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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9계단 /
믿음은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즉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070105(금, 아홉째 새벽)
M.T: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믿음은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고백”이 영적 세계의 경계선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고백이라는 말은 “homologeo”로 “동일한 것을 말하다. 밝히 말하다. 드러내어 말하다. 자백하다.”라는 뜻이고, “믿음을 인정하다(to acknowledge faith in)"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네 가지의 고백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어제 새벽에는 유대인들의 죄의 고백과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의 고백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끊어진 신자의 고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범하고 그것을 품고 있을 때에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고 뼈가 마르며 주야로 심신이 모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한 후의 고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시 32:3-4)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범하면 그 즉시 그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계속해서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결국 몸에도 이상이 오게 됩니다.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실수를 하고 허물을 범했을 때 어찌해야 합니까?
죄의 고백은 하나님의 용서와 친교를 가져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3-10)
이 구절들은 불신자들을 위하여 쓰인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를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을 위해서 쓰인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끊어진 상태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말씀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잃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목적과 이미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잃어버린 상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회복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 구절들이 쓰인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범죄하는 그 순간 그것이 죄악임을 즉시 알게 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듭난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그 영이 괴로워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그 즉시 주님께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이고 당신은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계속해서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죄를 고백하게 될 때, 주님은 그 순간에 당신을 용서해 주시고 당신은 마치 죄를 지은 적이 전혀 없는 것 같이 주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됩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고백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이 고백하는 그 순간 그 죄를 완전히 도말해 버리시고 두 번 다시 기억치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한번 죄를 고백했으면 주님은 당신을 용서하셨고 그것을 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것에 대한 기억조차도 없으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시는데 왜 당신은 그것을 기억해야합니까? 당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 아니시고, 당신을 이용하려는 사단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 103:1-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고백을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신 것처럼 당신도 자신을 기꺼이 용서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용서하지 않음으로 본인의 믿음을 도적질 당하곤 합니다. 두 번 다시 기억치 아니하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죄의 용서가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하기 때문입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지나간 과거로 인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찢기고 부서져서 우울증 내지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살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지나간 과거의 실수를 가지고 우리를 괴롭게 하고 올무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사탄의 최고의 무기는 바로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모든 죽은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음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3-15)
“우리의 죄가 씻겨지긴 전 우리의 과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으로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우리 중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오직 시꺼먼 색 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믿으면 오늘 우리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되셨을 때 그토록 하얗던 예수님의 겉옷만큼 하얗습니다.”-R.A. 토레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덮는 순간 우리의 과거는 완전히 장사지낸바 된 것입니다. 영원히 없어졌으며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억치 아니하십니다. 이후에도 우리가 만일 계속 과거에 집착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4-25)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예수님의 보혈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죄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한 불신의 죄악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그 교만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깨끗케 해 주실 것과 죄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을 기도한다면 우리는 마귀가 공격해 오는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악한 생각이나, 주위 사람들의 비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제는 그와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라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믹7:19)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양심에 속지 마시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미 마음에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suneideseos poneras)이 깨끗해졌고 우리의 몸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제부터는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붙듭시다.”(히10:22-23, 현대인의 성경)
여기에서 악한 양심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과거를 상기시키며 “너는 죄인이야”라고 속삭이는 양심을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는 예수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고 의롭다함을 얻었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이 나의 과거를 깨끗이 씻었으니 나는 완전히 자유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사단이 “네 과거를 생각해 봐!”라는 속임수를 쓸 때, 우리는 “내 과거? 난 과거가 없어! 내 과거는 영원히 없어졌지. 예수님께서 깨끗이 씻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자유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셨다면, 당신은 당신의 그 죄에 대한 더 이상의 자각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기억하시지 않는데 왜 당신이 그것을 기억합니까?
우리는 다윗의 생애가 어떠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한 때 간음을 행했고, 그의 충신을 교살시켰던 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그러한 그의 죄를 고백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완전히 용서해 주셨고 하나님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의 그러한 죄악을 완전히 지워버리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과거에 그 어떤 죄를 지은 적도 없었던,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삼하12:13)
그 사건 후에 하나님은 다윗의 일생을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왕상14:8)
“···my servant David, who kept my commands and followed me with all his heart, doing ONLY what was right in my eyes."(1Kings14:8, NIV.)
다윗의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 이십니다. 당신이 당신의 죄에 대하여 고백하였다면, 당신은 그 순간으로부터 하나님의 죄 용서에 대한 확신과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강한 확신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기꺼이 기도하며 그 분의 응답을 기대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아멘.
첫댓글 주님과의 친밀함이 깨어지지 않도록 주님께 모든 소망을 두며 범죄치 않도록 도우소서.
I had a lot fo sin. I confessed my sin to God but I was still tortured by Devil conscience even though I confessed my sins.But I went to God with Jesus blood and believe his blood untill I felt free. Oneday, I suddenly felt free. I experience exactly like this article.
저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항상 동해하심을 감사합니다. 목회의 여정 속에 주의 능력으로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