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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목사의 적, 목회의 적' 저자인 김청수 목사님의 글입니다. *************** 내가 교회를 여러 번 개척하면서 실패하게 된 이유들을 내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개척하면서 실패했던 경험들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옛 말대로 부족하고 못난 저의 실패 경험들이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시는 여러 목회자들에게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글을 기록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개척된 교회다. 새로운 교회가 개척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 개척은 하나님의 명령이시고, 새로운 지도력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역사적 흐름의 변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교회 개척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인구의 도시화 현상이다. 1920년까지만 해도 세계 인구 가운데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수치가 29%에 이르고, 1990년에 가서는 45%에 도달한다. 그리고 2000년대에 가서는 세계 인구의 50%(약 32억)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25년에는 그 수치가 65%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세계를 도시화하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신학적 관심과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적 열기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화 현상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또 한가지 도시화에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도시의 중심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좋은 환경을 따라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새로 형성되는 주거지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다. 따라서 대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형성되는 새로운 주거 지역에는 그들의 하나님에게 인도할 많은 교회가 필요하게 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개척 교회가 생기게 되었다.
1. 내가 경험한 기존 교회와 개척 교회들 (실패한 교회 개척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군목으로 입대하여 3년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를 했다(1975년). 민간 목사가 되어 처음 교회를 개척한 곳은 대방동의 주택지였다. 이미 학교 다닐 때부터 교회 개척을 하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에 그 동안 교회 개척을 위해 마련해 둔 자금을 가지고 그곳 사거리의 조그마한 이층을 임대했다. 사택을 따로 마련할 수가 없어서 홀의 한족을 막아 방한간을 만들어 사택으로 쓰기로 하고 교회에 필요한 비품을 마련하려 다닐 즈음, 대방동의 어떤 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1). 이층을 임대해서 예배 드리는 아주 작은 기존 교회에서 당한 괴로움. 청빙을 받은 그 교회는 지금은 꾀 큰 교회가 되었지만 당시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15평이 될까 말까 한 예배 실에 2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들이고 있었는데 전임 목사가 무슨 일로 사임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사람의 성도도 없이 교회를 개척하는 것보다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있고 작지만 아담한 예배당도 있는 그곳이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사에게 아주 유익한 프리미엄이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 우리가 준비했던 교회 개척 자금으로 살 만한 사택을 얻고 커다란 희망과 소망 속에서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이 못되어 나는 그곳에서 엄청난 저항을 받았고 쫓겨나듯이 그 교회를 사임하고 말았다. 첫 목회지에서 당한 일종의 실패였던 것이다. 나는 이 교회에서 많은 괴로움과 고틍을 당했다. 근대를 재대하고 목회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는 신학생으로 큰 교회의 고등부 전도사로 교회를 섬긴 경험밖에 없었으며 그런 경험으로도 능히 교회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터부니 없는 착각 속에 산전 수전을 모두 겪고 바르지 못한 신앙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목회가 잘 될 리가 없었다. 내가 그곳에서 당한 괴로움은 어떤 잘못 때문에 일어 난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①. 그곳의 성도들은 천박한 신비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꿈을 믿고, 자기 망상과 희망 사항이 환상으로 변질된 신비주의자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 교회에 부임을 했다. ②. 그들의 신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바르게 가르치려 시도를 했다. 나도 상당한 신비 체험을 했기 때문에 성경 말씀과 내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잘못된 신비주의를 바로 잡으려고 급하게 서둘렀다. ③. 그들의 두목 격인 고집사와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 고집사의 남편은 사상적 사건으로 감옥에 가 징역 살고 있었고 교회를 다니지 아니하는 딸이 둘이 있었다. 그녀는 유방암으로 큰 고통을 당하다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주님을 영접했다. 그녀는 대단한 신비주의자로 마치 예수 점쟁이와 같은 짓을 했다.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예배를 보아주고 예언을 했다, 그리고 예언을 받은 사람들이 주는 돈과 그들의 11조를 갈취하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설교 가운데 그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게 되고 결국 그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④. 그들이 기대한 만큼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엄청나게 괴롭혔다. 여러 가지 입지적인 조건도 좋지 않고, 그렇게 한 사람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이상한 교회가 성장할 까닭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교회 성장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성도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받았고 그것은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늘 초조하고 괴로웠다. 그러니 설교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⑤. 행정에 착오를 일으켰다. 학생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는 아주 큰 교회였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배운 교회의 행정을 시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큰 어른의 옷을 어린이에게 입히는 꼴이어서 잘 맞아떨어질 리가 없었다. ⑥. 성전 대지를 마련하려 했다. 나는 나의 첫 목회지에서 당한 딜레마를 성전 건축을 하기 위한 대지를 마련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참으로 어리석은 우를 범했다.