우안거 첫 법문은 8월 1일에 시작되었고, 마지막 법문은 10월 30일에 하셨다. <필자는 우안거 해제일인 10월 23일(음력 9월 보름) 미얀마를 나왔기 때문에 10월 25일 이후의 세 차례의 법문은 독일 스님인 우 위웨까난다(U Vivekananda) 스님이 보내준 법문 기록을 번역해서 실었다.>
법문은 그곳 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는 외국인 수행자 모두를 대상으로 해주신 것이어서 보편적인 수행 방법이나 마음가짐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한편 법문이 없는 날에는 개인적인 수행의 점검(interview)을 통해 개개인의 수행의 상태에 따른 지도를 해주셨다.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이러한 개인적인 점검은 아주 중요한 것이어서 수행을 지도하는 법사는 수행자들의 개인적인 수행의 진전 상태를 체크해 가며 지도한다.
따라서 이번 법문집은 실제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수행에만 전념하고 있는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법문이기 때문에 실제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문 자체의 내용이 일반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또 미얀마에서는 이렇게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의 관심있는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으로 책을 엮어볼 생각을 내게 되었다.
원장 스님께서는 버마어로 말씀하셨고 우 쪼쪼(U Kyaw Kyaw)라는 재가 신도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영어로 들은 법문을 받아 적게 된 것은 당시 한국인 수행자들이 필자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분들에게 법문 내용을 옮겨 드리기 위해서였다. 이 글들은 나중에 안거 기간이 반쯤 지난 후 센터에 오신 한 불자님을 위해 정리되기 시작했으며, 정리를 하다보니 위빠사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불자들을 위해 소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센터를 떠나기 며칠 전, 원장 스님께 한국에 돌아가 책으로 엮어도 좋겠느냐고 문의드리니 쾌히 승락하셨다. 하지만 원장 스님께서는 이번 우안거 때 해주신 법문은 위빠사나 수행의 텍스트로 쓰일 만한 것은 아니고, 현상(法, dhamma)들의 세 가지 특성(無常, 苦, 無我)을 중심으로 삼은 것이라고 부연해 주셨다. 그리고는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지침은 당신의 위빠사나 스승이시자 현대 미얀마 불교를 위빠사나를 통해 세계에 알린 마하시 스님의 저술이 완벽하다고 하시며 마하시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에 쓰신 책을 소개해 주셨다. <현재 마하시 스님의 책은 영역된 것이 29권이며 버마어로 된 것은 70권에 이른다>
원장 스님께 책 출판을 허락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4년 동안 근본불교를 소개해온 고요한 소리의 활성 스님께 적어온 원고를 보여 드리자 스님께서도 출판을 허락하셔서 책으로 엮어지게 되었다.
우 빤디따 스님의 법문은 당시의 청법 대중들에게 꼭 필요하고 적절한 말씀이었다. 때로는 호되게 경책하시고, 때로는 자상하게 격려해 주시며 수행자들을 지도해 주신 스님의 법문을 제대로 수행도 못하고 돌아온 필자가 우리말로 옮겨 놓게 되어 혹시 스님의 가르침을 잘못 전할까 걱정될 따름이다. 용어의 선택이나 번역상의 잘못이 보이면 관심있는 분들의 경책을 바라며, 미얀마에서 같이 수행하던 외국인 수행자 특히, 한국인 수행자들과 마지막 법문을 적어 보내준 우 위웨까난다 스님께 감사드린다. 이분들이 없었으면 이 법문은 받아 적지도 않았을 것이며, 책으로 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의 출판을 맡아준 고요한 소리의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 빤디따라마를 소개해 주시고 한국에 본격적으로 위빠사나를 소개하고 계시는 거해 스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3개월 동안 세심하고 자상하게 지도해 주신 우 빤디따 스님께 삼배를 올린다.
불기 2536(1992)년 5월
정 원
개정판 머리말
우 빤디따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시작한지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정진은 진전이 없는 가운데 경전과 논서 그리고 학문적인 연구성과에 대한 이해는 조금 나아졌다고나 할까, 지난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기만 하다.
동경에서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 불전을 읽으며 보낸 8년이 넘는 유학생활이 있었고, 서너 차례 미얀마와 태국, 그리고 스리랑카의 수행처를 직접 다니면서 조사한 성과가 있었다. 우 자나카 사야도의 Vipassana Meditation을 번역하여 『위빠사나 수행』(초판(1998),서울: 경서원, 2판(2002), 서울: 보리수선원)으로 만들기도 하였고, 매년 여름 4박 5일의 수련회를 함께 했다.
1989년 이 후, 우리나라에 여러 차례 오셔서 직접 수행자들을 지도하셨던 우 빤디따 스님께서 천안의 호두마을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4주간(2002년 5월 중순)의 위빠사나 지도를 위해 다시 한국에 오신다. 이제 10년만에 다시 우 빤디따 스님의 가르침을 약간 보충하여 법보시 용으로 만들게 되었다.
다시 책의 내용을 보니 스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옮기지 못한 곳이 눈에 띈다. 부족한 부분을 모두 고치지는 못했으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역주를 보충하였고, <부록>에 1997년에 스님께 받아온 ‘마음챙김(싸띠팟타나)의 의미’ (The Meaning of Satipaṭṭhāna)를 추가하였다.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이 법문이 도움이 된다면 이는 우 빤디따 스님의 자비심과 지혜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개정판의 서문을 대신한다.
불기 2546 (2002)년 5월
김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