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프로이드가 강조한 성욕이나 본능보다도 사람들이 수립하는 목표와 계획을 더 중요시하였다. 프로이드와 융은 다함께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원초아란 하나의 들끓는 흥분의 응어리로서 자아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본 반면에, 융은 무의식을 자아의 활력의 원천으로 보았다.
1. 융의 생애 어떤 이유에선가 그는 자신의 삶에 의미와 열정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다. 지적(知的) 활동이 멈추어 아무 것도 쓸 수 없었고 과학서적도 읽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지적 정서적 상황이 극심히 혼란되고 불안한 상태에선 도저히 가르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강사직을 사퇴함으로써 대학교수직을 포기했다. 이 혼란기에 융은 자신의 혼란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어떤 사건을 인지해내려는 희망 속에서 자신의 삶, 특히 어린시절을 차근차근 검토해 보기 시작했다. 융은 오랜 동안 꿈과 환상이라는 내면적 세계를 중요시해왔고 세 살 때 경험했던 꿈을 나이 든 사람으로서 놀랍도록 명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신경증적 기질을 가진 부모를 둔 외롭고 소외된 아이였었고, 여러 해 동안 친구라곤 유일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나무 인형 뿐이었다. 부모들의 문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몇 시간을 다락방에서 그 나무인형과 터놓고 얘기하면서 놀았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고 신화, 꿈, 상상, 환상 등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였다. 융은 젊은 시절 중요한 고비 때마다 꿈과 환상 속에 무의식이 표출됨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이나 적절한 대안이 결정되어 나타나 있음을 느꼈다. 심리적 건강에 대한 그의 정의와 처방은 자신이 정서적 위기와 그것을 해결한 방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각자가 무의식의 경험에 주의 깊게 대면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정교한 성격이론을 확립하였다.
2. 융의 성격 연구 방법 다른 어느 이론가보다도 융은 무의식을 강조했다. 융은 무의식의 부분으로서, 개인이 살아가며 쌓아가는 경험 뿐 아니라 인류라는 종족과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원시 조상들이 쌓은 경험까지를 포함시켰다. 인간의 많은 비극과 절망, 하찮고 목표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느낌들은 성격의 무의식적 토대와의 접촉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융은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접촉의 상실은 과학과 이성을 삶의 지표로서 믿어버리는 경향이 늘어가는 탓이라고 믿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생각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무의식이란 것을 희생시켜버리고 의식적 합리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미신적인 신앙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영혼의 가치와 자연과의 일체감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자신을 의미도 없고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느끼며, 헛되이 공허감을 극복해 보려 한다. 그의 심리적 건강의 이상형은 무의식의 힘에 대한 의식의 감독과 지도이다. 이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융화되어 양편이 모두 자유로이 발달되도록 허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융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개별화 혹은 자아인식이다. "자신답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대단히 강한 경향성이어서 융은 하나의 본능이라고까지 여겼다. 그러나 그 개별화를 꾀하는 데는 많은 장애가 있으며, 융도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될 능력이 있다고 낙관하지는 않았다.
