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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 문화연구와 중국연구, 1996~2016
중국의 개혁개방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보다 8년 이른 1978년 시작되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지 소련 기준으로는 30년이 갓 넘었지만 중국 기준으로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 사회를 지칭하는 포스트사회주의(postsocialism/postsocialist)라는 용어가 출현한 것도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포스트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는 논자에 따라 다양하다. 아리프 딜릭(Arif Dirlik)은 일찍이 사회주의적 이상이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배제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한 상황’을 포스트사회주의로 설정하는 동시에 이를 ‘지구적 자본주의’와 대립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시기에 ‘혁명적 사회주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으니, 이는 ‘사회주의의 합리성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딜릭이 포스트사회주의를 지구적 자본주의의 대립물로 설정했다면, 폴 피코위츠(Paul Pickowicz)는 포스트사회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적 카운터파트로 설정한다. 사회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포스트사회주의라는 독자적인 사회구성체를 제안한 피코위츠는 중국에서의 포스트사회주의를 일종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로 인식했다. 그런가하면, 장잉진(張英進)은 포스트사회주의를 포스트마오 시대의 다양한 문화경관으로 파악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관방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한 것에 빗대어,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라는 해석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중국 특색의 신자유주의’라 하고, 앨빈 소(Alvin Y. So)는 중국이 동아시아 발전 모델에 가까운 국가 발전주의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장쥔(ZHANG Jun)의 경우, ‘얼룩덜룩한 자본주의(variegated capitalism)’라고 하여 현재의 중국이 복잡하고 혼종된 발전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회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을 단일한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중국을 ‘이행(transi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중국의 장기 근현대(the long-term modern China)’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반봉건 사회를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즉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관점을 바꿔 말하면, 아편전쟁 이후 저급한 자본주의를 거쳐 1949년 이후 국가자본주의,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를 경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행의 관점은 중국이 서양식 시장 자본주의로 이행할 것이라는 가정을 경계한다. 그렇다고 ‘현실 사회주의’가 지속될 것으로 전제하지도 않는다. 현재 중국과 중국인들은 무엇인가로 이행 중이다.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민주로의 이행을 희망하고 언론인들은 언론의 자유와 더 큰 민주로의 이행을 원하며 많은 중국인들은 더 많은 재화와 더 나은 수준의 삶으로의 이행을 원한다. 비자본주의적이면서 현실 사회주의와는 다른 제3의 길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포스트사회주의를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관찰하는 시야로 설정한다. 포스트사회주의는 문화대혁명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30년’을 부정하고 그것과 단절되는 측면과,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에도 문혁의 기제가 여전히 관철되는 측면을 동시에 지적한다는 장점이 있다. 즉 사회주의의 지속(after, 後)과 발전(de-, 脫)을 절합(articulation)시키고 있는 중국 ‘개혁개방’ 시기의 특색을 요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리프 딜릭의 결기를 본받아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그 무엇으로 설정하고 싶지만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기 전에는 그것이 쉽지 않음도 인식하고 있는 수준의 시야임을 밝혀둔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급변하는 추이를 따라가며 문학적으로 분석해 보려 노력한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좌익문학 운동을 주제로 쓴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목포대학에 부임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노력은 ‘신시기’ 소설을 통해 시대 상황을 읽는 방법으로 시작되었고, 학제간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문학 너머’를 넘보게 되었다. 그 와중에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만난 것이 1996년 무렵이었다. 인문대 동료교수들과 문학이론 공부를 시작하며 자연스레 문화연구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후 20년간 문화연구와 중국연구(Chinese studies)를 결합한 공부의 결과물이다.
‘문화연구로의 전환(cultural studies' turn)’은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 전환은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 사이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문화를 당대 토론의 초점으로 만들기 시작한 운동이다. 그것은 이전 사회과학의 주변 분야에서 나오게 된 다양한 새로운 이론적 충격에서 비롯된 광범한 분야를 포함한다. 포스트구조주의로부터 비롯된 지적 혁명은 바로 ‘문화적 전환’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는 문화연구 외에도 ‘공간적 전환(spatial turn)’ ‘번역 전환(translation turn)’ 등이 포함된다.