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복안에 대하여 정말 터부니 없는 누명을 씌워 나를 배척하기 시작을 했는데 「목사가 우리가 낸 건물 임대료를 통째로 먹어 버릴려고 교회 부지를 사자는 말을 한다」고 모략을 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고 집사와 그를 추종하는 이 집사가 있었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급료를 봉쇄하고 나중에는 내가 교회를 출입할 수 없도록 교회 문을 봉쇄했다. 나는 마지막 주일 설교를 하기 전에 「하나님 저는 도저히 이 이상 이 교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힘겹게 설교를 하고 강단을 떠났다. 나는 이 교회에서 당한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수없이 금식 기도를 하고 시내 버스를 타고 종점과 종점을 오고 가며 멈추어 버린 것같이 답답한 심장에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차의 창문을 열어야 했다. 물론 아내도 너무 힘들어 온몸이 바짝 바짝 말라 가며 병들어 신음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런 제 부모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이고 벌벌 기어 다녔다. 이 교회의 주체는 목사가 아니라 임대료를 가장 많이 지불한 고집사였다. 다시 말하면 고집사가 세운 교회에 내가 부임을 해서 그런 꼴을 당한 경우다.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목사들이 명심할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해도 그 교회를 세울 때 누가 임대료를 가장 많이 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사들에게 성도들이 헌금을 해서 개척한 교회는 가급적 부임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십중 팔 구는 교회의 주인인 척하는 무리들에게 고용인과 같은 취급을 당하다가 쓴잔을 마실 수가 있다. 3-4년의 세월만 잃어버린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마지막 설교를 마친 며칠 후에 동대문의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2). 조그마한 성전이 있는 상처받은 교회에서의 실수. 신도림동 교회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쫓겨 난 후 망연자실하여 낙담하고 있을 때 친구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의 아들인 그 친구는 동대문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교회를 맡게 되었으므로 나에게 와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고 눈물겹게 감사를 했다. 인간들은 나의 모든 것을 막고 앗아갔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갈 길을 인도하신다고 확신을 했다. 그 교회에 부임하고 안하고 할 처지가 아니였다. 즉시 확답을 하고 다음 주일부터 부임해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 교회는 당시에 상당히 이름 있는 부흥사가 시무했던 교회로 300여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였는데(70년대 중반기에는 700여명 모이는 교회가 서울에서 아주 큰 교회로 대접을 받았다.) 목사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 몇 년 동안 목사와 성도 사이에 불미한 다툼이 있었고 그로 인해 성도들이 흩어져 겨우 30여명밖에 남아 있지 않는 교회였다. 친구는 그런 악 조건을 가진 교회에 부임을 해서 1년여 동안 섬기다가 나에게 교회를 맡기고 아버지 교회로 부임을 했다. 나는 전에 있던 교회에서 워낙 큰 괴로움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형편의 교회라 할지라도 감지 덕지했으며 목사로서의 새로운 이상과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주 가난하고 낙후된 동네로 주민들이 삶의 의욕을 가지지 못한데다가 교회가 수년씩 아주 불미스럽기 짝이 없는 사건으로 나쁜 소문이 퍼져 전혀 전도를 할 수 없는 지경이 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그 교회를 시무하면서 장로를 세우고, 권사와 안수 집사를 세우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수고한 결과 열매가 있어 100여명의 성도들이 모이게 되었고 교회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성도들에게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목사인 나 자신에게서 생겨진 것이었다. 날마다 같은 일의 반복은 나를 식상하게 만들었으며 욕망과 야망에 불타는 30대 중반의 젊은 목사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교회는 변화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교회 가까이 있는 들판(지금의 장안평을 말함)에 새로운 도시가 형성된다는 소문이 들렀다. 나는 아내와 함께 그곳을 자주 가 보곤 했는데 틀림없이 개발이 될 수 있는 장소로써 개발되기 전에 그곳에 교회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면 교회가 크게 성장할 가능성을 200% 이상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가진 재산을 정리하면 그곳에 아름답고 큰 성전을 건축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겨났고 그 확신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재직들에게 교회 이전 문제를 제시했다. 장시간을 걸쳐 설명하고 또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직들의 반응은 이외로 싸늘했다. 이미 한 번 목사에게 호되게 혼이 난 성도들이 여서 그런지 알 수 없었으나 목사의 교회 앞날에 대한 청사진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한 사람, 동대문 시장에서 리어카로 행상을 하는 여집사가 내 말에 찬동을 했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큰 실망을 했다. 목사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성도들, 미래의 이상과 꿈이 없는 사람들, 그곳의 상황을 보여 주었지만 도무지 무감각한 사람들-------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내가 시무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심한 괴리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고 내 목회의 이상과 꿈을 이곳에서 펼칠 수 없으리라는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나와 아내는 하나님의 종으로 큰 목회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아 온 서울을 뒤지며 헤매기 시작을 했다. 이것이 내가 두 번째 목회지에서 당한 두 번째 실수요 실패가 되었다. 그곳 교회를 떠난 것은 20년여 전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생각들을 간단히 여기 기록한다. ①. 한 영혼의 소중함을 망각한 체 하나님의 사업을 하려 했다. 목사가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교회에 모이는 인간의 한 집단을 섬기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기실 때 “(요21: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21:16)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 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하셨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내 양들을 치라”하시지 않고 “내 양을 치라”고 하셔서 교회의 집단이 아닌 한 영혼을 사랑하며 목회를 해야 함을 가르치셨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된 체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겠다는 맹렬한 열정은 만류하는 성도들의 소원을 냉엄하게 뿌리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때 나에게는 오로지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지 자기들을 인도해 달라는 한 성도 한 성도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는 목회 사업을 하는 종교적 사업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되며, 또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한 영광을 바라서도 안 된다. 