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대변마을 유래
기장은 대변리 대변마을과 무양마을을 합쳐서 법정동리가 되었다. 옛날은 동리명은 없었고 기장현 읍내면 무지포였다가 서기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읍내면 용암동과 무양동으로 되었고 서기 1914년 3월 1일 군면 정비때 처음으로 용암동과 무양동을 합쳐서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라는 법정동리가 되었다.
대변마을
옛날에는 이곳에 주사(舟師)가 주둔하고 있어서 기장진이라 하였고 선두포(船頭浦)라고도 하였다. 그래서 전선창(戰船廠) 또는 주사창(舟師廠)이라 하였고 무지포(無知浦)에 속하였다. 점차 마을이 형성되면서 용암동이라 하였다가 그후에 대변리라고 하였다.
용암동은 글뜻대로 풀이하면 용암골이 되는데 용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큰 바위도 없고 비슷한 바위도 없다. 떡돌바위, 뽕곳돌바위, 성기듬바위, 새앳돌바위, 수문돌바위라는 이름뿐이다. 용암동은 미리 용(龍), 바위 암(岩), 골 동(洞)자로서 미리, 바위, 골이 된다. 옛날 이곳은 수군들의 무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미리, 바위, 골의 미리는 머리(頭)이고, 바위는 바오(武營)이고 골은 그대로 골(洞)이 되어 미리 바위 골은 머리바오골의 와음(訛音)이다. 머리바오골은 두무영(頭武營)의 뜻을 가진 옛말이다.
용암동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 별호로서 대변이라는 이름도 있었던 것 같다. 대변이라는 이름은 일정때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지은 이름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용암동이 일정때 대변리로 개명된 것이다.
대변리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사용되어 왔던 것 같다.
서기 1886년경 김성련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적은 병술일기에 우기이대변포문생원가(又寄以大邊浦文生員家)라는 기술이 발견되었다. 대변포는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라는 긴 지명을 줄여서 동고(同庫) 두자를 빼고 대변포(大邊浦)라는 3자로 작명을 한 것이다. 그것은 대변리에 대동고(大同庫)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대동고라는 창고 가에 있는 갯가라는 뜻이다.
무양마을
옛날에는 남산봉군(南山烽軍)들의 무영(武營)이 있던 곳이다. 옛날에는 남바오, 남바우, 나암바, 남바라고 하였다. 남바오의 남은 남쪽이고, 바오는 무영을 뜻한다. 그러므로 남바오는 그대로 남무영의 옛말이다. 남산에 있는 봉화군들의 무영이라는 뜻에서 남무영이라 한 것이다. 이 남산무영을 줄여서 그냥 무영이라 하여 무영이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무영을 이곳 사람들이 와음하여 무양(武陽)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 소리대로 한자로 무양으로 표시하였던 것이다. 또 무양이라고 하는 편이 무인들의 막사(幕舍)마을이라는 무영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옛날은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동리명은 없었고 그후 기장현 읍내면 무양이었고 서기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현 읍내면 무양동이 되어 이때부터 처음으로 공식적인 동리가 되었다. 서기 1914년 3월 1일 군면 정비때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의 무양마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