3. 성격의 구조 융의 견해에 따르면 성격은 자아,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이라는 세 가지의 분리된, 그러나 서로 교류하는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체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양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집단 무의식은 성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융의 이론 전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비교적 덜 중요한 두 가지 체계를 먼저 논의해보자. 자아는 의식 속의 정신 부분이며, 매순간마다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오는 지각, 기억, 사고, 감정들을 포함한다. 감각이든 관념이든 기억이든, 자아의 의식 속으로 인지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사고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의식의 많은 부분은 외향과 내향성이라는 태도군에 의해 결정된다. 외향적 성격의 사람은 객관적 현실이라는 외부세계로 향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객관적이고 사교적이며 타인들과의 교제를 진실로 즐기는 듯하다. 한편 내향성은 내부의 주관적 삶에 방향을 두고 내성적이며 위축되어 있고 소심한 경향이 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상반된 방향-외부 대 내부-을 대표하고 있는데 융은 누구나 어느 한쪽 부류에 속할 수 있다고 느꼈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 정상적으로는 이 태도들 가운데 어느 한쪽이 우세하여 행동과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한쪽이 완전히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 무의식의 일부가 되어 그 속에서 여전히 행동에 영향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의식부에는 외향성과 내향성 이외의 것이 또 있다. 융은 이를 심리적 기능군 이라고 소개했다. 이 역시 우리 주위와 내부 속에서 지각하고 반응해 보이는 방식인데 즉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이다. 융은 내향성과 외향성이라고 모두 똑같은 게 아님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세계에 대한 태도가 이성적이냐, 혹은 비이성적이냐 하는 점에서 다르다. 이성적 기능은 사고와 감정이다. 이들은 실제로 정반대의 기능이지만 양쪽 모두 경험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며 체계화하고 분류한다는 면을 갖고 있다. 비이성적 기능이란 감각과 직관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라는 방향의 견지에서 한가지 태도만이 지배적이었듯이 기능에 있어서도 한가지 기능만이 의식부에서 지배적이고 다른 나머지 세 부분은 개인 무의식의 부분이 된다. 결국 이런 다소 복잡한 성격 분류에 의해 두 가지 태도군과 네 가지 기능군으로 여덟 가지의 심리형을 형성케 된다. 융에 의하면 성격에 있어서 의식부는 중요하기는 하나 무의식부보다는 훨씬 덜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무의식에는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의 두 가지 차원이 있다. 보다 상위부에 보다 피상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 개인 무의식인데 근본적으로 의식 속에 더 이상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의식부로 쉽게 떠오를 수 있는 자료들의 저장소 혹은 저수지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수많은 정보-전화번호, 주소, 성명, 인상들(images),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억 등을 지니고 있다. 전화번호를 알고는 있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때는 즉시 의식부 안에서 인지될 수 있도록 상기(想起)해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의식부와 개인 무의식 사이에는 서로 빈번한 왕래가 있다. 융이 컴플렉스라 부른, 하나의 공통된 주제에 관련된 정서, 기억, 사고의 묶음은 개인 무의식의 중요한 국면이다. 어떤 의미에서 것에 대해서컴플렉스란 성격 전체 속에 있는 보다 작은 성격이며 특정한 것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갖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의식의 인지 수준에 놓여 있지 않고 개인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지배를 받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융에게는 컴플렉스가 종(種)의 진화사에서 겪은 어떤 경험, 즉 유전이라는 기제를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경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인간이 태초에 경험한 것들은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경향성이 우리 행동에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지 혹은 인식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특정한 경험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경향성은 내재하는 동안 그 소인을 현실화시킬 적절한 경험만이 필요하다. 융은, "자신이 태어날 세계에 대한 모습은 실제적 이미지로서 이미 자신과 함께 타고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우리는 조상들이 세계에 반응했던 방식으로 세상에 반응할 소자가 있다는 것이다. 융은 다양한 문화를 연구할 때 어느 시대, 어느 장소나 유사한 경험과 주제와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우주적 경험은 우리에게 심상으로 확실하게 되거나 표현되는데 융은 이를 원형이라 불렀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원형이란 어떠한 것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기본 모형이다. 그것은 나중에 형성되는 이미지에 대한 하나의 귀감이거나 본보기이다. 융은 그의 연구의 일부로 탄생, 죽음, 권력, 신, 악마, 대지 등의 예를 들어 여러가지 원형을 구별하여 논했다. 인간사의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무수한 경험만큼이나 많은 원형들이 있다. 이 여러가지 원형 중에서도 몇 개는 우리 삶에 특히 중요한 것으로 융에게는 생각되었다. 