그리고 타산적일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잃어버린 한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온 산과 들을 헤매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각과 각성 속에서 이 일은 가능할 것이다. 내 양을 찾는 실리도 배제해야 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탐색이나, 뒤돌아 봄이 있어서도 안 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오로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시키시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도 말며, 그 이하의 것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말자. ②. 하나님의 뜻을 거슬렸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듯을 전혀 분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여기 기록하지 않고 「30년 목회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에 기록을 따로 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이나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도, 믿음, 사랑, 헌신 등 무슨 신앙의 요소이던 모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생각이요 행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성경을 많이 배우고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목사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많은 방황을 했고 착각을 했다. 어떤 때는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소원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의 그럴듯한 충고가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되기도 했다. 심지어 내 야망과 욕심이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동대문 교회의 경우에 나는 나의 야망으로 인해 성도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 일은 평생 동안 나를 후회스럽게 했다. 여기서의 하나님의 뜻은 우림과 둠밈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꿈이나 증조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어떤 신령한 사람의 예언으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교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울면서 간곡히 만류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버렸고 하나님의 뜻도 거스렸다. 어리석고 미련하게도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다. ③. 지극히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다. 동대문의 교회는 너무 편했다. 그래서 다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생활도 안정되었다. 그것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첫 목회지에서의 괴로움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그런 안정된 목회지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한탄하고 답답해했다. 그 때 답답하게 느껴져 젊음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며, 한탄하고 자조하던 감정은 순전히 사단의 조급증이였던 것을 전혀 몰랐다. 나는 그 때 그것을 하나님을 위한 열정으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④. 성도들의 생각을 파악하지 못했다. 성도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3년 전에 교회가 분열된 사건은 교회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일어 난 것이라고 성도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성도들은 교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성장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가 안정되고 평안한 신앙 생활이 급진적인 변화 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매우 바른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그런 안주에 몸을 내 맡기기에는 내 목회자로서의 야망이 견뎌 나지를 못했다. 그래서 교회를 옮겨 장안평으로 교회를 이전하자는 안을 냈고 성도들은 반대를 했다. 성도들은 그런 획기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엄청나게 큰 상처를 몇 년 전에 체험했다. 그 체험은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고 방식이 화려해진 목사의 실수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큰 교회 보다 작지만 지금처럼 안정되고 평안하고 즐거운 교회 생활을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성도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이상과 꿈이 없는 속 좁은 인간들로만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 버린 것이다. 지금 그 교회는 다른 목사가 와서 장안평에 들어가는 입구에 새로운 성전을 아름답게 짖고 많이 성장했다고 한다. ⑤. 내게는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었다. 서둘러 실패하는 일은 많지만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려서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성도들이 교회 이전을 반대하면 응당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사람씩 만나 교회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설득해야 옳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 장안평이 개발되고 있지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지금도 내 자신을 알 수 없다. 목회는 평생 하는 것이며, 내 자식들의 대를 이어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리고 주님이 세상에 재림해 오실 때까지 계속이 되는 것인데, 내가 마치 하나님의 마지막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서둘렀으니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순리성을 찾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목회가 필요한 것이다. 장안평이 개발되는 것도 아니고 목동이 개발되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교회를 떠나고 서둘러 교회를 개척한 나의 어리석음을 십년이나 더 지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 사이에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3). 목동의 개척 교회의 실패 11월부터 1월까지 3개월 동안 아내와 나는 강단에 엎드려 철야하며 기도를 했다. 그 때 성도들은 자기 교회의 목사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줄로 알았을 것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개척 교회를 위해 기도를 했던 것이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는 교회에 사임을 통보했다. 그곳의 성도들은 깜짝 놀라 우리를 극구 말렸다.