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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과 최초의 스승
최초의 신은 누구이며 최초의 스승은 누구이며 최초의 보호자는 누구일까? 바로 세상에서 무엇보다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최초의 신이요 최초의 스승이며 최초의 보호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모가 최초의 신이고 최초의 스승이며 최초의 보호자인 것인가? 부모가 최초의 신이라는 것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고귀한 은혜의 인연 때문이고, 최초의 보호자란 태안에서 열 달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었고 태어나서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며 알뜰히 보살펴준 소중한 인연 때문이며, 최초의 스승이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법과 지혜를 처음으로 가르쳐준 막중한 인연 때문인 것이지요. 부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런 내 아이가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밤낮 없이 노심초사합니다. 사회에 자랑스런 일원으로 나라의 기둥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열심히 공부하라 격려도 하고 책망도 하며 건강하고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도록 부모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해주고 몸에 좋다는 보약까지 지어줍니다. 부모는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까닭에 넘어져 얼굴이나 무릎이 까이면 매우 속상해하고 다른 아이와 싸워서 다치거나 코피가 나기라도 하면 쌍심지를 돋우고 화를 내며 눈을 흘기고 분노합니다. 그것이 지나쳐 어른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불목하며 지내기도 합니다만 애들이란 소소하게 다투고 싸우며 웃고 울며 쓴맛 단맛을 보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크게 상심할 게 없는데 지나치게 애착하면 바늘에 실이 따르듯 늘 걱정과 고통과 번민이 따릅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헤어질 때 마음이 아프지 않을만큼만 사랑해야한다고. 얼마나 이별의 아픔이 가슴을 헤집었으면 그런 시를 썼을까요! 사랑의 슬픔과 괴로움을 스스로 체험하여 너무도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에 이별의 아픔에 몸부림치지 않을 만큼 그만큼만 사랑하라는 철학적인 싯귀가 마음에 풍경소리처럼 울립니다. 지인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종종 듣게 되는 요즘 더 그러합니다. 나는 어느 날 티브이에서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몸서리치며 징그럽다고 피하는 커다란 뱀(구렁이)을 끌어 앉고 식구처럼 한 방에서 살고 또 어느 분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무시무시한 악어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쓰다듬고 귀여워하며 키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완용 뱀에게, 악어에게, 수달에게, 살아 있는 쥐를 넣어주고 물고기를 먹이로 던져주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란 얼마나 주관적이며 편파적이고 이기적인가를 느꼈습니다. 물고기는 악어와 수달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이윽고 팔딱거리며 먹이가 되고 생쥐는 공포에 떨며 쫓기다가 뱀의 먹이가 되어 애처롭게 죽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 쥐가 얼마나 공포에 떨며 죽어가는지,, 물고기는 얼마나 두려워하면서 자기를 먹이감으로 던져준 사람을 원망하고 증오할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뱀과 수달과 악어가 자기가 넣어준 먹이를 맛있게 잡아먹는 풍경을 애정어린 눈으로 즐겁게 바라보는 것을 목격하며 사랑의 이면에는 고통과 두려움과 원망과 증오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난 그들의 특별한 사랑과 취미를 보면서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놓아두라고, 동물원처럼 교육과 학습과 보호의 목적이 아닌 개인의 취미생활로 숲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을 포획하여 좁은 우리 안에 가두어 놓고 기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습니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 맹수를 포획하여 매질하여 길들여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돈 벌이하는 짓을 하지 말고 뱀은 뱀이 살 수 있는 산야에서 살게 하고 악어는 늪지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쥐나 물고기도 제각기 사는 곳에서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게 내버려 두라고 다정히 어께를 두드리며 권합니다. 나의 목숨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하듯이 모든 생명은 다 존귀하므로 함부로 죽이면 안됩니다. 뱀이나 악어의 목숨은 소중하고 물고기나 쥐의 목숨은 천한 것이 아닙니다. 