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3년 1월 7일 마태복음 7장 찬송가 379장(새찬송가 204장)
0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0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0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0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0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0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0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0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0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천국 시민의 헌장인 산상수훈(3)”
본 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 대한 교훈과 아울러 ‘황금률’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모든 교훈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종말론적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천국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존재임을 기억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결론으로서 ‘두 문’, ‘두 길’, ‘두 나무’, ‘두 건축자’ 등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수훈대로 살았는가 살지 않았는가에 따라서 마지막 심판이 주어질 것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런 면에서 산상수훈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위대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새 언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언약적 규례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판과 분별에 대한 교훈과 황금률(1-12절)
【1-5절】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어떤 경우에도 비평을 금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의 허물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마치 재판장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로서, 그것은 하나님만이 최종적인 재판장이 되시며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더 큰 약점이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맹점을 갖고 있는 것이 외식하는 자들의 특성입니다.
【6절】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거룩한 것’, ‘진주’란 진리 혹은 복음에 대한 상징으로서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나 영적 분별력이 없는 자들에게 복음과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임을 뜻합니다. 사실상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자는 사람들에 대한 분별력과 아울러 성령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7-11절】여기서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간절히 구하기만 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마침내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고 계신 것으로서, 여기서 약속하신 ‘좋은 것’이란 병행구절인 눅 11:9-13을 참고한다면 ‘성령’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소위 ‘황금률’이라고 불리는 이 구절은 보통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내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들에게 먼저 행하라는 교훈으로 이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과 자비를 받기 원한다면 이웃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 것을 교훈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한 야고보의 말씀(약 2:12-13)이 본 단락과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13-29절)
【13-14절】좁은 문, 좁은 길은 곧 산상수훈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 길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좁은 문, 좁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천국에 합당한 자들입니다.
【15-23절】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보다 넓은 문을 택하는 데에는 거짓 선지자들의 영향이 큽니다. 그들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큰 일’을 행한 자들로서, 자기들 스스로 거짓된 구원의 확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거짓 스승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그들의 열매를 보는 것으로서, 이 열매는 그들의 인격을 말하며, 곧 성령의 열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갈 5:22-23 참고).
그리고 이들이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주님도 그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도 주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했지만, 주님과의 생명적 교제는 없었던 것입니다(요 15:1-8).
【24-27절】모든 사람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짓든지, 모래 위에 집을 짓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큰 환난이나 시련을 당할 때를 말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종말 즉 임종의 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가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때를 말합니다.
【28-29절】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무리들이 놀랐다고 했는데, 이는 ‘충격을 받았다’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유대인 랍비들이 자기보다 앞선 유명한 랍비들의 권위를 의존하여 가르치는 것과 달리 예수님 자신의 신적인 권위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서 ‘카리스마’는 느끼면서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왜 황금률이 율법이요 선지자입니까?
2.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어떤 자세로 나옵니까?
◈오늘의 기도◈
“나의 인생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닌지 늘 돌아보게 하소서!”
◈믿음의 글◈ “산상수훈의 이중적 목적”
산상수훈은 누구에게 지키라고 주신 교훈인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는데, 아마도 그것은 산상수훈이 요구하는 윤리적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마 천주교회에서는 산상수훈이 본래 예수님의 사도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으로서 현재에는 종교지도자들이나 금욕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에게나 적합한 것으로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가르쳤으며, 세대주의자들은 산상수훈을 현 세대에 해당되는 교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도래할 천년왕국에서 지켜질 규범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분명히 새 언약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켜 행하여야만 할 삶의 기준과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동시에 믿는 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 교훈을 따를 수 없음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그 안에 있습니다.
즉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심령이 가난하며 애통해 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을 간구하게 하는 데에도 그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