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나중에는 서운함이 지나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망망 대해를 헤쳐 새로운 천지를 발견하려 가는 심정으로 큰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미래가 없는 그 교회를 떠나 목동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대문의 교회를 그렇게 떠난 몇 년 후에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해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들였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지만 이미 돌리 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후였다. 우리가 교회를 억지로 사임하고 새로운 개발 지역인 목동으로 이사를 온 때는 눈발이 간간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내가 그곳을 교회 개척 장소로 전한 것은 얼마 되지 않으면 그곳에 대 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선 개발될 수 있는 지역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가 개발이 시작되면 새로운 아파트 지역으로 교회를 옮길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이 개발 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17평 짜리 이층 홀을 얻어 교회를 시작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재대로 된 개척 교회를 시작한 우리들의 마음은 한없이 자유스럽고 희망이 불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기로 수개월 전에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나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 그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척을 함께 할 성도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맺었던 인간 관계를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들에게 주로 한 말들은 함께 교회를 개척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멋있게 들어내고 큰 축복을 받자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의 이런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이미 20여명이 넘는 성도들의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친척, 친구, 고향 후배, 과거에 함께 신앙 생활 했던 성도들이었다. 우리 교회는 아주 단란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며 그런 대로 재미가 있었다. 약간씩 저축도 할 수 있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실 축복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있었고 주일에 모이면 지난주간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축복을 서로 확인해 보는 시간을 암암리에 가지곤 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눈에 뜨이게, 손에 잡히게 뚜렷한 축복은 없었다. 그래도 약간은 과장된 뜻한 어조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말하고 함께 즐거운 듯 웃고 했다. 그렇게 1년이 거의 되어 갈 무렵 근처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친구 목사가 나를 찾아 왔다. 그의 말인즉 자기 교회가 성전을 신축하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성전을 우리 교회가 매입해 주었으면 피차에 좋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수천만이 있어야 하는 그 교회당을 인수할 경제적인 힘이 없었다. 당시 교회가 저축한 돈은 그 성전 매입 가의 1/10도 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나는 크나 큰 착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아주 좋은 기회를 주시므로 새로운 성전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 목사의 권유를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목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교회를 파멸로 이끌어 갔다. 그 과정은 (Http://GodisLove.net/moksa)목사 홈 페이지의 30년 목회 사이드의 1번 글인 '목사의 야망이 믿음으로 착각이 되는 경우'에 자세히 기록을 했으니 보시기 바란다. 여기서 목사 일생에 결정적인 목회의 상처를 입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모든 일을 아내에게 맡긴 후 지리산의 기도하려 올라가 버렸다. 친구 목사와 산에 올라가 일 개월을 기도하고 간구 하였더니 우리 교회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 버린 이유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성도를 괴롭히면서 성전을 건축해서는 안된다.」 는 말씀이셨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글도 목사 홈 페이지의 목회 잘하기의 7번 글인 70년대 목사의 기도 생활에 기록을 했으니 참고로 보시면 좋을 것이다.
목동 교회가 실패로 끝난 원인은 몇 가지 있다. 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되 너무 빨리 움직여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새로 형성된 도시의 개척 교회 시작은 신 시가지가 형성되기 직전에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소문을 듣고 신 시가지가 형성되기 5년 전에 그곳에 들어갔던 것이다. 즉 신 시가지를 목표로 하면서 실제로는 몇 세대 되지 않는 안정된 주거 지역에서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②. 가까운 친척, 친구, 아는 성도들을 중심 해서 교회를 시작했다. 교회를 시작할 때 목사가 당하는 아주 평범하고 상식적인 유혹이다. 이 방법은 우선 편하고 쉽다. 재정적인 확보가 쉽게 이루어져 교회 시작의 초창기부터 재정적인 어려움이 해소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는 지역에서 얻어진 성도들과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말해 듯이 주일 낮 예배에만 참석하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 없으며 기도회와 다른 시간의 예배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그들과는 인간적인 유대감과 친밀감으로 인해 목사와 성도간의 경건한 거리감이 없다. 그래서 친밀감으로 인한 무례가 생기기도 하고, 그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목사의 생활비와 무리한 성전 건축 헌금을 개별적으로 강요했다. 30년 목회 제 1번 글) 그 결과 그들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고 아울러 긴밀한 인간 관계마저 손상을 입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③. 지역 성도들을 얻기 위한 전도에 실패했다. ②항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서 새 신자를 얻는데 완전히 실패를 하고 말았다. 이미 20여명이나 모이는 친근감 넘치는 성도들로 인해 교회 운영에 별반 어려움이 없었으며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새롭게 형성되는 아파트촌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장소는 임시로 마련된 곳이라는 사고 방식이 지역 전도를 하지 않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실패한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다. ④. 어리석은 야망과 경쟁심.