그것들은 보다 충분히 발달되고 세력이 있는 것들로 그 중에는 퍼소나(persona), 아니마(anima)와 아니머스(animus), 그림자(shadow)와 자신(self)이 포함된다. 퍼소나(persona)란 원래 배우가 다른 얼굴이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융도 같은 의미로 퍼소나란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려고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연기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때 그때의 상황이나 타인들의 요구에 맞추어서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수법을 쓰는 이상은 다른 가면을 쓴다는 것이 그다지 해로운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현대 생활의 복잡한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해 융은 퍼소나가 유용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퍼소나는 매우 해로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한 사람이 그 퍼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단순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자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 그 사람의 자아는 오로지 퍼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면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 융은 그런 사람들이(대개 중년기 무렵에)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그들 자신마저 기만하여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퍼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연관된 한 쌍의 원형으로 아니마와 아니머스가 있다. 우리 각자는 생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다 이성(異性)의 특질과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해 여성의 성격이 남성적 요소를 포함하고 남성의 성격이 여성적 요소를 포함한다. 한 사람이 양성적 본성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면 건강한 성격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융의 견해에 따르면 심리적 건강을 손상시킬 수 있는 이 편중성은 성격 전체의 충분한 발달과 표현을 저해하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조화롭게 발달하여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을 희생시키며 성장되어서는 안 된다. 그림자는 가장 강력하지만 잠재적으로는 해로운 원형이다. 그것은 인류의 조상으로부터의 원시적 동물 본능을 포함하고 있어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양측이 모두 표현되어야 하는 가장 선한 국면과 악한 국면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특히 문제시되는 원형이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림자는 사회가 사악하고 죄를 짓는 것이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충동을 포함한다. 그런 까닭에 그림자는 어두운 측면으로서 다른 측면들과 조화롭게 진보되기 위해서는 약화되어야 한다. 문명세계의 인류가 되기 위해 그림자의 힘을 제어해야 하지만 그들을 완전히 억압해 버리면 그것이 가진 바람직한 특질을 감소시키거나 파괴시킬 염려가 있다. 그림자는 동물 본능의 근원일 뿐 아니라 자발성, 창의력, 통찰력, 그리고 깊은 정서 등 완전한 인간성에 필수적인 성격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림자가 완전히 억압당했을 때 성격은 극히 가치있는 과거의 본능적 지혜로부터 완전히 차단당하여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어진다고 융은 생각했다. 자아가 그림자의 지배력을 조절하여 양면이 균등하게 표현될 때 그 사람은 생기있고 박력있으며 삶에 열의를 갖게 된다. 가장 중요한 원형은 자신(self)이다. 융은 그것을 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란 성격 모든 부분의 통일성, 완전성, 그리고 전체성을 향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자신(self)이 발달되었을 때 사람은 자기와 세계가 조화로움을 느낀다. 완전한 자아의 인식이나 실현은 어렵고도 인내를 요하는 오랜 작업이며 완전히 성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은 동기를 갖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목표를 항상 미래에 두어 사람을 앞으로 끌어당긴다. 자아인식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필요하다. 또 한가지 자아 인식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여러 부분이 충분히 나타나 발달하는 것인데 그것은 중년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중년기가 심리적 건강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성격의 발달 융은 성격 발달은 일생동안 계속되며 35세에서 50세 사이에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이 견해는 현재 위기의 중년기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뿐 아니라 이 변화기를 앞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융은 성격 발달을 아동기, 청년 및 성인 초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의 4단계로 기술했다. 그는 아동기가 성격 형성에 있어 특히 중요한 시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자아(ego)는 아동기에 처음 원시적인 방식으로 발달하기 시작하나 독특한 자신(self)이나 주체의식은 없다. 아동의 "성격"은 부모의 성격을 반영하는 데 불과하다. 성격 발달의 제 2단계인 청년 및 성인 초기는 일정한 성격 형태와 내용이 발달하는 사춘기에 시작된다. 융은 사춘기를 "심리적 탄생기"로 불렀는데 많은 문제와 갈등, 또한 적응의 시기이다. 현실 세계가 청년에게 아동기의 행동과 환상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요구를 한다. 청년기부터 성인 초기에 다가오는 첫 임무는 직업에 대한 준비와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맡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활력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외부로 향하고 태도는 대개 외향적이다. 