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향
조선 시대에 남존여비 사상과 여성들에게 글을 잘 가르치지도 않았던 시절에 시를
쓴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허난설헌이나 이옥봉 같이 좋은 시를 남긴 여인들이 있지만 가정의 반대에 부딪치어
끓어오르는시심을 억누를 길 없어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나 싶다.
그러나 가정에 얽매이지 않았던 기생들은 학자, 선비들과 어울리며 시서가무를
즐겼기에 여성들의 정과 한을 나타낸 시조를 남길 수 있었는가 싶다.
기녀라면 천하게 여기던 조선시대 그 대단한 양반님들도 뛰어난 기생들의 시에는
무릎을 꿇었다는데 황진이의 시조를 소개해 본다.
1. 황진이
1)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이조 중종 때 송도의 이름난 기생으로 시서가무(詩書歌舞)가 뛰어났고
서화담과 박연폭포와 함께 자신을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였다는데 요즘도
영화로 드라마로 노래로도 나왔기 때문에 황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임과 함께 보내는 짧은 봄밤을 동짓달 밤처럼 길게 만들겠다고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보관해두자는 기발한 착상을 하기에 이른다.
또한 중장과 종장에서는 '서리서리' '굽이굽이'와 같은 의태어를 사용하여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매우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가 있었다.
문학성을 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이 시조가 가장 예술적향취를 풍기는 작품으로
기교적이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황진이의 시조는 6수가 남아 있는데 그의 다른 시조도 적어본다
2)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
3)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라
4)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5)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6)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고.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다. 황진이가 사모하던 학자 서화담,
30년 면벽수행하다 환진이 때문에 파계한 지족선사
무덤에서 술잔을 드리고 시를 읊은 풍류객 임제, 계약결혼의 소세양,
시로서 놀려준 종친 벽계수 등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만큼 좋은 시를 써서
남자들을 애태우기도 하였다.
가람 이병기 선생님께서는 자기의 시조 선생이 황진이의 이 시조라고 하셨단다.
30여년 전 서예학원에 다녔을 때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한국 문화를 알아 보려고
서예를 배운다는 분을 만났디. 그와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 문학에 시조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정형시가 있다고 하면서 한번 읽어보라며 황진이의 시조 영역(英譯)
한 것을 적어서 주었더니 매우 반가와하며 자기 나라에 가서 알리겠다고 했다.
Long long november night!
Let me cut thee in Two pieces.
Under my Quilt, warm as spring,
I put one piece in a roll.
When he comes like a bridegroom
I'll unroll thee to please my lord.
- 번역 : 하태흥 -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선생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창, 홍랑, 한우, 송이, 소춘풍, 소백주도 썼지만
타자하기 힘들어 안올렸습니다
나도 옛 시조 중에서 황진이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활달한 시풍 진한 정한
글자 수에 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가락이 그렇습니다
예술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이런 선배를 갖게 된 시조문학이 참 좋습니다.
김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조시인들이 애송하는 시조를 설문조사하니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이 1위라고 하네요.
율격이 강조되는 고시에 감동을 고합니다
항상 열심히 댓글 다시는 오병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이 없는 글은 글이 아니라고 들 한답니다
글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군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