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첫 번째 부임하여 시무한 교회는 전농동에 있는 교회였는데 내가 부임하기 전에 큰 시험을 받아 교회가 분열되어 남은 성도들이 30여명밖에 안되었지만, 조그마한 성전도 있었고 교회의 상처도 차츰 아물어 3년 동안에 100명이 훨씬 넘는 성도들이 모였다, 그러나 그곳은 아주 가난한 동네였고 목사에 대한 성도들의 기대와 사랑이 남달랐으나 30대의 피가 끓어오르는 어리석은 젊은 목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별로 성장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교회에 안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3개월을 철야 기도를 한 후에 훨씬 더 큰 비전이 보이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여 목동에 교회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나의 사임의 소식을 전해들은 전농동의 교회의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교회사임을 말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만류에도 전농동의 교회에 비전이 없다고 말하면서 무리해 교회를 떠났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매우 노여워 하셨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목사의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때(1975년도)의 내 비전은 망상에 불과한 어리석은 욕심과 야망이었다. 목사의 비전은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양들 자체인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또는 어떤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으련만, 실제 목회 일선에서 참된 목회자의 이상과 어리석은 망상의 차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로지 그 때 내게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와, 죄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악함과, 자신을 엄청나게 과대 평가한 교만과, 신기루와 같은 나와 우리 교회의 미래를 확신해 버리는 스스로 만든 함정뿐이었던 것이다. ⑤. 성전 건축에 대한 지나친 열망과 강제적인 헌금 강요. 교회를 세운지 6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교회의 재정은 약간의 흑자가 되어 있었다. 그 때 우리 교회에서 가까운 친구의 교회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성전 부지를 마련하고 건축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족한 건축 자금을 채우기 위해 60여 평이 되는 기존의 성전을 팔려고 노력을 했다. 친구 목사는 우리 교회가 잘 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 와 자기 교회 성전을 매입하도록 종용을 했다. 나는 그의 권유에 따라 성도들을 설득하고 교회가 가진 재력의 수 십 배가 넘는 선전을 매입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은 오로지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커다란 모험이 였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는 믿음도 있었으나 나와 특별한 관계를 가진 우리 교회 성도들의 헌신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목사의 야망과 믿음」이라는 글에서 말했듯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 면담해 가면서 건축 헌금을 작정시켰다. 그러나 내 믿음은 모두 내 야망과 욕심에 대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곧 알았다 성도들이 작정한 헌금을 현찰로 생각하고 많은 빗을 얻어 중도금까지 치른 후에 우리 교회는 새 성전으로 이전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돈을 투자하여 대대적으로 낡은 성전을 아름답게 수리했다. 그 때 나는 완전히 노동자가 되어 밤낮으로 성전을 꾸미는 일을 했는데 너무나 소망스럽고 감사가 넘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나와 아내가 그렇게 흥분이 되어 엄청난 교회 성장의 환상을 안고 성전 꾸미기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우리 성도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건축 헌금으로 인해 차츰 차츰 시험에 들고 있었다. 나는 우리들의 흥분으로 인해 그들이 시험에 빠져 교회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들의 영적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성도가 없는 아름다운 성전에서 많은 부채를 안고 우리 부부는 울고불고 신음을 하게 되어 버렸고 빚쟁이들의 빗 독촉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나는 모든 뒤처리를 아내에게 맡기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는 심정으로 지리산에 기도하려 들어 가 버렸다. 그 때의 심정은 ‘30년 목회’란의 「70년대의 목사들의 기도 생활」에 자세히 기록을 했다. 기도를 시작한 후 한 달쯤 되었을 때에, 우리 교회 성전은 다른 이웃 교회로 넘어 가고 나는 성전도 없고 교회도 없는 백수 목사가 되어 버렸다. 4). 다른 목사가 개척한 교회를 인수받아 다시 시작한 개척 교회. 3개월이 넘는 지리산의 기도 생활을 마치고, 나는 산에서 내려 와 새로워진 심신을 가지고 교회를 다시 개척하기 위해 서울의 온 시내를 뒤고 다녔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섬김에 잘못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언 간 나이가 40을 바라보는 시점에 와 있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강남에는 대 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형성되는 아파트 단지에 교회를 세우기에는 시기 상조였다. 우리는 이미 목동에서 그런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생각을 가다듬고 가다듬어 이미 아파트 택지를 조성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2키로 정도 떨어진 조그마한 아파트 지역의 상가에 있는 어떤 교회를 맡게 되었다. 나는 그 교회의 비품 일체를 적당한 값으로 인수하고, 그 교회가 임대한 임대료를 모두 지불하고 15명 정도 남아 있는 성도들이 모두 계속 교회를 다닌다는 조건으로 인수를 한 것이다. 그 교회는 어떤 교회에서 교회에 불만을 가진 몇 명의 사람들이 세운 교회였는데 목사가 그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그런 식으로 목사를 내 보내고 다른 목사를 찾고 있었는데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그들과 접촉을 해서 내가 교회의 모든 제정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부임을 한 것이다. 세속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로 하자면 돈을 주고 교회를 통채로 산 것이다. 날이야 어떻든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다시 강단에서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다. 성도들은 이곳 저것 흩어져 살고 있었지만 약속한 대로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성실히 교회 생활을 잘 해 주었다. 그리고 교회도 조금씩 성장하고 안정되어 갔다. 교회를 부임한 몇 달 후에 나는 돈을 구해 건물의 임대료를 지불했는데 그 임대료는 전에 있던 목사가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 재정을 맡아 있던 집사가 마련한 것이었다. 그 집사는 임대료를 환불받자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나 버렸다, 그런 일이 있었어도 남은 우리들은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를 하며 새로운 기회의 땅인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5). 강남의 대 단지 아파트 지역에서의 개척 교회와 사기 당한 이야기. (1). 집에서 시작한 개척 교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곳 아파트 단지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유치원 건물의 3층의 1/4에 해당되는 35평 정도의 홀을 분양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세든 건물의 임대료와 약간의 헌금과 은행의 융자를 이용했는데 당장에 건물 값을 전액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기 대문에 가능한 일이 되었다. 