그러나 40대쯤에는 중년기가 닥쳐와 우울증과 성격 변화를 유발한다. 중년기는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몰아치고 갈구하던 시기에 대한 성과가 나타나 안정감을 갖고 인생을 즐기기 시작할 수가 있는 시기이다. 이것이 융이 고된 시련을 경험하던 바로 그 상황이었고, 그의 환자 중 3분의 2도 인생에 있어 똑같은 단계에 처해 있었다. 얄궂게도 융은 중년기를 맞은 사람들이 인생의 요구를 충족시켰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변화를 경험하는 원인을 찾아냈다. 인생의 전반기를 준비 활동으로 많은 정력을 소비하나 40대 쯤에는 그 준비가 끝나버려 인생과의 도전이 충족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아직도 정력이 남아 있으나 소비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다른 측면에 재투자 되어야 한다. 인생의 후반기는 이제껏 게을리 해왔던 주관적 내면세계에 헌신해야 한다. 성격의 태도면에서도 내향적이 된다. 이전엔 의식부에 집중되던 것이 무의식의 경험을 깨달음으로써 조절된다. 흥미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데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며 직관적인 쪽으로 옮겨지고, 자아(自我)를 인식하는 과정이 시작되기 위해 예전의 편중성은 성격의 모든 부분의 조화로 대치된다. 융은 이런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우리 삶에서의 하나의 가치인 종교의 침식 때문에 점차 어려워진다고 믿었다. 새로운 가치와 신선한 동기,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이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의식부와 무의식부를 조화롭게 통합하고 자신의 내면의 존재를 경험한 사람은 긍정적인 심리적 건강, 즉 융이 개별화라고 부른 상황을 성취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성격 성장의 마지막 단계는 노년기이다. 융이 노년기에 대해 저술한 바는 거의 없지만 일생의 초기와 마지막 기간에 대해 저술한 것이 있다. 노년기나 아동기는 무의식부가 지배적이어서 성격은 완전히 그 속에 잠긴다. 나이든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도 미래를 향한 목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죽음의 불가피성은 어느 정도 그 자체가 하나의 목표로서, 즉 우리가 바라보며 노력할 목표로서 다루어야 한다. 우리의 심리적 건강은 여기에 있다.
5. 존재의 개별화를 이룬 사람 우리의 임무는 통일된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런 개념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데 본질적으로 그것은 어떻게 개별화 과정이 진행되는가 하는 것이다. 개별화에 첫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부분을 인식하는 것이 다. 이 일은 중년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 융은 개별화 과정을 독특한 개인, 하나의 동일체적 존재가 되어가는 것으로 규정지었는데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이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개별화는 본능적인 것으로서 노력을 한다 해도 거의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다. 개별화를 위한 노력으로서 우리는 생애 전반기에 지침이 되었던 행동, 가치, 사고 방식을 버리고 무의식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무의식의 힘이 우리 삶에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그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표현을 받아들여 무의식적 과정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의식과 무의식의 힘은 동등한 협력자가 된다. 개별화에 두번째로 요구되는 것으로는, 성인 초기의 물질적 목표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성격 특성들을 포기하는 것이 포함된다. 인생 전반기에는 그렇게 필수 불가결했던 성격의 편중성이 후반기에는 전혀 적절하지 않게 된다. 융은 한가지 태도나 기능이 우세한 것을 심리형이라고 칭하였다. 그런데 개별화되면 이율 배반적으로 그 사람은 소위 사유형이나, 외향성 또는 내향성 감정형으로 분류될 수 없게 되어 개인을 구별하는 이런 범주는 사라지게 된다. 중년기 성격의 또다른 변화는 원형(原型) 본질의 변화이다. 개별화 기간 동안 퍼소나, 그림자, 그리고 아니마나 아니머스에 변화가 생긴다. 사실상 개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우선적인 변화는 퍼소나를 분해하거나 몰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퍼소나의 하부까지 도달해서 퍼소나가 덮고 있는 순수한 자신을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개별화된 인간으로서 우리는 파괴적이기도 하고 건설적이기도 한 그림자의 전체를 깨달아야 한다. 파괴성, 야기심 같은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충동들, 즉 우리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그것에 흡수되어 그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단순히 그 존재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개별화 과정의 다음 단계에선 심리적 양성화라는 말이 필요하다. 남자는 아니마(여성적) 기질을, 여자는 아니머스(남성적) 기질을 표출하게 되어야 한다. 개별화 과정의 모든 단계가 모두 어려운 것이지만 자기의 양성적 특질과 특성을 인식하는 것은 분명히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이전의 자아상으로부터의 커다란 변화, 가장 급속한 이탈을 의미한다. 융은 아니마와 아니머스가 자유롭게 표현될 때에야 비로소 남성은 어머니로부터 여성은 아버지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와진다고 저술했다. 개별화된 사람들은 중년기 이후를 맞아 그 시기에 겪게 되는 성격 본성의 변화로부터 생기는 최대의 고비를 뚫고 나간 이들이다. 그 결과 개별화된 인간은 최고 수준의 지기(知己)를 성취하게 되는데, 즉 그것은 의식부와 무의식부 양쪽 수준에서 모두 자기를 인지하는 것이다. 지기와 함께 자신의 수용이 가능해진다. 개별화된 사람은 자기 탐구 시기에 자기에게 드러나는 것을 수용한다. 개별화된 사람의 세번째 특징은 자아의 통합이다. 성격의 일부분이 전체와 통합되고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것, 즉 이성적(異性的) 특성과 아울러 이전에는 지배적이지 못하던 태도와 기능 등 무의식부의 총체가 표출될 수 있다.
