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교 인원의 확충
1900년 중국의 외국인 선교사는 약 900명, 중국인 사제는 470명이었다. 이 두 그룹은 1912년 각기 1,450명과 725명으로 증가되어 20세기 초 10여 년 동안 비슷한 수치를 유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사제의 수는 일단 감세의 추세를 보이다가 다시 급상승했지만, 중국 사제의 수만큼은 아니었다.[1920년에 각각 1,365명과 966명, 1930년에 2,084명과 1441명]. 1930년에 들어서는 두 그룹 모두 증가했다[1942년에 3,123명과 2,242명].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사제단 전체가 고통을 겪었다. 수적으로는 둔화되었는데, 특히 외국인 사제단의 경우 더욱 심해서 1948년 중국인 사제 수가 선교사 수와 맞 먹을 정도였다. 중국인 사제 2676명에 외국인 사제 3,015명이었다.
외국인 수도회의 다양화와 점진적으로 교구 지역을 책임지게 된 현지 사제단의 다양성은 더욱 의미 있는 발전상이라 하겠다.
1900 ➜ 1914년
❏1920년, 마카오에 진출한 이탈리아 살레시오 선교사들은 1912년부터 광등 인근의 한 지역을 위임받았다.
❏ 1904년, 허난에 진출한 팔레르모의 하비에르회[1895년 창설] 선교사들은 1906년 그 지방 남쪽의 새 지역을 맡았다.
❏1911년, 스페인 프란치스코회를 위해 산시 북쪽의 감목대리구가 설정되었다.
❏1913년, 포르투갈 예수회 회원들은 마카오 교구의 일부를 위임 받았다.
새로 진출하는 선교사들에게 양되되는 지역 외에 당시 현지 선교회들을 위해 설정된 감목대리들이 추가되어, 제1차 세계대전 전 중국은 49개 관구로 분활되어 있었다.
1918 ➜ 1949년
추가된 수도회들이 파견한 선교사의 국적이 놀랍게 다양해졌다. 새로 진출한 수도회들은 관습에 따라 단기간 내 특별 지역을 할당받았다.
❏1911년 메리놀[뉴욕]에 창설된 미국 외방 선교회와 파리 외방 선교회는 일부 지역을 메리놀회에 양도하였다. 1918년 광등에 진출한 초대 메리놀 선교사들은 32년 후 6개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관둥에 2개, 광시에 2개, 만주에 2개],
❏1917년 중국 선교를 목적으로 특별히 설립된 성골롬반의 아일랜드 외방 선교회는 1928년 후베이 관구를, 몇 년 후에는 광시 관구를 받았다. 이 두 신설 선교회에 추가되어야 할 다른 선교회는:
❏픽프스.P.de Picpus를 비로한 프랑스 선교사들, 이쑤됭의 성심회 Sacrė‐Cœur ďIssoudun, 베타람의 성심회Sacrė‐Cœur de Bėtharram
❏독일 카푸친회capucins와 베네딕도회
❏네덜란드의 카푸친회
❏미국 고난회passionistes와 이탈리아의 오상회stigmatins
❏미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항가리.폴란드 라자로회 선교사들
❏스위스 선교사들:베들레헴 외방 선교회와 대성인 베네딕도의 규칙수도회ordre des chanoines rėguliers du Grands-Saint-Bernard
❏미국, 오스트리아, 캐나다, 스페인, 항가리, 이탈리아의 예수회 회원들
❏스칼보루Scarborough 외방 선교회의 캐나다 신부들[1018년 창설]과 캐나다 퀘백외방선교회[1921년 창설]
❏독일.미국.프랑스.네덜란드.아일랜드.벨기에프란치스코수도회.
❏미국.벨기에.프랑스 베네딕도회
넓게 보면, 선교의 성황은 교황베네딕도 15세와 비오 11세에 의해 시작된 운동과 관련된다. 1948년 중국에 300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4개 수도단체가 있었으니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라자로회, 베르비스트 선교회가 그것이다. 넓게는 포르투갈 교구 사제단을 추가해야 한다. 특히 1926년부터 교구 사제단과 여러 수도회, 선교 단체[특히 예수회, 라자로회, 프란치스코회]에 소속된 중국인 회원들이 있었고, 그 중국인들에게 여러 감목대리구와 교구들이 위임되었다. 1949년 7월 당시 146개 교구 중 35개가 중국 사제단[교구 신부와 수도회 신부]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1900년 선교에 봉헌된 7개국 12개 선교회는 50년 후 50여개국 30여 개로[수녀회 포함] 늘어났다. 교황청은 사도직과 선교 방법의 획일화를 원했다. 다양한 출신 성분과 교육 배경을 지닌 선교회들의 설립이 아무 어려움 없이 쉽사라 성사된 것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