드디어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매입한 건물은 아직도 공사 중이였다. 교회가 입주를 할 때 가지 외곽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13평 짜리 아파트를 한 체 전세를 얻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을 했다. 비록 조그마한 집에서 협착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이 자리를 좁혀 드리는 예배이지만 마땅히 다닐 만한 교회가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새로이 입주한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을 했다. 재봉틀을 강단으로 하고 이방 저 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성도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산만하고 어지럽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국수를 끓여 점심을 먹었다. 정말 가정 교회였다. 즐거웠다. 전도도 열심히 했다. 우리들에게는 이제 완공되면 들어 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일은 새벽 기도였다. 조그만 소리를 내도 즉시 반응이 왔다. 사람이 점점 많이 모이면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관리소에서도 쫓아 와 자제를 요청했다. (2). 아파트 유치원 3층에서 시작한 교회와 그곳에서 당한 시험. 그렇게 어려움을 몇 달을 당했지만 분양 받은 건물이 완공되어 우리 교회는 비록 유치원 건물의 1/4에 불과한 성전이지만 우리 성전에 입주를 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을 했다. 왕국이 다로 없었다. 이곳이 하나님 나라의 왕국이었다. 의지와 강단, 커튼, 마이크등 교회 비품들을 마련하고 첫 예배를 드리는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첫 예배를 드릴 때부터 이미 성전은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성도들이 모였다. 복도를 가운데로 우리 교회 맞은 편에는 침례 교회가 입주를 해서 두 교회의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렀다. 그래도 별 불만은 없었다. 내가 새로이 형성되는 아파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자 한 것은 아파트에서 살면서부터 생겼다.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적인 성향과 그들의 삶의 생리와 문화적 욕구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맞는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면 틀림없이 교회가 잘 성장할 것으로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파트 지역의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에 대한 세 가지 중점적인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여 죄인을 구원하는 지역 복음화 운동이요. 둘째는 목표는 교육하는 교회였다. 개인의 신앙을 양육하여 중생한 성도를 만들어 내는 일이며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충성스러운 종이 되게 하고 제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 셋째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다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와 같은 목회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니다. 교회를 세워 성도들이 모이게 되고 차츰 자리를 잡혀감에 따라 교회의 성격이나 지향점을 찾을 것으로 생각을 했으나, 나중에는 교회의 성격과 목적을 미리 전해 놓고 그에 따른 전도와 설교와 성경 공부를 시행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되어 두 번째부터는 이런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대단한 효과를 가져 왔다. 교회가 많이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1년쯤 되자 예배 장소가 비좁아 우리 교회와 맞붙어 있는 태권도장을 주일만 쓰기로 하고 빌었다. 그곳도 35평이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 성전은 이제 70평이나 되게 되었고 그곳에 마련한 의자에 성도들은 그득히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주일 학생들도, 학생들도 많이 모였다. 기도를 많이 했다. 수요일에 예배가 마치면 우리들은 교회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가까운 청계산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를 하고 돌아 왔는데 평균 40여명씩 기도를 했다. 금요 철야 기도회는 더욱 은혜로웠다. 구역 별로 책임제 동원령에 순종해서 구역 장들이 밤 11시만 되면 구역 식구들을 동원했다. 그래서 많을 때는 80명이 넘는 성도들이 청계산 기도원에 올라가 이튿날 새벽 5시가지 목이 터지게 기도를 했다. 이렇게 뜨겁게 모이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성전 건축에 대한 기도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게 되었다. 교회를 개척한지 6개월이 넘어 1년에 접어 들 때였다. 나는 성전 건축에 대한 자세가 신중을 기하고 있었으나 성도들은 성전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위한 대지 헌금을 실시한 결과 70여 평의 땅을 구입할 수 있는 헌금이 봉헌되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 근방에 있는 대지 100평을 구입했다. 이 땅을 구입하기 위해 온 성도들은 큰 기쁨과 은혜로 한 번의 건축 헌금을 작정하고 신속히 헌금을 했다. 어떤 이들은 집을 팔아 받친 사람, 어떤 사람은 결혼 패물을 모두 드린 사람, 수 년 동안 부은 적금을 통장 째로 가져온 사람 등 정말 온갖 정성을 다해 거액을 마련해서 성전 부지를 마련하고, 조금 모자란 것은 빗을 얻었지만 헌금으로 능히 잘 감당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계속 열심히 기도하던 성도들은 100평의 땅에 50평의 건물을 지으면 성전이 너무 적어 쓸모가 없으니 50평을 더 마련하자고 하여 추가로 헌금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들의 경제적 형편상 대단히 무리한 일이 되었다.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한다거나 작정을 한 후에 성도들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교회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100평을 사기 위해 얻은 빚도 갚기 어려운 내부적인 심각한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그 무렵 목사를 속이고 사기를 치는 장로 부부가 우리 교회에 왔다. 우리는 그 분들을 극진히 대접했으며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욕심을 치우고 나에게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으며 교회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이 부분의 자세한 이야기는 목회 30년 경험의 사기꾼 장로 이야기에 자세히 기록을 했다.) 그러나 목사에게 교회를 사임하고 떠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를 떠났다. 이 때 당하는 목회자의 아픔과 슬픔은 말할 수 없이 크고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등을 돌리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마취를 시키지 않고 수족을 짤라 내는 것과 같은 아픔을 주었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은 목회자에 대해 대단한 오해를 했다. 그러나 그들도 목사를 교회에서 쫓아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교회도 실패를 하고 말았다. 몇 안 남은 성도들과 의논을 했다. 양재동의 교회 문을 닫고 새로이 개발되는 신 시가지로 교회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합의가 이루어 졌다. 이곳에서 그렇게 실패를 하게 된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서 기록을 한다. ①. 