성격의 모든 부분들의 통합과 표현은 심리적 건강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자기표현을 개별화된 사람의 네번째 특성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인간 본성의 수용과 관대함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집단무의식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어서 개별화된 사람들은 인간 상황을 보다 잘 자각하여 관대함을 지닌다.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류적 유산으로부터 전해지는 힘을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다 깊게 통찰할 수 있는 듯하다.
건강한 사람은 보편적 성격(universal personality)을 가졌다고 융은 말했다. 더 이상은 성격(태도, 기능, 원형의 모든 측면에서)의 어느 한 면이 지배적이 아니므로 개개인의 독특함은 사라진다.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어느 특정한 심리형(心理型)에 속하는 사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6. 정신분석이론의 중요한 공헌 확실히 정신분석 이론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예술적?과학적인 노력을 포함하는 현대의 지적 사조의 전분야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프로이드 이론의 지각변동적인 속성은 정신분석이론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행동의 결정주의 : 아동기 사건들과 성인기 행동 사이의 연계에 대한 프로이드의 논증은 결정론의 개념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무의식 : 행동의 무의식적인 결정요인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우리가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모든 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 갈등으로 인한 병리 : 프로이드는 심리적인 고통과 장애가 발생하는 데 갈등의 역할을 인정한 최초의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오직 성과 공격적인 갈등에만 초점을 두지 않으며 갈등의 역할을 분석하는 데 다른 개념적인 모델을 사용한다. 심리학에 끼친 영향 : 세기가 바뀌고서 심리학은 주로 생리학, 감각, 지각, 그리고 학습에 관심을 두었다. 만약 심리학이 오직 이 주제들에만 계속 초점을 두었다면 심리학은 실제적으로 우리와 관련있는 적응의 문제에 대해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비록 심리학 내에는 현 시대의 매우 광범위한 과학을 지향하도록 추진시키는 많은 힘이 있지만, 프로이드는 확실히 이와 같은 활동에 공헌하였다.
7. 비평 정신분석이론에 대해 많은 비판적인 공격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프로이드가 성을 강조하고 인간이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인간의 행동이 본능에 의해 지배된다는 그의 신념에 당황하였다. 더욱이, 그가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본성을 폭로한 것은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 간 것이었다. 정신분석이론은 이와 같은 정서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래에 주요 결함들을 요약해 보았다. 검증력의 결여 : 많은 정신분석 개념은 너무 막연하고 부정확하므로 경험적인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 본능적인 에너지와 같은 구성개념은 측정하기가 불가능하다. 프로이드는 아동기의 외상적 경험, 죄책감, 외디푸스 콤플렉스 등 간의 상호관계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였다. 부적절한 증거 : 프로이디언 이론은 과학적 자료에 대한 경험적 토대에 근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료는 임상적인 사례연구로부터 얻어지는데, 그러한 연구는 정확성에 의심이 가는 환자들의 언어적 보고, 자신의 이론적인 기반에서 보고자 기대한 것을 보게되는 주관적인 임상적 관찰, 특히 대표성 없는 피험자들의 표본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빈약한 정보의 원천이 되고 있다. 성과 공격적 욕구에 대한 지나친 강조 : 이 욕구들은 분명히 중요한 것이지만 원래 제시된 것처럼 압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지는 않는다. 이러한 비난은 앞서는 두 본능적인 욕구를 강조하지 않은 신 프로이디언의 수정된 정신분석이론에 의해 부분적으로 완화되었다. 인간본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 : 지나치게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공격받았다. 특히 인본주의 이론가들은 정신분석 모델이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 너무 비관적이고, 인간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불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성자 : 라이언(200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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