뱀이나 악어와 다름없이 물고기나 힌쥐도 역시 똑같은 생명의 존엄성을 가지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만약 누가 나의 손발을 묶어서 좁은 우리 안에 가두고 몽둥이로 때리고 노예처럼 혹사시키며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대한다면 매우 불쾌하고 우울증이 생겨 죽고 싶을만큼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보다 분명할 것이니 과연 좁은 울 안에 갇혀서 사는 동물이 즐겁고 기뻐할 수 있을지 반문해보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하고 좋을지를 불을 보듯 뻔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간에는 '사랑하라! 더욱 사랑하며 살라.'고 합니다. 사랑이 모든 슬픔과 고통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사랑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입으로 말하면서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멋진 기치 아래 죽어가는 생명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팔레스타인을 죽이고 팔레스타인을 사랑해서 이스라엘인을 죽입니다.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 고통과 죽음을 부르는 전쟁이 역사상 무수히 일어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이 절대적 가치인 것처럼 읍조리지만 슬프고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로 엄연한 사랑의 세레나데 입니다.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한다면서 그대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만인 앞에서 한눈 팔지 않고 평생을 절절히 사랑하며 살겠다고 언약하고는 며칠도 안 되어 신혼길에서 다투고 싸우고 헤어져서 후회하고 슬퍼하며 미워하고 원망도 합니다. 사랑은 요술처럼 미움으로 변합니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서 미움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미음으로 변하는데 손바닥을 뒤집듯이 미움과 증오로 언제 변할지 모르는 사랑이 삶의 활력소가 되고 화합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도 잠재하여 있는 바, 활화산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보다는 잔잔한 바다 위에 달빛처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자애로운 마음이 더 숭고하고 거룩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혹 이 말을 듣고 사랑을 신봉하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은 어디로 가고 가슴에 분노가 치솟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며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나 가만히 숙고해 봅시다. 태양은 빛을 비추어 주되 예쁜 사람, 미운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남자, 여자, 흑인, 백인, 황인을 가려서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고 평등하게 비춰줍니다. 오늘처럼 몹시 추운 날도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비춰줍니다. 태양이 온누리에 광명을 고루 비춰어주듯이 사사로운 감정 없이 진심으로 평등하게 모든 이를 배려하고 연민하는 자애로움에는 미움과 분노가 없습니다. 태양이 따사롭게 세상 만물에 광명을 비춰주어도 댓가를 바라지 않듯이 내 가족과 남의 가족, 나와 친하고 소원한 사람,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나누지 않고 모든 존재에 차별 없이 평등하게 어여삐 여기고 가엽시 연민하는 마음이 곧 자애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개미나 지렁이와 같은 미물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을 나의 존재처럼 가족처럼 소중히 대하고 보살펴주는 세상의 어버이와 같은 숭고한 마음이 자애입니다. 최초의 신처럼 최초의 스승처럼 최초의 보호자처럼 우리들 마음에 자애로움으로 곱게 수놓아 채색하면 시기 질투 미움 증오 싸움은 소멸하고 세상에는 평화와 기쁨과 행복의 광명이 찬란하지 않을 런지요. 이 세상 모든 고귀한 생명들이 근심 슬픔 고통 두려움 절망에서 벗어나 즐겁고 평안하고 행복하옵기를! 이 세상 모든 소중한 존재들이 생애의 첫날처럼 환희롭고 마지막 날처럼 숭고함으로 길이 안락하옵기를! |
첫댓글 많이 반성합니다~성인되면 다 자기 갈 길 가는데도...집착에 끈을 놓지 못하고~나중에 더 허무하지 않으려면..그냥 바라보는 연습이 있어야 하는데...그 신경에 끈을 놓지 못하며..이래라 저래라..한이 없습니다.그럴수록 애는 더 엉뚱하게 가려는듯...ㅡ.ㅜ 이것이나 저것이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_
^^ 자식에 대한 애정은 한이 없지요,, 아이는 자신이 누구보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며 스스로 커갈 수 있도록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도 현명할 것입니다,,, * ^_^
아직도 반성중~쏘다니길 좋아하는 큰넘이...저늠에 개띠근성...지발 자중좀 해라~~
잔소리.... 이제 놓아 주어야 하는데...자꾸 제식대로 간섭질입니다.어디가서 행여라도. 나쁜짓 할까 지례~날리치며 혼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