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 대한 업무현황 보고가 한창이던 지난 1월.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회의실 뒤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다. 그는 다름 아닌 17대 국회 후반기,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 가장 중앙에 앉아 우리나라 농림수산업을 이끌었던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이었다.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고 농업계에서 직접적으로 활동하지 않은 지 벌써 3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권오을 총장의 농어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변함없어 보였다. “농업이 내 바탕”이라고 서슴없이 밝히며 우리 농어업·농어촌·농어민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는 권오을 총장. 벌써 두 번째 농식품위원장이 바뀌었어도 이런 그를 여전히 농해수위 위원장으로 기억하는 농어민들과 3년 만의 재회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9일, 국회 사무총장실을 찾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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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을 총장은 분명 정치인이지만 그에게 농업만큼은 남일 같지 않다. 고향인 경북 안동이 농축산업의 도시이기 때문. “내 가족, 친지, 친구의 대부분이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농업은 ‘나의 일’이라는 사명감을 항상 갖고 있지요.”
이 같은 이유에서 인지, 보통 한나라당하면 사회적 약자, 서민의 이익 보다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란 인식이 강한데도 권 총장은 한나라당 출신이면서 농어업에 대해서는 여느 진보정당 의원 못지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 왔다.
하지만 예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현 농림수산식품위원회)위원장 시절과 현재 국회 사무총장으로서 농어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조금 차이가 생겼다. 소비자적인 시각에서도 농어업을 바라보게 된 것. “위원장 때는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상대적인 약자의 입장에서 의정활동을 했다면 사무총장인 지금은 조금은 담담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 농어업·농어촌·농어민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래도 위원장시절에 비해 권한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범위에서 농어업·농어촌·농어민들을 지원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권 총장이 농해수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농어민들에게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었던 ‘인기’ 있었던 위원장 이었다. 하지만 예전 농해수위 활동을 되돌아보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어민들에게 받았던 큰 기대와 관심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농산물 유통체계를 정립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큽니다. 농해수위 활동을 하면서 모토가 ‘생산자는 제값 받고 소비자는 싸게 먹고’ 였으니까요. 다시 농림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농산물 유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가 이뤄놓은 성과도 만만치 않다. 원산지표시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3년여에 걸쳐 관련 법률안을 만들어 놓은 주인공이 권 총장이다. 서울의 경우 원산지표시제도 시행 전 축산물의 60% 정도가 원산지가 허위로 판매 됐다면 지금은 15% 수준으로 낮아졌다. 권 총장이 농해수위 위원을 하면서 농가부채경감 특별법을 개정해 농어가 부채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이자를 낮추게 한 것도 아직 몇몇 농어민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의 큰 성과다.
- 지금은 농어민 직접 대변하는 역할은 아니지만 다각적인 측면서 농어촌·농어업 지원 노력 게을리하지 않아…농어민대표 국회에 없어 아쉬워 -
과거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2011년 현재 우리 농어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먼저 농업계의 가장 큰 근심거리인 구제역에 대해 언급했다. 국회 차원에서 축산 농가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 할 지 고민이 큰 모습이었다. “살처분 농가에 대한 우선 보상을 50% 해준 상태에서 나머지 50% 보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추진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국회 차원에서 구제역으로 피해를 입은 축산 농가에 대한 보상에 신경을 쓰려고 해요. 국가 예산 사정도 있지만 나머지 보상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산 사정이 어렵다면 지역별로 구제역이 먼저 온 순서대로라도 보상이 돼야 한다는 게 권 총장의 생각이다. 소규모 축산농의 경우 나머지 보상금을 기다리는 사이 먼저 받은 보상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게 돼 버린다는 것. 그렇게 되면 소규모 축산농은 재기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는 가축질병 재발방지를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가축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방역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동물들의 면역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내년에도 또 다시 구제역이 발생 될 수 있어요. 면역체계를 갖기 위해서는 사육 면적이 확보돼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밀식 사육을 하고 있지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면역체계를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도록 규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금 식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한 발짝 간극을 두고 바라보는 그의 ‘농어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그의 답변이 이어졌다. “우리 농업은 기업농과 가족농이 서로 혼합하는 체제로 가야 합니다. 