‘문화연구로의 전환’은 유독 한국의 중문학계에서는 그 반향이 더뎠다. 문화연구의 특징인 학제간 융복합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 대륙에서 성과를 낸 학자들은 대부분 ‘한 우물 파기’ 식의 분과학문 연구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학제간 대화를 진행하며 연구에 전념했다는 면에서 넓은 의미의 ‘문화연구’ 종사자라 할 수 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리쩌허우(李澤厚)는 미학과 철학, 사상사 등을 넘나들며 마지막 양식(late style)으로 ‘인류학 역사본체론’을 제창했고, 첸리췬(錢理群)은 문학과 사상을 넘나들며 루쉰(魯迅) 연구부터 마오쩌둥(毛澤東) 연구까지를 아울렀다. 루쉰 연구에서 시작해 사상과 문화연구를 넘나드는 왕후이(汪暉), 중국문학과 일본사상사를 오고가며 동아시아 시야를 확보한 쑨거(孫歌), 그리고 문화연구로의 전환을 분명하게 표명한 왕샤오밍(王曉明)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하나의 분과학문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실천적 아젠다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의 전통 분야인 문사철(文史哲)을 토대로 삼아,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 범주와 문화연구, 지역연구, 포스트식민연구, 인지과학 등의 신흥 학문까지 아우르면서 융복합적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문화연구의 발원지인 영국 버밍햄학파는 리비스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리비스주의는 ‘문화의 연구(study of culture)’를 주장했는데, 이는 대중문화를 무정부 상태로 간주하고 비판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버밍햄학파의 문화연구는 대중문화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문화의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급문화였고, ‘문화연구’에서는 고급문화 위주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대중문화를 연구 시야에 넣었던 것이다. 새로운 단계의 문화연구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장벽을 타파하고 양성문화에 대한 학제간 융복합적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리비스주의의 ‘문화의 연구’로부터 버밍햄학파의 ‘문화연구’로, 이제 다시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of culture)’ 단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 ‘문화의 연구’와 ‘문화연구’의 장벽을 타파하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문화 개념을 새롭게 제출하면서 그것을 ‘문화적으로’ 연구하자는 것이다. 고급문화 중심의 리비스주의가 1단계였고, 이를 비판하고 대중문화 중심의 문화연구를 제창한 버밍햄학파가 2단계였다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지 말고 양성문화를 발굴하고 악성문화를 지양하는 새로운 3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기존의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보면 연구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이고, ‘문화의 연구’ 입장에서 보면 연구 방법론을 확립하는 장점이 있다.
‘혁명의 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뜻이 맞다고 생각했던 동업자 몇과 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당시 타이완 유학파들의 반공 실증주의적 학풍에 식상해 새로운 검을 주조하자는 취지에서 그 모임을 ‘주검회(鑄劍會)’라 명명했다. 얼핏 ‘주검’을 연상케 하는 이 단어는 루쉰의 단편소설 「주검(鑄劍)」에서 따온 것이었다. ‘검을 벼리다’라는 동빈(動賓)구조는 ‘벼린 검’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검을 제대로 벼리려면 ‘주검’을 각오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 벼리던 검은 몇 년 되지 않아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벼리려던 검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곤 다짐한다. 언젠가 다시 제대로 된 검을 벼려보겠노라고.
이 책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탄핵정국의 촛불혁명 진행과 맞물려 있었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은 나를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혁명의 80년대’에 후배들과 함께 공덕동 로터리와 남대문로 등에서 격렬하게 시위하며 맡았던 최루탄 가스가 ‘1987년 체제’로 귀결되었던 기억이 새로워, 여러 차례 동료와 후배, 그리고 마침 한국을 방문한 외국 친구들과 광화문 네거리 현장에 나가곤 했다. 한 개인에게 30년은 반생(半生)에 가깝지만 역사에서는 한 순간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1987년이 그러했듯이 2016년 가을부터의 시간은 특별한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가 단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1987년을 반면교사로 삼아 촛불혁명을 진정한 ‘발란반정(撥亂反正)’의 단계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근대 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 실행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녀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인민민주 원칙’을 위해 ‘대의제’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제’가 ‘인민민주 원칙’을 억압하는 현상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민주주의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우리는 이 ‘역설’을, 인민이 민주적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한 지도자가 당선 이후 인민의 뜻을 대표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은 어지러움이다. 마침내 우리는 그러한 ‘어지러움을 평정(撥亂)’했다. 이제 ‘정의로 돌아가야(反正)’ 한다.
돌이켜 보면 이 책에 묶인 글들은 혼자 썼지만 그 과정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먼저 ‘문화기호학’ 세미나를 함께해온 목포대학교 동료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강내희 교수가 주관하는 ‘인지과학’ 세미나는 ‘문화기호학’ 세미나와 함께 최근 내 공부를 견인하는 쌍두마차다.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두 분야를 조만간 글에 녹여내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맑스 코뮤날레’ 중국세션 멤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의 일부는 2015년과 2016년 지식순환협동과정 대안대학 4쿼터에서 강의 자료로 활용했었다. 어려운 내용을 경청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대안대학 학생들과의 만남은 전에 없던 신선한 자극이었다.
지속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준 목포대학교에도 감사드린다. 이 책에 실은 글들은 대부분 단편논문으로 발표한 것들이다. 게재를 허락해준 중국현대문학과 문화/과학을 비롯한 여러 간행물에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은 이 책을 완성하게 한 주요한 계기이자 동력이었음을 밝혀둔다. 글의 출판을 흔연히 허락해 주신 문화과학사의 손자희 선생께 감사의 말을 드린다. 특히 출간에 임박해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났을 때 따듯한 격려와 믿음을 보내주신 덕분에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문화/과학과의 만남에 다리를 놓아주고 ‘맑스 코뮤날레’ 및 지식순환협동조합을 함께 하는 심광현 선생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3년 전 ‘문학사 담론’ 책을 낼 무렵 사우(師友) 이재현 선생이 ‘나름의 목소리’를 내라고 충고했을 때 ‘학이사(學而思)’의 경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었다. 지금 새로운 책을 내면서 돌아보니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자평하면서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갈수록 박람강기가 쉽지 않지만 새롭게 가다듬으며 발분(發憤)을 기약해 본다.
2017년 3월 31일
임 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