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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88돌 맞아 만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이병희 씨
“독립운동은 내게 ‘숙명’이었어” 종적방연서 5백명 노동자 이끌고 노동항일운동…고문 후 위장결혼으로 출옥 사회주의 독립운동 이력…50년 숨죽여 살다 96년에야 국가유공자로 | ||
▲ © 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1919년 3·1운동 발발 1년 전에 태어나 한평생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이병희(90)씨. 그는 16세에 공장에 위장취업해 항일운동을 이끌고, 시인 이육사와 북경망명의열단으로 활동했으며, 이육사 열사가 순국하자 그 시신과 유품을 수습해 국내 유족에게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씨는 독립운동가였던 사실을 최근까지 숨기고 살았다. 꼭꼭 숨어 살던 이병희씨를 세상에 내놓은 건 어느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이었다. 이육사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방송국은 이육사 사망신고를 했던 이병희씨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고 의문이 생겼다. 당시에는 ‘이병희’라는 인물의 생존 여부는 물론 그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 모든 게 불투명했다. 이육사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 이병희씨가 이육사 열사의 손녀뻘되는 친척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이며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방송으로 이병희씨와 부친 이경식씨의 독립운동 업적이 드러났다. 그 결과 이씨와 작고한 부친 이경식씨는 1996년 애족장을 수훈하고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렸다. 식민지 현실 벗어나기 위해 ‘여성’ 넘어 독립운동 매진 “내가 여자니까 못한다는 생각은 안했어. 식민지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여자도 당연히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 후 이씨 부부는 곧 해방을 맞게 되고 서울로 돌아온다. 6·25를 겪으며 좌파인 것이 밝혀진 친척 둘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이씨는 숨어 살기로 결심한다. 이씨는 건설업을 했던 남편 조인찬씨를 내조하며 아들 하나를 낳고 딸 하나를 입양해 키우며 조용히 살았다. 그렇게 반세기를 보내는 동안 세상이 바뀌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도 인정을 받는 세상이 마침내 온 것이다. 김나령 기자 nrkim@, 사진=정대웅 기자 asrai@ 918호 [특집] (2007-02-23) |
모성·헌신의 여성독립운동가 정신
21세기 여성리더십 덕목 으로 삼길 박용옥 3·1여성동지회장 “선구적 여성” 강조 “안중근·김구 선생 어머니·아내 독립활동 재조명하는 세미나 3월 19일 개최할것” |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여성들의 ‘개척정신’과 ‘모성리더십‘을 본받아 21세기 여성 리더십의 덕목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됐다. 3·1여성동지회 박용옥 회장(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양성평등교육연구원 이사장)은 “3·1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들은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요구했던 여성상을 과감히 벗어버린 선구적 여성”이라며 “이들의 개척정신과 시대정신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요즘 여성 리더십의 덕목으로 계승해야 하는 필수요건”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아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할 뿐 만 아니라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던 안중근 열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처럼 당시 어머니들의 ‘모성 리더십‘은 독립운동은 물론 가정과 사회발전의 큰 원동력이 됐다”며 “이들의 리더십,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면모, 동지의식 등을 본받아 계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와 후손, 연구자들로 구성된 3·1여성동지회는 이같은 맥락에서 40주년을 맞는 올해를 기점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을 더욱 활발히 할 계획이다. 3·1여성동지회는 안중근 열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와 아내 김아려 여사,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락원 여사와 부인 최준례 여사 등의 독립활동에 관한 세미나를 3월 19일 개최한다. 김나령 기자 nrkim@ 918호 [특집] (2007-02-23) |
생존 여성독립운동가는
258명중 15명…94세 이효정씨 최고령 |
보훈처에 따르면, 2006년 12월 말 기준 생존한 독립유공자는 258명이다. 이중 여성 독립유공자는 이효정, 이병희, 지복영, 김정숙, 민영주, 신순호, 정영, 백옥순, 최예근, 박기은, 오희옥, 전월선, 송정환, 류순희, 이광춘씨 등 총 15명에 불과하다. 생존한 최고령 여성 독립운동가 이효정(94)씨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2006년에야 비로소 건국포장을 수훈받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씨는 이재유 선생이 조직한 비밀결사조직 '경성 트로이카'의 구성원이었으며, 1933년 서울 경성제사공업 파업활동 및 노동조합에 가담해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돼 1년여 옥고를 치렀다. 이씨는 현재 인천의 작은 연립주택에 살고 있으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과거 독립운동을 회상하는 시를 쓰고 있다. 이병희씨와는 친척 간이다. 지복영씨는 지청천 열사의 딸로 여성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김정숙씨는 1937년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고 1938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신순호(85)씨는 1938년 한국광복지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42년 임시정부 회계부에서 근무했고 1945년 8월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정보과에 파견돼 근무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신씨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훈했다. 이밖에 독립유공자는 아니지만, 독립운동 한 경력을 인정받은 인물로는 '제1회 윤희순 상'을 수상한 남동순(104)씨가 있다. 남씨는 유관순 열사와 6살에 만나 이화학당에서 함께 공부했으며, 독립운동도 함께 하는 등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지로 활동했다. 남씨는 3·1운동 직후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7인결사대에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해 독립군 자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독립촉성부인단, 대한애국부인회 등을 결성해 활동했다. 김나령 기자 nrkim@ 918호 [특집] (2007-02-23) |