약 1만6500㎡(5000평)에서 3만3000㎡(1만평)정도의 가족농과 9만9000㎡(3만평)이상의 기업농이 혼합된 형태정도 될까요. 우리의 농촌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져도 외국 농업대국에 비해서는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농 쪽으로 방점을 찍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아무리 현대 농업이 기계화 됐다지만 사람이 있어야 기계도 작동시킬 수 있고, 아직 우리 농업은 노동 집약적이기 때문에 가족의 노동력을 투자해 최적의 이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는 4월 이면 국회에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FTA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농해수위에서 활동하던 시절엔 농어민들의 이익을 위해 한·칠레 FTA, 한·미 FTA 등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던 그였다. “FTA 추진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농업의 현실이에요. 그러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놓고 보면 한·미 FTA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어요. 농어업은 손해를 보지만 국가전체가 이익이라면 FTA를 추진하되, 다른 분야의 이익을 농어업에 재투자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축산 면역체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갖추도록 규정 만들고 국가 전체이익 위한 FTA 불가피하다면 다른 분야 이익, 농어업에 재투자 시스템 만들어야 -
반드시 생산에 대한 투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학비 지원이나 농어촌학생 특례 입학, 심지어 공기업·사기업의 취업기회를 더 준다든지 그런 방면으로 보완이 된다면 FTA를 피해의식만 갖고 대할 필요는 없다는 게 권 총장의 판단이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꿔 보기 위해 재밌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농식품부 장관, 기회가 된다면 의향이 있는지. 손사래 치며 그냥 웃고 넘길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시원한 답변을 내놓는다. “장관으로 올라가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농산물 유통체계를 정립하고, 특히 쌀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죠. 쌀 관세화에 대해서는 농민들과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 합니다. 농산물 비축도 쌀만 갖고 이야기해서는 안 돼요. 또 북한에 식량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통일 농정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해요. 그런 문제를 농식품부에서 접근 해줘야 합니다.”
10년 동안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1년에 한 도시씩 경지정리를 할 필요도 있단다. 유휴지를 활용해 사료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경지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식량자급률을 45%정도로 올릴 수 있고 축산 기반, 식량 기반이 안정돼 도시 소비자도 좋은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먹게 될 것이란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학교나 어떤 조직에서 바로 밑, 혹은 자신이 거쳐 왔던 일을 하고 있는 후배를 보면 남다른 애착과 아쉬움이 남듯이 상임위를 먼저 거쳐 간 선배 의원으로서, 또 전 위원장으로서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 같았다. 그러나 예부터 고운자식에게는 매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권 총장도 그랬다. “농식품위를 한 번 거쳐 가는 상임위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4년 아니면 6년, 8년 동안 농식품위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농정에 대해 꿰뚫어 보고 현장과 호흡하는 의원들이 됐으면 합니다.” 권 총장의 지적처럼 많은 의원들이 농식품위를 그냥 2년 정도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다 보니 농민들의 정서를 파악하는 것에 굉장히 취약한 실정이다. 권 총장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의원들은 구제역과 관련해 ‘살처분 해서 보상 받는 것이 더 낫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설사 일부 농민들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답답하죠. 농민들과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농어민들과 3년 만의 재회 치고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국회 임시회 기간인 탓에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하는 것에 권 총장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권 총장은 마지막으로 농어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국회에 있으면서 아쉬웠던 것이 농어민대표가 국회에 없다는 겁니다. 여야 비례의원에 농어민출신이 없어요. 농어민들이 생각보다 정치적 발언권이 약하다는 증겁니다. 여야를 떠나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당이 있다면 농어민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줘야 합니다.
#권오을 사무총장은 1957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권오을 사무총장은 고려대 졸업을 바로 앞둔 1981년 12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워 왔던 그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34세였던 1991년, 제4대 경북도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도의원을 성공적으로 마친 권 총장은 1996년 제15대 국회부터 제17대까지 내리 3번을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특히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농어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지난해 6월부터는 국회 사무총장으로 능력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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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훌륭한 정책을 반영할 수 있도록 현직 국회의원들도 뜻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