성도들에게 주체 의식을 심어 주지 못했다.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점이 많다. 그러나 한가지 일어 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하면 교회가 안정된 교회 되는데 큰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목사가 주체가 되어 세워진 교회에 등록한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교회이지만 목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교회 의식을 떨어버리지 못한다. 목사의 교회에 마치 손님이나 시집을 온 며느리 같은 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즉 교회가 ‘내 교회’라는 의식이 결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불식시켜 교회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심정을 성도들에게 심어 주지 못하면 조그마한 불만도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미련 없이 떠나 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아파트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제일 많이 경험하고 당황한 일이 이런 류의 일이었다. 장로가 되었어도 교회를 쉽게 떠나고, 안수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구역 장이 되었어도 조그마한 불만이 생기면 교회에 대한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아니하고 교회를 떠나 버렸다. 그러므로 이런 손님 같은 교회 생활을 불식시키기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교회의 모든 일을 직접 참여하여 주장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 제정 관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해서 마치 자기들이 교회를 운영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고도의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 챙기시고 섭리하시고 다스리신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 존재할 수도 없고, 생명을 호흡할 수도 없으며 생성과 소멸의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닫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고 진행시키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인간은 아주 탁월한 어리석음으로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살고,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만족하고 소망을 가진다. 이런 것들이 이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런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많았다. 이런 신학적 논쟁을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라고 하였고 이에 대한 논박이 심했다고 했다. 이런 신학적 논박이 신학을 발전시키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세상 섭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성격적 해답을 찾아내게 된다. 개척 교회의 목사는 이런 하나님의 지혜로운 다스림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목사가 하지만 새로 등록한 교인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하는 고도의 지혜로운 교회 섭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강조해도 성도들은, (특히 아파트 지역의 성도들은 자기가 살고 잇는 아파트를 영구히 살 가옥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게 3년 정도 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자기 교회 의식을 가지지 아니한다. 이런 점이 안정된 주거지역에서 10년 20년을 한 교회를 섬기는 충성된 성도와의 교회에 대한 애착심에 있어 큰 차이가 나는 점이다. ②. 성전 건축에 대한 열망이 실패의 원인이다. 성도들이 추가로 헌금을 하자고 했을 때 목사는 말려야 했다. 그러나 목사 자신의 심중에도 100평의 대지에 50평의 건물을 짓는 것은 마음에 차지 않아 더 넓은 대지를 구입하자는 데에 은근히 심정적 동조를 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목사 홈 페이지 30년 목회란 의 제 5번 글인 목사가 시련을 당하는 원인에 자세히 기록을 했다) 이와 같은 열망이 나로 하여금 그런 못된 장로의 장난에 놀아 나게되는 원인이 되었다. 만일 내가 성전 건축에 대한 무리한 욕망을 가지지 않고 일차에 주신 은혜로만 성전 건축을 시도했더라면 그런 장로의 유혹에 넘어 갈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③. 사람을 잘못 만났다. 우리를 사기한 장로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사람을 만난 것도 나의 과욕으로 안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2. 추가하여 몇 가지 교회 개척의 실패를 첨가하면 다음과 같다. ⑴ 대 교회 주의를 모방하며 목회를 시작하는 것이다. 개척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다. "사울의 옷을 입은 다윗"처럼 시작해서는 안 된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처음부터 대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 교회가 되더라도 목사는 한 영혼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몇 사람되지 아니한 작은 교회에서 한 영혼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체 이루어지지도 않는 대 교회만 꿈꾸고 있으면 안 된다. ⑵ 장소를 잘못 선택하면 실패한다. 주님께서 던지라고 하신 깊은 곳에 고기가 있다. 그곳을 찾아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장소는 교회 설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척 교회의 좋은 장소는 대도시 변두리 지역에 새로 형성되는 고밀도 주거지다. 그러나 장소가 아무리 좋아도 교회가 장소로 인하여 성장하는 기간은 교회를 설립한 1년 동안이며, 그 후에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후에는 목사의 설교와 인격, 영력, 부지런함 등등이 교회 성장을 좌우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친 경제적인 부담을 가지고 교회를 설립하여 파산하기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형편에 맞추어 교회를 설립하다 보니 성장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에 교회를 설립하여 좌절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명이 없는 성도들과 교회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교회에서 배척을 당하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이다. ⑶ 교회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이 되는 목사의 설교 신령한 생활. 장소로 인해 성도들이 잘 모이는 시점은 약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후는 장소 때문에 잘되던 교회도 목회자의 목회 신학이나 교회의 운영 방침, 설교 또는 목회자의 신령한 생활은 많은 다른 요소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장소나 교회 건물을 보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여 교회를 다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목회자와 교회에 신령한 은혜가 결핍이 되면 아무리 좋은 장소와 풍부한 경제력과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성도들은 그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몸 바쳐 헌신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영감 기르기는 교회 성장에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기도 생활, 성경 보기 등 극히 기본적인 신령한 생활을 잘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은 목사를 닮는다고 한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도록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하는 일에 앞장을 설 것이며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종으로서만 살아가는 ‘스스로 죽음’의 생활이 필요하다. 