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술(易術)이란?
우리가 보통 역술(易術)이라고 말할 때, 그 범주에는 <주역>과 <사주명리학>이 모두 포함된다.
역술의 대가라고 하면 이 양쪽에 모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일컫는다. 주역만 알고 명리를 몰라도 안 되고, 명리만 알고 주역을 몰라도 깊이가 없다. 양쪽을 모두 알아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 양자는 다르다.
주역(周易)은 팔괘(八卦)를 조합한 육십사괘(六十四卦)로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한다면, 사주명리학은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를 기본으로 한 육십갑자로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법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예측(predict) 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무엇인가.
그 차이점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주역은 음양에서 출발하여 사상(四象),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뻗어 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수(數)로 표시하면 그 뻗어나가는 방식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즉 2(음양)-4(사상)-8(팔괘)-64(육십사괘)의 방식이다.
반면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은 숫자로 표현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곱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첨가되는 부분이 생년, 월, 일, 시라는 네 기둥이다.
그래서 사주 보기가 훨씬 복잡하다. 주역으로 어떤 사람의 점을 쳐 볼 때는 지금 당장(now and here)만 필요하지만, 사주로 볼 때는 그 사람이 타고난 년, 월, 일, 시가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주역은 점치는 순간 시(時)를 중시하지만, 사주는 시뿐만 아니라 연(年)도 필요하고 월(月)과 일(日)도 알아야 한다.
주역이 OX 방식이라고 한다면, 사주는 사지선다형이라고나 할까. 주역이 디지털 시계라면 사주는 아날로그 시계이다. 주역이 시(詩)라면 사주는 산문(散文)이다. 주역이 압축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 장기가 있다면, 사주는 서사적인 전망을 하는데 유리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1억원을 투자하여 사업을 시작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주역으로 점을 치면 예스 아니면 노가 나온다. 둘 중 하나로 결판나는 것이다.
반면 사주로 보면 지금은 사업하기 좋지 않지만 3년후 가을쯤이면 때가 온다, 사업을 할 때도 부동산쪽보다 물장사가 좋다는 식으로 나온다. 좀더 구체적인 설명체계다.
유의할 대목은 주역과 사주 모두 술(術)이라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술이라고 한다.
술(術)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면 방법론이다.
강물을 건너가는 뗏목이고,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해주는 사다리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술이다. 좋은 의미다. 뗏목이 없으면 어떻게 강을 건너고, 사다리가 없으면 어떻게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아무리 강 건너에 피안이 있고, 지붕 위에 천당이 있다 할지라도 건너갈 수 없고, 올라갈 수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이야기이다.
당위만 아무리 강조해 보아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달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로켓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그 방법이 바로 술이고, 그 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바로 술사(術士)다.
말하자면 해결사라고나 할까.
* 술사(術士)란?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술사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원래는 좋은 개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플레가 진행되면 출발할 때의 오리지널리티가 희석되게 마련이다.
역사를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마치 노자․공자․맹자를 지칭하는 자(子)라는 존칭이 영자․미자․춘자 하는 식으로 여자들 이름으로 희석되고, 복희씨․신농씨의 씨(氏)라는 존칭이 아무에게나 --씨라고 호칭되는 것처럼. 요즘에는 사모님과 선생이라는 호칭이 그렇다. 아무 남자나 보고 선생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무 여자나 보고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고준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술사라는 표현도 시대가 흐르면서 이렇게 타락하고 말았다. 요즘 술사라고 하면 사기꾼 비슷한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다. 미신이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사람이 술사다.
술사를 우리나라 직업분류표의 방식대로 표현한다면 미신종사업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팔자는 직업도 두 개요, 전공도 두 개로 나온다. 직업 중 하나는 대학교 훈장이고, 다른 하나는 미신종사업자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돈을 받고 사주를 보지는 않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업자는 아니지만, 역술을 연구하는 사람도 광의의 개념에서 보자면 미신종사업자에 포함된다.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물에 풍덩 뛰어들어 발을 적셔야 하는 것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바닥의 모양을 파악하기 힘들다.
세계적인 여성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 Mead․1901~78)가 본국에 남편을 두고도 뉴기니 섬 원주민들의 풍속을 연구하기 위해 원주민 추장의 아들과 결혼했던 것처럼 말이다.
* 역술을 직업으로 보면
역술종사업자(지금은 노동직업분류에서 [점술업]으로 분류되고 있음)의 단점이 미신 종사업으로 여겨 지독한 천대를 받는다는 점이라고 한다면, 장점은 명예퇴직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정년퇴직도 없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무한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이 역술종사업이다.
역사도 무지무지 깊다. 적어도 B.C 3000년 전부터 존재하던 직업이니 5,0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앞으로도 없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직장은 40대 중반만 돼도 자리보전을 걱정해야 하지만, 이 분야는 나이가 들고 흰머리가 늘수록 오히려 신뢰도와 권위가 올라간다.
흰머리와 복채는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젊어서부터 일찌감치 흰머리를 확보하기 위한 비책으로 숙지황을 먹고 무를 먹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누구는 30대 중반의 새파란 나이에 전남 도지사로 발령 받고 나서 머리 허연 하급직원들을 제압하기 위한 방법으로 숙지황과 무를 먹었지만, 역술가는 복채를 많이 받기 위해 이를 먹는 수도 있다.
어찌됐든 문제는 확률과 정확도다. 이것이 떨어지면 진짜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 靑雲의 글에서 -
첫댓글 많은 참고 되었습니다. 정년퇴직이 없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