이 잠에 대해서는 1장의 글 ’목회 신학‘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란다. (4). 다른 교회와 차별화 된 예배 형식과 교회 프로그램을 가지지 말라. 예배 순서 차별화, 교회 분위기 차별화, 설교의 차별화 등 다른 교회와의 차별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이런 차별화는 새로 교회를 찾아 온 성도들로 하여금 필요 없는 경계심을 불어 일으켜 다시 오지 않게 한다. 여기서 한가지 부언할 것은 우리 정통적인 교회들이 드리는 예배 순서는 구약의 제사 법을 기초로 한 신약적 예배 형식으로서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짜여진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입각한 형식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파트에서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강단에 절기를 알리는 휘장을 놓았더니 어떤 성도가 전화를 해서 이단이 아닌 가라고 물었다. 심지어 강단에 펴놓은 성경을 보고도 다니던 교회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왜 그런 것(성경)을 그렇게 펴서 놓았는가 라고 물었다. 설교와 기도, 찬양 등이 잘 짜여져 있어 규모 있게 진행되는 것은 새로이 교회를 찾아 온 성도들에게 많은 호감을 줄 것이다. (5). 교회 재직 임명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개척 교회는 언제나 일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새로이 등록한 성도들의 인적 사항만 보고 교회의 중직을 맡기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나는 집사가 아닌데도 집사라고 속이는 사람을 보았고, 구역 권찰을 했으면서도 구역장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지만 교회의 일군을 세울 때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니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신앙 전력을 탐색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 일대 일로 만나는 기회에 전에 다니던 교회와 목사에 대하여 물어 보면 그가 쓸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 즉 다니던 교회나 목사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허물을 들어내는 사람은 요 주의 인물이며, 반대로 교회와 목사를 잊지 못해 그리워하며 등록을 늦추는 사람은 참으로 쓸만한 사람이다. 충분히 살펴보고, 교육을 한 다음에 일군을 세우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매우 좋은 일이다. (6). 동네 교회에서 이동해 온 성도들을 조심해야 한다. 바로 옆 교회에서 이동한 성도나 이웃 교회에서 이동한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경계를 해야 하며 심정적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내가 아는 어떤 목사는 큰 교회 옆에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부스러기 성도들만 모아도 교회가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철부지 소리를 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이다. 목회 윤리에도 맞지 아니할 뿐 아니라 바로 자기 교회를 옆에 놔두고 이웃 교회로 교회를 옮기는 그런 양심이 어떻게 충성스러운 교회의 일군이 되겠는가? 이런 사람일수록 일년이나 이년 동안은 정말 충성스럽다. 마치 자기의 양심적 괴로움을 새로 이동한 교회에 충성하므로 사죄를 받으려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더 나쁘게 가난하고 어려운 개척 교회와 목사를 괴롭힌다. 틀림없이 그런 짓을 한다. 그리고 다른 교회로 가 버린다.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 그런 류의 인간들은 장말 못 쓸 죄인들이다. (7). 자기 주장이 강한 성도를 경계하라.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내 생각에는-----’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기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기를 다반사로 하며 자기의 의사가 관철되지 아니하면 대단히 기분이 나빠한다. 이런 사람은 교회를 개척할 때뿐 아니라 언제나 경계의 인물로써 교회의 중책을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이 외의 목사가 경계하고 조심할 일들은 목회 잘하는 방법란의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8). 목사의 독단적인 목회 방식. 목사의 독단적인 목회 방식은 교회의 능력 즉 성도들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사람이지만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목사가 생각하고 추진하는 일에 성도들의 생각이 따르지 못할 경우에는 인내하며 참아 따라 오도록 만들어 시행할 것이다. 목사의 생각 보다 우월한 생각은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목사가 이런 인내심과 수용력을 갖추기가 그리 쉽지 않다. 교회가 작던 크던 하나의 집단의 수장이 되어 지휘 감독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자기 절제를 게을리 하면 모든 일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며 추진하기 쉽고, 교회 재직이나 다른 성도들이 목사의 생각에 끼어 들거나 반대할 경우에 기분 나빠하고 귀찮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날마다 잘되기를 소원하는 교회의 진로를 목사 스스로 가로막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한 두 번 목사의 이런 독선과 아집과 고집을 용납하지만 그것이 개선되고 고쳐지지 아니하면 목사 퇴임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교회를 떠날 구실을 찾아 결국 목사 곁을 떠나 버린다. 나는 나의 성격상 이 점에 결정적인 약점을 가졌다. 평생을 고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지만 잘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랑을 주고 받았던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나도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오랜 후에야 내가 왜 이 자기 과대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치지 못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본 결과 “하나님 종”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에 대한 나의 고민과 깨달음은 다음 기회에 쓰겠다. 목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종일 뿐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채 교회 어른 노릇을 하려 하고, 지도자 노릇을 하려 하며, 성도들의 영적 부모 노릇을 하려 하면 틀림없이 목회에 쓰리고 아픈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철저한 복음적 신학에 입각한 목회 신학과 교회 운영을 해야 한다. 오늘 날 많은 교회가 처음에 세워질 때 잘못된 신학과 인간적인 이상(理想)이나 성취 욕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아닌 종교 기업으로 세인(世人)의 조롱을 받게 되었다. 교회의 거룩함과 신성함을 잊어버린 것이다. 교회는 장사꾼들이 장사하는 시장이 아니며, 주님이 말씀하신 데로 강도의 굴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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